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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타트(Restart)-30화 (30/187)

30화

루카와 현수는 시우가 들고 있는 기린 인형을 보고는 웃음부터 터트렸다. 시우가 먼저 말하지 않았지만, 왠지 저 인형이 추후 누구의 손에 가 있을지 이미 알 것 같았다. 오늘 분량이 방송으로 나간다면 필시 예찬에겐 기린과 관련된 별명이 생길 것이고, 저 인형의 출처까지 이슈가 될 것이 분명했다.

“갑자기 무슨 기린 인형이야? 산 거야?”

“아뇨. 저기 다트 풍선 터트리기 게임 상품으로 기린 인형이 있어서 제가 땄죠. 이거 꼭!! 꼭!! 예찬이한테 선물로 주려고요.”

“우리 시우 은근 뒤끝 있네.”

기린 인형을 흔들며 해맑게 대답한 시우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루카의 손길에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좋은 게 좋다고 넘어갔지만, 자신을 보는 순간순간 에반이 미간을 찌푸릴 때면 저도 모르게 옷 끝에 코를 묻었다.

페로몬 때문이 아니겠지만 그의 표정이 좋지 않을 때면 계속 신경 쓰였다.

“근데 저한테 아직도 예찬이 냄새 나요?”

“씻거나 탈취제 뿌리면 사라지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아, 그냥 게임 한 번 더 하고 큰 것으로 가져올 걸 그랬어요. 그거 캐리어에 넣기도 어중간한 사이즈라서 꼭 손에 들고 입국해야 할 것 같던데. 저 지금이라도 가서 바꿔 올까요?”

대충 얼버무리는 것으로 보아 여전히 자신의 몸에서 예찬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기분이 묘했다. 아주 짧은 순간 차라리 에반의 냄새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긴 그렇게 페로몬으로 난리 쳤는데, 제 몸에서 나는 냄새가 에반의 것으로 바뀌어 있는 것도 말이 안 되긴 했다.

“솜사탕 먹을 사람.”

셋은 의식의 흐름대로 대화하면서 자유 시간 후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예찬이한테 이거 바로 선물하려고 전화했는데, 안 받더라고요.”

어느새 셋의 손엔 알록달록한 솜사탕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먹는 법은 모두 달랐다. 손으로 팡팡 두드려서 납작하게 만들어 먹는 루카와 그냥 덥석 물고 먹는 현수. 시우는 손으로 조금씩 뜯어 먹었다.

“걔 아마 놀이기구 탄다고 정신없을 거야.”

“시간 얼마나 남았지? 우리 시우가 한 다트 게임 해 보러 갈래? 나도 예찬이한테 큰 기린을 안겨 주고 싶은 충동이 막 일어나는데?”

“아! 맞다. 그거 총 쏘는 것도 있었어요. 다트 해도 되고 총 쏴도 되던데요.”

셋을 찍고 있던 카메라 감독님이 시간이 별로 없다는 뜻으로 손을 흔들었지만, 그들은 어느새 간이 게임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으하하하. 미치겠다. 현수 형. 진짜 군대 안 가는 게 아군 살리는 길인 줄 알아요. 형, 면제 아니죠? 가야 하죠? 어떻게 한 개도 못 맞혀요?”

루카는 진지한 표정으로 총을 쏘고 있는 현수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건드려서 잘 못 맞힌 것이다, 원래 실력이 없는 것이다로 옥신각신하는 둘의 옆에서 시우는 다트를 만지작거렸다. 한 번 더 해서 진짜 커다란 기린 인형을 가지고 갈 것인가, 그냥 적당한 것으로 할까 하는 고민이다.

“시우야. 혹시 잔돈 더 있어?”

“네. 여기요. 그런데 형, 뭐 갖고 싶은 거 있어요? 제가 해 드려요?”

둘이서 투덕거리더니 결국 돈을 다 쓴 것인지 어깨를 툭툭 치는 루카를 보며 시우는 지갑을 꺼냈다.

“에반, 걔가 안 그렇게 생겨서 작고 귀여운 거 좋아하거든. 저기 위에 병아리 같은 거, 저 노란 새 하나 따 볼까 해서. 저건 다섯 개만 맞혀도 된다잖아.”

“으아아악. 왜, 왜 난 안 되냐고. 여러분, 이거 다트 끝이 뭉툭하다고요. 거기다 저 풍선도 바람이 빵빵한 게 아니고 쭈글쭈글한 거 알죠?”

오기가 생긴 것인지 난리를 치고 꿋꿋이 카메라 감독님 지갑까지 털면서 총 게임을 포기하지 못하는 현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두 개 차이로 안타깝게 아무것도 따지 못한 루카는 괜히 연장 탓을 하고 있었다. 열 개 중에 세 개 맞히고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현수나 루카나 오십보백보였지만, 둘은 꽤 심각하게 서로의 실력을 비웃고 있었다.

루카에게 돈을 꺼내 주느라 지갑을 손에 들고 있던 시우는 물끄러미 루카가 가리킨 인형을 바라보았다. 루카가 땄다면 상관없겠지만, 노란 새는 그 자리에 덩그러니 그렇게 앉아 있었다.

더 지체하면 곤란하다는 카메라 감독님의 말에 현수와 루카는 투덜거리며 자리를 떴지만, 시우의 발은 제자리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형! 나도 같이 가요!”

먼저 가 버린, 이제는 작게 보이는 형들을 부르며 시우는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뛰는 시우의 재킷 한쪽 주머니엔 그의 작은 주먹보다 조금 더 작은 노란 새가 들어 있었다.

* * *

시우는 부엌에서 깨끗이 씻은 채소가 한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고 뒷마당으로 나갔다. 각자 맡은 일에 열중하느라 분주한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피해 테이블에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시우야. 이거 익은 거야?”

그건 조금 전부터 고기를 구우신 분이 아시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시우는 종종걸음으로 현수의 옆으로 다가갔다. 분명히 오늘 저녁 당번이 아닌데, 시우는 그들보다 더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실내에서 먹어도 될 것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야외에서 먹어야 한다고 루카가 두 팔 걷고 나선 것이다.

“이거 앞뒤로 한 5분만 더 굽죠.”

고기를 확인하러 가는 걸 듣고 가까이 다가온 카메라 감독님의 플래시 불빛에 고기 상태를 본 시우는 간단히 대답하고 자리를 옮기려 했다.

“형. 이거 이렇게 끼우면 돼요?”

한쪽에서는 안과 루이가 꼬치구이를 꼭 먹어야겠다며 고기와 파, 버섯을 놓고 꿰는 중이었다.

“우리 그냥 밖에서 사 먹고 들어오면 됐잖아. 이게 무슨 고생이야.”

시우는 그들이 얼기설기 꿰어 놓은 꼬치를 잘 모아 쥐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꿰고만 있는단 말인가? 꿰는 중간중간 저쪽으로 넘겨서 구워야 먹지.

“다들 맥주 마실 거죠? 시우 형. 맥주 어디 있어요?”

자유 시간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다 잠시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들어갔다가 잡힌 시우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냥 목마른 것을 참고 있을 것을. 부엌에 들어갔다가 난장판인 걸 외면하지 못한 자의 최후였다.

“야. 네가 찾아. 네가 찾으면 되잖아. 코코 식사 당번 아니잖아.”

“으악. 에반 형! 아파! 아파요!”

현수가 굽고 있는 고기 옆에 꼬치를 내려놓고 대답하려던 시우의 시선이 소란스러운 곳으로 향했다.

반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끌고 나왔던 예찬이 에반을 피해 도망 다녔다. 하지만 헐렁거리는 슬리퍼를 신은 예찬이 운동화를 신은 에반을 피하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아프긴 뭐가 아파. 내가 뭘 그렇게 세게 때렸다고.”

웃으면서 도망가는 예찬의 등을 큰 손으로 툭툭 치고, 장난스럽게 헤드록까지 걸고, 둘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다. 가장 체격이 좋은 예찬이지만 갑작스러운 공격엔 속수무책이었다.

“악! 나 죽어. 현수 형! 루카 형! 악. 악. 아파!”

조용한 정원에 예찬의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다들 웃기만 할 뿐 그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분명 방송에는 친한 둘의 조금 과한 장난으로 나갈 것이 분명했다.

“이리 와! 어디 도망가? 맥주 찾으러 가는 거야? 그럼 맥주 옮기는 거 도와줘야겠네.”

결국 슬리퍼를 벗어 던지고 뒷문을 통해 도망치는 예찬을 따라 에반이 사라졌다.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다들 속으로 에반의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분명 즐거운 장난으로 보이지만 맞는 예찬은 죽을 맛일 것이다.

지금 예찬이가 에반에게 장난을 빙자해 맞는 이유가 혼자 알아서 맥주를 찾지 않고 쉬어야 하는 시우에게 질문해서가 아니라는 걸 모두 알았다. 오늘 낮 아무 일도 없이 그 엄청난 사건을 모른 척했던 그의 분풀이임이 확실했다.

“에반 형. 전에 권투 좀 배웠다고 하지 않았어?”

꼬치에 야무지게 고기를 꽂고 이어 굵은 파를 집어 들며 안은 루이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전에 뮤직비디오에 권투 하는 장면 들어가는데, 그거 찍다가 재밌는 것 같다고 좀 배웠다고 했지, 아마.”

“현수 형. 이거 안 타게 뒤집어 주세요. 저 꼬치 더 꿰서 올게요.”

시우는 석쇠에 나란히 꼬치를 올려놓고는 열심히 작업 중인 루이와 안의 옆으로 가 의자에 앉았다. 한 명이라도 더 움직여야 빨리 끝내지.

“형. 왜 앉아요?”

안은 어느새 자신의 옆에 앉아 꼬치 막대기를 드는 시우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왜 앉긴. 둘이서 이거 언제 다 할래? 여기 멤버들이 얼마나 많이 먹는데, 이 속도로는 오늘 안에 안 끝나지 싶다.”

“아니야. 형. 이건 아니야. 어서 들어가. 오늘 당번 아니잖아. 어서 들어가서 쉬어요.”

루이는 얼른 시우의 손에 들린 막대기를 뺏으며 급히 외쳤다. 그러면서 시선은 뒷문을 향해 있었다. 언제 에반이 나올지 모른다. 맥주 어디 있냐고 물었다가 예찬이 맞았는데, 꼬치 꿰는 걸 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물론 그가 체격 차이가 나는 루이나 안을 때리거나 심한 장난을 치지 않을 게 확실했다. 하지만 그의 눈치조차 보고 싶지 않은 둘의 소리 없는 절규가 시작됐다.

“쉬긴 뭘 쉬어. 빨리하고 밥 먹어야지.”

“아니야. 형이 쉬어야 우리가 안녕해요. 우리의 안녕을 위해 제발 쉬어요. 그래야 해.”

이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건 단 하나였다. 시우에게 조금이라도 폐를 끼치면 에반에게 죽는다는 공식이 성립되는 순간이다.

“형! 형은 가서 에반 형 데리고 와요. 이제 밥 먹어야죠.”

궁둥이를 진득하게 붙이고 앉아서 순식간에 몇 개의 꼬치를 만드는 시우를 지켜보던 안은 크게 손뼉까지 치며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효율적으로 시우를 이곳에서 몰아내면서 에반을 만족시킬 수도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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