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스타트(Restart)-140화 (140/187)

140화

시우에게 예상했던 반응이 튀어나오자 그를 따르던 카메라 감독님들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어렸다.

본능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하며 두 손을 가슴께로 올린 채 옆으로 피하던 시우의 입에서 또다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벽에 팔을 부딪친 것이다.

“하아……. 잠시만요. 빨리 가야 하는데 죄송해요.”

결국 앞으로 나가지 못한 시우는 주춤거리며 카메라 감독님들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꾸벅 숙여 사과의 말부터 했다.

“이런 거 별로 안 무서워하는데, 오늘 좀…….”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을 문지르며 웅얼거린 시우는 진행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괜찮을 줄 알았다.

머뭇거리던 시우는 찬이 설명해 준 것을 입 안에서 웅얼거렸다. 캐비닛에서 좀비가 튀어나오고, 화장대의 서랍을 열면 거울에 귀신 모습이 비친다고 했다. 대충 어디에서 뭐가 나올지 알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중간중간 위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진다고 했고, 바닥이 변하는 것도 다 안다. 아는데…….

“가…… 가죠.”

오래 있어 봐야 더 무섭기만 하지. 아랫입술을 앙다문 시우는 두 손을 불끈 쥐고 무거운 발을 뗐다.

“으아악!!”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아래로 발이 쑥 빠지자 기겁한 시우는 무작정 앞으로 달렸고, 앞에 있던 인형을 확인한 시우의 입에서 계속 앓는 듯한 신음과 높은 비명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아니야! 오지 마! 오지 마아…….”

어디로 뛰든 마주치는 기괴한 모양의 것들에 기겁한 시우의 눈가는 어느새 젖어 있었다. 그렁그렁 앞이 뿌옇게 변하자 시우는 소매에 눈을 마구 비볐다.

시우가 자리에 멈춰 서서 훌쩍거리며 눈물을 닦아 내자, 카메라 감독님들 역시 그 자리에 멈춘 채 시우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크게 심호흡도 하고 계속 나오는 눈물을 소매와 손으로 꾹꾹 누른 시우는 자신을 찍고 있는 두 대의 카메라를 보고는 얼른 옆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감독님 한 분만 먼저 가 주시면 안 돼요?”

제가 우는 모습을 찍는 카메라가 부담스러운지 계속 다른 곳을 보던 시우가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두 분의 카메라 감독님을 번갈아 보았다.

오늘 놀이공원에서 누구보다 신나게 모든 미션을 완벽하게 수행한 시우였다.

그들이 원하던 모습을 조금도 담지 못했기에 솔직히 귀신의 집에 들어오는 촬영진들은 큰 기대가 없었다.

하지만 입장하는 것과 동시에 빵빵 터트려 주던 시우가 결국 눈물까지 보이고 길 잃은 어린양처럼 처연한 표정으로 이런 부탁까지 해 오자 카메라 감독 중 한 명이 결국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손으로 OK 사인을 보내고 걸음을 옮기자, 다시금 입술을 앙다물고 두 손을 꼭 쥔 채 시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름표, 이름표. 으아…… 오지 마요……..”

작은 소리에도 흠칫거리며 몸을 웅크리고, 수시로 손으로 눈을 가렸다가 살그머니 내리는 시우의 입술이 계속해서 달싹거렸다.

그냥 무시하고 달려 나가도 될 텐데, 진저리 치면서도 시우는 사방을 꼼꼼히 둘러보았다.

“…….”

그렇게 감독님을 따라 깜짝깜짝 놀라며 걷던 시우는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온 귀신을 보는 순간,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허공을 가르며 떨어지는 물체도, 옆에서 튀어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인형도 아니었던 것이다.

너무 놀라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고, 뿌리라도 내린 듯 멈춰 버린 다리 때문에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었다. 앞에서 나왔다고 해도 별수 없었겠지만, 옆에서 문을 박차고 나오리란 것은 조금도 예상치 못한 것이다.

시우가 도망을 갈 것이라 예상하고 달려든, 귀신 분장을 한 아르바이트생이 오히려 당황했다. 시우를 향해 달리던 아르바이트생이 얼른 몸을 틀어 옆으로 비껴갔지만, 그녀가 쓰고 있던 긴 귀신 가발이 날리며 시우의 얼굴을 스쳤다.

맞부딪칠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짙게 분장한 귀신의 얼굴을 마주한 시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형, 여기 앉아요. 왜 그렇게 서 있어?”

에반은 제 손을 잡는 예찬의 손길에 ‘귀신의 집’을 보고 있던 시선을 돌렸다.

“시우 걱정돼서 그래? 야, 뭘 걱정하고 그러냐. 우리 중에 젤 남자다운 애가 시운데. 걔가 못하는 게 뭐가 있어. 못하는 것이 없는 게 문제인 애지. 분명 예찬이처럼 이름표 팔랑팔랑 흔들면서 나올걸?”

따뜻한 물을 마시며 두 손을 휘휘 젓고는 별걱정을 다 한다고 어서 앉으라고 상준이 말하자, 오래도록 그들을 봐 온 스태프들이 그 말에 공감하며 웃었다.

“에반이도 따뜻한 거 좀 마실래? 실내라고는 해도 난방을 안 해 주니 좀 춥네.”

시우가 나오고 클로징 멘트만 하면 촬영이 끝나기에 다들 가벼운 마음으로 농담을 주고받았다.

“아까 신나서 놀이 기구 타는 거 못 봤어? 오늘 컨디션도 좋고, 기분도 완전 좋아 보이던데.”

그들의 말이 맞는다.

시우는 못하는 것이 없었다. 늘 생글생글 웃었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망설이는 법도 빼는 법도 없다.

제게 주어진 일은 확실하게 해 냈다. 처음 보는 안무도 최단시간에 숙지했고, 노래 실력까지 흠잡을 곳 없었다. 생방송 중이나 촬영 중에 일어나는 돌발 상황에도 시우는 당황하기보다 유연하게 잘 대처했다.

여리고 소극적이며 애교가 많을 것 같은 외모와 달리, 털털하고 무던하며 씩씩하게 뭐든 잘해 내는 그 모습이 가져오는 괴리감에 시우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상자에 든 물건 맞히기 같은 게임을 할 때도 태연한 표정으로 안에 든 물건들을 서슴없이 만졌고, 번지점프 같은 것을 할 때면 환하게 웃으면서 폴짝거리며 잘도 뛰어내렸다.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 있는 에반의 시선이 다시 ‘귀신의 집’으로 향했다.

솔직히 에반도 지금 스태프와 멤버들이 하는 이야기에 공감했다. 애교가 없다고? 사근사근하지 못하다고? 표면적으로 평소에는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긴 했다.

하지만 둘만의 시간에서는 모든 것이 과하게 넘쳐 났다. 베갯머리송사라고 적극적으로 제가 원하는 걸 속살거렸다.

분명히 제가 생각지 못한 것이 있다.

놓치고 있는 것. 제가 생각지 못한 것.

“…….”

조금 전 대화가 떠올랐다.

놀이공원, 머리띠.

시우가 육식동물 머리띠를 하고 싶어 했던 것은 지난 시간대다. 결국 고양이 머리띠를 호랑이 머리띠로 착각하고 썼던 시우였기에 에반은 처음부터 그에게 호랑이 머리띠를 주었다.

기린 머리띠를 보는 순간 예찬이 떠올라서 그에게 그것을 쓰게 했다.

그때 시우가 어떻게 했더라. 제가 공룡 머리띠로 바꿔 줬을 때, 시우의 표정이 어땠지?

생각에 잠긴 에반의 턱선이 도드라졌고, 미간에 옅은 주름이 생겼다. 그동안에도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귀신의 집’에 붙박여 있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분명 제게 화가 났던 시우였는데, 사과를 하자 쉽게 마음을 풀었는지 금세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놀이공원에 대해 질문하기에 에반은 무심코 지난 시간대의 이야기를 꺼냈고, 무탈하게 대화를 이어 갔다.

스태프와 멤버들의 대화를 통해 이 시간대의 자신들도 놀이공원에 다녀왔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잠시 가졌던 의문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검지 손끝으로 제 허벅지를 톡톡 두드리던 에반은 관자놀이를 진득하게 눌렀다.

자두를 다시 건넸던 그날은 왜 그렇게 울었을까. 의문스러운 것이 하나둘씩 떠오르며 에반의 생각은 하나의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시우가 자신과 같은 회귀자라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에반은 긴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숙였다.

“저 뜨거운 물 말고 시원한 물이나 주세요.”

냉수 먹고 속이나 차리자.

스태프가 주는 생수병을 집어 든 에반은 피식 웃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시우 한정으로 제대로 된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하나같이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갑작스럽게 시우의 히트 사이클이 오지 않았다면 그가 히든 오메가인 것을 말하는 것도 이해시키는 것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물며 회귀라니! 이제는 세는 것도 포기할 만큼 같은 시간을 반복하고 있다는 말은 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 미친 회귀가 멈추지 않고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사실 역시 에반의 심장을 옥죄었다.

이제 겨우 자신을 믿고 마음의 문을 연 시우에게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회귀자임을, 그래서 몇 년 뒤 갑자기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말을 어떻게 꺼낼 수 있을까?

예찬이 장난스럽게 인생 몇 회 차냐고 물었을 때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멤버들과 스태프들의 웃음뿐이었던 것을 떠올리자 씁쓸함만이 입 안을 맴돌았다.

생각에 잠긴 채 생수병을 열던 에반은 그대로 물병을 던지고 ‘귀신의 집’을 향해 뛰었다.

혼란스러운 제 감정 사이로 파고든 이 낯선 감정은 단 하나로 이어졌다. 가까이 있지 않기에 페로몬으로 감정을 읽을 수 없다.

갑작스럽게 심장이 조이고 미친 듯이 폭주했다. 두려움, 공포, 어둠. 밑도 끝도 없는 깊은 수렁 같은 감정이 버거울 만큼 밀려들었다.

“김시우!”

밝은 곳에 있다가 갑작스럽게 어두운 곳으로 뛰어들었기에 앞이 보이지 않아서 에반은 큰 소리로 시우를 불렀다.

“코코.”

앞이 보이고 안 보이고 그딴 건 중요치 않았다. 성큼성큼 걷는 에반의 발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중반쯤 들어가서야 카메라 감독 두 분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작은 인영을 볼 수 있었다.

“시우야.”

시우의 앞에 몸을 낮춰 앉은 에반은 방금까지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던 것과 다르게 부드럽고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불렀다.

시우를 휘감은 그 어두운 감정이 계속 이어졌다.

몸을 웅크리고 얼굴을 무릎에 묻은 시우의 작은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저기 중간 문으로 나가는 게 좋겠지?”

카메라 감독 역시 상황이 좋지 않음을 아는 듯했다.

“언제부터 이랬어요?”

제가 불러도 시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페로몬을 푼 에반은 시우가 놀라지 않게 느릿하게 손을 시우의 등에 대었다.

“꽤 놀라긴 했지만 잘 왔는데, 방금 귀신이 튀어나와서.”

에반은 주위를 슬쩍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처녀 귀신이 튀어나왔던 장소였다.

“코코.”

다시금 시우를 부른 에반이 등을 쓸어내리고 작은 머리에 손을 대었다. 불안하게 일렁이며 넘어오던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한동안 감정 동화가 일어나지 않아 잊고 있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다지도 어두운 감정을 품고 있는 것일까.

이런 악독한 두려움을 느껴 보지 못한 에반은 쉽게 입을 뗄 수 없었다.

천천히 고개를 든 시우가 팔을 뻗으며 와락 안겨 드는 바람에 에반은 두 팔로 얼른 시우를 안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터져 나온 시우의 울음에 그 공간엔 멋쩍은 침묵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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