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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20화 (20/176)

<20화>

아뿔싸.

긴장감에 온몸의 솜털이 바짝 곤두섰다.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기감이 일반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예민하고 항상 주의를 집중하고 다니는 탓에 아무리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무방비하게 가까이 접근을 허락한 적이 없는데.

요한이 홱 몸을 틀며 쇠뇌를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겨냥했다. 동시에 팍, 하는 소리와 사내의 발이 제 손을 걷어찼다. 묵직한 통증과 함께 쇠뇌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뭐야 다짜고짜.”

우선 제압한다는 게 실패로 돌아갔다. 요한이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가자 사내의 발이 날아온다.

휙, 발이 엄청난 소리를 내며 공기를 가른다. 요한이 고개를 숙여 발차기를 간신히 피해냈다.

공격을 피한 요한이 로우킥으로 하단을 때렸다. 사내가 휘청거린다. 이내 벼락같이 달려들어 사내를 제압해 마운트 포지션을 잡았다. 사내의 주먹이 날아와 요한을 때렸다.

요한의 힘이 풀린 사이 사내가 자신을 두 발로 쳐내고 뒤 구르기로 한 발 벗어났다. 요한이 침을 퉤 뱉자 붉은 피가 뱉어진다.

‘상처.’

피를 본 요한의 스트레스 수치가 급격하게 올라갔다.

외상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상처를 얻는 것은 위험했다. 동시에 저 눈앞에 있는 사내의 존재 자체가 위협이다. 무기를 지닌 상대와의 싸움에도 주눅 들지 않는, 전투력이 있는 자였다.

요한이 고개를 숙여 다시 한번 주먹을 피해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릎 차기. 요한이 두 손을 들어 사내의 타격을 막았다.

쿵! 요한이 그대로 머리를 올려붙여 사내의 머리를 쳤다. 사내의 얼굴이 뒤로 크게 젖혔다. 요한이 그 자세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때, 사내가 곧바로 발을 걸어 요한이 균형을 잃고 크게 흔들렸다.

사내의 발차기가 이어진다. 넘어진 요한이 발차기를 맞고 굴렀다. 요한은 이때다 싶어 일부러 크게 데굴데굴 굴러 사내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요한을 제압하기 위해 달려오던 사내가 두 손을 들고 멈춰 섰다.

철컥, 요한이 어느새 꺼낸 글록을 장전하고 사내를 향해 겨냥하고 있었다.

“워, 워.”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쏜다.”

“진정해, 형씨. 대체 왜 갑자기 사람을 공격하고 난리야? 대화 좀 하자는데.”

총기의 장전은 끝났고 거리도 충분히 벌려져 있다. 승기를 잡은 요한이 심호흡을 했다.

대화, 좋지. 하지만 안전을 위해선 일단 선 제압 후 대화가 옳은 수순이다.

“수상하게 먼저 접근한 건 네 녀석이지.”

“아, 그건 사과할게. 발소리를 죽이고 다니는 건 습관이라서.”

사내는 세상 해맑게 웃었다. 당장 방금 전까지 치고받던 사이에 뭐가 웃을 일이 있어서 실실 쪼개는 건지.

“어차피 총 쏘면 둘 다 위험하잖아. 밑에는 조폭들이 가득하다고.”

요한은 말없이 반대쪽 바지 주머니에서 소음기를 꺼내 총구에 돌려 끼웠다. 사내의 인상이 구겨졌다.

“그냥 대화를 하자는 것뿐이야. 매정하게 굴지 말라고.”

“용건을 말해.”

“아까부터 지켜보니까 이 백화점을 이 잡듯 샅샅이 뒤지던데, 여기에 볼일이 있지?”

“알 바 아니지.”

“나도 여기에 볼일이 있어. 협력하자.”

“일행은?”

“없어. 난 쭉 혼자 살아왔지. 어때? 난 스위퍼야.”

“스위퍼?”

요한은 스위퍼라는 단어의 뜻을 고민하다 되물었다. 조직 이름도 아닌 것 같고 아무리 봐도 외국인은 아닌데. 요한의 의문을 읽었는지, 사내가 대답했다.

“별명이야.”

“누가 그렇게 유치찬란한 별명을.”

“내가 지은 건데, 왜?”

환자였군. 중2병은 상당히 심각한 질병이지. 요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내의 행색을 훑어보니 거짓은 아닌듯했다. 전투력, 반사신경, 그리고 혼자 다니는 배짱을 보아선 분명한 A급 생존자다. 함께하면야 도움은 되겠지만, 온몸에서 수상함이 절로 넘쳐흐른다.

요한은 사내의 몸통에 총구를 겨냥한 채 천천히 쇠뇌를 향해 움직였다.

사내는 여전히 두 손을 든 채로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마침내 손에 쇠뇌를 쥔 요한이 총구를 내리고 쇠뇌의 가늠자를 그에게 겨냥했다.

“더 할 말은?”

“뭐?”

“없는 거로 알지.”

요한이 쇠뇌의 방아쇠를 당겼다. 아니, 정확히는 방아쇠를 당겨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스위퍼가 난간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놈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방아쇠를 당겼지만, 일시적으로 흔들린 조준점 때문에 첫발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요한이 최대한 그자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다음 사격을 준비했다. 탁, 쇠뇌의 발사음과 파공음이 허공을 때렸다. 일반적인 인간의 속도를 고려해서 예측 사격을 했지만, 의문인의 움직임이 마치 변종 좀비만큼이나 빠르다. 예사롭지 않은 몸놀림에 화살이 연달아 빗나갔다. 사내는 쏜살같이 난간을 붙잡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요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화살이 빗나가? 이 거리에서?

“아우 씨! 갑자기 쏘고 난리야!”

바로 아래층에서 스위퍼의 고함이 들렸다.

“진짜 죽이려고 했어, 이 개새끼야!”

요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안 그래도 소란 아닌 소란을 일으켜 신경 쓰였는데, 저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소리치면 백화점 내에 좀비들은 물론 사람들까지도 모두 듣고 말 거다.

“침입자다! 삼 층에 침입자가 총을 들고 있다! 삼 층 올리브영 앞!”

스위퍼의 고함 소리는 정말 쩌렁쩌렁했다. 그 소리를 듣고 곧장 여기저기서 발소리와 소란이 들렸다. 층수와 위치까지 정확하게 외쳐버린 탓에 무리의 움직임은 더 신속했다.

요한은 끝도 없이 욕을 내뱉으며 비상구를 향해 내달렸다.

비상구 쪽으로 달리던 요한이 움직임을 멈췄다. 아래에서 다수의 발소리가 들린다. 요한이 방향을 틀어 반대쪽으로 내달렸다. 호흡이 격하게 차오른다.

하필이면 이 순간에도 스멀스멀 좀비들이 튀어나온다. 남아있던 근처의 좀비들을 처리하느라 전속력으로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했다. 요한은 이 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로 향하다 급하게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돌리는 시선 끝, 반대쪽 에스컬레이터에서 사람들이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눈앞의 에스컬레이터에도 속속들이 사람들이 차올랐다.

요한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3층의 높이는 1층까지는 까마득했고, 바로 아래층에는 어느새 소란을 듣고 모여든 좀비가 가득하다. 2층으로 뛰어내리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착지 후의 좀비가 문제다. 균형을 잡기 전에 물어뜯기고 말 터다.

싸우는 수밖에 없나.

요한이 총기를 들었다가 시선 끝에 드문드문 보이는 적들의 총기에 순간 고민이 일었다. 일대 다수의 싸움도 자신 있었지만, 그것은 자신이 일방적으로 기습할 때의 이야기였다.

빠르게 생각이 회전한다. 싸워도 승산은 충분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인원과 일대 다수의 싸움을 하게 되면 부상이 불가피하다.

그때, 요한의 뇌리에 상무의 말들이 잇따라 떠올랐다.

‘이놈처럼 쓸 만한 자식이 마음을 바꿔먹어 주면 참 좋을 텐데. 그렇지? 원하면 여자도 마음껏 안을 수 있게 해준대도. 약도 말이지.’

붙잡혀도 죽지 않는다. 죽지만 않으면 언제든지 탈출할 수 있었다. 차라리 여기서 싸우는 것보다 생존 가능성이 컸다. 요한의 머릿속에 한 가지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요한은, 천천히 두 손을 들었다.

잠시 후, 요한은 완전히 포위됐다.

* * *

쾅,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요한이 넓은 방 안으로 던져졌다. 두 손은 허리 뒤로 묶였고, 양발 또한 묶인 채였다.

쇠뇌, 총, 나이프 두 정과 허리 주머니를 강탈당했다.

심각한 피해였고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그 상황에서 자신이 제압하지 못할 A급 생존자와 교통사고가 날 줄은.

‘그 개자식.’

손속을 두거나 일부러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죽이지 못한 것이다. 기회만 된다면 언제든지 죽일 각오였다.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죽이지 못했다. 게다가 순간적으로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는 기지는 순발력의 방증이었다.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았고 안전을 자신하고 있었는데, 어처구니없이 붙잡혔다.

‘후, 어차피 지나간 일.’

요한이 생각을 멈추고 빠르게 정신을 추슬렀다. 난동 없이 붙잡히면 사살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은 적절했다.

순순히 항복한 것 때문인지 무리는 자신의 눈도 가리지 않고 재갈도 물리지 않았다. 이곳의 위치는 오면서 전부 눈으로 익혀 두었다.

시선이 방 안을 꼼꼼히 탐색했다. 날붙이로 쓸 만한 것은 없다. 유리창도 없었다. 다행히 천장에 환풍구가 달려있었다.

쾅! 이어서 다시 한번 철문이 열리고 스위퍼가 포박당한 채 던져졌다. 요한이 헛웃음을 흘렸다. 기껏 자신을 곤경에 처하게 해놓고 잡혀 들어오다니.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스위퍼가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 형씨? 우리 구면이지?”

“입 다물어, 빌어먹을 자식.”

“거, 입 험한 거 하고는. 형씨 때문에 잡혔는데 미안하지도 않아? 도대체 왜 난데없이 공격한 건데?”

“그들과 한패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형씨 안목이 정말 별로네. 딱 봐도 이렇게 선한 사람을 그런 깡패들이랑 엮는단 말야?”

이제는 어이가 없다 못해 말도 나오지 않을 지경이다. 요한이 뭐라 반박하기도 전에 문이 다시 한번 열리고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가운데로 전에 보았던 사내. 상무가 들어왔다.

‘인상 한 번 사납군.’

예상보다 훨씬 이른 조우였다. 요한의 눈동자가 그 와중에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상황을 훔쳤다.

상무가 의자를 끌어와 앉은 뒤 스위퍼를 향해 말했다.

“오 우리 청소부 친구. 이거 오랜만에 보는군. 다시 찾아오면 내가 죽이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내 걸 돌려줬으면 안 찾아왔을 거 아냐.”

상무가 웃으며 스위퍼의 뺨을 후려쳤다. 짝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강한 타격이었다. 스위퍼가 피 섞인 침을 탁, 뱉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재밌게 놀아줄 테니, 기대하라고. 친구. 아마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거야.”

상무는 씨익 웃고는 스위퍼의 볼을 꼬집은 뒤 의자를 돌려 요한을 바라봤다. 선득거리는 눈동자가 마치 튀어나올 듯 도드라졌다. 입술 사이에 보이는 금니가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너는 누군데 우리 캠프에 허락도 없이 들어왔니?”

요한은 그의 눈을 바라봤다. 적의도, 비굴함도 담지 않은 그저 담담한 눈빛이었다.

“주변을 배회하던 부랑자입니다. 식량으로 쓸 만한 게 있나 탐색차 들어온 것뿐이고요. 본의 아니게 실례했습니다.”

비굴하게 살려달라고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위협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굳이 적대적으로 대할 필요도 없다. 늘 그렇듯 생존이 우선이다. 요한의 태도는 퍽 정중했다.

이 시대의 리더들이라면 누구나 인재를 탐낸다. 요한은 잡힐 당시에 완전히 무장한 상태였다. 호기심을 부르기에 충분한 상태. 그가 자신에 대해 무언가를 알아볼 때까지 죽이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부랑자치고는 행색이 너무 깨끗한데.”

“운 좋게 근처 민가에서 씻고 나온 참이라서요.”

“크, 좋아. 이럴 때일수록 응? 몸가짐을 바로 해야 한다고. 얼마나 좋아 깨끗하니.”

상무는 요한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과하게 감탄했다. 그러다 순식간에 돌변해 희번뜩한 눈으로 요한에게 바짝 다가왔다.

“총기가 있더군.”

요한이 마른침을 삼켰다.

“왜 저항하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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