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스타트(Restart)-175화 (175/187)

외전 2. 14

에반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손부터 움직였다. 제게 안정감을 주는 시우의 페로몬과 온기를 찾기 위함이었다. 쉽게 떠지지 않는 눈과 달리 따스한 시우를 찾은 에반은 몸을 숙여 시우의 허벅지에 머리를 올렸다.

“너 일어날 시간 안 됐는데, 왜 일어났어?”

“응? 나 오늘 이거 한댔잖아.”

눈을 감은 채, 몸을 뒤척여 시우의 배에 얼굴을 묻은 에반은 여전히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시우가 제게 했던 많은 말 중 오늘과 관련된 것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아…….”

잠시 시간을 두고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았다는 듯 나직이 탄성을 뱉는 에반을 향해 작게 웃은 시우는 자신의 귀 위쪽을 한 번 더 만졌다.

“짜잔!”

“뭐야? 벌써 켰어?”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시우가 목소리를 내자, 에반은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어차피 할 건데 몇 분 차이가 뭐라고. 안녕하세요, 니모.”

“난 몰라.”

에반은 일어나는 것 대신 그냥 누워 있는 것을 선택했다. 시우가 켜 놓은 스탠드가 둘의 침실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여기 침실이에요. 그리고 제 휴대전화 아래 있는 건 에바니. 에바나, 인사해.”

“아직 일어날 시간 아닌데…….”

이른 아침인지라 둘 다 잠긴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상의를 입고 있지 않은 에반의 모습이 고스란히 라이브 방송으로 나가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른한 시간, 갑자기 울린 라이브에 접속한 니모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영국과 한국의 시차는 이미 알고 있고, 지금 시간을 보았을 때 영국은 오전 6시가 넘어가는 시각이었다.

에반과 시우의 얼굴이 아니라, 갑자기 상의를 탈의한 채 부스스한 모습으로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있는 에반을 마주한 이들은 저도 모르게 다들 제 뒤를 확인했다.

“놀라셨죠? 조금 일찍 찾아오려고 했는데, 많이 기다렸죠? 그래서 브이로그가 아닌 라이브로 찾아왔고. 화면이 이상한 게 아니라 오늘은 조금 특이하게 방송을 해 보고 싶었거든요.”

시우는 한 손으로는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을 확인하며 다른 손으로 에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 시우가 생각한 것은 카메라를 앞에 두고 라이브를 하는 것이 아닌 제 눈높이에서 제가 보는 모습들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형 카메라를 제 귀 옆쪽에 장착했다. 본의 아니게 자신의 얼굴은 나가지 않고, 제가 보는 것들만 방송에 나가게 됐으니 지금 보이는 건 시우의 시선으로 본 에반의 모습이었다.

“일어날 시간인데, 에바니가 좀 더 자고 싶다고 하니까. 저 먼저 일어날게요.”

한 손에 든 휴대전화 화면을 통해 방송에 나가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제 허리를 감싸 안고 제 다리를 베고 있는 에반에게 어서 일어나라는 뜻을 담아 손끝으로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니모, 다들 잘 지내셨죠? 이런 모습으로 인사할 줄은 진짜 몰랐네.”

그런 시우의 뜻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고, 여태껏 눈을 감고 있던 에반은 시우를 놓지 않은 채 눈만 떠 시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우 옆에 있는 카메라를 보고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자. 에반이 넌 어서 일어나서 출근 준비부터 해. 난 우리 니모님들께 집 구경을 시켜 줄게.”

저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에반을 떼어 놓고 침실을 나간 시우는 제일 먼저 부엌으로 들어가 냉장고에서 사과주스를 꺼냈다.

“사과주스 좀 마시면서 다닐게요. 뭐가 제일 궁금하실지 생각해 봤는데, 저희 집일 것 같더라고요. ‘Eco Story’에서 인테리어가 끝난 집을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공사가 길어져서 그러지 못했잖아요.”

손에 들고 있는 휴대전화로 라이브가 잘되고 있는지 간간이 확인하면서 시우는 부엌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와, 진짜 대단하시네요. 맞아요. 집 안 가구들이 전체적으로 조금씩 높고 공간도 넓은 편이에요. 주택이니 구조 변경이나 이런 것이 편한 것도 있었고, 에바니 체격이나 키 생각하면 다 높이고 키워야 하더라고요.”

부엌을 천천히 나와 거실로 향하며 사과주스를 마시던 시우는 멀리서 다다다다닥 발톱이 바닥에 튕기는 소리를 내며 뛰어오는 러쉬를 쳐다보았다.

“러쉬, 앉아.”

간단한 말에 미끄러지듯 제 앞에 앉는 러쉬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시우가 걷자 러쉬는 그의 보폭에 맞춰 걸었다.

“록쉬는 여기 없어요. 러쉬는 어디든 잘 적응하는데, 록시는 조금 힘들어하거든요. 솔직히 러쉬 하나만으로도 버겁긴 합니다.”

시우는 제 발걸음에 맞춰 걷는 러쉬에게 간식을 하나 꺼내 주고는 거실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저기, 정원 큰 나무 아래 있는 저 의자가 저희가 인터뷰한 그 의자예요. 러쉬, 나가고 싶어?”

고새 간식을 다 먹었는지 뛰어와 꼬리를 마구 흔들어 대는 러쉬를 위해 시우는 거실 한쪽에 있는 정원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문을 열어 줘도 나가지 않는 러쉬를 위해 옆에 있는 공을 집어 멀리 던진 시우는 냉큼 문을 닫아 버렸다.

“넌 밖에서 좀 놀아! 요즘 뭐 하고 지냈냐고요? 아시겠지만 에바니는 회사 다니고, 전 그냥 이것저것 했어요. 저 브이로그 올린 거 보고 다들 영상이 그게 뭐냐고 막 그러셔서 영상 편집 하는 것도 배우고요.”

“코코.”

거실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에서 눈에 들어오는 질문에 답하던 시우는 에반의 목소리에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응? 너도 사과주스?”

샤워 가운을 입고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으면서 나오는 에반을 보고는 시우는 제가 들고 있는 사과주스를 들어 보였다. 그와 동시에 미간을 슬쩍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젓고는 외출복들이 있는 드레스 룸으로 향하는 에반을 보며 시우는 작게 소리 내서 웃었다.

“오늘은 에반이 컨디션이 별로 안 좋나 봐요. 요즘 일도 많고……. 음, 거기 오른쪽 넥타이.”

사과주스가 조금 남은 잔을 옆에 있는 테이블에 내려놓은 시우는 에반이 들어간 드레스 룸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새 정장 바지를 입고 흰 셔츠를 대충 걸치고는 넥타이를 고르고 있는 에반에게 제 의견을 말한 시우는 그의 앞으로 가 섰다.

“오른쪽?”

“응. 나 보지 말고 카메라 보고 우리 니모님들께 말 좀 해 줘. 너 보고 싶어 하시는 분들도 많으셔.”

시우는 고개를 살짝 들어 자신을 내려다보는 에반과 시선을 맞춘 채, 그의 셔츠 아랫부분을 잡아 아래부터 단추를 채우기 시작했다.

“나? 저보다 코코가 더 많이 보고 싶으셨죠? 제 사진은 파파라치 컷으로 많이 보셨을 거 같은데. 그동안 코코가 두문불출했잖아요.”

에반은 손으로 시우의 머리를 쓸어넘겨 주고는 제 단추를 채우느라 시우가 옆에 내려놓은 휴대전화 화면을 보았다.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에서 유독 많이 보이는 단어에 헛웃음이 났다.

“코코.”

“응?”

어느새 단추를 다 채운 시우가 목에 느슨하게 걸어 놓고 있던 넥타이를 잡는 걸 본 에반은 동그랗게 드러나 있는 시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우리 2세가 궁금하시대.”

“쿨럭-.”

장난기 가득한 에반의 말에 시우는 입 안에 고인 침을 잘못 삼켜 기침을 했고, 에반은 얼른 시우를 제 품으로 당겨 안고 등을 쓸어 주었다.

시우의 콜록거리는 소리와 에반의 웃는 소리가 섞여 들었다.

티격태격 농담 따먹기 같은 대화를 하고 가끔 채팅창을 보며 에반의 출근 준비를 도운 시우는 그를 배웅하려 현관으로 향했다. 혼자서 신나게 정원을 뛰어놀던 러쉬가 현관에서 에반의 비서와 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음. 요즘 저희 아침은 이래요. 일어나서 에바니는 출근 준비를 하고 전 이러고…….”

슬슬 라이브를 마무리 지으려 하자 채팅창으로 가지 말라는 말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 그건 좀 간단하게?”

일어나서 지금까지 시우는 사과주스와 비스킷 조금, 에반은 비스킷과 물 같은 것만 조금 먹는 것을 본 니모들의 말에 시우는 대충 얼버무렸다.

“먹고 싶은 거 있어?”

에반이 구두를 신는 걸 지켜본 시우는 제 팔에 걸치고 있던 정장 재킷을 에반에게 건네며 그에게 물었다.

“……없어.”

“에……. 그런 게 어딨어? 너 좋아하는 삼겹살에 김치찌개?”

머뭇거리던 에반의 대답에 시우는 눈을 반짝이며 제가 먹고 싶은 메뉴를 꺼냈다. 그와 동시에 또 에반의 미간이 찌푸려지자 시우는 큰 소리로 웃으며 손을 뻗어 그의 미간을 만졌다.

“알겠어. 나중에라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연락해.”

가벼운 입맞춤을 해 주고 떠나가는 에반에게 손을 흔들며 배웅한 시우는 러쉬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며 지금껏 자신의 귀에 걸고 있던 카메라를 빼 들었다.

“다음엔 브이로그로 찾아올게요.”

카메라를 제게 향하게 해 그제야 얼굴을 보인 시우는 짧은 인사를 마지막으로 거의 한 시간 30분간 이어 온 라이브를 껐다.

지금껏 에반과 라이브를 하면서 제법 많은 실수를 했지만, 오늘은 어떤 실수도 없었다. 라이브를 하기 전 에반과 이야기한 부분이고, 오늘은 말실수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즐거운 기분에 콧노래를 부르며 냉장고를 열어 샐러드 재료를 꺼내던 시우의 손이 순간 멈췄다. 그리고 재빨리 냉장고 문을 닫고는 냉장고를 바라보았다.

“그냥 포기하고 살자.”

작게 한숨을 쉰 시우는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으로 다시금 냉장고를 열어 샐러드 재료를 꺼냈다.

시우가 라이브를 시작한 순간부터 들끓던 팬 사이트는 한 명의 글로 난리가 난 상태였다.

[에코] 커플 잠옷의 활용 끝판왕…….

[잠옷 사진]

지금 에바니와 코코가 입은 잠옷. 이쁘더라. 그런데…….

[상준 SNS 사진]

그 잠옷. 상준이가 사 준 거네?

상준 씨 커플로 두 벌 사 줬는데…….

너넨 왜 한 벌을 나눠 입니?

[에반 침대]

상의 탈의하고 주무시는 올바른 에반 님은 지금 이 잠옷 바지를 입고 계시지.

[코코…… 냉장고]

우리 코코는 오늘도 몰랐다. 너희 집 냉장고에 네가 비친다는 사실을…….

그래서 우리 코코는 제 사이즈보다 큰 잠옷 상의를 입고 계시네.

움직일 때 보면 그 아래로 짧은 반바지 같은 거 보이긴 하는데…….

너넨 한 벌을 참으로 신박하게 나눠 입는구나.

이 커퀴들. 잘 먹고 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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