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요한은 편의점에서 털어 온 에너지바와 음료수를 마시며 덤덤하게 말했다.
다시 걸음을 재촉한 두 사람은 얼마 가지 않아 예상했던 좀비 떼를 마주했다.
하필 빠져나갈 예정이었던 부천IC 직전, 다수의 좀비가 다수의 사람을 뜯어먹고 있는 현장이 나왔다. 요한의 눈이 빠르게 현장을 훑었다. 광역버스 한 대가 가장 선두에 서 있었고, 그 주변에 각기 다른 방향으로 충돌한 차들이 여기저기에 있었다.
시발점은 광역버스였을 것이다.
광역버스 안의 누군가가 감염된 채였고, 이내 광역버스의 모든 승객이 감염된 것. 그리고 광역버스에서 기어 나온 좀비들로 인해 차들이 연쇄적으로 충돌한 것일 터다.
그것을 방증하듯 고속버스 전면에는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고 뻥 뚫려있었다.
이어서 막혀 있는 상황을 보기 위해 나온 사람이 감염되고, 그 뒤로 차가 막히고, 막힌 상황을 보기 위해 또다시 감염되는 상황이 반복된 듯싶었다.
요한은 가죽 장갑의 단추를 끝까지 잠그고, 재킷을 내리는 등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전투 전에 몸에 빈틈이 있는지 점검하고 이어 60cm 나이프 손잡이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손을 풀었다. 전투의 시작을 준비하는 몸풀기,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대략 많이 잡아도 400마리 이하. 실제로 길을 뚫는 데 필요한 처치 수는 20마리 이하였다. 동시에 나타난다면 충분히 위협적인 숫자였지만 좀비들은 넓게 퍼져있었고, 여러 곳에서 어그로가 끌리는 만큼 충분히 타개 가능한 상황이었다.
‘여유 있군.’
최대한 갓길에 붙어서 이동하던 요한이 퉤, 바닥에 침을 한번 뱉고는 몇 발자국 앞에 있는 좀비를 향해 스텝을 밟았다.
퍽! 좀비의 동공에 대검을 꽂아 넣은 요한이 재빠르게 백스탭으로 떨어졌다. 이를 딱딱거리던 좀비가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다 픽, 쓰러진다.
끅, 끄아악!
옆에서 목 갈리는 소리가 들리자 요한이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곧바로 발등으로 하단을 휘둘렀다. 좀비의 다리가 걸린 느낌이 든다.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좀비의 관자놀이에 그대로 나이프를 꽂아 넣었다가 번개같이 뽑아 들었다.
파악, 하고 검붉은 피가 허공으로 흩뿌려졌다.
왼발을 앞으로, 오른발을 뒤로.
마치 복싱 선수의 스탭처럼 가벼운 움직임이다. 다가온 좀비의 흉부를 밀면서 오른손으로 벌처럼 빠르게 약점을 찌른다.
한 치의 낭비도 없는 깔끔한 연속 동작이었다.
정미는 그를 따라가기도 벅찼다.
그저 그의 등을 따라서 쫓아가기만 할 뿐인데도 호흡이 벅차 숨을 헐떡거렸다.
그는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부드러운 동작으로 앞길을 막거나 전진하는 좀비들을 거의 박살 내고 있었다. 한 놈을 상대하는 데 두 번 공격하는 법이 없었다. 단 일격에 한 놈. 보고 있으면 입이 그저 쩍 벌어졌다.
마치 무슨 좀비를 잡으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움직였다.
“아아악!”
그의 등만을 바라보고 걷던 정미의 발이 덥석 붙잡혔다.
좀비 한 구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정미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좀비가 몇 걸음 더 기어와 그녀의 허벅지를 깨물었다.
“아악! 요한 씨!”
그녀가 다급하게 요한을 불렀다. 앞서가던 요한이 뒤돌아보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도와주세요.
짧은 시간에 그녀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한은 변화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눈앞의 좀비를 박살 내며 전진했다. 그 뒷모습이 서늘했다.
‘못 따라오셔도 그냥 갑니다. 위험해지셔도 도와드리지 않아요.’
공포심을 가르고 그의 말이 기억 속에 올올히 떠올랐다.
‘버리고 가겠다는 말은 진심이었어.’
겁주려고 했던 말이 아니었다. 정미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서러움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허벅지에 붙은 좀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린 부위가 점점 아파져 온다.
“이거 놔, 미친놈아!”
정미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손에 들고 있던 나이프를 좀비의 머리에 휘둘렀다.
“아악!”
혼신의 힘을 다해 휘둘렀으나 마치 칼로 돌을 때린 것처럼 손이 얼얼했다.
끄어어-!
질긴 하의가 거슬렸는지 좀비가 몸을 타고 올라왔다. 가려지지 않은 부분을 뜯어먹으려는 듯.
정미가 다시 한번 비명을 지르며 손을 휘둘렀다.
푹, 무심코 휘두른 나이프가 좀비의 왼쪽 머리에 박혔다. 좀비가 머리에 칼이 박힌 채 이빨을 딱딱거렸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촉감과 더불어 무언가 끈적거리고 뜨거운 액체가 그녀의 얼굴로 쏟아진다.
부들거리던 좀비의 움직임이 멎자 정미가 그것을 치워버리고 갓길 방향으로 엉금엉금 기었다.
우웨엑-
저녁에 먹은 것들을 남김없이 비워낸 정미가 눈가와 입가를 슥슥 닦고선 눈으로 요한을 찾았다. 그와의 거리는 벌써 한참이나 벌어져 있었다.
쫓아야 해.
더 이상 벌어지면 이곳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다.
정미는 벗겨졌던 한 짝의 슬리퍼를 주워든 채 요한에게 뛰어갔다.
그는 그녀가 도착하자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건네주었다. 정미가 약간은 퉁명스러운 몸짓으로 그 티슈를 받아들었다.
“물렸습니까?”
“모, 모르겠어요.”
“아픈 곳은 있습니까?”
“허벅지가······.”
요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허벅지 부분에 핏물이 배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처가 생겼는지는 반드시 확인해 봐야 했다.
“벗어 보세요.”
“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부끄러워할 때가 아닙니다. 감염 여부를 확인하지 않으면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도 위험해져요.”
당장 벗지 않으면 그가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생겨났다. 그의 눈빛에 미세한 적의가 담겨있었다.
정미가 입술을 깨물며 청바지를 내렸다. 요한이 허벅지 주변을 꼼꼼하게 살폈다. 잇자국은 있으나 피를 흘리진 않았다. 두꺼운 청바지 재질 때문인 듯싶었다.
정미가 여전히 수치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바지를 다시 올렸다.
“원망스럽습니까?”
“······.”
이번엔 대답하지 않았다.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그는 충분히 자신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분명히 모른척했다.
하지만 돕거나 구하지 않겠다고 미리 말해두었던 것도 사실이다. 정미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잘했습니다.”
그의 말에 그녀는 왠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오줌을 지리지 않은 것만 해도 훌륭하죠. 이 짓도 처음이 어렵지 갈수록 괜찮아지거든요.”
요한이 픽 웃었다. 그녀는 어쩌면 생존을 위한 첫걸음을 성공적으로 내디딘 셈이었다.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뒤로하고 요한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좀비들을 한번 뚫고 나오자 여정은 한결 여유로워졌다.
이쪽으로는 감염이 확산되지 않은 듯했다.
‘여기서 헤어져야겠군.’
떨쳐내야 한다. 어느 정도 감염이 확산되어 살아남은 자와 살아남지 못한 자가 구분되면 안정기가 온다. 안정기가 되면 그때부터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동료를 만들 테지만, 지금은 시기가 일렀다.
요한에게 지금의 정미는 ‘짐’이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미는 그에게 좀비와 이 사태에 대해서 이것저것 캐물었다. 물론 대부분 자기도 모른다는 말을 돌려받았을 뿐이었다.
“정미 씨. 여기서 헤어지죠.”
“네?”
“말씀드렸잖습니까. 같이 행동할 순 없다고. 다행히 여기서부터는 감염이 확산되지 않은 것 같으니 혼자 가셔도 괜찮을 겁니다. 그래도 조심하시고.”
“아니 어떻게······.”
그렇게 매정할 수 있느냐는 물음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인천 어디까지 가시죠?”
“구월동으로 가야 해요.”
먼 길이군. 요한은 혼자 중얼거렸다.
“인천에 아는 사람은 있습니까?”
“가족들이 있어요. 엄마, 아빠, 여동생이요.”
“지킬 사람이 있군요.”
“요한 씨는······.”
“이미 아시다시피.”
요한의 가정사는 팀원들은 모두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재직 중에 술자리에서 하소연처럼 문 대리에게 털어놨었고, 문 대리는 그를 술자리 안줏거리 삼아 떠들어댔으니까.
물론 그 사실을 요한이 알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회귀 전 직장생활을 참 병신같이도 했었지.’
물론 대부분이 문성철 대리 때문에 생긴 일들이었지만.
요한의 부모는 그가 어릴 적 이혼했다. 양친을 제외한 일가친척도 없었던 요한은 교회 목사님의 도움으로 홀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양친은 각자 재혼해서 그를 찾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물론, 요한도 그들을 찾지 않았다.
원망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요한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요소 중 하나였다.
지킬 것이 없다.
지켜야 할 것이 있으면 생존확률은 그 지켜야 할 것의 무게만큼 내려가기 마련이니까.
“그럼 여기서 헤어지겠습니다. 저는 따로 갈 곳이 있어서요. 무사하시길 빌어요.”
“저, 요한 씨.”
“네?”
“혹시 가시는 곳의 주소를 알려주실 수 없을까요? 가족을 찾게 되면 저희를 받아주실 수······.”
“네. 없어요.”
“······.”
너무나 단호한 대답에 정미가 말을 잇지 못했다. 정색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정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단호하시네요.”
쉘터의 주소를 알려주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다. 이 사실은 한번 짚어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혹시라도 우연히 살아서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는 같이 살아남는 것 정도는… 그 정도는 괜찮으시죠?”
돌아가려던 요한은 살짝 몸을 돌렸다. 고개를 끄덕이며 호의를 덧붙였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떼어냈다는 죄책감을 덜기 위한 얄팍한 호의.
“사람들이나 물자가 있는 장소는 모르는 사람에게 얘기하거나 어딘가에 기록하지 마세요.”
“네?”
“그냥 잘 들으세요. 피가 되고 살이 되니까.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람이 뭉쳐 있으면 좀비 웨이브가 옵니다. 무리가 너무 커진다 싶고 규모에 비해 전력이 약하다고 판단되면.”
어리둥절한 표정의 정미를 바라보며 요한이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의 이 말이 그녀를 언젠가 구하기를 바라며.
“반드시 그 무리에서 빠져나가세요.”
이 좀비 사태에는 몇 가지 겪지 않고서는 추측할 수 없는 법칙들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좀비’ 하면 떠오르는 그런 기본적인 상식들 외에, 직접 겪어보고 캠프와 팀원을 몇 번이나 잃고 나서야 깨닫는 몇 가지 원칙들이.
그중 가장 많이 그녀를 괴롭힐 법칙은 첫 번째 것이리라.
생존 시 주의해야 할 첫 번째 원칙.
대규모의 사람이 장기간 거주하는 곳에는 반드시 ‘좀비 웨이브’가 온다.
대규모의 떠돌이 좀비들이 한 곳으로 밀집하는 현상. 좀비 웨이브.
다수의 사람이 한곳에 오래 정착하면 그곳에는 셀 수 없는 좀비들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들이닥친다. 요한은 그래서 한 캠프의 최대 수용인원을 20명까지로 제한했었다. 그리고 그중 전투가 가능한 인원은 무조건 반수 이상이어야 했다.
20명 이하. 그리고 10명 이상의 전투 인원.
20명이라고 딱 확신한 근거는 없었다. 근거는 없지만, 경험에 의거에 만들어진 규칙. 위의 규칙을 지키지 않은 캠프 중에 한 달 이상 캠프가 유지되었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굳이 부연하지는 않았다.
의연하게 걸어가는 그녀를 바라볼 뿐.
* * *
까치울 마을 중앙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이 TV를 심각한 얼굴로 보고 있다.
위성으로 방송되는 뉴스는 심각했다. 채널 어디를 틀든 속보만이 가득할 것이다.
요한은 아르바이트 직원을 부추겼다.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집에 가 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 지금 밖은 좀 어때요?”
“아직은 괜찮아 보이는데, 차도 막히고 혼란스럽더군요. 빨리 가보지 않으면······.”
일부러 말끝을 흐리자 직원의 동공에 불안이 더욱 커진다. 그의 전신에 흥건한 핏물과 핏자국이 더 불안하게 만들었을 거다.
한참을 안절부절못하던 직원이 입술을 잘근 깨물고는 계산대 테이블을 들어 올리곤 옷을 갈아입었다. 그가 시야 밖으로 벗어나는 걸 확인한 요한이 종량제 봉투를 꺼내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담기 시작했다.
식량이든 생활용품이든 의약품이든 닥치는 대로 쓸어담았다. 무엇이든지 갖다 두면 다 쓸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