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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7화 (7/176)

<7화>

비명과 핏물이 낭자한 지옥도 속에서 생존자들은 마트 밖으로 나가거나, 지하로 내려왔다.

당시 판촉원으로 일하던 직원 김정환은 기지와 빠른 판단으로 동료들과 함께 소파 등 가구로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를 틀어막아 위아래에서 확산되는 좀비를 막아냈다.

문제는 식량을 구할 수 있는 지하 2층이 한 명의 감염자로 인해 아비규환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정환은 결국 에스컬레이터의 위아래를 모두 가구로 틀어막았다.

그때의 지하 1층 생존자는 육십에 가까웠다.

그들은 구조를 기다리며 하루를 꼬박 보냈고, 식량을 찾던 건과 혁이 비상구를 통해 합류한 건 하루 뒤의 일이었다.

건은 사람들에게 식량 확보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두려웠던 사람들은 그들을 외면했다.

사흘이 지나도 구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통신망이 두절되고 총기 소리가 들리는 등 더 혼란만이 가중될 뿐.

몇 명의 생존자들이 비상구를 통해 탈출했다. 그러나 그들은 좀비들에게 감염된 채 되돌아왔다.

건과 혁이 들어왔으니 나갈 수도 있었다고 판단했겠지만, 그들은 좀비들을 치열하게 뚫고 들어왔던 것.

더는 체력을 낭비할 수 없다고 판단한 건은 사람들을 설득했다. 체력이 남아있을 때 싸워야 한다. 물도 식량도 없는 상황에선 전부 죽을 뿐이다.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일어났다.

다행히 무기는 충분했다. 생활용품 코너에서 날붙이부터 둔기로 중무장한 사람들은 지하 2층을 탈환하기 위해 내려갔다.

선두는 건과 혁.

이 싸움에서 반수에 가까운 인원이 감염되고, 죽었다.

큰 피해였지만 결국 지하 1층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좀비들에게 점령되었던 식품관을 탈환해냈다.

그것이 마트 캠프 사람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전투였다.

건의 이야기를 들은 요한은 턱을 가만가만히 만지작거렸다.

‘전투 경험이 턱없이 부족해.’

형제의 전투력은 사실상 훌륭했다. 좀비들의 약점도 알고 있었고, 두려움은 보였지만 공격을 망설이지 않았으니까.

다만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이 넓은 마트를 소탕하려면 최소한 열 명의 전투 인원, 한 개 소대 정도의 병력은 필요했다. 1:1로 좀비를 제압할 수 있는.

“안녕하세요, 요한입니다.”

요한은 차례로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챙겨온 의약품이 필요한 사람은 없는지 물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1층에서 사람들을 구해주었다는 부분도 호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고, 밖에서 들어온 사람이 드물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었다.

“최근에 밖에서 들어온 생존자가 저 말고도 있습니까?”

요한의 물음에 적막한 고요가 찾아왔다. 다들 갑자기 말문이라도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의구심이 생겼지만, 일부러 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알게 될 부분이다.

“구조대는 없습니까?”

“군대는요? 정부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밖에 좀비가 그렇게 많나요?”

질문이 쇄도했다. 그러나 요한이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었다.

정부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가깝고, 군대는 점령당한 곳도 많지만, 부대를 기준으로 수비력을 유지하고 있는 곳들도 있다고 말해주는 게 다였다.

지난 생을 기준으로 말한 정보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진 않을 거다.

워낙 인구가 밀집되어 있던 탓에 정부와 기반시설이 제 기능을 잃는 건 빨랐어도, 생각보다 대한민국 인류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건축물의 구조적 특징 때문이었다. 편의점과 대형마트가 블록마다 있고, 재난에 대비한 아파트 위주의 건축 기조가 생존에 적합했으니.

사실상 2년이 지난 시점부터는 좀비와의 전쟁보다도 식량난으로 인한 사람과 사람 간의 싸움이 더 종말을 부추겼었다.

특히 서생연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종말 후부터는 완전한 무법 속, 그들이 내세우는 정의와 질서가 곧 법칙이자 규칙이 되었었다.

그들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무차별적으로 학살의 대상이 됐다.

회귀 전 요한과 그를 따랐던 사람들처럼.

* * *

“주차장은 천천히 처리하자. 비상구 문만 확실하게 잠가 놓고. 문제는 정문인데······.”

캠프에 많은 사람이 너무 오랜 기간 몰려 있었다. 지금도 정문을 통해 좀비들이 꾸역꾸역 1층에 쌓이고 있었으니까.

정문만 막으면 된다고 해도, 사실상 입구는 두 개였다. 엘리베이터를 기준으로 양쪽으로 출구가 나 있었고, 좀비가 가득했다.

한쪽 문을 봉쇄하는 사이 다른 문에서 들어온 좀비들에게 둘러싸이면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자신이라도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

사주경계가 가능한 다섯 명이 한 팀을 짜고 두 팀이 동시에 두 개의 문을 봉쇄한 다음, 벽을 등지고 밀려오는 좀비들을 상대하는 게 최선책인데.

과연 그 짓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이번에 나간 8명도 결국 3명이나 살아 돌아오지 못했는데.

건은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사람들과 좀 이야기해 봐도 될까?”

“그거야 네 자유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거야. 이번에 나간 사람들도 힘들게 설득했던 거라서. 아 어쩌면 몇 명은······.”

건이 말끝을 흐렸다.

무언가 감추고 있는 듯한 얼굴. 뭐지? 요한은 의구심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재촉하지는 않았다.

“물은?”

“작은 통은 다 썼고, 큰 통은 정확하게 세어 보진 않았지만 큰 통 묶음으로 50박스 정도.”

“아니, 식수 말고. 수도 말이야. 수도 공급은 원활해?”

“물은 잘 나오는데. 찬물이지만. 어쨌든 아껴 쓰고 있어.”

“급수정지는 진작에 됐을 텐데. 옥상에 비상용 대형 물탱크가 있군.”

최근 건물들에는 비상 물탱크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중동점은 오래전에 개업한 건물이어서 그런지, 다행히도 상수도에서 물탱크를 거쳐 수도 공급이 된 듯했다.

“옥상의 물탱크를 확인해 봐야 해. 떨어질 때가 됐으니까.”

“그런가, 미처 생각 못 했어.”

요한의 물음에 건이 고개를 저었다. 그 부분까진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듯.

6개월이나 썼으면 슬슬 떨어질 때가 됐다. 수도 공급이 끊기면 일단 씻는 건 둘째 치고 배설물 처리가 어려워진다. 황금 같은 식수를 똥물 내리는 데 쓸 수도 없고.

역시 소탕전은 피할 수 없나.

요한은 마음을 굳혔다. 어떻게든 사람들을 설득해서 마트 전체를 확보해야 했다.

그가 가장 먼저 찾은 것은 김정환. 사태 직후 에스컬레이터를 봉쇄하여 B1 층을 지켜낸 인물이었다.

회귀 전에도 꽤 오래 함께 생활했던 그의 평가는 강건과 같은 A급 생존자는 아니었지만, 제법 오래 살아남았다.

“활약은 잘 들었습니다. 혹시 그 당시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줄 수 있습니까.”

머뭇거림. 거북한 감정이 선연하게 나타났다. 아마도 건이 얘기했던 영웅담과 실제 현장의 모습은 다소 달랐을지도 모른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행동했든 당신을 비난할 생각은 없으니까.”

몇 번의 설득 끝에 정환이 입을 열었다.

“당시 저는 1층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입구에서부터 밀고 들어오는 좀비 떼를 봤고, 저는 보자마자 위험을 감지했죠.”

오. 요한이 다소 놀라는 모습을 보이자 정환이 쓰게 웃으며 덧붙였다.

“좀비물 덕후였거든요.”

“축하합니다. 성공한 덕질 인생이 되셨네요.”

짓궂은 농담에 정환이 웃었다.

긴장한 모습을 풀어주기 위한 농이었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는지 정환이 술술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작정 도망쳤습니다. 처음엔 밖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출입문에서 놈들이 너무나 많았어요. 너무나······. 어쩔 수 없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도망쳤어요.”

“아래로 내려온 것은 식량을 의식한 것이 맞습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판단의 표본이다.

“에스컬레이터에 사람들이 저를 따라 내려왔어요. 그런데 제 뒤에 있는 사람이 좀비에게 물어뜯기는 장면을 목격했고··· 저는 에스컬레이터 비상정지를 시키고 옆에 있던 동료들을 부추겨 책상이며 소파며 다 쌓아서 막아버렸어요.”

“잘하셨네요.”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몰살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 백 프로 몰살당했을 거예요.”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로 달라붙어 비명을 지르는데도, 좀비들이 따라붙어서 사람들을 뜯어먹는 데도 계속해서 가구들을 쌓아 올렸어요. 조용해질 때까지. 그리고 남은 사람들끼리 한숨을 돌리고 있었는데 식품관에서 비명이 들렸어요. 도망쳐 온 사람들 중 감염자가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위아래를 다 막으신 거군요.”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존에 대한 집념과 천운이 따른 결과물이었다.

“좀비는 몇 마리나 죽여봤습니까.”

정환이 고개를 저었다.

6개월 동안이나 살아남았는데 좀비를 잡은 경험이 제로라. 심각한 문제였다.

“지금 식량으로는 두 달을 버티기 힘들 겁니다. 식량을 구하러 가야 해요. 도움이 필요합니다.”

“전 못해요.”

“할 수 있어요. 처음에만 어렵지 놈들은 결국 지능이 없는 인간의 모습을 한 시체, 썩은 고깃덩이일 뿐입니다.”

“도저히······ 전 도저히.”

정환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요한은 정환 이후로 몇 사람과 더 이야기해 보았지만 다들 소극적인 반응이었다. 전생에 만났을 때는 이 정도로 소극적인 사람들은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계기와 시간이 더 필요한 걸까.

자신이 구해주었던, 용기를 내서 나갔던 남녀도 좀비들을 소탕한다는 말에는 소극적이었다. 지난번 외출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어 두려움에 잠식된 탓이다.

쉽지 않겠는데.

생각이 들 때쯤 찾아온 것은 자신이 구해주었던 무리 중 한 여인이었다.

윤세리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인.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단발머리에 꽉 끼는 가죽옷이 인상적인 여인이었다. 이십 대 초반, 많이 쳐도 이십 대 중반이 못 돼 보였다.

“이야기를 듣고 오셨습니까?”

“할 말이 있어서 왔어, 터프한 오빠.”

“무슨 할 말?”

“건 오빠가 안 한 이야기가 있어.”

요한의 무슨 말이냐는 반문에 세리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일주일 전에 이곳에 쳐들어왔던 개자식들이 있었어. 길 건너편 H백화점을 점령한 조폭들.”

“잠깐. 침입자가 있었다고? 어떻게······ 아니, 왜 왔지? 식량?”

요한은 질문을 바꿨다. 주차장을 통해 1층으로 들어와서 비상구로 내려오는 길이 있다. 요한이 들어왔던 길. 통로가 좁아 좀비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뚫고 들어올 수 있다.

“처음엔 식량이 목적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가져간 건 술이랑 담배 같은 거. 그리고 여자들을 데려갔어. 여섯 명이나. 그리고 우리 언니가 그때 잡혀갔어.”

밖에서 들어온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이 왜 안색이 나빠졌는지 깨달았다.

그 중요한 사실을 왜 말하지 않은 거지.

요한이 알고 있는 과거와는 달랐다.

그래, 시작이 달랐으니 과거도 다를 수 있지. 하지만 조폭 단체라.

“건이 오빠는 그쪽도 식량이 아직은 여유가 있어서 그냥 되돌아갔지만, 언젠가 식량이 부족해지면 약탈하러 올 거라고 말했어. 그래서 하역장을 확보해서 몰래 식량 창고로 쓰려는 거야.”

그녀의 말대로 하역장 확보도 중요했지만, 요한에게 더 중요한 건 그들의 처분 문제였다. 절대 가볍게 넘길 문제는 아니었다. 제대로 싸울 줄도 모르는 사람들을 데리고 악의를 가진 집단과 대치해야 한다는 것.

아직은 좀비들과 싸우기도 벅찬 시기인데.

그럼에도 반드시 처리는 해놓아야 한다. 요한은 명확하게 세운 원칙이 있었다.

유능하고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살린다.

도덕적 상식을 크게 벗어나 위협이 되는 사람은 죽인다.

절대 후환은 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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