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혼자 들어가는 건 아니죠?”
시우가 묻고 싶은 것을 떨리는 목소리로 상준이 먼저 말했다.
“그랬다가는 오늘 퇴근 언제 하려고요. 일단 가위바위보를 해서 제일 먼저 지는 분은 혼자. 남은 넷은 뒤집어라 엎어라로 팀 정해서 들어가는데요. 이번 미션은 ‘귀신의 집’을 통과하는 동안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는 이름표를 찾아 오는 겁니다. 아시겠죠? 종이를 찾아 오시면 자유 이용권 세 장. 못 찾아 오시면 당연히 없겠죠. 자! 가위바위보.”
큐시트를 빠르게 읽은 찬이 쉴 틈 없이 가위바위보를 제시했고, 얼떨결에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던 다섯 명의 손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본능적으로 주먹을 낸 시우의 눈이 빠르게 남은 멤버들의 손을 바라보았다.
“음, 시우 군 혼자 들어가시고요. 뒤집어라 엎어라.”
멤버들의 손을 확인한 찬이 멘트를 뱉자마자 곧바로 게임을 하는 바람에 남은 이들의 손이 다시금 바삐 움직였다.
“저와 상준 씨, 예찬 씨랑 에반 씨가 함께 하면 되겠습니다. 그럼 들어갈까요?”
“아니! 형, 우리도 말할 시간을 달라고요. 이런 독단적인 상황이 어딨어요.”
“뭐가 독단적이에요. 퇴근 안 할 거예요? 이러다 날 새우겠어요. 여기 계신 분들도 퇴근하셔야죠.”
귀신의 집을 바라보며 상준이 불만을 토했지만, 찬은 상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귀신의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에반이 어떻게 손쓸 시간조차 없었다. 팔짱을 끼고 서서 찬이 말하는 것을 듣던 중 옆에 있던 예찬이 제 등을 손바닥으로 두 번 툭툭 친 것이다. 분명 그건 사인이었고, 예찬이 전해 준 사인대로 보를 냈다. 그리고 이어서 손바닥을 위로 향해서 내밀었다.
그런데 시우가 혼자 들어가게 됐다고? 뭐라고 항의하거나 되돌릴 새도 없이 찬과 상준이 귀신의 집에 들어가는 것까지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밖에선 안의 상황을 알 길이 없었다. 카메라 감독님 두 명도 같이 들어가셨으니 모두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괜찮아?”
한 팔로 몸을 감싸고 다른 손으로 입술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시우에게 다가간 에반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생각에 빠진 것인지 바닥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시우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의 일은 에반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오직 둘만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던 영국에서와 달리 한국에 들어온 이후 같이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연말에 계속 이어지는 각종 시상식에서 선보일 퍼포먼스 연습을 위해 연습실에 모일 때 보는 시간이 거의 전부였다.
영화와 드라마, 각종 CF까지 에반의 앞으로 들어온 개인 활동이 많아진 탓이었다. 영화와 드라마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지만, 시놉시스라도 확인해 달라는 회사의 입장은 강경했고, 일단 보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봄에서 여름 무렵 발매할 미니 앨범 준비에도 돌입했다. 모든 일을 소속사에 맡겨 버리고 시우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적어도 어떤 식으로 진행해 나갈 것인지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했다. 손을 놓고 있었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면 되돌리는 것이 더 힘들었다.
자연스럽게 각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소홀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늦은 밤, 자신의 침대에서 먼저 잠든 시우를 보는 일이 빈번해졌다.
매니저도 없이 혼자 숙소로 온다는 말에 심장이 털컥 내려앉았다. 숙소 앞에 죽치고 있는 지긋지긋한 사생부터 해서 혼자 있는 시우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모든 상황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떠돌아다녔다.
시우가 쓰디쓴 한약은 더는 못 먹는다고 버텼기에 페이든이 보내 준 억제제를 먹고 있긴 했다.
하지만 타인의 페로몬을 인지하지 못하는 시우에게 정신 나간 알파가 마킹이라도 한다면…….
영국에서 돌아온 이후 찬과 예찬도 시우에게 페로몬을 묻히지 않았다. 손 닿을 만한 곳에 페로몬 탈취제를 두고 수시로 뿌려 대는 시우 때문이었다. 외출 시엔 가방에도 꼭 챙겨 다녔다.
벗어 놨던 패딩을 걸치고 빌라 앞으로 나간 에반의 눈에 종종걸음으로 걸어오는 작은 인영이 들어왔다. 자신을 보자마자 방긋 웃는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날뛰는 감정을 참을 수 없었다. 별일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지만, 저도 모르게 잔소리가 나가고 말았다.
제발 조심성을 가지라고. 넌 베타가 아니라고. 지금껏 살아온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확실하게 일러 주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제 가슴에 박히는 매몰찬 말이었다. 시우를 위한 일이었을까? 자기만족을 위한 일이었을까? 처음엔 시우를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저도 어쩔 수 없는 알파였다. 항상 제가 보이는 곳에 두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니 시우의 감정까지 통제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조금의 불편함 없이 행복하기를. 어떤 고민도 힘든 일도 없기를.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뤄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행동이 시우에겐 족쇄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랬기에 자신을 뿌리치고 돌아서는 시우를 잡을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제 행동이 간섭이나 통제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불 꺼진 거실을 지나 잠겨 있는 시우의 방문 앞에 에반은 한참이나 서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이글거렸지만, 그것도 시우에겐 강제적인 것으로 보일 것 같아 결국 돌아서야만 했다.
상준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우의 손에 들려 있는 머그잔에 든 것이 진한 커피임을 알았을 때도 에반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아침은 늘 가볍게 커피만 마시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챙겨 먹이고 싶었다. 그것도 제 욕심이었을까.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제 방으로 쏙 들어가는 시우를 잡지 못했다.
시우의 말대로 모두 제 잘못이었다. 그런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 것조차도 제 생각을 그에게 강요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겨우 사과를 해서 기분이 괜찮아진 것 같았는데.
“코코.”
시우가 싫어할 건 알지만 옆으로 다가간 에반은 시우의 등을 손으로 쓸었다.
“아! 어.”
무슨 생각에 그렇게 깊이 빠져 있었던 것인지 작은 몸이 화들짝 놀라는 것이 손을 통해 온전히 느껴졌다. 고개를 홱 들어 올려 자신을 보는 시우의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괜찮겠냐고. 지금이라도 예찬이에게 말해서 팀 바꿀까?”
“아니야. 게임으로 정한 건데, 나 괜찮아.”
참으로 아리송했다. 늘 괜찮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온 탓일까. 시우가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더 불안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걱정할 걸 걱정해. 나 놀이 기구 잘 타는 거 알잖아.”
“이건 놀이 기구와 다르잖아.”
“나 네 생각보다, 사람들이 가지는 선입견보다 훨씬 튼튼하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거기다 카메라 감독님 두 분도 같이 가는데 뭘 그래.”
어깨를 으쓱하며 태연한 척 이야기하는 시우의 말에 에반의 턱뼈가 도드라져 올라왔다. 뭐든 혼자 하려 하는 것도 시우의 버릇이었다.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폐를 끼치는 걸 싫어했다.
수시로 제 몸에 페로몬 탈취제를 뿌려 대는 데다 지금껏 쓰지 않던 향수까지 사용하는 시우였기에 달콤한 자두 향을 제대로 맡을 수가 없었다.
“으악! 어. 진짜 죽을 뻔했어.”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귀신의 집 출구에서 튀어나와 바닥에 무릎을 꿇는 찬의 뒤로 유유자적하게 걸어 나오는 상준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들어가기 전에 기세등등한 사람은 찬이 아니었던가. 상반된 둘의 모습과 함께 뒤따라 나오는 카메라 감독님들 입가에 미소가 짙게 걸려 있었다.
아무래도 그 안에서 제법 많은 일이 있었던 듯했다.
“미쳤어.”
진짜 무섭다고 중얼거리면서도 찬은 한 손에 제 이름이 적힌 카드를 꼭 쥐고 있었다.
“다음 누가 들어가요?”
의자에 앉아서 먼저 들어간 이들이 나오는 걸 기다리던 예찬의 질문에 피디는 예찬과 에반을 가리켰다.
“무섭다고 울면서 나오지 말고 어서 들어갔다 오세요. 찬이 형 말대로 빨리 퇴근해야지.”
에반은 자신의 팔을 툭툭 치면서 생긋 웃는 시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어제와 오늘 아침에 보이던 불안함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조금 전 넋 놓고 어딘가를 보고 있던 그에게서 느껴지던 초조함이나 그런 것도 없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유유자적하게 콧노래를 부르던 밝은 모습으로 꿈쩍도 하지 않는 자신을 입구 쪽으로 밀기까지 했다.
분명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데……. 앞서 걸으며 어서 들어가자고 자신을 부르는 예찬에게 향하던 에반의 시선이 한 번 더 시우에게 닿았다. 어느새 시우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찬의 옆에 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귀신의 집은 늘 그렇고 그런 흔하디흔한 모습이었다. 여기저기서 움직이는 인형들이나 귀신이나 좀비 같은 것들로 분장한 사람들이 잠시 잠깐 튀어나왔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닥치기도 하고, 바닥을 물컹한 소재로 만들어 발이 조금 빠지게 하는 장치들도 있었다.
튀어나온 귀신이 들고 있는, 제 이름이 적힌 카드를 낚아채는 에반의 표정엔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가끔 예찬이 바람이나 물컹한 바닥에 놀라 헉, 하는 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오히려 예찬은 달려드는 귀신과 좀비를 반겼다.
주저하거나 멈추는 일이 없었기에 예찬과 에반은 순식간에 귀신의 집을 통과했다.
“근데 시우 너 진짜 괜찮겠어?”
밖으로 나와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건네는 찬의 말에 시우는 에반에게 그랬듯 역시나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무섭든 그렇지 않든 어차피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처음부터 지레 겁먹어서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그냥 모두 인형이고 분장을 한 사람이다.
으스스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릴 테고, 갑자기 바람이 나오고 바닥을 스펀지 같은 것으로 깔아 푹 빠지면서 휘청거릴 것이다. 시우는 계속해서 같은 말을 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그냥 앞으로만 걸으면 된다.
“감독님들도 같이 가잖아요.”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오는 에반과 손을 위로 들고 제 이름이 적힌 카드를 팔랑거리며 웃고 있는 예찬을 보니 그리 걱정할 일도 아닌 것 같았다. 놀이 기구를 타는 동안 나 죽는다고 멈추라고 소리소리 지르던 상준 역시 가볍게 걸어 나온 곳이 아니던가.
“그럼 들어가 볼까요?”
에반이 제게 어떤 말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시우는 제 뒤를 따르는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이고는 입구로 발을 들였다. 어디선가 뛰쳐나오는 귀신이나 좀비로 분장한 사람이 이름 적힌 카드를 들고 있다는 사실도 찬과 상준에게 들었다.
아주 예전에 몇 번 와 본 곳이다. 그리고 시우도 한때는 귀신의 집을 참으로 즐겼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소풍으로 자주 오던 곳이니까. 그러니 이 귀신의 집은 벌써 몇 번이나 왔었다. 그때마다 친구들과 시시덕거리면서 들락거렸고.
듣보잡 아이돌이었지만, 이런 건 꼭 찍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시우는 예찬처럼 방방 뛰며 이곳을 누볐다. 아니 누볐었다.
순식간에 암흑이 저를 덮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눈을 감은 채 입구에 잠시 서 있다가 눈을 떴다. 어둡다고는 해도 사람들에게 진행 방향을 알려 주기 위해 밝힌 불그스름한 옅은 불빛이 짙은 암흑을 조금 밀어내고 있었다.
늘어뜨리고 있는 시우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다 허구다. 일부러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입 안에 고인 침을 삼킨 시우는 무거운 발을 겨우 땅에서 떼어 냈다.
회귀는 그런 것이었다.
조금도 무섭지 않은 것을 무섭게 만드는 것.
없던 두려움도 만들어 내는 것.
진실과 거짓을 흐리게 만드는 것.
불가능한 회귀가 진실이니 이 모든 것이 진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것.
그랬기에 귀신도 좀비도 시우에겐 거짓이 아닌 진실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으악!”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벽에 걸려 있던 인형이 떨어져 허공을 가리는 순간 시우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