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스타트(Restart)-108화 (108/187)

108화

차창을 조금 열고 한 손으로 운전을 하는 에반의 입에서 작은 허밍이 흘러나왔다.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시우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이렇게 차로 이동할 때도 둘은 대화를 나누기보다 음악을 들었다.

하지만 수시로 손을 맞잡았다. 거기에 생각이 미친 에반의 시선이 앞에 있는 카메라로 향했다. 그냥 내키는 대로 손잡고 알아서 편집하게 둘까?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에반의 시선이 여전히 깊게 잠든 시우에게 잠시 닿았다가 떨어졌다.

잠시 후면 제가 알아봐 둔 카페에 도착할 것이다. 이제 깨워야 하는데.

방금까지 카메라를 의식하던 것을 잊은 에반은 시우의 손을 살그머니 잡았다. 느슨하게 펼쳐진 손가락 사이로 제 손가락을 끼워 넣고, 망설임 없이 그의 작은 손을 제게로 끌어왔다.

그리고 따스한 시우의 손등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시선은 앞에 두고 한 손으로 핸들을 잡은 에반은 시우의 손등에 제 입술을 비볐다. 얌전히 있던 시우의 페로몬이 일렁이고 진해지는 자두 향에 이를 세워 살짝 깨물었다.

“시우야, 일어나.”

깨울 생각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방금까지 흥얼거리던 허밍보다 작은 목소리로 시우를 불렀다.

“김시우.”

손을 지분거리고 이름을 부르자 옆에서 시우가 작게 뒤척이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일어나기 싫은지 작게 한숨도 쉬는 귀여운 행동에 에반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일어나야지.”

처음엔 조심스럽게 움직였지만, 이젠 장난을 실어 일부러 쪽쪽거리는 소리를 내며 시우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으응.”

두 팔로 기지개를 켜려 했지만, 한 손이 에반에게 잡혔기에 다른 팔만 쭉 펴며 기지개를 켠 시우는 머리를 잘게 흔들어 남은 잠을 쫓았다. 아직 완전히 떠지지 않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주위를 둘러본 시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한적한 길을 달리는 자동차 안. 앞에 설치된 카메라. 그리고 제 손등을 발라 먹어 버릴 듯이 입을 맞춰 대는 에반이라니. 쉽게 이어지지 않는 상황에 운전 중인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 어디?”

어디를 가냐는 말을 하려던 시우의 시선이 카메라에 닿았다.

“조금 더 가면 카페 있대. 거기서 조금 쉬었다가 가자.”

아! 촬영. 촬영 중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시우는 에반이 잡고 있는 제 손을 홱 빼내었다. 뒤로 젖혀져 있는 의자를 바로 세우고, 자신을 덮고 있는 옷도 후다닥 치웠다.

지도, 지도가 어디 있지? 에반 혼자 지도를 보면서 여기까지 온 것인가?

눈에 띄게 허둥거리는 자신을 보고 웃는 에반의 팔을 괜히 한 대 퍽 쳤다. 이런 일이야 제작진이 알아서 편집할 것이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잘 잤어?”

“야. 넌 촬영 중인데 내가 자면 깨웠어야지. 그냥 자게 두면……. 그나저나 여기 어디야?”

에반이 접어서 옆에 둔 지도를 찾은 시우는 얼른 지도를 펼쳐 다리 위에 올려 두고는 고개를 들어 지나치는 표지판을 확인했다.

그사이 당황스러움을 감추려 왼손을 만지던 시우의 시선이 제 손으로 향했다.

분명히 검지에 끼고 있던 반지가 또 약지로 옮겨져 있다. 이런 장난이 재밌나? 제가 잠든 틈을 타 에반이 옮겨 놓은 반지를 검지로 다시 옮긴 시우는 혀를 차며 지도를 넘겼다.

“길을 잘못 들어서 조금 헤맸는데, 캠핑장이랑 많이 멀지는 않은 것 같아. 저기 카페 있다는데 잠깐 들르자.”

“제작진도 알아?”

아직 잠이 다 가시지 않은 시우는 지도를 들어 제 얼굴을 가리고 나른하게 하품을 했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카페에 들러 쉴 생각이면 제작진에게 그리 전해야 했다.

“저 시우인데요.”

“어? 연락 왔네! 너희 무전기 안 돼? 둘 다 전화도 안 받고. 지금 어디 가는 거야?”

무전을 보내자마자 들리는 제작진의 목소리에 시우는 에반을 바라보았다.

“전화는 촬영 중이니 둘 다 무음에 무진동으로 해 뒀고, 무전기는…….”

“근처에 카페 있다니까 잠깐 들러서 쉬었다가 가죠.”

에반은 자신을 보며 제작진에게 해명하려는 시우의 말을 가로챘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시우는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카페 주차장에 있었다.

“저쪽 팀도 조금 헤매서 도착하려면 30분 정도 걸린다니까, 여기까지 온 김에 잠시 쉬면서 둘이 라이브 한번 가자.”

“갑자기 라이브요?”

차에서 내려 가볍게 몸을 움직이던 시우는 제작진의 제안에 반문했다.

“카페 측이랑 이야기 중이라니까 조율되면 짧게. 여기 풍경 좀 보여 주고, ‘Ocean Story’ 촬영 중이라는 것도 곁들이고. 뭐 늦가을 경치 어쩌고 하고. 또 추워지니까 감기 조심하세요. 이런 것으로 끝내.”

안으로 들어갔던 스태프가 나오면서 보인 긍정적인 손짓과 함께 밖에서 대기하던 스태프들의 행동이 빨라졌다.

카페 야외에 있는 테이블 위로 먹음직스러운 디저트들과 따뜻한 커피가 담긴 머그잔 두 개가 놓였다. 그리고 잠든 동안 살짝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스타일리스트의 손을 거치자 다시금 깔끔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에반과 단둘의 라이브라니.

평소에는 참으로 믿음직스럽고 긍정적인 감정을 가져다주는 에반이지만, 이럴 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가끔 튀어나오는 돌발 행동을 예의 주시 해야 했다. 녹화면 편집 팀에서 알아서 다 정리할 내용이지만, 라이브에선 그대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에반이 휴대전화를 잡고 버튼을 누르는 것과 동시에 라이브가 시작됐다.

갑작스러운 라이브였지만, 참여자 수가 빠르게 늘고 깜작 라이브에 놀랐다는 내용을 담은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시우는 화면을 향해 두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채팅창을 보다가 눈에 띄는 문구에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어 버렸다.

“아니. 에바니 보고는 다 멋있다고 하면서, 난 왜 귀엽다고 해요. 남자는 핑크! 몰라요?”

둘은 오션이 모델로 활동하는 스포츠 웨어를 입고 있었다. 스타일리스트가 주는 대로 입었기에 별생각 없었는데, 둘의 후드 티셔츠가 같은 디자인에 색상만 다른 것 같았다.

짙은 회색을 입은 에반과 베이비 핑크를 입은 저를 보고 커플 룩이냐는 말도 많이 올라왔다.

“지금 ‘Ocean Story’ 촬영하다가 카페에 잠시 들렀어요. 둘 다 아메리카노이고…….”

“날씨 추워졌잖아요. 햇살이 좋긴 한데, 바람이 조금 차가워서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뚱카롱도 먹어 볼까요?”

에반과 시우는 사운드가 비지 않도록 말을 했다. 순간 불어온 바람이 후드 티셔츠를 펄럭거리자 시우는 후드 모자를 썼다.

“음……. 맛있긴 한데, 시우가 좋아하는 새콤한 맛이에요. 레몬 같은데?”

먼저 뚱카롱을 베어 문 에반의 말에 시우의 시선이 뚱카롱으로 향했다. 제 입술 근처로 에반이 먹던 뚱카롱이 다가오자 본능적으로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이거…… 레몬 아니야. 오렌지 같아.”

방금 먹은 뚱카롱 맛을 확인한 시우는 맛에 대해 말하며 앞에 있는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야외에서 촬영하는 것 같은데, 후드 티셔츠 한 장만 입고 있기에는 추운 날씨였다.

커피를 마시면서도 시우의 시선은 채팅창에 고정되어 있었다.

“다른 멤버들요? 지금 다른 곳에 있어요.”

순간 시우는 옆에서 빛을 내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예찬이다! 여러분, 예찬이 전화 왔어요. 우리 라이브 보나 봐요.”

에반이 시우를 말리는 것보다 시우가 예찬의 전화를 받는 것이 더 빨랐다.

“뭐야! 뭐예요. 왜 형들만 카페 가고. 뚱카롱, 나도 뚱카롱 잘 먹는단 말이에요.”

스피커폰으로 받았기에 예찬의 빠른 말이 그대로 라이브를 통해 나갔다.

“예찬아, 인사부터.”

“안녕하세요, 예찬입니다. 지금 저희는 길 잃어서 헤매고 있거든요? 같은 자리 두 번이나 뺑뺑 돌아서 상준 형이랑 찬이 형 싸웠단 말이에요. 그런데 왜 시우 형이랑 에반 형은 데이트해요?”

빠른 예찬의 말에 에반이 큰 소리로 웃었다. 시우 역시 웃음을 참지 못해 옆에 있는 에반의 팔에 기대며 큭큭거렸다.

“데이트 아니야. 우리도 길 헤매다가 카페 있어서 들어온 거야.”

“뭐야? 데이트 아니야? 이런 곳에서 맛있는 거 먹고 하는 거 데이트 아니야?”

데이트가 아니라고 콕 집어 말하던 시우의 말에 에반이 반박했다.

“데이트고 자시고. 우리는 이상한 오솔길이라 근처 카페 같은 것도 없단 말이야! 너희만 맛있는 거 먹냐? 나도 아메리카노 잘 마실 수 있어.”

에반과 시우가 데이트니 아니니로 티격태격하던 것은 예찬에 이어 전화를 넘겨받은 찬이 버럭거리는 소리에 묻혔다.

“알았어요. 뚱카롱이랑 커피 사 갈게요.”

어느 정도 분량이 나왔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라이브를 그만하라는 피디의 제스처에 둘은 인사를 하고 라이브를 끝냈다.

“추워?”

라이브를 끝내자마자 몸을 부르르 떨면서 식어 버린 커피를 마시던 시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만 갈까? 하고 자리에서 일어선 에반을 따라 일어나던 시우는 자신의 어깨에 팔을 두르는 그의 손길을 피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한때는 연예인이 지나가면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고, 그들을 향하던 플래시 세례가 참으로 부러웠다.

이름을 불러 주고 환호성을 듣는 그들의 삶이 정말 하늘의 별같이 보였다. 그저 어깨동무를 하려던 그들의 행동에도 큰 소리를 내며 창가 창을 통해 자신들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갑자기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평범했다면 어떨까? 이런 카페를 찾아다니고, 흔한 연인들처럼 팔짱을 끼거나 손을 맞잡을 것이다. 조금 용기를 낸다면 입을 맞췄을지도 모를 일이다. 친구로서 같은 그룹원으로서 둘이 함께 있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시선은 없다.

그런데 만약 우리 관계가 그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관계가 아니라면 이들의 시선은 어떻게 바뀔까?

앞선 스태프가 주차장으로 향하는 문을 열자 시우는 얼른 그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이내 자신을 따라잡은 에반의 팔이 제 어깨를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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