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스타트(Restart)-168화 (168/187)

외전 2. 5

일단 에반과 시우가 어떤 말을 하든 준비한 질문을 해야 하는 피디는 앞에서 꽁냥거리는 그들을 다독이며 다음 질문을 던졌다.

Q. 아니. 왜 여기서 합의를 보고 계세요. 어쨌거나 활동 초기부터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계셨던 거군요. 그럼. 뭐 흔한 질문 같긴 하지만, 어떤 점이 마음에 드셨어요?

코 : 얼굴!

에 : ……어. 고…… 고마운데, 한 1초라도 생각하고 말해 주면 안 될까?

피디의 질문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튀어나온 시우의 대답에 촬영장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고, 그 침묵을 깬 것은 머쓱한 에반이었다.

코 : ……도 좋은데, 성격이죠! 성격!

에 : 늦었어, 코코. 전…… 코코의 이런 점이요. 늘 상상 이상이거든요. 어디서든. 예측 불가인 건 덤이고요.

아슬아슬한 수위로 위태로우면서도 이들의 이런 솔직한 모습에 피디의 입꼬리는 어느새 귀에 걸려 있었다. 되도록 편안한 본래의 모습을 많이 보여 주려고 노력하던 오션이었다. 하지만 방송은 방송이었기에 준비된 대본이나 상황에 맞게 행동할 수밖에 없긴 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 반전이잖아.

예쁘장한 외모에 살짝 올라간 눈매와 멤버들에게 그리 살갑지 않던 시우의 모습 때문에 차갑고 계산적이라는 부정적인 말이 늘 그의 뒤를 따랐다. 거기다 방송에서는 정말 딱 필요한 말만 하고 잘 나서지 않던 시우가 이리 허당일 줄이야.

급하게 에반의 팔뚝을 잡고는 자신을 봐 주지 않는 에반에게로 제 얼굴을 들이밀던 시우의 입에서 ‘그치? 자기야~’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모두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그 보기 힘들다는 시우의 애교가 생활 애교였을까? 아니면 애인 한정이든가.

“크흠. 흠…….”

‘삐졌어? 아니. 진짜 솔직히 너 잘생긴 건 사실이고…….’

‘됐어. 이 얼굴이라도 있었으니 다행이지.’

‘삐졌네.’

‘코코, 촬영하자.’

‘에바나.’

‘…….’

‘이따가 가슴 만질래?’

야외에서 진행하는 촬영이라 에반에게 속닥거리는 시우의 작은 목소리는 앞에 있는 촬영진에겐 전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듣게 된 오디오 감독은 헛기침하며 쓰고 있던 헤드셋을 벗었다.

Q. 조금 전 말씀하신 것을 보면, 두 분 굉장히 오랜 시간 연인으로 지낸 것 같은데 이렇게 오래 같이할 수 있는 두 분만의 방법이 있나요?

코 : 딱히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도 있고, 사귀기 전에 좀 힘들었어서 사귄 이후가 더 편했던 것 같아요. 에바니가 배려를 잘해 주기도 하고요.

에 : 아! 싸워도 잠은 같이 자는 거?

코 : 지금 그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

에 : 오래 같이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다른 건 몰라도 그건 꼭 지켰잖아.

코 : 지켰다기보다 내가 딴 방에서 자도 눈떠 보니 네가 내 옆에 있었던 거지.

에 : 응. 그래서 풀린 거 아녔어?

코 : ……그랬네;;;

한 명이 진지하게 대답해도 곧 둘만의 사랑이 가득한 투덕거림으로 넘어가는 인터뷰를 계속하던 피디는 둘의 분위기를 살폈다.

Q. 자, 다음 질문은……. 이건 굉장히 민감한 부분인데, 불편하시면 대답 안 하셔도 됩니다. 두 분 결혼 소식이 전해지면 아무래도 이 부분도 상당히 이슈가 될 것 같은데, 형질과 관련된 것입니다. 김시우 씨, 최근 군대도 재검에서 면제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진짜 오메가이신가요?

지금까진 가벼운 질문들이었지만 질문지에 있기도 했고, 에반과 시우 측에서 수정 요청을 하지 않을 질문을 꺼냈다.

에 : 노코…….

코 : 맞아요.

질문지에서 형질과 관련된 것을 보았을 땐 망설인 시우였다. 에반과 시우의 의견에 따라서 이 질문은 빼도 된다고 했지만, 일단 시우는 만들어 온 질문지대로 진행해 달라고 말했었다. 에반은 굳이 밝힐 필요가 없으니 질문 자체를 빼자고 했지만, 적당히 얼버무리면서 넘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었다. 거기다 군 면제까지 걸린 부분이라 그냥 넘길 수 없는 부분이었다.

에반이 질문을 넘기려는 순간 그의 팔뚝을 살짝 잡으며 대답했다.

코 : 언제까지 숨길 순 없잖아. 시간이 지나면 아시게 될 건데, 우리가 이런 인터뷰를 또 언제 하겠어. 오메가 맞긴 한데, 좀 특이한 케이스래요. 그래서 쉽게 말하기 어려웠던 부분도 있습니다. 군 면제도 형질 때문이고요.

에 : ……괜찮겠어?

코 : 안 괜찮을 게 뭐 있어. 사실을 말하는 것인데. 그게 제가 오메가는 오메가인데, 알파 페로몬을 못 느껴요. 거기다 발현도 늦게 했고, 제 페로몬도 다른 분들이 못 맡으신대요. 어…… 좀 그렇죠?

말을 하겠다고 결심을 했고, 막상 입을 열긴 했지만 두서없이 쏟아져 나가는 말에 시우는 머뭇거리다 결국 고개를 숙여 버렸다. 제 잘못이 아닌데, 잘못인 것 같다. 이러면 아마도 형질을 속이고 알파가 있는 오션 멤버로 활동하면서 에반을 꾀어냈다는 말이 따라 나올 것이 분명했다.

처음 인터뷰를 시작했을 때, 1집 휴식기부터 사귀었다는 말까지 했기에 시우의 머릿속으로 자극적인 기사 제목들이 번잡스럽게 스쳐 지나갔다.

에 : 코코. 그렇게 설명하면 더 이상하잖아. 간단히 설명할게요. 제가 골든 알파이고, 코코가 히든 오메가예요. 골든 알파도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히든 오메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을 겁니다. 그것 때문에 저희도 이 부분에 대한 의학적 도움도 받고, 고생도 했거든요. 오메가인데 속이고 오션으로 활동한 건 아닙니다. 그 부분 확실하게 밝힐게요. 그리고 이쯤 되면 찬이 형이나 예찬이 이야기도 나올 것 같은데, 두 사람도 전혀 몰랐습니다. 시우가 설명한 대로 그 둘은 시우 페로몬을 맡지 못하니까요. 저희 결혼 소식에 형질과 관련된 루머가 끼는 건 싫으니 이 정도만 설명할게요.

구구절절하게 변명할 일도 아니기에 에반은 짧게 말했다. 궁금한 사람들은 알아서 찾아보라지. 그러기엔 정보가 너무 없긴 할 것이다. 그리고 형질을 정확히 밝히지 않는다면 이 결혼이 알려진 이후 또 형질과 관련된 온갖 억측과 루머가 돌 것이 뻔했다. 결혼 후 아이라도 생긴다면 또 한 번 난리가 날 테니 한 번은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기도 했다.

Q. ……시우 씨가 오메가라고 하시면, 2세도??

에반과 시우의 대답에 지금껏 편하게 질문을 하던 피디가 한참을 머뭇거리다 제대로 된 문장도 아닌 단어를 꺼내자 에반과 시우는 동시에 웃었다. 아무래도 이 내용이 방송으로 나간 후 사람들의 반응을 미리 보는 것 같았다.

피디뿐 아니라 촬영 팀도 당황해하는 것이 고스란히 보인 탓이었다. 어린아이처럼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 시우는 쉽사리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놀람과 당황스러움이 뒤섞인 표정의 촬영 팀 얼굴을 보고 있자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탓이다.

그리고 늘 확고하던 피디의 말투까지 뭉개진 것이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이들도 이렇게 만드는데 이걸 언론으로 접할 다른 사람들을 떠올리니 이상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상한 감정에 숨은 어색함과 불안함을 큰 웃음으로 무마시키려 했다.

이런 제 감정을 느낀 것인지 에반이 어깨에 팔을 두르며 품으로 더 끌어당겨 이마에 입 맞추는 행동에 시우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려 버렸다.

에 : 아마도?

에반의 말에 다시 한번 침묵이 내려앉았다.

Q. ……그…… 그럼…… 아들?? 딸??

굉장히 편안하고 여유 있게 이어지던 인터뷰가 엉망진창으로 꼬인 듯 보였다. 대답하는 이들이 당황한 것이 아닌 질문자가 당황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했지만, 이제 피디는 질문지에도 없던 것을 물었다. 물었다기보다 혼잡스러운 자신의 머릿속에서 떠오른 단어를 꺼냈다고 봐도 무방했다.

에 : 전 상관없는데요. 코코만 있으면 되거든요.

코 :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죠.

에반의 품에 얼굴을 묻었던 시우는 괜히 헛기침하며 몸을 바로 하고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질문지에서 완전히 벗어난 인터뷰였기에 적당히 자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알아서 다 편집할 것이기에 이렇게 말한다면 아마 이 질문은 편집될 것이었다.

에 : 아……. 성별이나 형질을 떠나서 코코 닮았으면 좋겠어요.

코 : 뭐래! 거기다 왜 날 닮아. 너 닮아야지.

어물쩍 넘어가려던 시우는 에반이 기어이 대답하며 자신의 볼을 톡 치는 손길에 슬쩍 그에게서 반대쪽으로 몸을 옮겼다.

얼렁뚱땅 이상하게 무마되어 버린 프러포즈 이후 제가 한 말을 지키려는 듯 에반은 집에 있던 콘돔을 싹 버려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진심이냐는 시우의 말에 에반은 어깨를 으쓱했고, 시우도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결혼을 생각했던 것처럼 자신이 오메가인 것을 받아들이고 난 뒤, 에반을 꼭 닮은 아이를 생각해 보기도 했으니까.

에 : 응? 날 왜 닮아. 너 닮은 귀엽고 애교 많은 아이가 좋지.

코 : 너 닮아야. 예쁘지.

엄청난 발표를 해 놓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또 투덕거리는 둘을 촬영하던 카메라 감독은 옆에서 쑥덕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헤드셋을 제대로 쓰지도 않고 한쪽만 대충 걸치듯 쓴 음향 감독은 팔짱을 낀 채, 삐딱하게 서 있었다.

그 뒤로 한쪽에 모여 있던 작가 팀이 쑥덕거리고 있었다.

“히든 오메가……. 정보가 없는데?”

에반과 시우가 그 말을 한 이후, 작가 팀은 히든 오메가에 대한 정보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진짜 있긴 하대?”

“학술적으로 가능은 하다잖아.”

앞에선 시우와 에반이 둘만의 세상을 만든 채 알콩달콩 쏙닥거리고, 반대편에선 작가 팀이 심각한 표정으로 다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Q. ……그런데 히든 오메가가 뭔가요?

한참을 쑥덕거리던 작가 팀은 결국 피디에게 정보가 없다는 사실을 전했고, 피디는 희희낙락하며 놀고 있는 둘에게 역시나 질문지에 없던 질문을 해야만 했다.

에 : 우리 코코요.

코 : 야~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세 시간이 넘게 이어진 인터뷰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역시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마무리되었다.

“혹시 오늘 인터뷰 내용 중에 꼭 빼 줬으면 하는 내용 있어?”

촬영 팀을 위해 저녁을 준비했다며, 안으로 안내하는 시우를 흘깃 본 피디는 제 옆으로 다가온 에반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아뇨. 그냥 솔직하게 보기 좋게 편집해서 내보내 주세요. 시우가 히든 오메가인 것도요. 한번 시끄러운 것이 낫지. 쓸데없는 잡음 계속 듣고 싶지 않거든요. 그리고 방송일 우리 결혼 이후인 것 확실하죠?”

“내가 신도 아니고, 편집이 뭐 하루 이틀 만에 뚝딱 되는 줄 알아?”

피디의 말에 에반의 얼굴엔 알 수 없는 미소가 짙게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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