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심장이 두근두근.
테이블 바로 앞.
코코의 라이브 화면에 너무나도 잘 잡히는 그 자리에서 두 남자가 서 있었다.
시우에게 옷을 맡기고 다치지 않은 손으로 머리를 털며 서 있는 에반과 그의 옷 단추를 착실하게 채우고 있는 시우.
하필 시우가 노래를 부르기 위해 계속해서 틀어 놓은 음악 소리마저 낮게 줄여 놓은 상태였다. 수건이 펄럭이는 아주 작은 소리와 밖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라이브로 나가고 있었다.
이 와중에 코코맘들의 시선은 드러난 에반의 탄탄한 구릿빛 가슴과 복근으로 향했다. 이렇게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해 주는데, 굳이 내외하면서 가릴 필요는 없는 법. 코코맘들은 마음을 졸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상황을 즐겼다.
비록 우리가 코코의 팬이지만, 멋진 알파의 훌륭한 몸을 굳이 외면할 필요는 없었다. 잠시 잠깐 무대에서 노출되는 그의 복근은 보았지만, 쭉 노출되는 이런 은혜로운 상황은 오션 팬들도 본 적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코코가 착실하게 단추를 채우자 서서히 사라지는 그 모습에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들의 은밀한 사생활이 모두 라이브로 송출되고 있다는 이 사실을 코코에게 알리고 싶지만, 알릴 방법이 없는 코코맘들의 선택은 눈팅이었다. 사라지는 조각 같은 몸에 대한 아쉬움과 이 간질간질하면서 무언가 보송보송한 상황에 집중하는 것이 시급했던 것이었다.
더군다나 단추 잠그는 일에 집중한 코코의 부리가 쏘옥 나왔다. 집중할 때마다 나오는 그 부리가 지금 열일하고 있었다.
그 순간 지금껏 이쪽으로는 시선을 주지 않던 에반의 시선이 올곧게 켜 놓은 화면에 닿았다.
처음엔 곁눈질로 봤지만,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정면을 응시하는 에반의 한쪽 입꼬리가 느리게 올라갔다. 어느새 그의 시선은 정확히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코코. 메인 작가님 만났어?”
“아니.”
“작가님이 너 찾던데.”
시우는 단추 채우는 것에 열중했기에 에반이 어딜 보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나? 조금 전에 피디님 만나고 왔는데, 별말 없으셨어.”
“피디님 말고 작가님. 내일 촬영 때문에 너한테 할 이야기가 있다고 찾던데. 가 보는 게 어때?”
어떤 기분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보고 있었지만, 시우에게 말하는 목소리는 솜사탕처럼 달콤했다.
“그래? 나 왜 찾는대?”
에반의 단추를 다 채운 시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곤 손을 들어 에반의 가슴을 두 손으로 가볍게 팡팡 두드렸다. 자신이 단추를 다 채웠다는 것을 알려 주는 행동이었다.
“넌 안 나가?”
에반의 말을 들었기에 메인 작가님을 만나러 나가려던 시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아! 나 욕실에 칫솔을 두고 나왔네. 먼저 가. 칫솔 챙기고 갈게.”
화면을 보고 있던 코코맘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칫솔이 왜 욕실에 있어? 지금까지 그 다친 손 엄지랑 검지 사이에 끼고 흔들고 있던 그 하얗고 긴 것의 정체가 칫솔이 아니었어? 우리가 생각하는 칫솔과 에반이 생각하는 칫솔은 다른 것인가요?
“응.”
정말 아무런 의심 없이 시우가 화면에서 사라지고,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지금껏 흔들리고 있던 칫솔이 멈췄다.
의자에 앉는 것도 아니고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짚고 상체를 숙인 에반이 모니터를 응시했다.
“다 보고 계셨구나.”
낮고 조용한 목소리에 넋을 잃고 보고 있던 코코맘들은 저도 모르게 다들 몸을 뒤로 물렸다. 어떠한 말도 하지 않은 채 에반은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접속자 수를 확인하고 자신이 나타난 이후로 어떤 글도 올라오지 않은 채팅창을 물끄러미 보다 피식 웃었다.
“코코 혼자 한 방송은 괜찮은데, 제가 나온 부분부터 유출되면 어떻게 되시는지 아시죠?”
에반이 건넨 말은 협박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해사하게 웃고 있었다. 그의 표정과 그가 한 말이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역시 코코맘들 착하시다. 접속자가 42명이라. 아직 주위 사람들에게 연락은 하지 않으신 것 같고요.”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 같은 달칵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에반의 시선이 카메라가 아닌 다른 곳을 향했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소리 없이 한참을 달싹였다.
“다 외웠다. 그럼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에반은 생긋 웃으며 친절하게 손 인사까지 하고 라이브를 껐다.
모든 것을 지켜본 코코맘들은 그제야 참고 있던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들 급하게 단체 채팅창으로 향했다.
코코가 알다시피 한 줌밖에 되지 않는 그의 팬들은 정말 말 그대로 찐팬이었고 똘똘 뭉쳐서 움직였다.
실은 코코가 이렇게 무명으로 지내는 것도 어쩌면 코코맘의 노력 때문이었다. 처음 코코가 라이브에서 했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본래 우리 애 잘난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것은 팬들의 기본 마음이었다. 몇 없는 짤이지만, 우리 애 고운 춤 선부터 깔끔한 고음 처리까지 자랑할 것이 넘쳐 났다.
―코코. 우리가 홍보 열심히 할게.
채팅창에 올라온 글을 본 코코는 참으로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앨범도 많이 내고, 활동도 많이 하자는 말이 연이어 올라가자 그의 표정은 우울하게 바뀌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코코는 천천히 제 생각을 밝혔다. 그는 많은 인기는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처럼 소담하고 친밀하게 코코맘과 이렇게 지내는 것이 좋고, 학업에 소홀해지고 싶지 않다는 말이었다.
과한 인기로 외출이 어렵기보다 편하게 돌아다니는 지금이 좋다고 했다.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지만,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싶다는 말에 코코맘은 우리 애 자랑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저 자신들끼리 뭉쳐서 우리 애 이쁜 걸 공유하며 폐쇄적으로 지냈던 것이었다.
그랬기에 몇 안 되는 팬클럽 회원들은 서로를 알았고, 단체 채팅방까지 있었다.
오후에 코코가 올린 SNS 때문에 이미 화력은 좋았다.
혼자 간 여행인 줄 알았는데, 누군가와 함께였다.
오후의 햇살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키와 체격 차이가 제법 나는 두 사람. 그들은 나란히 서 있었고, 둘 다 한 손엔 비슷한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늘 이모티콘만 남기는 코코가 아이스크림 모양 하나만을 남겨 뒀기에 그것의 정체는 아이스크림으로 밝혀졌다.
동행자가 누굴까에 관한 추측으로 가득했던 채팅창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동행자가 에반?
도대체 우리 코코와 에반의 접점은 무엇일까?
다들 추측한 것들을 빠르게 채팅창에 올렸다.
둘의 대화에서 촬영이라는 단어와 피디님, 메인 작가라는 말이 나왔기에 무언가를 촬영 중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다 한 명이 올린 내용에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방금 방송 끄기 전 에반의 입술이 달싹였던 이유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 접속하고 있던 아이디를 읊은 거 맞지?
에반의 팬이기도 하다는 한 명이 그것에 대해 답을 했다.
‘에바니 겁나 천재 멘사 회원. 한번 보면 다 외움. 에바니 집안 영국에서 대대로 부자. 에바니 아버지 작위도 있음. 소송 들어가면 우리 개발림. 허락해 줄 때까지 공유 금지해야 함.’
에반 데뷔 때부터 팬이라고 말한 코코맘의 말을 요약하면, 딱 위의 내용이었다.
세상에 퍼지진 않았지만, 코코맘들은 코코 라이브 녹화본을 공유하고 있었다. 혹시나 보지 못한 사람을 위한 배려이면서 핥을 것이 없는 코코를 이렇게라도 보는 것이었다.
그 유명한 3초 ‘안녕’ 라이브도 모두 공유 중이었다.
못 보신 코코맘에겐 미안하지만, 오늘 방송은 코코 혼자 나온 분량만큼만 공유하기로 했다. SNS에 우리 애 이쁜 것도 함부로 말 못 하던 코코맘의 가슴앓이가 시작되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대나무밭에서 외치는 대신 채팅방에서 서로 본 것에 대해 다시 훑으면서 공유하는 수밖에 없었다.
―근데 둘이 겁나 잘 어울리지 않음?
공유 금지라는 로고가 박힌 스샷이 바로 올라왔다.
에반은 눈에서 꿀을 뚝뚝 흘리며 자신의 단추를 채우는 코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진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우리 애는 집중의 부리까지 내밀고 열심히 그의 단추를 채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방금 라이브 영상을 스샷으로 찍은 것은 아주 짧은 시간 올라왔다가 바로 지워졌다.
―이거 우리 애 맞지?
곧이어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이 코코맘은 에반까지 알아봐야 했다. 그리고 에반이 SNS에 업데이트한 사진을 가지고 온 것이었다.
고개를 기울이고 있어서 얼굴이 나오지 않은, 데이베드에 누워 있는 한 남자의 사진이었다. 편안한 짙은 남색 반바지와 하얀 티셔츠 차림이었다. 바람이 부는지 참한 머리카락이 살짝 날리고 있었고, 그는 고개를 기울인 채 책을 보고 있었다.
얼굴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하얗게 드러난 예쁜 다리라든가 염색하지 않은 참한 머리카락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아무리 봐도 우리 애 같았다.
―이것도 봐. 빼박이다.
바로 그 아래 있는 사진을 보는 순간, 코코맘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창밖을 보고 있는 작은 머리통. 동글동글하고 작은 그 머리라든가 목선이나 어깨가 우리 애라는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귀걸이. 코코 최애템!
귀여운 귀에 조롱조롱 자리 잡은 그 귀걸이는 코코가 가장 좋아하고 잘 하고 다니는 귀걸이였다. 귀걸이가 본인 인증까지 마쳐 버렸다.
지금 우리 애는 에반과 촬영 중이고, 둘은 무척이나 친해 보였다. 그런데 에반이 어떻게 시우의 별명인 코코를 알고 시우의 팬클럽 이름이 코코맘인 것을 알까?
원래부터 친해서 안 것일까? 이번 촬영으로 만나서 알게 된 것일까?
다른 건 다 그렇다 치고, 알파, 소문엔 골든 알파라는 에반이 우리 애를 왜 그렇게 쳐다보지?
처음에 코코맘들도 우리 애가 오메가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었다. 하지만 코코는 신검 결과를 당당히 밝혔다. 그는 신체 건강한 군필의 의무를 가진 베타였다.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에반의 눈에서는 왜 꿀이 떨어지고 목소리에선 왜 솜사탕이 녹아나는 것일까? 거기다 방금 그는 해사하게 웃으면서 코코맘을 협박하기까지 했다.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