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21화 (21/176)

<21화>

“얼추 보이는 수가 오십 명이 넘었고, 총알은 서른여섯 개뿐이었으니까요. 게다가 네 명이 총기를 들고 있더군요.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싸움에 희생자를 내면 붙잡혔을 때 타협이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총알이 오십 개가 넘었으면?”

“가장 인원이 적은 쪽을 먼저 타격하고 도망쳤겠죠.”

상무가 큰 소리로 웃으며 박수를 크게 쳤다.

“총은 어디서 구했니?”

“부천역에 경기 총포상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총기가 남았고?”

“제가 갔다 온 지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누군가가 털어 가지 않았다면, 넉넉하게 있을 겁니다.”

흐음, 상무가 턱을 여러 번 쓰다듬었다. 이 친구는 지나치게 솔직하다. 자신을 겁내는 기색도 없다. 게다가 홀몸으로 총기를 확보하고 유유히 사냥을 다니는 녀석. 쉽게 믿어서는 안 되지만, 그냥 죽이거나 돌려보내기엔 아까웠다.

“내 밑에서 일할 기회를 주지.”

상무가 씩 웃었다. 요한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더니 대답했다.

“최소한 이인자 자리는 약속받고 싶습니다만.”

“푸하하, 정말 배짱이 두둑한 녀석이야. 놀라운걸.”

“날쌘 몇 명을 붙여 주시면 총기를 확보해서 자격을 증명하지요.”

“아니, 아니야. 다른 애들을 보내지. 우선 네 말이 사실인지부터 확인해야겠어. 자세한 위치를 말해.”

“알겠습니다.”

“개수작 부리면 죽는 거야. 알겠니?”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요한의 말이 만족스러운 듯, 상무가 그의 어깨를 팡팡 쳤다. 충격에 몸이 앞으로 휘청일 정도였다.

어떻게든 틈만 보이면 탈출하려 했건만, 쉽사리 넘어오지 않는다. 난세에 한 무리를 이끄는 수장답다. 요한은 사실과 거짓을 섞어 이야기했다.

총포상의 위치는 사실. 그러나 총기가 남아있다는 건 거짓이다. 총포상에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것도 3개월이나 지난 일이고.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탓할 수는 없을 터다.

“이따 다시 오지. 너만 남고 나머지는 전부 연장 챙겨서 따라와.”

“경계 서고 있는 인원들도 부를까요?”

“됐어. 열심히 망보라 해.”

원하는 대답을 들은 상무는 기분이 좋은 듯 껄껄 웃으며 되돌아갔다. 한바탕 난리를 치른 사내들이 썰물 빠지듯 우르르 몰려나갔다.

둘의 감시를 명령받은 사내 한 명은 상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상무가 사라지자마자 긴장이 풀린 듯 문가에 주저앉아 담배를 물었다.

그들이 우르르 빠져나가자 요한이 옅은 숨을 냈다. 그 뒤로 스위퍼의 비아냥거림이 들렸다.

“형씨, 똥꼬 빠는 소리가 예술이던걸.”

“조용히 상황 파악이나 해라.”

순식간에 달라진 요한의 모습에 스위퍼가 허, 탄식을 했다. 상무를 대할 때와 자신을 대할 때의 온도 차가 마치 다른 사람 같다.

스위퍼가 혀를 차는 사이, 요한은 말없이 기다렸다. 그가 중간중간 뭐라 말을 붙였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요한은 어떻게든 빈틈을 찾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두 시간쯤 지났을 때, 보초를 서던 사내가 밖으로 나갔다. 문밖에서 덜컥, 하고 문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감시를 혼자 세워 두면 반드시 구멍이 생기지.’

감시는 무조건 이인 일조가 원칙. 사람은 먹어야 하고, 먹으면 싸야 하니까.

기회를 잡은 요한이 묶인 상태로 신발을 벗으려 발버둥 쳤다. 일부러 워커 한쪽은 꽉 매지 않고 다녀 워커가 슬금슬금 벗겨졌다.

“이봐, 뭐 해?”

요한은 스위퍼의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발을 벗는 데 집중했다. 급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서둘러야 했다.

상무는 지금 이곳에 없다. 고작 총기 네 정뿐인 그룹에서 총기를 확보하는 중요한 일에 부하들을 보내지는 않을 터고, 분명 부하들을 데리고 경기총포상으로 향했을 것. 아무리 빨리 다녀온다고 하더라도 계산상 6시간 이상 여유가 있다.

다시 쉘터에 들러서 장비를 보충한 후 함정을 파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요한이 낑낑대며 신발을 벗자 양말 사이에 끼워져 있는 면도날이 보였다. 마치 팔딱거리는 잉어처럼 두 발을 뒤로 당겨 손끝으로 향했다.

모양새는 우스꽝스러웠지만, 면도칼을 손으로 옮겨 쥐는 덴 성공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요한은 손발을 묶은 밧줄을 끊어내고 탁탁 털고 일어섰다.

“어, 어?”

“왜 그렇게 놀라? 탈출하는 사람 처음 봐?”

“와, 그런 데다가 그런 걸 준비해놓는 사람이 있다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니까.”

요한이 검지를 세워 입술에 대자 스위퍼가 입을 다물었다. 이내 그는 안감을 찢어 손바닥에 감고 반대쪽 신발에서 낚싯줄을 꺼냈다. 곧이어 발소리가 들려온다. 문이 열리고, 요한은 번개같이 사내의 목에 낚싯줄을 걸고 잡아당겼다.

“끅, 끄윽······.”

요한이 양손에 힘을 꽉 주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의 사내가 바둥거리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요한이 사내의 호흡을 확인해보고 품에서 나이프를 찾아 그의 뇌를 찔렀다. 그런 다음 사내의 시신을 샅샅이 뒤지니 품에서 무전기가 나왔다.

“죽일 필요까지 있었어?”

“내 몸에 손을 댄 시점부터 모든 행동은 정당방위야.”

요한이 그의 말에 대답하며 환풍구의 문을 열었다. 좁은 통로였지만 지나갈 길은 충분했다. 하지만 요한은 굳이 환풍구로 갈 생각은 없었다. 요한이 발걸음을 옮겼다. 등 뒤에서 긴박한 말소리가 들렸다.

“뭐 잊은 것 없어?”

“응? 없는데.”

“나는? 난 안 풀어줘?”

요한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뭐라고 개소리를 하는 거야?

“무슨 소리야, 내가 널 왜 풀어줘?”

“아이참, 왜 이렇게 매정하실까. 그러지 마시고. 한 번만 풀어주세요. 형씨, 아니 형, 아니 형님. 저 이대로 두고 가면 죽어요. 아까 보셨잖아요!”

요한이 스위퍼의 태세 전환에 인상을 팍 찡그렸다.

“왜 갑자기 존댓말이야.”

“형님 그러지 마시고.”

“죽이지 않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 할 일이 있어서 살려두는 거니까.”

“할 일······?”

“내가 어디로 도망갔느냐고 물으면 저 환풍구를 통해 옥상으로 갔다고 대답해. 혹시 놈들 사냥 다 끝날 때까지 살아있으면 그땐 풀어주마.”

“형님! 야!”

요한이 열린 문으로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 * *

상무 일행은 경기총포상에 도착했다. 침입자가 말한 곳에 정확하게 포상이 있었지만, 이미 탈탈 털린 뒤였다. 그곳에는 먼지 한 톨 남아있지 않았다.

무장한 시체들, 좀비가 되기 전에 사망한 시체, 그리고 여기저기에 관통흔이 보인다. 총포상 안은 총격전의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있었다.

“저······. 상무님 총기가 하나도 없는데요?”

부하 하나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나도 눈이 있다.”

상무의 말에 부하들의 입이 뚝 다물어졌다.

여기까지 오느라 쓸 만한 부하를 둘이나 잃었는데,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상무의 눈에 살벌한 안광이 서렸다.

분명 다른 사람이 털어 갔을 수도 있지만, 상무는 왠지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상무가 시체들을 훑어보고선 총알이 박힌 상자를 손으로 쓸었다. 주변뿐만 아니라 구멍 안쪽에도 먼지가 쌓여 있다. 최근에 생긴 흔적들이 아니다.

“빨리 돌아가 봐야겠어.”

상무가 부하 한 명이 들고 있던 무전기를 빼앗아 들고는 남겨놓은 부하에게 무전했다.

“거기, 두 놈은 이상 없니?”

무전기 너머로 소리가 들려왔다. 거리가 멀어진 때문인지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거슬리게 들렸다.

“다시 묻는다. 붙잡힌 두 놈은 잘 지키고 있어?”

“이상 없습니다.”

무전기 너머로 들려온 음성은 평온했으나 묘한 위화감을 준다. 상무가 부하에게 무전기를 신경질적으로 휙 던졌다.

“일단 빨리 돌아가야겠어.”

뭔가,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세 시간 후, 상무 일행은 급하게 되돌아왔다. 그리고 상무가 돌아왔을 때, 두 침입자를 가두어 놓은 공간은 텅 비어있었다. 한 구의 시체와 함께.

상무가 시체의 몸을 뒤적거렸다. 시체에 무전기가 없었다.

“상무님! 민구와 민석이가 당한 모양입니다.”

황급히 뛰어들어온 사내가 숨을 헉헉거리며 보고했다. 놈들은 지키고 있던 부하를 살해하고 두 명이나 더 살해했다. 도저히 그냥 두고 넘길 수 없었다.

시체에는 교살의 흔적과 자상이 있었다. 얇고 질긴 무언가로 목을 조른 후 뒷목을 찔렀다. 목의 졸린 흔적도 깔끔하고, 뒤쪽의 뇌를 찌른 것도 단 한 번에 급소를 찔렀다. 이건 절대 아마추어의 솜씨가 아니다.

‘이상 없습니다.’

그 녀석인가. 상무는 오늘 잡혀 온 남자를 떠올렸다. 처음부터 괴이쩍은 사내였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두려움도 불안함도 보이지 않던 그 눈빛.

지지직거리는 노이즈 때문에 목소리가 다른 걸 알아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비중 있는 부하도 아니라 목소리까지 기억하기도 어려웠다.

상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이마에는 몇 가닥의 혈관이 오돌토돌하게 튀어나왔다.

스위퍼는 물건을 찾으러 왔다손 쳐도, 그 부랑자 녀석은 원하는 게 뭐지? 혹시 자신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인가 싶어 기억을 더듬어 봐도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보는 녀석이었다.

녀석은 삼 층에서 잡혔었다. 그렇다는 건 잡히기 전까지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뭔가 다른 속내가 있다는 것. 분노가 활활 타오르는 열기에 역설적으로 두뇌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제야 생각이 바로 됐다. 스위퍼를 잡았다는 희열 때문에 순간적으로 판단력이 잠시 흐려졌었다.

녀석이 이곳에 볼일이 있다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십중팔구는 사람을 찾으러 온 거겠지.

하지만 쓰레기들을 모아 놓은 곳에도 경계가 있다. 그곳을 지키는 사람은 신 부장. 제 왼팔 격 사람이다. 종말이 오기 전까지 종횡무진 활약했던 좋은 인재에다, 총기까지 있으니 맨손으로는 절대 상대할 수 없을 거다.

신 부장한테서는 어떠한 보고도 올라오지 않았다. 상무는 다시 무전기를 받아 신 부장에게 무전했다.

“신 부장. 듣고 있니?”

띠리릭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답신이 들렸다.

-네, 상무님.

“그래. 신 부장. 쓰레기통에 무슨 일이 있었니.”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상무님.

“그래?”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야. 침입자가 도망쳤다. 아마 그쪽으로 갈 모양이야. 애들 보낼 테니 잘 지켜라.”

-예.

아직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이거지?

녀석은 아직 이 안에 있다. 상무가 섬뜩하게 웃었다.

그때, 무전기가 다시 울렸다.

-상무님, 놈이 옥상에 있습니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상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되물었다. 무전기는 네 대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온 무전은 침입자 놈이 가져간 무전기일 가능성이 크다.

“누구냐, 네놈은.”

무전기에 대고 물었으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인상을 찡그린 상무가 여러 번 무전기에 되물었으나 검은 플라스틱 물체는 그저 침묵을 뱉을 뿐이었다.

차오르는 울화에 상무가 의자를 쾅! 걷어찼다.

“요 건방지고 앙큼한 녀석을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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