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에반은 요리를 못한다고 고백했으니 처음부터 밖에서 불을 피우는 걸 부탁했다. 그리고 그 역시 흔쾌히 멋지게 불을 피워 보겠노라 큰소리치며 나갔다.
일단 임무를 주고 무사히 한 명을 내보낸 후 들은 말은 ‘양파 어떻게 썰어요?’라는 루이의 질문이었다.
“음. 적당히 잘게 썰어 줄래? 스파게티에 넣을 거야. 같이 넣을 베이컨도 부탁해.”
“주문 접수 완료! 스파게티에 들어갈 양파랑 베이컨.”
걱정과 다르게 루이의 밝은 대답을 들은 시우는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파스타 면을 삶을 물을 불에 올리고 양송이 껍질을 까며 마구잡이로 사 온 재료들을 떠올렸다.
“이 정도면 될까요?”
적당히 스파게티에 넣을 용도로 썰어 달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부탁이었을까?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루이는 그 짧은 말을 하면서 눈물을 투둑투둑 흘렸다. 누가 보면 내가 울린 줄 알겠다.
“음……. 루이, 나가서 에반을 도와주는 게 어떨까?”
숭덩숭덩 커다랗게 몇 조각 나 있는 양파와 곱게 다져져 있는 베이컨을 본 시우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차라리 이렇게 커다랗게 썰어 놓은 것이 나았다. 베이컨처럼 다져 버렸다면 그게 더 일이겠지.
그 짧은 사이에도 여전히 매운지 루이의 눈에선 연신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흘렀고, 훌쩍이는 소리까지 나고 있었다.
“어? 루이. 울어?”
타이밍도 이런 개 같은 타이밍이 어디 있을까? 훌쩍이며 소매 끝으로 눈물을 닦아 내고 있는 루이와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는 시우.
마침 부엌으로 들어서던 현수의 시선이 둘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양파가 너무 매워요.”
“양파가 잘못했네.”
웅얼거리며 현수에게 다가가 뿌에엥, 하는 루이와 그를 받아 주는 현수의 모습에 그제야 시우는 참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까딱하면 팬텀의 팬덤 전체를 적으로 만들 뻔한 순간이었다. 문제가 될 것 같은 장면은 잘라 낸다고는 하지만 팬덤은 정말 무서웠다. 나노 단위로 앓는 그들은 영상 속에서 엄청나게 많은 것을 찾아냈으니까.
시우는 루이가 썰다 만 양파 앞으로 가 칼을 잡았다. 두 분 분량 뽑았으면 나가 주세요. 저 혼자 있고 싶어요. 혼자 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맛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파게티가 어려운 요리도 아니었다. 다들 배고프다고 난리이니 불을 피울 동안 스파게티로 간단히 배를 채우게 할 생각이었다.
물이 끓으면 스파게티 면을 삶으면 되고, 손질한 양송이와 양파, 베이컨을 넣고 볶다가 사 온 스파게티 레토르트 토마토소스를 넣어 끓여 주기만 하면 된다.
그냥 루이에게 식자재 정리를 부탁하고 제가 처음부터 양파를 써는 게 좋았을 텐데.
“뭐 도와줘?”
루이는 눈이 너무 맵다며 세수한다고 나가 버리고 남은 현수가 말을 걸어왔다. 그러면서 왜 한쪽에 잘 정리해 둔 식빵을 굳이 끄집어내 허공으로 던졌다 받으면서 찌그리는 거죠? 그렇게 찌그러트리면 이따가 제가 다시 살짝 눌러 원래 모양으로 바꿔 놔야 할 것 같은데요.
“물만 끓으면 되는걸요. 형. 괜찮으면 나가서 불붙었는지 확인해 주실래요?”
“그래? 에반이 불붙이고 있지? 에~반!”
현수가 에반의 이름에 강약을 넣으며 휘적거리고 나가자, 시우는 본격적으로 칼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진짜 맵긴 맵구나. 한국 양파보다 매운 것 같아.
루이가 깔끔하게 썬 것도 아니고 짓이기듯 잘라 놓아 더 매운 것 같았다. 시우는 사선으로 고개를 들고는 몇 번 눈을 깜박였다.
그러면서도 손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아으…….”
눈을 만지지도 못하고, 잘게 썬 양파를 깊은 웍에 넣는 시우의 얼굴은 눈물로 엉망이었다. 하필 지금 입고 있는 상의가 반소매 무지 티셔츠인지라 루이처럼 소매에도 닦지 못했다.
“훌쩍.”
눈물만 나오면 다행이지, 추하게 같이 흐르는 코를 들이마시며 시우는 머리를 잘게 흔들었다. 됐다, 됐다. 어서, 어서. 양파를 무사히 웍으로 옮겨 놓고 도마를 재빨리 개수대에 넣고 손을 닦고 눈물도 닦으면 되는 일이다.
“코코?”
개수대에 도마를 던지듯 넣은 시우는 급히 물을 틀고 손부터 씻었다. 그러면서도 쉼 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고개를 젖히고 발을 가볍게 굴렀다.
“너 울어?”
어? 이거 방금 루이랑 현수 형이 하고 갔어. 이미 분량 나온 파트야. 그러니까 저리 가.
“아니. 양파 썰었…….”
갑자기 앞으로 훅 다가온 에반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행동에 대답하던 시우의 말이 뚝 끊겼다. 이 사람의 퍼스널 스페이스는 어떻게 될까? 그러잖아도 눈물이 떨어지는 게 싫어서 고개를 젖히고 있었기에 바로 앞에 에반의 얼굴이 있었다.
“는데…….”
“양파?”
놀랐던 에반의 얼굴 근육이 부드럽게 풀리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시우의 손 위로는 틀어 놓은 물이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다.
그냥 얼굴을 감싼 것도 당황스러운데, 에반은 엄지로 볼을 닦아 주고 있었다.
“에반. 이제 날 놓아주는 게 어때? 지금 물 끓는데 파스타 면 넣어야 하거든.”
시우는 곁눈질로 바글바글 끓는 소리가 나는 냄비를 가리켰다.
“그런데 진짜 양파야?”
에반의 시선이 냄비로 향했고 곧 시우의 얼굴은 자유를 얻었다. 훌쩍이며 티슈로 얼굴을 닦은 시우는 미리 꺼내 놓은 파스타 면을 집어 들었다.
“여기 양파 진짜 매워. 불은 붙었어? 그럼 고기 구워야 하는데. 스파게티는 이제 10분 정도면 되니까, 고기 굽는 동안에 먼저 먹고.”
찰싹―.
면이 붙지 않게 잘 펼쳐서 넣으며 말하던 시우의 눈에 에반의 손이 들어온 것이 문제였다. 바로 앞에서 스파게티에서 부서진 생면 하나가 그의 입으로 들어갔다. 그냥 그 쪼그만 것을 먹는 것을 볼 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손이 슬금슬금 다시 돌아와 여분으로 빼놓은 기다란 면을 다시 가져가자, 저도 모르게 그 손등을 때렸다.
아! 내가 지금 여기서 무슨 짓을?
기다란 면의 끝은 에반의 입술에 닿아 있고 시우의 손은 그의 손등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그거 맛있지도 않고 생면은 먹는 게 아니긴 하지만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아니, 그냥 말로 해도 되는데, 이게 무슨 짓.
“으하하하하. 나 이거 먹으면 안 돼?”
짧은 침묵이었다. 손등을 맞은 에반도 시우도 너무 당황했다. 그 분위기를 깬 것은 에반의 호탕한 웃음이었다.
“돼.”
멍한 표정의 시우의 입에서 한 단어가 툭 나왔다.
“먹지 마?”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에반은 여전히 들고 있던 파스타 면을 조금 깨물었다. 시우는 에반을 응시한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드세요.
“알겠어. 안 먹을게. 불 다 붙었어. 고기 이거 가지고 가면 되나?”
방금 이 이상한 상황을 만든 파스타 면은 개수대에 처참히 버려졌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에반이 한쪽에 쌓아 둔 고기를 챙겼다. 그러고는 시우의 대답을 듣지 않고 휘파람을 불며 부엌을 나가 버렸다.
넓은 부엌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시우는 눈동자만 도르륵 굴려 사방에 설치된 카메라를 훔쳐보았다. 그러고는 긴 한숨과 함께 양파가 든 웍 앞에 섰다.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에반이 웃고 넘겼기에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흘러갔지만, 아마도 손등을 때린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사과해야 할 것 같았다. 계속해서 에반과 해결해야 할 일이 늘어나는 것 같아 양파와 베이컨을 같이 볶던 시우는 괜히 그가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의 특별한 이벤트 없이 모두 모여 저녁을 먹고 뒷정리까지 끝나자 시우는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자신이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열네 시간의 비행.
카메라가 본격적으로 붙기 시작한 이후 시우는 긴장 상태였다.
아직 짐도 제대로 풀지 않았고, 야외에서 요란스럽게 고기 파티를 한 덕분에 몸에선 고기 냄새가 진동했다.
잠옷을 챙겨 들고 방과 이어진 욕실로 들어가던 시우는 자신의 티셔츠 끝을 끌어 코끝에 가져다 대었다.
문득 루이가 에반의 페로몬 냄새가 난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 것이었다. 아무리 맡아도 제가 사용하는 섬유유연제 냄새와 고기 냄새가 전부였다. 수많은 회귀를 하면서도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 궁금해졌다.
에반의 페로몬 냄새는 어떨까? 하는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샤워 후에도 일정은 끝나지 않았다. 숙소에 가득한 카메라들은 모두 꺼졌지만, 피디와 촬영 멤버는 모두 거실에 모였다.
다들 확실한 프로였다. 방금까지 높은 텐션으로 왁자지껄 떠들고 웃던 모습들은 없었다. 피곤하고 쉬고 싶다는 표현을 숨기지 않았다.
카메라도 없으니 털털한 예찬은 190이 넘는 거구를 숨기지 않은 채 거실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그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운동으로 다져진 가슴 근육이 아래위로 움직이자, 옆에 쪼그리고 앉은 루이가 가슴을 콕콕 찔러 댔다.
“오. 진짜 단단해.”
“기다려 봐.”
방금까지 늘어진 미역처럼 널브러져 있던 예찬이 벌떡 엎드려 팔굽혀펴기를 시작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야야. 그래서 운동이 되겠냐? 루이. 괜찮으니 쟤 위에 올라가 앉아. 취미가 운동인 놈이 그 정도는 하겠지.”
옆에서 부추기는 루카의 말에 ‘그래도 돼?’라고 물으며 루이가 예찬의 등에 올라앉았다.
방금까지 피곤하고 힘들다던 사람들은 어디 갔는지, 예찬의 팔굽혀펴기는 계속되었다. 모두의 시선이 모인 가운데 장난스러운 표정의 안까지 예찬의 등에 올라탔다.
아무리 예찬이 운동광이라고 해도 두 명을 등에 태운 채 팔굽혀펴기하는 건 무리였다. 마지막 자존심인지 팔을 뻗친 채, 부들거리는 그 모습에 다들 박장대소했다.
갑자기 경쟁이 붙은 것인지 예찬에 이어 현수가 이번엔 자신이 해 본다고 나섰다. 큰소리친 것과는 다르게 루이가 올라가자마자 버티지 못하고 휘청한 현수의 모습에 안은 바닥을 구르며 웃느라 맺힌 눈물을 닦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