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스타트(Restart)-65화 (65/187)

65화

오션

리더 : 이 찬, 23세, 알파, 178cm

래퍼 : 에반 루이스, 20세, 알파, 188cm

래퍼 : 강예찬, 19세, 알파, 192cm

보컬 : 유상준, 22세, 베타, 182cm

보컬 : 김시우, 20세, 베타, 174cm

외줄 타기가 시작됐다. 이미 성공적인 데뷔를 한 1년 차 그룹.

데뷔곡은 제가 아는 오션 곡 중 하나였다. 유상준이 썼던 ‘데자뷔’.

기억이 맞는다면 2집 타이틀이었을 텐데, 이번엔 그 곡이 데뷔곡으로 적혀 있었다.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자신의 이름이 오션의 멤버에 등록되어 있었다. 프로필까지 검색되자 한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오션의 멤버가 바뀌었고, 데뷔일이 바뀌었으니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바뀌었을 것이 분명했다.

텍스트로 적을 수 있는 이런 정보들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신경 써야 하는 것은 그룹 멤버들, 기획사 관련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는 것이었다.

시우는 고개를 들어 조용한 밴을 둘러보았다. 앞 좌석에 앉은 상준은 이어 버드가 아닌 헤드셋을 끼고 창밖을 보고 있다. 이번엔 몸을 틀어 뒤를 보았다.

예찬은 휴대전화를 보고 있고, 이 찬은 자고 있다.

그리고 제일 궁금한 한 자리는 비어 있다. 시우의 시선은 빈 제 옆자리에서 멈췄다.

시우는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 사이일까? 그냥 친구? 그룹 멤버? 아니면…….

그는 자신 같은 회귀자가 아니다.

그러니 바로 몇 시간 전.

자신에게는 너무 생생한 그 감정싸움 같은 건 조금도 모를 것이다.

오직 제 몫이다.

처음부터 자신의 몫이라 생각했던 감정은 정말 그렇게 고스란히 제 것으로 남았다.

불과 몇 시간 후 만나게 되는 그를 어떻게 봐야 할까?

시우의 뇌리에 남아 있는 그의 마지막 모습은 슬픔이었다.

애잔했고, 슬픔이 넘쳤고, 우수에 차 있었다. 뜨겁던 에반의 손길, 부드럽던 입술.

자신의 몸을 휘감은 생소하고 낯선 감각. 박하 향 가득한 바람에 휩싸여 있었다.

하지만 모두 무가 되었다.

둘의 추억은 이제 자신만의 추억이 되었다.

회귀를 꿈꿨다.

제게 일어난 모든 일이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이 되길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어떤 것도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걸. 그에게 그런 말을 하지도 말고 듣지도 말걸.

“…….”

‘나의 페어.’

그 뒤로도 그는 계속 말했지만, 다른 말들은 기억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 말의 시작은 분명 ‘나의 페어’였다.

입을 가린 손을 내린 시우는 빠른 손놀림으로 검색창을 채웠다. 곧 ‘페어’라는 단어의 검색 결과가 나왔다.

pair

1. 명사 <특히 함께 사용하거나 몸에 착용하는, 똑같은 종류의 두 물건>

2. 명사 <두 부분이 함께 붙어 하나를 이루는 물건>

3. 동사 (둘씩) 짝을 짓다

사전적 정의를 확인하고 다른 창을 열던 시우의 손끝이 멈췄다.

알파, 오메가의 각인으로 맺어진 관계를 일컫는 용어 중 하나 (골든 알파와 오메가의 각인에 더 많이 사용. 하지만 정확한 정의는 골든 알파와 히든 오메가의 각인을 칭함.)

알파와 오메가, 결국 형질과 관련된 것으로 이어졌다.

각인과 같은 것이지만, 칭하는 호칭이 다르다는 것 같았다. 알파, 오메가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은 시우에겐 다 어려운 말이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엉뚱한 상상으로 빠져들 것 같아 시우는 구시렁거리며 휴대전화를 껐다. 그리고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들과 자신이 맺은 관계성은 어떨까.

이 모든 것이 꿈일지도 모른다.

입대를 앞두고 벗어나고 싶은 그런 압박감 때문에 꾸는 꿈.

회귀인지 꿈속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잠들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스물세 살의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옹이와 있을지도 모른다.

무심히 빠르게 지나가는 거리를 보던 시우의 눈이 커졌다.

커다란 전광판에 오션이 찍은 CF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제 모습. 오늘 처음 본 이 찬과 유상준과 환하게 웃고 있다.

다섯 명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 줬다.

아. 스포츠 웨어 광고였구나. 어쩐지 바닷가 모래사장을 뛰어다니고, 비치발리볼을 하더라니.

“다들 정신 차리고. 시우는 모자 쓰고, 예찬이 넌…… 설마 그 모자야?”

명훈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시우는 앞을 바라보았다. 생각 없이 있었더니 운전자가 누군지도 몰랐다. 로드 매니저가 따로 있는 거 아닌가? 왜? 저분이 차를 몰고 있는 거지. 갑자기 자신의 나이와 상황을 떠올리자 명훈이 로드 매니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이는? 선글라스?”

“네. 모자 쓰면 머리 눌려서요.”

지금까지 조용하던 밴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공항에 가까워졌다는 의미겠지.

시우는 백팩에 있는 볼캡을 꺼냈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튀는 것만은 안 된다.

최대한 얼굴을 가리도록 볼캡을 깊게 눌러썼다.

공항 출국장 입구에 밴이 멈추는 순간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차 문이 열리는 순간 들리는 환호성과 번쩍이는 카메라 플래시는 낯설지만 겪어 본 기억이 있다.

갑자기 소리가 커졌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린 것으로 유추해 보건대 조수석에 있던 상준 형이 내렸나 보다. 그리고 밴 뒤쪽 문이 열렸다. 자신이 내려야 할 차례다.

백팩을 꼭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렸다.

또 한 번 울리는 환호성에 시우의 몸이 휘청였다. 그와 동시에 팔뚝을 잡아 주는 손길에 볼썽사납게 넘어지는 일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생각과 다르게 환호성이 더 커졌다.

“조심해.”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고서야 시우는 제가 상준의 품에 안기다시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른 몸을 바로 했다.

“고마워요. 형.”

“…….”

연이어 환호성이 들리고 플래시가 눈앞에서 번쩍이는 와중에도 상준이 제게 뭐라고 말을 했다. 잘 들리지 않았기에 시우는 상준에게로 한 걸음 다가갔다.

“너 오늘 컨디션 안 좋아 보이는데. 진짜 아픈 거 아니야? 상비약 있어? 아니면 비행기 뜨기 전에 명훈 형한테 사 달라고 말해.”

자연스럽게 상준이 고개를 숙여 시우의 귓가에 말했다.

시우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한 걸음 물러서 그와 거리를 만들었다. 뭐가 뭔지 모르지만, 지금은 얌전히 상황이 흘러가는 걸 지켜봐야 했다.

* * *

밴에서 내리던 시우가 비틀거린 작은 소동을 제외하고는 비행기를 탈 때까지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션은 전세기를 타고 다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래도 일등석이니 이해해야 하나?

일등석 좌석에 앉은 시우는 착실하게 백팩에 든 물건들을 꺼냈다. 역시 제 버릇은 어디 가지 않는구나.

온열 안대와 가습 마스크를 본 시우의 입꼬리가 삐뚜름해졌다.

가습 마스크와 온열 안대를 착용하고 담요까지 덮으니 혼자만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했기에 시우는 다시 휴대전화를 꺼냈다.

이번엔 검색창이 아닌 동영상 사이트로 들어갔다. 이들의 1집 무대라든지 그동안 활동했던 모습 같은 것은 텍스트보다 영상으로 보는 것이 더 빨랐다.

화려한 무대 위. 밝은 스포트라이트. 그들만의 응원법.

영상 안엔 김시우가 있었다. 수십, 수백 번을 연습했을 듯한 환한 표정을 하고,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환호성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 있다. 흔들리는 응원봉, 환호성. 심심할 때면 혼자 부르고 춤을 춰 봤던 그 노래에 맞춰 자신이 움직이고 있었다.

시우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진짜 꿈인가? 꿈일까?

방금 공항 출국장의 모습이 선명히 떠올랐다. 에반이 없는데도 그런 많은 인파가 몰렸다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 그들이 들고 있던 플래카드, 사진, 그중엔 제 것도 있었다.

철저한 통제가 있었기에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에반이 했던 말을 떠올린 시우는 고개를 숙인 채, 앞사람의 옷 끝만 보고 걸었었다.

탑승할 때까지 그들과 같이 걸었고, 예찬과 찬이 형, 상준 형은 같이 움직이는 카메라를 보고 장난을 치고 편하게 이야기를 했다. 말이 없는 자신을 대신해 예찬이 자신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말하며 제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이들은 정말 한 그룹의 멤버처럼 친밀했다.

‘CF 및 화보 촬영이긴 한데, 마치 놀러 가는 것 같아요.’

그들의 대화를 통해서 시우는 최대한 정보를 모았다. 지금 가는 곳은 영국. 에반은 비자 문제로 먼저 영국으로 갔다고 했다. 이들의 일정은 현지에서 에반과 합류 후 계획된 스케줄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무대 영상을 보던 시우는 이제 팬들이 만들어 놓은 영상으로 시선을 옮겼다. 에반 입덕 영상이라는 타이틀에 저도 모르게 그것을 누른 것이다.

영상에서 보는 에반은 제가 아는 모습보다 조금 더 어렸다. 꽤 다정하고 살갑게 구는 녀석인데, 왜 그렇게 카메라 앞에서는 차가운 모습을 보이는지 몰라. 영상 속 에반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그를 실제로 만나기 전. 시우도 에반의 영상을 보면서 그리 생각했다.

그는 분명 누구보다 무대를 잘했고, 예능에서도 적당히 치고 빠질 줄 알았다. 어디에서도 흑역사 같은 것을 남기지 않았다. 너무 완벽해서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 모습이 그대로 있었다.

동영상 프로그램은 자연스럽게 다음 영상으로 이어졌다. 굳이 시우가 고르거나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

[오션] 관계성 파헤치기 3탄 동갑내기 에반 & 시우

둘이 같이 있는 장면이나 티키타카 하는 것 같은 모습을 담은 영상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걸 보는 시우의 표정은 점차 굳어졌다. 영상을 다 본 시우는 조금 예민한 단어를 검색했다.

―오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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