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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2화 (2/176)

<2화>

* * *

다음날 요한은 곧바로 제1금융권에서 대출을 한도까지 받았다. 제2금융권, 제3금융권에 사채까지 총동원해서 현금을 끌어모았다. 어차피 6개월 후면 멸망할 세상이다. 사채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도 없었다.

혹시나 좀비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은 접어두었다. 준비 못 하고 닥치는 좀비 세상이 제겐 훨씬 두려운 전제였으니까.

하지만 그날은 반드시 온다. 지옥 속에서 삼 년을 살아남게 했던 그의 감이 위험을 외치고 있었다.

부동산에 얘기해 전셋집도 내놓았다. 구하기 힘들었던 전세 물건인 만큼 빠지기도 금방 빠지겠지.

대출이 확인되고선 사직서를 냈다. 스무 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취직해서 총 9년을 일했기에 퇴직금도 넉넉하게 나왔다.

요한은 통장에 찍힌 잔액을 보며 상념에 사로잡혔다. 원래는 평생을 가도 모을까 말까 한 수준의 금액. 영혼까지 박박 긁어모은 돈이었다.

요한은 곧바로 ‘그날’을 준비했다. 노트에 재난 대비 용품을 적어 내려갔다.

1. 은신처

2. 식량

3. 무기

4. 생존도구

5. 이동수단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은신처. 흔히 쉘터라고 불렀던 주거지가 필요했다.

근처에 편의점과 대형마트가 있어야 하고, 최대한 식료품을 저장할 만한 공간이 커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대시설. 물탱크와 태양광 발전판이 설치되어 있거나 설치할 수 있어야 한다.

요한은 집을 보러 다녔다. 생각보다 모든 조건을 맞출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 거의 한 달을 잡아먹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딱 마음에 드는 은신처를 찾아냈다.

부천시 까치울 전원단지.

단독주택 하나를 통째로 계약했다.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100만 원이라는 거액이었지만, 어차피 6개월 후면 받아갈 사람이 없는 계약일 뿐이었다.

옥상에 있는 태양열판과 건물 비상용 물탱크까지, 딱 그가 원하던 장소였다. 단지 중앙에 큰 규모의 편의점이 있었고 시청 쪽으로 조금만 나가면 마트부터 H백화점까지 각종 대형마트가 줄줄이 있었다.

요한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며 물었다.

“그리고 옥상에 태양열 발전판이 있던데, 혹시 제가 추가로 설치해도 될까요?”

온수를 데우기 위해 설치된 작은 태양열 발전판이 있었으나, 요한이 원하는 것은 독립형 태양광 발전 시설이었다. 태양열이 아닌 태양광.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해 공급할 수 있는 시설.

요한은 가정용 집광판 모듈 12장과 인버터를 세트로 구매했다. 이것저것 허가받을 게 많아 설치까지 한 달이 넘게 걸린다고 해도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쉘터와 시설만 준비하는데도 거의 5천만 원에 가까운 돈이 소모됐다.

남은 돈으로는 식량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쌀, 라면, 물, 그리고 각종 통조림. 그리고 각종 야채의 종자들. 감자와 토마토, 상추, 고구마 등 키우기 쉽고 재배가 빠른 채소들의 씨앗을 대량으로 구매했다.

식량이 떨어져 직접 재배하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1년만 지나도 거리에서 식량 구경하기가 힘들어지니까.

불법적인 루트를 이용해 대형 나이프 세트도 넉넉하게 주문했고, 쇠뇌(:석궁)와 활의 구매처도 알아봤다.

물론 총이 가장 훌륭한 무기지만, 총포상에서 구할 수 있는 엽총은 소음이나 불편한 장전방식 등등, 아포칼립스 초기에는 효용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총기는 난리가 터진 이후에라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전까지 버티기 위한 무기.

그가 경험해 본 대좀비 최고의 무기는 60cm짜리 헌팅 나이프와 쿠크리, 그리고 쇠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공격할 수 있고, 휴대하기도, 휘두르기도 편했다.

생존 도구로 필요한 것들, 지도. 방탄조끼. 워커와 가죽 장갑 등등 놓치는 게 없는지 꼼꼼하게 챙겼다.

마지막으로 이동수단. 바이크와 휘발유까지 구비하자 일차적인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남은 돈으로는 2차 쉘터를 준비해야 했다.

1차 쉘터가 타인에게 점령되거나, 좀비들로 인해 잃어버릴 것도 가정해야 했으니까.

회귀 전 공고하게 다졌던 쉘터를 잃어버렸던 것만 열 번이 넘었다.

2차 쉘터의 기준은 야생에서 식수와 식량을 구할 수 있는 외진 곳. 오랜 시간이 흘러도 타인에게 발견되지 않거나, 발견되더라도 저장해 놓은 물품들을 찾을 수 없는 그런 곳이어야 했다.

요한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섬 목록을 하나씩 확인해나갔다.

* * *

그날을 대비한 지 3개월이 흘렀다.

3개월 동안 신체 단련에 주력한 덕에 오히려 회귀 전보다 더 탄탄해진 느낌이 들었다.

요한은 식량 저장소에 가득 찬 식량들을 뿌듯한 눈으로 바라봤다. 특히 온갖 종류의 통조림들이 빼곡하게 찬 것만 봐도 배부르다.

혼자서 버틴다면 못해도 4~5년을 버틸 만한 양이었다.

물론 4~5년을 혼자서 살아갈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혼자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저 방구석 폐인처럼 혼자 몇 년을 살아남기 위해서 그날을 준비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요한은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믿고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강하고 유능한 동료와 안전한 쉘터. 즉, 집단적 생존.

혈혈단신으로 버텼던 지난 생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혼자서는 점점 흉폭해져 약탈자로 변하는 사람들로부터 몸을 지키는 것조차 힘들어질 때가 온다.

요한은 여의도 근처 샾을 방문했다. 주문했던 쇠뇌를 받기 위해서였다.

쉘터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이동하는 것은 달갑지 않았지만, 다른 수가 없었다.

합, 불법적인 루트를 총동원해서 구한 중요한 기회였다. 쇠뇌만 구비되면 준비는 완벽해진다. 좀비들이 나타나기 전에 남은 3개월 동안 쇠뇌를 쏘는 연습만 하면 된다.

쇠뇌는 가벼웠다. 회귀 전 첫 번째 아포칼립스에서 사용해본 경험이 있기에, 남은 3개월 동안 연습하면 충분히 제 위력을 발휘할 터다.

* * *

목적을 달성한 요한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회사 생활 시절 자주 들르던 포장마차를 들어갔다. 직장 동료들과 종종 들르던 곳. 고된 회사 생활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던 안식처와 같은 곳이었다.

말이 포장마차였지, 일반적인 식사 겸용 술집이었다. 입구에 비닐 천막을 만들어 포장마차처럼 보이게 한 인테리어와 주점 이름이 ‘낭만포차’라는 점 때문에 포장마차 취급을 받긴 했지만.

오랜만에 맛보는 우동 맛이 일품이었다. 국물이 잘 스며든 오동통한 면발을 후르륵 집어삼켰다. 그때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퇴근한 직장인들이 포차 안으로 들어왔다.

‘벌써 퇴근 시간인가.’

몇 팀의 손님들이 더 들어오고 한 무리의 직장인들이 시끌벅적한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어? 요한쓰!”

익숙한 목소리에 요한이 등 뒤를 돌아봤다.

직장 동료들이었다. 경성실업 시설경호팀.

직속 상관부터 동기, 부하직원까지 우르르 몰려와 있었다. 아마도 회식인 듯했다.

가벼웠던 마음이 살짝 무거워졌다. 몇 년 만에 재회했지만, 의문의 사직서 한 장만 던지고 나와버렸기에, 동료들의 서운함도 많이 받았으니까.

문성철 대리가 다가오더니 요한의 등을 짝, 쳤다. 반갑다는 듯한 얼굴이었으나 요한은 그 만큼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문성철.

회귀 전, 회사가 좀비 떼로 변해가고 있을 시점 문 대리는 여러 동료를 희생양 삼아 제 목숨을 부지했던 인물이었다.

심지어 생존자 캠프에서 재회했을 때, 그는 문 대리를 한번 용서했었지만, 그는 또다시 제 한 몸을 챙기자고 캠프 정보를 적대 세력에서 유출했고, 그 결과 캠프 사람들의 전멸로 이어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되는 인물, 받아주어서는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에라도 죽여서 후환을 없애고 싶을 정도로.

“이 새끼야, 너 그렇게 나가고 나서 남은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죄송하게 됐습니다.”

요한이 묵례했다.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해도 미안한 건 진심이었다.

“평소에 그렇게 성실하던 놈이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어라, 너 운동해?”

어깨를 건드리던 손이 팔뚝을 만지작거렸다.

“선배. 제 몸 건드리지 마세요. 그러다 죽어요.”

“뭐, 뭐?”

“농담입니다.”

요한이 웃으며 그의 손을 붙잡아 내렸다.

“아, 건드리지 말라는 건 농담 아니에요.”

요한의 손아귀 힘에 흠칫한 문 대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회수했다.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팀장이었던 고준혁 과장이 끼어들었다.

“뭐야? 이 분위기. 아무튼, 이것도 인연인데 같이 한잔해. 너 나갈 때 송별회도 제대로 못 해서 아쉬웠는데 잘됐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준혁 과장이 요한이 앉은 자리의 테이블들을 끌어오며 제 앞자리에 앉았다.

남의 시선이나 기분 따위 전혀 배려하지 않는 피곤한 종류의 사람이었다.

요한은 술을 싫어하지 않았다. 좀비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다만 한시가 아까운 이런 상황에서 취해 있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간단하게 식사만 하고 가겠습니다. 볼일이 있어서요.”

“거참. 안 그러던 친구가 몇 달 사이에 왜 이렇게 까칠해졌어? 요즘 뭐 하고 지내, 이 짐들은 뭐고.”

문 대리가 요한의 짐들을 보며 물었다.

요한은 너 때문이다. 이 쓰레기야, 라는 말을 억지로 삼키며 쓰게 웃었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이 자식의 생존본능 하나는 대단하다. 언젠가 또 마주치게 될 거다. 사태 이후 만나게 되면 넌 반드시 내 손으로 직접 죽여 주마. 요한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칠 무렵, 입구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요한이 뒤돌아 입구를 바라봤다.

그리고 포차 입구로 들어오는 괴상한 상태의 한 사내를 본 그 순간, 발끝에서부터 긴장감이 머리끝까지 팽팽하게 올라왔다.

백색 동공, 창백한 피부, 그리고 질질 끄는 듯한 걸음걸이.

‘이런 미친.’

분명히 좀비였다.

몇 개월 동안 잠들어있던 생존본능이 점차 되살아났다. 숱한 죽음의 위기를 겪어 가며 쌓았던 오롯한 생존을 위한 감각들.

요한이 허리춤의 헌팅 대검을 손에 그러쥐었다. 평화중에도 언제나 한 자루씩은 차고 다녔다. 당연했다. 3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좀비는 목이 갈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먹잇감들을 향해 걸어왔다. 주변 사람들은 웬 미친놈을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단 한 사람, 요한만 빼고.

요한은 재빨리 일어났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어? 벌써 가려고? 아직 밥도 다 안 먹······.”

고 과장이 채 말리기도 전에 요한이 자릴 박차고 일어섰다. 데스크에 만 원짜리 두 장을 올려놓고는 천천히 좀비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문을 붙잡았다.

문을 연 순간 한 마리의 좀비가 코앞에 있었다.

끄아아-

목젖이 갈리는 불쾌한 소리가 선명했다. 요한은 지체 없이 허리춤에서 나이프를 꺼내 주저 없이 놈의 심장에 쑤셔 넣었다. 그 후 발로 차 바닥으로 굴렸다. 놈이 버둥거리면서 경사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꺄아악!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가 좀비를 향해 칼을 찌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먼저 들어온 좀비가 한 손님의 볼을 물어뜯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요한은 신경 쓰지 않고 비명을 뒤로하고 포차를 나왔다.

여의도는 아비규환이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몰라도 벌써 감염자들이 반수가 넘어 보였고, 여기저기에서 피가 낭자하고 비명이 들렸다.

‘어째서 지금?’

설마 예정보다 빨리 그날이 올 줄은 몰랐다. 당연히 6개월 후에 나타날 것이라고 단정한 것이 실수였다. 어떠한 상황도 섣불리 예상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지만 쉘터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온 것은 확실히 부주의했다.

하지만 요한은 침착했다.

대부분의 준비는 끝나 있었고, 비상식량이나 지도, 나이프 등 생존에 필요한 물품은 항상 가지고 다녔다.

아직 교통이 마비되거나 군사작전이 들어오기엔 이른 시기. 침착하게 쉘터까지 이동해서 계획했던 대로 가장 혼란스러운 초기를 넘기면 된다.

‘그나저나··· 빠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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