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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타트(Restart)-134화 (134/187)

134화

대리석 세면대에서 내려온 시우는 에반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에반이 한 손으로 제 눈가를 가리고 있었기에 그의 표정을 확실하게 살필 순 없었지만, 그의 페로몬은 난폭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에반을 살핀 시우는 거절의 행동이나 말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의 바지와 속옷에 손을 댔다.

시우의 한 손이 에반의 허벅지에 닿았고, 에반의 큰 손이 시우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과감하게 속옷 안으로 손을 넣은 것과 달리 온전히 드러난 에반을 만지는 시우의 손길은 이런 일을 저지른 자의 행동치고는 지나치게 부드러웠다.

머뭇머뭇 서툰 손길이 오히려 에반에겐 더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아래에서 저를 올려다보는 말간 눈동자는 애써 누르고 있던 욕망에 불을 지르기 충분했다. 붉고 도톰한 입술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민 혀가 그에게 닿았다.

어디까지 하는지 지켜보려던 에반의 허벅지 근육이 단단해졌다. 제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다가오던 처음과 달리 시우는 이제 자신을 마음껏 가지고 놀고 있었다. 주저하던 손길이 대범해졌고, 부끄러움을 잊은 입술과 혀가 그를 농락했다.

“하……. 코코, 누가 너한테 이런 거 하랬어?”

거칠어지는 에반의 숨결과 잠긴 목소리에 시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예뻐해 준댔잖아.”

방금까지 물고 빨던 것을 놓은 시우 역시 숨결이 고르진 못했다. 질척하게 젖은 곳에 뜨겁고 간질거리는 진한 자두 향을 담은 입김이 퍼지는 순간, 에반의 입에서 낮은 욕설이 흘러나왔다.

“에…… 에반!”

방금까지 희롱하던 것으로 다시금 손을 뻗던 시우는 제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번쩍 들어 올리는 그의 행동에 숨을 들이마셨다.

“다른 알파 페로몬이 묻어도 모르면서, 이렇게 하면 내 기분이 풀릴 줄 알았어?”

에반이 불만을 늘어놓는 것과 동시에 거친 손놀림으로 시우의 몸을 누비며 그가 걸치고 있던 모든 것을 치워 버렸다.

그러고는 다시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높이 드는 바람에 허공에 몸이 뜬 시우는 엉겁결에 에반에게로 팔을 뻗었다. 시우는 본능적으로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두 다리를 에반의 허리에 감았다.

다른 이의 페로몬. 제게 그런 일을 할 사람은 없었다. 제가 오늘 친밀하게 닿았던 이는……. 아, 케이티? 아기니까 페로몬 조절에 서툴 수도 있다. 꼭 끌어안고 볼도 비비고 제 얼굴을 만지던 아기의 작은 손이 떠올랐다.

“그래서 혼낼 거야?”

웃음이 스민 목소리로 속삭인 시우는 에반의 어깨를 아프지 않게 물었다.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두 팔과 다리에 힘을 주던 시우의 몸이 흠칫 떨렸다.

제 엉덩이를 움켜쥐는 에반의 손. 그리고 잔뜩 흥분해 젖어 버린 은밀한 곳에 에반의 손끝이 닿았다.

“응. 혼낼 거야.”

“내가 예뻐해 줬잖아. 예뻐해 주면 내 말 듣기로.”

은밀한 곳에 묵직하게 닿는 뜨거운 것을 느낀 시우는 에반의 말에 웅얼거리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더 혼내 줘야지. 앙큼하게 그런 생각도 하고 있었다고?”

시우의 엉덩이를 만지며 무게를 받치고 있던 에반이 팔에서 힘을 빼자 꼭 다물려 있던 곳이 느릿하게 벌어졌고, 이내 시우가 익히 아는 것이 서서히 침범했다.

“흐아아……. 너도…….”

너도 나한테 그러잖아, 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시우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허공에 들린 시우가 의지할 곳은 에반뿐이었다. 그의 목에 감은 두 팔에 힘이 들어가고, 허벅지로 그의 허리를 조이고 푸는 것이 시우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모든 것은 에반의 손에 달려 있었다. 잔뜩 힘이 들어간 에반의 팔 근육이 움직이며 위아래로 옆으로 흔들 때마다 시우는 숨기지 못한 신음을 뱉어 냈다.

“흑…… 흐읍.”

감당할 수 없는 쾌락에 에반의 어깨와 목선에 열기가 오른 얼굴을 비비던 시우의 발끝이 곱아들고 허벅지가 파들거리며 떨렸다. 단단해진 에반의 팔뚝을 잡은 시우의 손끝이 하얗게 변했다.

시우는 머릿속을 하얗게 물들이는 절정에 다다라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잔뜩 긴장했던 시우의 몸이 풀리는 것과 동시에 에반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윽…… 하…… 움직……이지…….”

쾌락의 끝이라 여기는 지점. 하지만 계속해서 가해지는 감각의 향연에 시우는 헐떡이며 도리질 쳤다. 늘 지금이 마지막 같았지만, 에반의 몸짓은 그 한계를 쉽게 부서뜨리곤 했다.

“예뻐해 준다며? 그럼 내가 원하는 만큼 예뻐해 줘야지.”

한껏 붉어진 채, 에반에게 매달려 숨을 헐떡이고 있던 시우의 눈이 천천히 뜨였다. 고개를 숙인 그가 제 이마와 머리에 입술을 대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지금 에반이 찾는 건 공기라기보다 짙은 페로몬일 것이다.

“아니…… 그게…….”

“거래는 시작됐잖아.”

에반의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그의 행동은 불친절했다. 그리고 시우는 제 예상을 넘는 그 불친절함이 제게 가져다주는 쾌락에 젖어 들었다.

* * *

시우는 손끝을 살짝 흔들었다.

제 손가락 사이사이를 간지럽히는 따스한 물의 감촉을 만끽하던 시우는 이번엔 조금 더 손끝을 강하게 흔들었다. 그러고는 물이 만드는 파동에 가만히 시선을 고정했다.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에 이어 공기 중에 드러나 있는 어깨 위로 따스한 물이 흘러내렸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그대로 잠들 것 같았다. 거칠어진 숨결도 스치기만 해도 저릿저릿하던 피부도 모두 가라앉았지만, 제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것만큼은 사라질 줄 몰랐다.

“우리 언제 가?”

“내일 오후엔 출발해야겠지.”

에반의 가슴에 귀를 대고 있었기에 그의 말은 귀가 아닌 온몸으로 들려왔다. 일정하게 뛰는 그의 심장 소리에 목소리가 스며 있었다.

다시 침묵이 찾아들었다.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그냥 이대로 살까?”

뜸을 들인 후 흘러나온 에반의 말에 시우는 눈만 깜박였다.

에반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도, 제가 눈만 깜박이고 대답을 못 하는 이유도 모두 알고 있다.

시우는 눈을 꾹 감았다.

케이티와 놀면서도 계속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계속 반복된 패턴이니까.

최정상의 자리에 있는 에반에게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었다. 그에게 아이돌이라는 그 자리는 취미일 뿐이라고.

훗날 그가 있어야 할 자리는 정해져 있었다. 형이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집안에서 그 역시 불러들일 것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진실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그들은 그런 이야기를 짧게 나누었다.

에반의 어머님이나 형은 에반의 결정을 지지하는 듯했지만, 아버님의 눈엔 그가 지금 하는 일이 탐탁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아버님이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에반이 티 나게 다른 주제를 꺼내며 말을 돌렸다.

이제 데뷔 1년 차 아이돌. 신인상까지 받았다고 하지만, 이 판에서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정상에 있던 아이돌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저 잠깐 떴다가 사라지는 별들.

한국으로 돌아가 해체 선언을 해 버리면 끝이다. 수년을 노력해서 데뷔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같은 어려운 일이지만, 해체하거나 사라지는 건 눈을 한번 깜박이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지금 에반의 말은 두 가지 뜻을 담고 있었다.

이곳에서 계속 이렇게 살기 위해선 아이돌을 포기해야 한다. 아이돌은 포기하더라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우리 시우가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하고 싶은 건 다 해야지. 내년 봄에는 미니 앨범 내고 가을 무렵엔 정규 3집 내면 되겠다. 콘서트는 언제가 좋을까?”

대답하지 못하는 시우 대신 에반이 말을 이었다.

“신인상은 받았고, 내년엔 대상 어때?”

넌 뭐든 쉽구나. 난 그렇게 애를 써도 한 번도 받지 못한 신인상은 당연한 것이고, 늘 꿈만 꾸던 대상도 지금 에반이 이렇게 말하니 이미 제 손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래. 내년엔 대상 받고, 곡이 어느 정도 있어야 콘서트 하기도 좋을 테니까 내년 겨울에 콘서트 하자. 너 더운 거 싫잖아.”

“그럴까?”

“응. 그러면 나도 미련 없을 것 같아. 후회도 없을 것 같고.”

시우는 나른하게 뜨고 있던 눈을 감았다. 후회도 미련도 없을 것 같은데, 가슴이 아프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정해진 시간이 다가온다는 것이니까.

“콘서트까지 하고 난 뒤에 결혼하면 되겠다.”

에반이 일 이야기를 이어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꺼낸 말에 시우는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어떤 생각을 하면 콘서트 이야기에서 결혼으로 이어질 수 있는 거지?

“아! 그리고 아기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어. 케이티를 보니까 안 될 것 같아. 네가 나보다 다른 존재를 더 좋아하는 건 용납이 안 돼.”

콘서트에 이어 결혼, 다음으로 상상조차 하기 벅찬 아기를 입에 담는 에반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한 시우는 두 팔로 그의 어깨를 밀어 둘 사이에 충분한 공간을 만들었다.

“결혼?”

“응.”

뭘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듯한 그의 표정에 시우는 눈을 빠르게 깜박거렸다.

“아기?”

그건 에반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제게 하는 말도 아니고 그냥 흘러나온 단어였다.

에반이 피식 웃는 것을 보면서도 시우는 썩 와닿지 않는 단어를 입 안에서 굴렸다.

케이티가 떠올랐다. 사랑스럽지, 귀엽지. 그런데 에반의 아이라고? 아마도 금발이겠지. 그리고 눈동자 색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에메랄드색일 것이고. 분명 잘생겼을 것이다. 여자아이라면 아주 예쁠 것이고.

“코코.”

멍하니 에반의 얼굴을 보며 케이티와 비슷할 것 같은 아기의 얼굴을 떠올리던 시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런 아기를 꼭 보고 싶다는 위험한 생각이 찾아들자 얼른 머리도 살짝 흔들었다.

“나랑 결혼 안 할 거야?”

우리 제대로 사귀기로 한 지 일주일도 안 된 것 같은데.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한 시우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러자 에반의 손이 다가와 턱을 잡으며 물고 있던 입술을 놓게 했다.

“대답 안 해? 이러면 상당히 곤란한데? 아직도 부족해?”

방금까지 잔잔한 호수 같던 에반의 눈빛이 변하는 걸 고스란히 지켜본 시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야…….”

“그럼 대답해 줄 때까지 열심히 설득해야겠다.”

에반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고 시우를 홀려 버린 멋진 미소가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아래에서 전해지는 열기에 시우는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려 버렸다. 거절하기엔 저도 너무 좋은 탓이었다.

욕조의 물이 넘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에반의 위에서 허리를 돌리는 시우의 가슴에 에반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습기 가득한 욕실에 둘의 열기가 진득하게 더해졌다.

<2부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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