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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타트(Restart)-19화 (19/187)

19화

메인 작가가 시우를 찾은 적 없었지만, 거짓말을 해서 먼저 내보내야 했다. 접속자가 많이 없는 데다 다른 분들도 아니고 자신도 아는 코코맘들이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다.

얼마나 그들을 막을 수 있을지는 자신도 확실히 알지 못했다.

방송이 나간다면 시우가 받을 타격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시우를 만나게 된 건 천운이라 할 수 있었다. 어떤 이유로 회귀가 멈췄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피디가 개인 SNS에 사진을 올리라고 말할 때부터 에반은 망설이지 않고 시우 사진을 올렸다. 그를 끌어올릴 것이다.

자신의 위치까지. 어떻게든 그렇게 만들 생각이었다. 자신이 그에게 맞추기 위해서 내려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고 제일 먼저 그의 친구가 되어야 했다. 얼마나 감정을 누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덮기엔 우정만큼 좋은 건 없었다.

하지만 그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순간 폭주하고 날뛰는 페로몬을 숨길 수 없었다. 아차, 하고 재빨리 거둬들였지만, 루카에게 한 소리 듣고 말았다.

시우를 자신의 위치까지 끌어올릴 단기간의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자신의 인기를 이용하는 것. 앞으로 모든 장면에 자신과 걸리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면서 SNS에선 시우와의 친분을 내세울 계획이었다.

사심이 조금 섞인 제안은 깔끔히 무시당했지만, 게임을 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었다. 에반 역시 이리저리 말을 바꾸는 이 피디가 얄미워 어떻게든 이겨서 그의 지갑을 탈탈 털 생각이었다.

말 그대로 이건 비즈니스였으니 최대한 덤덤히 응했다. 그러려고 했다. 갑자기 눈에 빛을 내는 시우가 자신의 멱살을 잡고 확 끌어당기지만 않았다면.

동그란 눈동자가 빛나고 저를 기다리는 그의 붉은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었다. 종이를 넘겨받기 위해 살짝 각도를 비튼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종이를 놓치고 말았다.

수습할 새도 없이 먼저 다가온 시우의 입술이 스치듯 부딪치고 사라졌다.

피할 수 있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럴 수 있었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피하고 싶지 않았다.

* * *

“에반, 이번엔 내가 운전할게. 점심 먹는 장소까지 두 시간만 가면 된대.”

여전히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입꼬리가 보기 좋게 올라간 시우가 다가왔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날아올랐다. 티셔츠가 옆으로 밀리면서 가는 상체의 윤곽이 드러났다. 옷을 입는 버릇인지 시우는 항상 스키니한 하의에 오버사이즈 상의를 입었다.

작은 손이 자신을 향했다.

에반은 홀린 듯 손을 내밀었고, 다가온 시우의 손을 잡았다.

“아니. 손 말고 차 키 줘야지.”

손을 빼내는 그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잔뜩 묻어 있었다.

“됐어. 내가 운전해. 여기 운전석 반대라 헷갈려.”

멀어지는 손을 다시 잡지 못했다. 안달 나는 건 자신이다. 불안한 것도 자신이다.

첫눈에 알아본 자신과 다르게 시우는 너무나도 태연했다. 그는 모두에게 친절했고, 더 친한 사람도 덜 친한 사람도 없이 어디서나 잘 어울렸다.

모를 테지, 모르는 게 당연한데.

기다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달콤한 향이 섞여 있었다.

“손 내밀어요. 내가 묶어 줄게.”

차에 오른 루이는 엉성하게 감긴 손수건을 보더니 친히 꽁꽁 묶어 주었다. 대충 느슨하게 묶어도 되는데 두 손목은 밀착되었고,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타인의 손이 꼭 필요했다.

“자율 주행을 너무 믿는 거 아니야?”

조금 느슨하게 하려고 매듭을 만지작거리던 시우는 포기하고 루이를 바라보았다.

“아! 알겠어요. 언제든지 바로 풀 수 있게 느슨하게 해 드릴게요. 에반 형은 가만히 있는데 형만 왜 그래요. 어차피 손수건으로 묶은 거라 조금 있으면 느슨해지는데.”

조금 전 억지로 자는 척해야 했던 루이의 소심한 복수였다.

* * *

“아. 춥다.”

출발지 날씨는 화창했지만, 도착지에 가까워질수록 구름이 많아졌다. 조금 전엔 괜찮았지만, 지금 불어오는 바람은 스산하게 차가웠기에 시우는 살짝 몸을 움츠렸다.

이렇게 날씨가 바뀔 줄 알았다면, 재킷 하나 정도는 꺼내 놨을 텐데. 자신의 옷은 모두 깔끔하게 정리해 캐리어에 챙겨 넣었다.

“갑자기 추워졌어. 진짜 추워요.”

시우를 뒤따라 내린 루이도 절로 몸을 움츠렸다. 그러고는 시우의 옆으로 다가가 그의 팔에 팔짱을 끼며 딱 붙었다.

“어디 가서 옷 좀 살까? 너 두꺼운 옷 있어?”

먼저 다가오는 스킨십엔 익숙한 시우는 루이와 팔짱을 낀 채, 스태프에게로 다가갔다.

“아뇨. 여기 날씨 초여름이라고 해서 가볍게 챙겼죠. 물어보고 근처에 뭐가 있든 대충 입을 거 사요. 안이도 두꺼운 재킷 같은 거 없어요.”

역시 사람 마음은 다 같은 것.

모였을 때, 대부분 추운 날씨에 대해 투정을 하고 있었다. 일기예보에서는 흐릴 거라고 했다더니, 도착지에는 지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빨리빨리 밥 먹고. 저기 옷 파네. 저기 가서 옷 사고 가자. 와, 이럴 때 피디님 지갑 털어야 하는데. 어제 생각했으면 다들 옷 한 벌씩 뽑았을 거 아니야. 옷은 저희가 알아서 사도 되죠?”

루카는 예약해 뒀다는 식당으로 멤버들을 몰면서 따라오는 피디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내 돈을 내가 쓰겠다는데 그것까지 못 하게 하진 않겠지.

“어, 뭐야? 에반이랑 시우 손 안 잡아?”

이미 피디와 작가의 삼엄한 감시 속에 있다고. 팀원까지 이래야 하냐고. 자연스럽게 루이와 함께 에반과 떨어진 곳에 앉았던 시우는 결국 에반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리고 타협안으로 에반과 또 손목이 묶였다. 이럴 거면 손잡기가 아니고 손목 묶고 다니기 아닌가?

기본적인 것은 제공해 준다더니 테이블 위로 음식이 세팅되고, 시우의 포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샐러드에 스파게티를 먹던 시우의 눈이 절로 에반에게 닿았다.

피자 한 조각을 왼손으로 들고 먹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아, 배를 채우는 것에 집중하다 깜빡 잊었다. 지금 에반의 오른손과 자신의 왼손이 묶여 있었다. 오른손잡이인 에반이 불편한 건 당연했다.

이제 와서 손목을 바꿔 묶겠냐고 말하기도 멋쩍었기에 시우는 콜라가 든 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에반의 앞으로 가져갔다.

“콜라 마실래?”

소심한 시우의 작은 배려였다. 대답하지 않은 에반이 피식 웃고는 방금까지 시우가 사용했던 빨대를 덥석 물었다.

“스파게티 좀 줄래?”

한번 시작된 셔틀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에반이 말할 때마다 시우는 바삐 움직였다. 그리고 그는 얌전히 시우가 건네는 음식을 받아먹었다.

* * *

“색이 별로야.”

시우는 터벅터벅 거울 앞에 가서 옷을 자신의 몸에 대어 보았다. 짙은 회색에 무난한 디자인, 그리고 저렴한 가격. 편하게 사서 막 입고 치우기에 적당했다. 하지만 에반은 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왜? 괜찮은 것 같은데?”

“아니. 딴 거 봐.”

그냥 아무거나 사면 되지. 시우는 먼저 걷는 에반 때문에 같이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리고 그가 내민 옷은 옅은 노란색이었다. 내가 노란 병아리로 보이니?

“뭐야. 노랗잖아.”

“잘 어울릴 거 같은데.”

“별로야.”

“입어 보고 말해.”

시우는 단호한 에반의 말에 일단 옷을 받고는 오른쪽 팔을 꿰었다. 왼팔까지 넣고 제대로 입을 순 없었다.

“너무 튀잖아.”

색이 문제지 디자인이나 착용감은 좋았다.

“그거 사.”

“네가 입어? 내가 입지.”

“이뻐.”

“응?”

“잘 어울린다고.”

옷을 벗으려던 시우는 에반의 말에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외출복으로 이런 화려한 색은 별로인데. 잘 어울린다는 말에 시우는 자신의 심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져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것을 본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심장이 진짜 제대로 미쳤나 보다. 한번 시작된 부정맥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정밀 검진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시우는 모르고 있었지만, 손목이 묶여 있는 지금에도 둘의 손가락은 엉켜 있었다.

* * *

―이 사진들에 대해서 우리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지금 저쪽에서 우리 애 찾고 있어요.

코코맘들의 채팅방에 몇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25분 간격으로 올라온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두 장 중 한 장은 에반의 SNS에서 퍼온 것이었다.

사진을 먼저 올린 사람은 에반이었다.

손수건 같은 것으로 추정되는 천으로 두 손목이 묶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두 손은 손깍지를 끼고 있었다. 긴소매를 살짝 걷어 올린, 핏줄이 도드라진 잘 그을린 갈색 피부 톤의 큰 손과 말랑말랑 자그만 손이었다.

손을 잡고 앞서 걷는 애인의 뒷모습을 찍는, 유명한 사진을 패러디한 구도였다. 앞서 걷는 작은 사람은 옅은 노란색의 점퍼를 걸치고 검은 스키니를 입었다.

한참을 보던 그녀의 시선은 다시 에반의 팔로 향했다. 살짝 걷어 올린 짙은 남색의 소매가 앞의 옅은 노란색 점퍼와 같은 것 같았다.

설마 이거 같은 옷인데 색상만 다른 건가?

에반이 이 사진을 찍는 걸 코코는 알고 있었을까? 모르고 있었을까?

그리고 다음 사진은 앞서 걷던 시우가 고개를 돌리며 환하게 웃는 것이었다. 마지막은 누군지 확실히 추정되지 않는 사람이 두 사람의 손목을 수건으로 묶는 사진이었다.

[놀라셨나요? 현재 벌칙 수행 중입니다. 우리 우정 내가 응원해.]

무수한 생각을 하며 그녀는 집중해서 사진을 훑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코코의 SNS에도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그리고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대형 사고가 터진 것을 직감했다.

같은 손이었다. 에반은 뒤에서 몰래 촬영한 것 같은 사진을 올렸다면 코코는 당당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손을 찍었다. 두 손은 깍지를 끼지 않았다. 단지 천으로 묶인 두 손을 올렸을 뿐이었다.

절대 코멘트를 남기지 않고 이모티콘만 올리는 시우의 첫 코멘트가 달렸다.

[벌칙 수행 중.]

코코맘들은 다양한 의견을 냈다.

일단 손을 묶고 있는 건 말 그대로 벌칙인 것 같았다. 그리고 SNS에 올리는 것도 꼭 해야 하는 일인 것 같았다. 아니면 이렇게 오해를 살 만한 사진과 함께 코멘트를 절대 달지 않는 코코가 친절한 설명을 할 리가 없었다.

촬영 중인 것을 알리고 올렸다고 해도 충분히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었다.

코코맘들은 그나마 실수로 노출된 라이브 때문에 상황을 안다고 해도 저쪽은 아무것도 모를 것이 뻔했다.

양쪽의 팬인 그녀는 떨리는 마음으로 오션의 팬클럽 사이트에 접속했다.

이제 우리 애 영업 시작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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