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 그들의 공개 연애 – 팬 미팅 편 (2)
무대 뒤에서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던 대환은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선 채 헛웃음을 치고 말았다.
누가 지금 누구한테 그래. 그나마 상준이 찬과 예찬 사이에 있기 망정이지 붙여 놓으면 이미 사고 친 애들보다 더한 놈들이 투찬이었다. 일단 사람들의 이목이 에반과 시우에게 쏠려 있으니 묻히는 것일 뿐 저것들도 조만간 사고 칠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찾아왔다.
“이쯤에서 메인 매니저 그만두고 사무직으로 돌려 달라고 할까.”
“에반이 잘도 그렇게 해 주겠다. 우리 아니면 누가 쟤들 커버해.”
제 어깨 손을 올리며 저와 똑같은 심정을 담은 현숙의 토로에 대환은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팬분들이 주시는 선물은 항상 고맙고 감사하다.
하지만 계속 제 앞에 쌓이는 선물을 본 시우는 이제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있었다. 옆에 쌓이기 무섭게 스태프들이 가져갔지만, 지금껏 제 손을 거친 것을 떠올리기만 해도 아찔했다.
게다가 지금 제 앞엔 하얗고 앙증맞은 아주 예쁜 아기 신발이 그만큼이나 깜찍한 상자에 담겨 있었다.
“…….”
쉽사리 팬분께 어떤 말도 못 건넨 시우는 말없이 그녀가 내미는 손을 맞잡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화이팅.”
주먹을 쥐고 힘내라는 응원까지 해 주시고 내려간 팬분의 뒷모습에 잠시 시선을 뒀다가 에반을 바라본 시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계속해서 그들의 머리 위엔 다양한 것들이 자리를 잡았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화관이기도 했고, 귀여운 모자이기도 했으며 머리핀 같은 것도 착용했었다. 그리고 지금 에반의 머리엔 흑표범 머리띠가 있었다.
동물 머리띠는 팬 미팅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에반이 쓰고 있는 머리띠는 국내 놀이공원에선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에반의 머리에 닿았던 시우의 시선이 그 앞에 있는 팬에게로 향했다.
제 앞으로 자리를 옮긴 팬이 건네는 고양이 머리띠를 본 시우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어? 코코 것도 있었어요? 그거 실은 코코가 호랑이인 줄 알고 썼었는데.”
머리띠를 받고도 쉽사리 끼지 못하고 손으로 만지고 있던 시우는 옆에서 들리는 에반의 목소리에 눈을 빠르게 깜박거렸다.
“고양이인 거 알았어?”
“넌 끝까지 호랑이인 줄 알았고.”
시우가 만지고 있던 머리띠는 에반의 손을 거쳐 시우의 머리에 자리 잡았다.
“여기 놀이공원도 가 보셨어요?”
앞에 앉은 팬의 말에 시우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느라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옅은 갈색의 머리카락에 새파란 눈동자를 가진 팬분의 질문에 에반은 얼른 영어로 재밌었다고 대답했다.
“언제 한번 다시 가서 이거 사고 싶었는데,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로 엇갈리기만 했던 시간. 처음으로 감정 동화가 있었던 곳.
‘Journey’ 촬영 때 그들이 방문한 놀이공원에 갔던 팬분이 그들이 생각나 샀다는 말에 또 감정이 요동쳤다.
‘Ocean Story’에서 썼던 머리띠를 살까 했지만, 개인적으로 듀엣곡에 나왔던 머리띠가 더 마음에 남아서 이렇게 샀다는 말에 시우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거기다 그들의 활동 모습과 팬 미팅에 참여하고 싶어 휴가를 한국으로 왔다는 말에 시우는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한국 어때요?”
애써 울음을 참고 말을 건네자 한국의 좋은 점을 늘어놓는 팬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얼른 펜을 들었다. 포스트잇에 어떤 질문을 하셨든지 잘 대답해 줘야지.
영어 잘하는 편인데, 분명 내가 아는 단어들의 나열인데.
질문을 읽은 시우의 고개가 갸웃 옆으로 기울었다.
[Q. 어떤 자세가 좋아요?]
무슨 자세? 포즈? 언제 어디서 어떨 때 하는?
촉촉이 젖어 들었던 눈가가 금세 건조해졌다. 외국분이셔서 이런 것에 대범하신 건가.
“저, 그 콘서트장에 있었어요. 라이브 ‘각인’도 들었는데.”
시우의 손이 허공에 멈춘 채,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사이 팬분이 은밀하게 속닥거렸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팬의 표정에 설마 아니겠지, 라는 생각이 확답으로 바뀌자 시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직?? 설마…….”
이분 보통분이 아니시다. 난감함에 빠진 시우가 어버버하는 사이 옆에 있던 에반이 또 다가왔다. 손짓으로 그녀에게 가까이 오라고 한 에반은 제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는 수고까지 하며 팬분의 귀에 무언가를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속삭임은 제일 가까이 있던 시우에게조차 닿지 않았다. 시우에게 더 질문을 하지 않고 무대를 내려가는 팬의 얼굴이 시우보다 더 붉어져 있었다.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적지 못한 포스트잇도 사라졌다.
“언제 어느 때든 위에서 자발적으로 하는 걸 좋아한다고. 그래도 끝은 내가 확실하게 한다고 했어. 메모에 적지 않고 말로 했으니 증거는 없잖아. 나 잘했지?”
이 팬 미팅 정말 괜찮을까? 시우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 버렸다.
팬 미팅이 후반부로 가면서 시우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아기 신발에 아기 모자에 배냇저고리까지 받고 나자 결혼 축하하고 영원히 행복하라는 팬들의 말에 당황하지 않고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계속 한자리에 앉아 있었더니 뻐근함이 몰려오자 시우는 의자에 기대면서 두 팔을 쭉 뻗으며 나른하게 기지개를 켰다. 그 순간 들려오는 환호성과 갑작스러운 에반의 손길에 몸을 길게 늘인 채로 시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이내 제가 입고 있는 크롭 티가 올라가며 갈비뼈 중반부까지 훤히 드러났고 그걸 급히 에반의 손이 가린 것을 알고는 그의 손을 치워 냈다.
슬쩍 가려 준 것이면 넘어가겠지만, 에반의 따스한 손바닥은 정확히 시우의 배에 닿아 있었다.
팬들과의 일대일 대면 및 사인회가 끝나고 이어진 무대에서 신곡을 선보인 오션 멤버들은 무대에 설치되고 있는 것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단순한 팬 미팅이 아니라 팬들과의 소통이라는 의미를 담았기에 몇 가지 간단한 게임도 이어졌다.
“제일 늦게 과자를 먹는 멤버는 저기 질문 상자에 있는 질문을 세 개 뽑으신 후 어떤 질문이든 무조건 대답해야 합니다. 노코멘트 안 됩니다. 아시겠죠? 자, 가위바위보.”
상준은 허공에 대롱대롱 달려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과자를 보며 마이크에 입을 대고 말했다.
그리고 역시나 가위바위보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멤버들의 손이 중간에 모였다.
“이건 아니지.”
찬은 남아 있는 과자들을 보고는 뒤에서 느긋하게 놀고 있는 세 명, 아니 세 놈을 대놓고 노려보았다.
예찬, 상준, 에반, 찬, 시우 순으로 과자 따 먹기를 하는 것엔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짠 것처럼 키 큰 세 명이 제일 아래 매달려 있던 과자를 먹어 버린 것이 문제였다. 시우와 찬을 위해 낮게 달아 놓은 것이 분명한데…….
예찬과 에반은 둘이서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웃으면서 손을 마주치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아……. 이거 이미 시간 오버됐죠? 우리 리더 찬이 형. 질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약 올리는 상준의 말에 찬은 무릎을 굽혔다가 위로 점프를 했지만 대롱거리던 과자는 찬의 입이 아닌 이마에 닿고 현란하게 흔들렸다.
몇 번을 폴짝거리며 뛰었지만 계속 이마, 코, 볼에 맞기만 할 뿐 과자를 먹지 못한 찬은 방법을 바꿨다.
손을 뻗어 흔들리던 과자를 멈추게 하고는 거리를 가늠한 후 천천히 발뒤꿈치를 들었다. 아, 이번엔 입술인데……. 입술엔 닿았는데.
팬들의 환호성과 함께 아슬아슬하게 입술에 닿았던 과자가 가까워지자 냉큼 과자를 베어 물었다.
“3분 19초. 이미 꼴등 예약됐고요.”
과자를 먹으며 뒤쪽으로 가는 찬은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예찬이 다가와 찬이 게임에 집중한 사이 손을 들어 줄을 살짝 내려 줬다는 사실을.
“마지막 우리 시우 씨. 게임에 임하는 마음 말해 주세요.”
“……너무합니다.”
상준의 말에 시우는 참담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과자에 시선을 뒀다. 과자에 이어 딴청 중인 에반과 예찬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던 시우는 과장되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점프에 자신이 있긴 하지만 몇 번 뛰어 본 시우는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면서 몸을 풀었다. 깡충거리며 뛸 때마다 팬들의 환호성이 귓가에서 울렸다.
“자, 도전!”
제자리에서 뛰는 것으로는 안 될 것 같아서 뒤로 물러선 시우는 가볍게 달려와 제가 골라 놓은 과자 앞에서 힘껏 위로 뛰었다.
“아……. 조금만 더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시우 씨, 포기하지 마세요.”
볼에 과자가 닿았던 시우는 목을 가볍게 움직이며 제가 달리기 시작했던 자리로 돌아갔다.
두 번, 세 번 시우는 팬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점프를 하는 것을 멈추고는 손을 들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예 안될 것 같으면 포기하겠는데, 이게 될 것처럼 되지 않으니 은근히 도전욕이 생겨났다.
“포기하나요?”
상준의 말에 시우는 눈에 힘을 주며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찬이 형도 살짝 트릭이 있었으니까.”
시우는 갑자기 다가오는 에반을 보고는 본능적으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그가 나섰을 때 뭐든 쉽게 흘러간 적이 없었다.
“왜! 왜!”
급하게 두 팔을 뻗어 에반이 다가오는 것을 막으려던 시우의 미약한 몸짓은 말 그대로 미약한 몸짓에 불과했다.
시우와 마주 보고 선 에반의 두 손이 시우의 허리를 잡고 위로 올림과 동시에 몸이 허공에 뜬 시우의 두 손이 에반의 어깨를 짚었다.
처음엔 시우의 허리를 잡아 들어 올렸지만, 두 팔을 위로 쭉 뻗어서 높게 들어 주는 것이 아닌 가볍게 위쪽으로 던지듯 하자 엄청난 소리가 주위를 감쌌다.
시우가 떨어지기 전 그의 허리가 아닌 엉덩이와 허벅지를 받치며 안은 에반의 허리에 두 다리를 감은 시우는 고개를 숙여 에반을 내려다보았다.
“야!”
“어느 거 먹을 거야? 저거?”
놀란 시우의 외침에도 에반은 태연하게 말하며 그나마 제일 낮은 곳에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구나.
“에반 씨, 이거 너무 대놓고 반칙 아닙니까?”
“반칙에 관한 규정은 없었잖아요.”
조금 전까지 미친 듯이 뛰어도 아슬아슬했던 과자가 코앞에 있자, 시우는 군말 없이 과자를 베어 물었다. 상준과 에반이 실랑이를 하든 어쩌든 그런 건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뭐……. 그렇긴 하죠. 자, 시우 씨도 과자를 드셨고요. 걸린 시간은…… 아, 이걸 어쩌죠? 3분 23초! 시우 씨, 질문 상자에서 질문을 뽑아 주세요.”
명쾌한 상준의 진행을 배경으로 시우의 몸이 에반의 몸을 타고 쭈르르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