2화
비행기 탑승 중이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죽을 것인지, 아니면 어떤 사고가 날 것인지. 마지막으로 그저 12시 정각이 되는 순간 눈을 깜박이면 열여덟 살 그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대신 제발 비행기 사고만은 아니길 바랐다. 자신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는다면 정말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공항이 익숙한 것 같다고요? 여행이 취미예요. 지난달에도 왔었거든요.”
시우가 말을 하지 않자, 작가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자신에게 향한 질문에 시우는 성실하게 대답했다. 혼잣말 같지만, 계속 주절거려야 했다. 무명 가수에 가까운 대학생 시우에겐 시간이 넘쳐 났다. 정확히 외운 회차에 외운 숫자를 적어 넣으면 복권 당첨금이 손에 들어왔다.
시간과 금전적인 것에 여유가 생기자 여행을 다녔다.
지난달 홀로 다녀온 유럽 여행에 대해 말하는 사이 게이트에 도착한 시우는 그곳에서도 카메라가 꺼지지 않는 것에 당황했다. 자신을 이렇게 열심히 찍을 이유가 없다. 구색 갖추기이거나 아마도 유명 아이돌의 잡다한 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서 자신을 섭외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작가는 눈을 반짝이며 시우에게 많은 걸 물으며 대화를 유도하고 있었다.
“혼자 여행하는 것에 익숙해서 뭐든 혼자서도 잘해요. 혼자 밥도 잘 먹고, 영화도 혼자 잘 보러 가요. 비행시간이 길어서 이것저것 많이 준비했는데. 일단 이건 구매해 놓은 영화가 담겨 있는 노트북. 오늘 보려고 구매해 놓고 아직 안 봤어요. 다음으로 건조한 기내에서 유용한 가습 마스크. 또 이거는 온열 안대예요. 잘 때 쓸 거.”
일등석 좌석에 앉아서 들고 탑승한 백팩에 들어 있던 것을 하나씩 꺼내면서 시우는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오늘은 회귀 전 자신의 마지막 날이었고, 있는 돈을 날리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종이에 적힌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는 조항만 있었지, 항공 좌석까지 지정해 주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시우는 자신에게 배정된 이코노미석 좌석을 일등석으로 업그레이드했다.
탑승한 사람이 없는 일등석 칸에서 시우는 굳이 목소리를 줄이지 않은 채 편하게 말했다. 자신을 찍은 것들은 죄다 잘려 방송에 나오지 않을 것이 뻔했지만, 계속해서 말을 거는 작가님의 초롱초롱한 눈을 외면할 수 없었다.
혼잣말에 가깝지만 나름 이것도 재밌었다. 항상 이어폰을 귀에 꽂고 혼자 조용히 다녔는데,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작가님과 카메라 감독님이 있으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김시우?”
종알종알 이야기하며 가습 마스크를 꺼내 하나씩 세팅하던 시우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들었다.
“진짜 김시우 맞아요?”
시우는 살짝 입술을 벌리고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재차 확인하는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나? 하지만 이내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아는 얼굴. 상대가 누군지 깨닫자 저도 모르게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에반?”
“와. 지금 이거 ‘Journey’ 촬영 맞죠?”
갑자기 자신의 앞으로 큰 손이 불쑥 나오자 시우는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의 손에 자신을 손을 가져다 대었다. 유명 아이돌과 함께라고 하더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이 그룹의 리더까지 섭외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안녕하세요!”
넋 놓고 있는 것도 잠시 시우는 허둥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인사말을 건넸다. 가볍게 손을 맞대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시우의 손은 에반의 큰 손에 꽉 잡혀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션의 리더 에반 루이스입니다.”
“아. 네, 네. 김시우입니다.”
“진짜 ‘Journey’ 맞네.”
에반은 시우가 아닌 작가와 감독을 보고 말하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에 짐을 내려놓았다. 의도한 것도 아닌데, 시우와 에반의 자리는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었다.
시우는 어느새 따스함이 사라진 손이 어색해 주먹을 쥐었다. 그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자신을 찍던 카메라 감독님까지 에반을 찍고 있었다. 그가 프로그램의 메인임을 확실하게 알려 주는 모습이었다.
“피디님이 비밀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이따가 만나면 꼭 안아 드려야겠어요. 저 김시우 씨 팬이거든요. 우리 동갑인데 말 놓을까요?”
카메라가 어색한 자신과 다르게 에반은 너무나도 편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의 페이스에 말려든 시우는 말을 놓자는 제안에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다.
에반이 자신의 팬이라는 걸 믿을 수 없었다. 데뷔 3년 차에 이제 앨범 두 개 낸 망한 솔로 가수를 그가 안다는 것이 더 신기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어디를 다녀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는 자신이었다. 자신의 공식 팬클럽 회원 수는 정확히 62명이었다. 그런 자신을 에반이 안다고?
무엇보다 자신은 흔하디흔한 베타였다. 알파와 오메가들은 베타에게 관심 두지 않았다. 그들만의 세상이 있었다. 어쩌면 자신과 다르게 에반은 출연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신을 알아봤겠지.
시우는 자신이 매번 왜 연예계에서 성공하지 못했는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노래하는 것이 좋았고 춤을 추는 것이 좋았기에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알파와 오메가가 가득한 연예계에서 베타는 들러리 수준이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연예계에도 알파, 오메가보다 베타가 훨씬 많았다.
태생적으로 베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외적으로 우월한 사람들이 알파와 오메가였다. 지금 자신에게 싱글거리며 말을 걸고 있는 오션의 리더 에반 역시 알파였다. 공식적으로 알파라고 하지만, 들리는 뒷말에는 그가 골든 알파라는 말도 있었다.
그가 속한 오션은 다섯 명의 알파로 구성된 그룹이었다. 한 그룹에 알파가 한 명만 있어도 이슈일 텐데, 구성원 전체가 알파라는 것에서 데뷔 전부터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데뷔 5년 차인 그들은 현재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였다.
“코코는 ‘Journey’ 출연 멤버 누군지 알아?”
“네?”
가지고 온 짐 정리가 끝났는지 좌석에 편하게 앉은 에반의 질문에 얼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할 일이 없어진 시우는 제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신기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바라봤다기보다 정말 처음 본 스타를 구경했다. 멍하니 넋을 놓고 그를 감상하던 중 갑작스럽게 들린 낯선 단어가 그를 현실로 끌어냈다.
코코라니? 코코는 한 줌도 안 되는 시우의 팬들이 그를 부르는 애칭이었다. 쿼카라는 동물을 닮았다는 말이 나오더니, 쿼카는 쓰기도 어렵고 발음도 까다롭다면서 코코라 부른 것이 시작이었다. 그랬기에 시우의 팬클럽 공식 명칭이 코코맘이었다.
62명밖에 없는 우리 코코맘.
“코코. 너 코코 맞잖아. 쿼카 닮았다고 그렇게 부르잖아.”
정말 시우의 팬이 아니라면 모를 애칭을 부르는 에반의 눈동자는 묘한 에메랄드색이었다.
너무나도 편하게 말을 놓은 에반은 오히려 자신의 애칭에 대한 정확한 설명까지 늘어놓았다.
“그걸 어떻……. 아니. 피디님께서 출연 멤버는 비밀이라고…….”
자신의 애칭까지 어떻게 아느냐고 되묻기보다 시우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려 했다.
“음. 너랑 나랑 예찬이, 현수 형, 루카 형인가? 다섯 명? 아니면 더 있으려나?”
에반의 입에서 줄줄 나오는 이름을 듣던 시우는 두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어떤 상황에서 자신에게 섭외가 들어왔는지 정확히 깨달아 버린 것이다. 제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명확해졌다.
지금 에반이 말한 사람들은 난다 긴다 하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이며, 모두 알파였다. 에반이 말을 끊지 않았다면, 자신은 두 명의 이름을 말하려고 했다.
이안과 이루이. 문제는 이 둘이 오메가라는 것이다.
다 다른 그룹에서 하나씩 뽑아 온 알파와 다르게 섭외하기 힘들었는지, 그 둘은 오메가로만 구성된 4인조 그룹 팬텀의 멤버였다.
에반이 아는 것과 자신이 아는 정보가 확실하다면, 피디가 엄청난 일을 벌였다.
네 명의 알파와 두 명의 오메가. 그리고 한 명의 베타.
해외여행이라는 특성과 8박 10일이라는 긴 일정, 인기 있는 아이돌의 스케줄을 고려했을 때 같이 다니게 될 멤버는 이 일곱 명이 맞을 것 같았다.
이 사실이 공개된다면, 이슈 몰이는 확실히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모든 걸 극비에 부쳤을까? 비슷한 나이대의 각 그룹의 가장 인기 있는 멤버들이 같이 여행을 다닌다. 물론 당장 연인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알파와 오메가가 뒤섞여서.
“이안. 이루이.”
두 손으로 여전히 얼굴을 가린 채, 시우는 작게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에반이 자신이 아는 것을 말했는데, 저만 입 꼭 다물고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뭐? 팬텀?”
“응. 팬텀의 이안과 이루이.”
“이 피디님 완전 이를 가셨네. 어쩌려고? 그래서 죄다 극비라고 한 거야? 알파에 오메가. 그리고…….”
알파와 오메가 다음으로 자신을 보며 말끝을 흐리는 에반의 목소리에 시우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이내 자신과 에반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왜? 카메라? 그냥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 알아서 편집하실 거니까. 카메라 신경 쓰면 아무것도 못 해.”
슬쩍 눈동자를 굴려 작가님과 카메라 감독님의 눈치를 본 시우는 꼬물거리며 가습 마스크를 턱에 걸쳐 놓았다.
모두 자신보다 에반에게 집중하고 있었기에 시우는 몸을 들썩여 편안한 자세로 고쳐 앉았다.
오늘이 주어진 마지막 날이었기에 심란한 마음에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베타인 자신이 네 명의 알파와 두 명의 오메가와 방송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리 큰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잠시 후 5년 전으로 돌아갈 테니, 그냥 아, 그럴 뻔도 했지, 라는 기억으로 남을 일이었다.
이륙 시간이 가까워졌기에 촬영하던 스태프들이 빠지고 시우의 앞에는 셀프 캠이 놓여 있었다.
“어. 음. 곧 이륙한대요. 다른 분들께 방해되니까, 그럼 이만.”
혼자 더 촬영하라고 줬겠지만, 두통이 시작된 시우는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카메라 감독님이 가르쳐 준 대로 캠을 껐다. 그리고 비행기의 작은 창을 통해 물끄러미 밖을 보았다.
활주로를 빠르게 달린 비행기는 가슴이 묵직하게 눌리는 느낌과 함께 날아올랐다.
이제 시우에게 남은 시간은 4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