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14화 (14/176)

<14화>

“기문이에요 형. 이론적으로 방법은 아는데, 해본 적도 없고··· 요즘 차들은 전부 키 인식기에 잠금장치가 이중 삼중으로 달려있어서 그거 안 돼요. 옛날 차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뭐 한 2,000년대 초반 연식 정도.”

“흠.”

자동차 정비공 출신 동료는 처음이라 기대한 바가 있었건만.

요한의 표정이 실망으로 물들자 기문이 ‘그건 영화에서나 하는 거예요.’ 라며 머쓱하게 덧붙였다.

“차량 배터리 충전이나 교체는 할 줄 알지?”

“당연하죠, 형. 근데 충전은 차량 두 대나 발전 키트가 있어야 하니까······ 차로 뭘 하시게요?”

“두돈반짜리 수송 탑차를 옮길 거야. 트럭을 입구에 수평으로 주차해서 일차적으로 넓은 공간을 막아놓고, 남은 만큼 트럭이나 스타렉스나 SUV로 구멍을 틀어막는다. 딱 2.5톤 트럭이랑 중형차 한 대면 막힐 넓이야.”

요한의 말에 일행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너무 위험한 것 아니에요?”

“세상 이렇게 되고 나서 위험하지 않은 게 있나. 그리고 그거야 너희 하기에 달렸지. 아무튼, 공돌아.”

“기문입니다, 형.”

“미안. 왠지 모르게 입에 안 붙는 이름이라. 그래 기문아. 이번 작전. 네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네······.”

세 시간가량을 싸우고서도 아직 한바탕 더 해야 한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다시금 긴장하기 시작한다.

“긴장들 풀어. 이번에는 아주 시원하게 스트레스 풀리는 작전이 될 테니까. 기문아, 내려가서 차량 용품 코너에 차량 배터리 충전하는 키트 있는지 확인해 봐.”

잠시 후 빈손으로 돌아온 기문을 보며, 요한이 작전을 설명했다.

* * *

다다닥.

일곱 명의 사람들이 주차장을 가로지른다.

선두에 있는 정환이 좀비들을 밀치며 길을 열었다. 그들은 정면에 가깝게 보이는 트럭으로 향했다.

정환이 가장 가까운 트럭 하나를 잡아 짐칸에 올라탔다. 그 뒤로 일행이 뒤따랐다. 무사히 트럭 짐칸에 탑승한 인원들이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하기 시작했다.

“이 개 같은 좀비 자식들아, 여기야! 여기라고!”

“이 개자식들아! 여길 봐 멍청한 놈들!”

일곱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고 좀비들을 향해 욕을 내뱉기 시작하자 좀비들이 금세 그들을 향해 몰려들었다.

모여든 좀비들이 트럭 주변에서 손을 허우적댄다. 인원들은 몰려드는 끝없는 좀비에 흠칫했다.

‘우선 나, 기문, 성배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이 유인 조. 유인 조는 나가자마자 정면 삼십 미터 앞에 트럭이 하나 있을 거야. 거기까지 달려서 좀비들을 유인해.’

‘유인이라면?’

‘소리 꽥꽥 질러. 욕이라도 시원하게 하든지.’

유인 조 인원들은 좀비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좀비들을 끌어모을 뿐.

‘좀비들이 트럭 위로 올라타거나 하지는 못할 거야. 끽해야 손만 허우적거리겠지. 내가 신호 주기 전까지는 괜히 좀비들 죽이겠다고 공격하지 마. 쓰러진 놈들 밟고 넘어올 수도 있으니까.’

유인은 성공적이었다. 좀비들의 시선이 일제히 유인 조로 몰려갔다. 철문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요한이 고갯짓했다.

“좋아. 우리도 가자.”

요한 등은 시선을 끌고 있는 트럭의 뒤쪽으로 빙 돌아 몇 대의 탑차가 세워져 있는 대형화물차 주차 공간으로 이동했다.

‘차량 조의 역할은 차량 확보와 길목 막기. 차 키가 있는 대형차를 확보해서 입구를 틀어막는다.’

요한이 첫 번째 탑차를 열었다.

끄아아악!

문을 열자마자 운전석에 타고 있던 좀비가 달려든다. 요한이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자 좀비가 허우적대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팍! 요한이 좀비의 머리통을 군화로 세게 지르밟고 관자놀이에 나이프를 내리꽂았다. 요한이 좀비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놈의 품을 뒤졌다. 차 키가 없다. 쳇, 하고 혀를 찬 요한이 트럭의 시동부 키 박스를 확인했다. 열쇠가 꽂혀있었다.

‘럭키.’

“성배야 타라. 우리가 차량 확보하면 클랙슨 두세 번 누를 테니 그때 출발하면 돼. 네가 주차 완료하면 내가 그 옆에 주차할 테니까. 우리가 문 열어줄 때까지 섣불리 문 열고 나오진 말고. 참, 주차는 공간 남기지 말고 벽에다 트럭 대가리 딱 붙여라.”

“네.”

“기문아. 어때?”

“시동 걸릴 만한 배터리는 충분해요, 형.”

“좋아. 일이 잘 풀리는걸.”

여기까지는 수월하다 못해 예상보다 훨씬 웃도는 수준으로 일이 잘 풀렸다. 설마 첫 번째 차량에서 대형차를 확보할 수 있을 줄은 기대도 안 했는데.

이 캠프, 그러잖아도 운이 정말 좋은 케이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마 천운이 따르는 캠프인가.

요한은 성배를 차에 태워 놓고 다음 차량을 훑었다. 그러나 다음 트럭도, 다다음 트럭도 차에 키는 없었다. 마치 행운은 한 번뿐이라고 비웃는 듯했다.

“수동으로 시동 걸 만한 차들도 없어?”

“연식이 그렇게 오래된 차는 없어서······.”

모든 트럭을 다 뒤졌지만, 키가 있는 차량은 하나도 없었다. 요한이 한 블록 떨어진 일반 차량 주차 공간을 가리켰다.

“어차피 가로 폭은 큰 차이 없으니까, SUV라도 뒤져 보자.”

두 사람은 조금 떨어진 곳까지 걸었다. 차량이 많이 주차되어 있으나 차 키는커녕 문이 열려있는 차량도 드물었다.

점점 유인 조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요한은 불안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다잡았다.

때마침, 한 SUV 차량에 좀비 네 구가 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요한이 벌컥 차량 문을 열고 좀비를 찔렀다. 이어 조수석의 좀비까지 처리하고 끌어내렸다.

운전석 좀비로부터 키를 확보한 후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긴 요한이 문을 열고 쏜살같이 찌르려던 찰나.

요한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정지한 듯 멈췄다.

뒷좌석의 좀비들은 어린아이들이었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법한.

캬아악, 하는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좀비가 달려들었다. 가녀린 손가락이 요한의 보호대를 붙잡고 덜 여문 이빨을 들이밀지만 소용없었다.

요한이 아주 찰나의 머뭇거림 이후 나이프를 좀비의 눈에 푹 쑤셔 넣었다. 떨림은 금세 멈췄다.

“배터리는?”

“방전됐어요······.”

“이놈이랑 같은 배터리 쓰는 차 뭐야?”

“일단 같은 차종이면 배터리는 같고······.”

“아니다. 설명은 됐어. 안내해.”

요한은 기문이 가리킨 차량의 보닛과 라디에이터 그릴 사이에 나이프를 갖다 대고 지렛대처럼 아래로 힘을 줬다.

보닛이 우악스러운 소리를 내며 뜯어졌다.

“이건?”

“이것도······ 방전됐어요.”

“새 차, 최대한 새 차로 골라 봐.”

“저, 검은색 차요.”

요한이 다시 한번 보닛을 뜯어냈다. 배터리를 쳐다본 기문이 반색했다.

“형 이건 돼요. 충분해요.”

“꺼내. 돌아가자.”

요한이 발걸음을 차 키가 있는 차량으로 돌렸다. 기문이 차량 앞에서 배터리 교체를 준비하는 사이 요한이 차 앞 좌석 문을 열고 보닛을 열었다.

“형, 좀비, 좀비!”

어째 순탄하다 했다.

요한이 급하게 차에서 내려 상황을 확인했다. 좀비가 점점 모여들고 있다.

“제법 많다. 혼자선 힘들겠어. 얼마나 걸려?”

“오 분······.”

“길어 인마!”

“사, 삼 분이요!”

퍽! 요한이 기문의 뒤로 돌아와 그를 엄호했다. 눈앞의 좀비 하나를 쓰러트리기 바쁘게 여기저기서 그르렁거림이 들려온다. 혼자서 180도를 경계해야 하는 상황. 거기다가 엄호대상까지.

‘여차하면 총이라도 쓴다.’

좀비들이 계속해서 모여든다. 요한이 좀비를 찌르고 넘어트리길 반복했다. 점점 좀비를 처리하기보다 밀어내기 바빠졌다.

배터리를 교체하는 기문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밥 먹듯이 해오던 일인데도 이상하게 손이 떨려 육모 렌치를 몇 번이고 놓쳤다.

“빨리해!”

“다 됐어요!”

기문이 요한의 뒤로 빠져나가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시동 걸리는 소리가 마치 구원의 소리처럼 들렸다. 요한이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근처 좀비들을 어깨로 밀치고 운전석 문을 열었다.

“옆으로 가. 운전 내가 할게.”

요한은 운전석에 앉자마자 클락슨을 두 번 길게 눌렀다. 차량에 좀비들이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이어 멀찍이서 대기하던 탑차가 움직였고. 탑차가 주차장의 오르막이 막 끝나는 지점에서 속도도 줄이지 않은 채 한 번에 정확하게 멈춰 섰다. 깔끔한 드리프트였다.

“와 저 자식 운전 완전 지리는데요, 형?”

“그러게. 베스트 드라이버인데? 꽉 잡아라. 형도 끝내주는 테트리스 실력을 보여줄 테니까.”

“운전 실력이 아니라요?”

“어, 벨트 매.”

벨트 매란 소리에 고개를 갸웃하던 기문이 금세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키자 좀비들이 부딪혀 차 찌그러지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려왔다.

요한이 차를 몰아 주차장 입구로 향하는 듯하더니 입구 근처에서 한 바퀴 휙 돌아 후진을 시작했다.

벽에 딱 붙여서 벽을 긁으며 후진하는 차량. 차 내부 경고음과 차 외판이 벽을 긁는 소리가 주차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형, 부딪혀요, 부딪혀!”

“어, 알아! 꽉 잡아! 에어백 안 터져!”

“혀어어엉!”

끼기기긱, 소음이 고막을 때린다. 이어 쾅! 하고 큰 충격이 느껴졌다. 속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뒤 범퍼가 찌그러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차량 후면이 옆으로 뒤집어놓은 ‘ㄱ’자 모양으로 완전히 찌그러져 있었다.

주차장 입구가 두 개의 차량으로 완벽히 막히는 순간이었다.

기문이 거의 쓰러지듯 차 문을 열고 뒹굴었다. 뒤이어 요한이 뒷목을 붙잡으며 차에서 내렸다. 신음이 절로 새어 나온다.

“형, 너무 거칠어요······.”

“미안. 좀 흥분했다.”

충돌음에 좀비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다행히 대부분의 좀비가 유인조 쪽에 몰려 있었기에, 요한으로부터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요한은 머리를 흔들며 성배가 타고 있는 트럭의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성배가 엄지를 치켜든다.

“형 진짜, 상남자···. 저 남자한테 설레는 건 처음이에요.”

“어. 그래. 부디 그게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네.”

요한이 준비 완료 신호로 손을 휘휘 흔들었다. 멀찍이 있던 트럭 유인조에서 좀비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요한도 두 청년을 데리고 근처 트럭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이후부터는 일방적인 전투가 시작됐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좀비에 안심한 일행이 지쳐 널브러졌다. 세리가 트럭 위에서 대자로 드러누웠다.

“아! 나 진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어!”

“후우. 좀비, 몇 마리나 죽였을까?”

“모르겠어. 세기도 힘들다.”

“이렇게까지 많을 줄은 몰랐는데.”

사람들이 한마디씩 내뱉었다. 멀찍이서 요한과 차량조 두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주저앉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켜 좀비들을 밟고 트럭 아래로 내려왔다.

병진이 내려오다 힘이 풀린 듯 휘청거리자 요한이 그를 부축했다.

“땡큐, 아까는 멋있었어.”

“맞아. 오빠는 무슨‧······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병진의 말에 세리가 동조했다. 이어 정환이 덧붙였다.

“정말이에요, 형. 대체 뭐 하던 사람이에요? 특공대, 뭐 그런 건가.”

“그냥 월급쟁이지 뭐.”

거짓말치네, 라고 얼굴로 말하는 정환을 무시하며 한 명 한 명에게 손을 내밀어 트럭에서 내려 주었다.

“위층 좀비들은 언제 정리할 건데?”

“위층에도 좀비들은 많이 남아있지 않을 거야. 이 소란을 부렸는데 좀비들도 내려왔겠지.”

“그럼 진짜 끝났네.”

“그래. 마무리만 하면 되겠다. 고생들 했어.”

사람들의 표정에 고취감이 드러난다. 절대로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이룬 사람들의 표정에 희망이 깃든다.

고생했다는 한마디에 긴장과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다.

“다 같이 함께했으면 좋았을걸.”

기문이 중얼거렸다. 자신감이 많이 붙은 표정이다.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마찬가지로 가진 아쉬움이다. 함께했다면 다 같이 성장했겠지.

하지만 기회는 앞으로도 많을 거고 사람마다 속도 차는 존중해 주어야 한다.

“사람들 불러와. 청소해야지.”

“네, 형.”

정환이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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