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22화 (22/176)

<22화>

상무가 바로 좌측에 있던 부하에게 이죽거리며 묻자 부하가 말을 더듬었다.

“어, 어떻게 할까요?”

얼빠진 녀석, 상무가 부하를 한 대 후려치고는 우측에 M16 총기를 들고 있는 사내에게 명령했다.

“김 부장.”

“네!”

“애들 대여섯 데리고 쓰레기통 지원해.”

“예.”

“나머지는 날 따라와. 옥상으로 간다.”

놈의 꿍꿍이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상무는 자신이 있었다. 고작 두 놈이다. 게다가 그들은 무장해제까지 당했다.

곧바로 도망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다짐하며 상무는 부하들을 데리고 헐레벌떡 옥상으로 달려갔다.

단단하게 닫힌 옥상 철문 앞, 상무가 총기를 들고 있는 부하 한 명에게 턱짓했다. 부하가 긴장한 표정으로 조심히 철문을 연다. 끼이익,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리고 황량한 풍경의 옥상이 드러났다.

옥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상무님,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동격서인가. 상무가 움켜쥐고 있던 권총을 내렸다. 옥상으로 유인한 다음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려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그쪽에도 충분한 인원을 보냈다. 녀석은 제 손바닥 위에 있는 셈이다.

그때, 옥상 끄트머리 난간에서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전기 하나가 놓여있었다.

슬슬 자신을 가지고 논다는 생각이 든 상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하지만 상무는 침착했다. 후, 후. 몇 번 심호흡한 상무가 턱짓으로 부하에게 들어가 보라는 듯한 지시를 보냈다.

상무와 그 부하 한 명을 제외한 무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무전기를 향해 걸어갔다. 역시나 아무도 없다. 옥상 끄트머리에 도착한 간부 한 명이 성큼성큼 무전기까지 걸어가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이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새끼! 넌 잡히면 죽을 줄 알아. 알겠어?”

씩씩대며 무전기에 화풀이를 해 보지만 여전히 되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마치 귀신에 홀린 것만 같다.

철컥.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작고 날 선 소리에 간부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조폭 무리의 고개가 동시에 뒤를 향했다.

자신들이 열고 나온 철문의 윗부분, 건물의 안테나가 설치된 옥상 위 구조물에서 요한이 양손으로 소총을 든 채 그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요한의 총기가 시뻘건 불을 내뿜은 것은 한순간이었다.

상무가 부하들의 죽음을 예감하며 무언가 소리치려 했으나 그의 행동은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느릴 뿐이었다.

따다다다-!

고막을 때리는 거대한 총격음과 함께 사내들이 우르르 쓰러져내렸다.

요한은 반자동 사격으로 우선 총기를 든 사람부터 탁탁 찍어 사격했다. 소총을 들고 있던 사내는 총을 겨냥해 보기도 전에 쓰러졌다.

상무도 급하게 옥상 밖으로 나와 권총으로 요한을 겨냥했으나 요한이 쏜 총알에 어깨를 스치고 다시 건물 안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으아아악!”

총알이 사내들의 몸을 꿰뚫고 뇌와 내장을 헤집어 핏물을 뽑아냈다. 혼비백산해서 어떻게든 피해 보려 하지만 요한의 침착한 사격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이미 전투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냥, 혹은 학살에 가까웠다.

고통스럽게 내지르는 비명에도 요한의 총기는 땅! 땅! 불을 뿜었다. 요한이 안테나 뒤로 몸을 숨기고 탄창을 갈아 끼우는 사이 상무가 정신을 차리고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사격이 멈췄다! 빨리 들어와!”

“상무님··· 아악!”

상무의 지시에 사내들이 비상구로 달려들었으나 요한에게는 그저 표적이 제 발로 가까이 와준 것뿐이었다. 상무는 제 눈앞에 쓰러진 부하들을 허망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곧 계단 아래로 도망치듯 내려갔다.

요한은 일어서 있는 사람이 없을 때까지 총을 난사했다. 이미 난자된 시체가 부들거리며 흔들리고, 관통된 총알에 부상자들이 고통스런 신음을 내뱉었다.

소총 총열에서 열기가 모락모락 새어 나왔다.

탁, 요한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착지했다. 조심스럽게 계단 쪽 상황을 살피자 핏자국이 계단 아래로 길게 나 있었다. 두 명이나 빠져나갔지만, 둘 다 온전치는 못했다. 남은 자들은 천천히 사냥하면 된다.

요한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체들 사이로 터벅터벅 걸었다. 황량하던 옥상의 회색 바닥이 시뻘건 피로 물들었다.

M16 A1 소총을 회수해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허리까지 가로질러서 멨다. 한 구의 시체에서 자신의 쇠뇌를 발견하고 그것까지 오른쪽 어깨에 걸자 무슨 거북이 등껍질을 뒤집어쓴 것마냥 몸이 무겁다.

‘그래도 무기를 놓고 갈 수는 없지.’

놈들은 악당답지 않게 순진하고 멍청했다. 아직 이 시대의 무서움을 덜 맛본 탓이겠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 생각과 예상대로 움직여 주었다.

세 시간 전, 요한은 속박에서 풀려나자마자 쉘터에 들러 전투용 소총을 챙겼다. 그리고 고이 모셔두었던 바이크까지 동원해 빠르게 백화점으로 되돌아왔다.

그들은 자신의 목적을 몰랐다. 아마도 사람을 찾으러 왔다고 예상했겠지. 만약 그렇다면 요한이 함정을 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자신들을 옥상으로 유인하고 사람들을 구할 거라고 오해했을 거다.

하지만 진짜는 이쪽이었다. 적이 사람을 구하러 갔을 거라는 한 번의 오판. 그 오판이 부른 방심이 죽음으로 안내한 거다.

자신들이 사냥당하는 것도 모르고, 사냥한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으로 탁 트인 옥상 끄트머리라는 몰살당하기 딱 좋은 위치까지 손쉽게 모여 주었다. 진짜 목적이 그들 자신일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요한은 전력을 분산시키고, 그중 핵심 전력을 사격하기 좋은 장소로 몰아넣는 데 성공했다.

다만 하필 리더가 살아남은 게 마음에 걸린다. 설마 부하들을 내보내고 자신은 건물 안에 숨어 있을 정도로 겁이 많은 성격일 줄은. 사망자는 약 서른 명. 다른 사람을 놓친 건 어쩔 수 없더라도, 상무만큼은 반드시 찾아 제거해야 한다.

생각의 정리를 마친 요한이 방향을 돌리려는 찰나, 시체 무리 속에서 끙끙거리는 신음이 들려왔다.

“으으··· 살려줘······.”

부상자였다. 운 좋게 총알이 급소를 피해간 듯.

요한이 살아 꿈틀거리는 부상자의 머리에 나이프를 박은 뒤 난간 아래를 힐끗 내려다봤다. 건물 밖은 총소리를 듣고 몰려온 좀비들로 가득했다. 놈들은 독 안에 든 쥐였다.

요한은 쉬운 결말을 예상했다. 그의 귓가로 새된 하울링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끄아아악!

끄어어!

건물 밖에서 좀비가 내뱉는 하울링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내 괴성을 내뱉는 좀비가 하나둘 늘어나더니 도시 전체가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동시다발적으로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귀를 틀어막아야 할 정도로.

‘좀비 웨이브다.’

좀비웨이브를 알리는 하울링이 시작되었다.

괴성이 좀비를 부르고, 모여든 좀비가 다시 괴성을 질러 대는 순환이 반복된다. 정말 눈 깜짝할 새, 주변의 도로가 모여든 죽은 자들로 새까맣게 뒤덮여 있었다.

어느 방향을 둘러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좀비, 좀비, 좀비들의 향연이었다. 그리고 그 좀비들은 한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요한이 식은땀을 흘리며 계속해서 눈동자를 굴렸다.

‘변종은 어디에?’

좀비 웨이브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주변에 변종이 출몰했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빠르게 눈으로 변종을 찾았으나 쉽사리 들어오진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좀비들 사이에 섞여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변종은 눈에 띈다. 놈을 찾기 전에 우선 타겟 지점을 확인해야 한다.

아직까지 근처에 변종이 출몰하지 않았던 것은, 아마 주변의 군부대들 때문이었을 거다.

근 며칠, 몇 주간 들려왔던 하울링과 총소리들은 작은 규모의 전투가 내는 소음이 아니었다. 아마 이곳으로 오기 전 좀비들의 타겟은 부천 군부대였을 것.

그리고 이번의 웨이브가 발생한 지점은 군부대 인근이 아니라 일반 대로였다. 그 말인즉슨, 근방의 부대가 모두 궤멸했고 변종의 타겟이 민간 캠프로 변경되었다고 봐야 했다.

어쨌든 문제는 터졌고 시급한 것은 이곳을 뜨는 거다. 타겟인 지역에서 최대한 멀리 벗어나야 했다.

요한은 예상되는 불안을 애써 억누르며 좀비들이 향하는 방향을 확인했다.

‘타겟은······.’

H백화점.

요한이 있는 곳이었다.

과거로 돌아오고 나서 처음 닥친 웨이브에 요한의 전신이 팽팽하게 긴장됐다. 온몸의 털이 빳빳하게 곤두선다.

매번 겪을 때마다 새로울 만큼 놀랍다. 수백 수천 마리의 좀비들이 한 곳으로 결집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끔찍한 장관이다.

좀비들이 모이는 지점은 명확하게 이 백화점이었으나, 요한의 머릿속에 마트에 대한 근심이 생겨났다. 마트에도 서른 명이 넘는 생존자들이 있다. 이곳에 와 확인해보니 거의 백 명에 달하는 생존자들이 있었던 만큼 표적이 되는 건 당연했지만, 문제는 이 불길이 마트에까지 번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기도라도 하는 수밖에.’

좀비 웨이브가 마트에까지 번지면 사실상 전멸이다. 어쩔 방도가 없다.

요한의 머릿속에 최악의 상황이 그려졌다. 캠프의 첫 번째 전멸. 이미 회귀 전 수없이 겪었던 일이지만, 공들여 다져 놓은 캠프가 전멸했을 때의 상실감과 무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버티고, 기도해라.’

변종 좀비가 타격하는 지점이 이 백화점과 종합쇼핑몰로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수밖에.

요한이 마트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퇴로를 찾았다. 사실 캠프를 걱정할 게 아니라, 당장 자신의 생사가 문제다.

‘퇴로는···?’

요한의 시선이 빠르게 움직였다. 백화점과 종합쇼핑몰을 포함해 출구는 총 여덟 곳. 좀비가 전 도로를 빽빽하게 메우고 있을 테지만, 어떻게든 틈이 있는 곳을 찾아 빠져나가야 한다.

퇴로도 문제지만 상무의 처리 여부도 문제다. 이 캠프를 오게 한 목표물의 숨이 아직 붙어있다. 몸에 두 발의 총상이 있어 이 난리통에 살아남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유독 그런 류의 인간은 바퀴벌레만큼이나 끈질기게 살아남아 다시 나타나곤 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상무가 있을 만한 곳을 빠르게 확인하고 없으면 깔끔하게 포기하고 빠져나간다. 결정을 내린 요한이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 * *

건물 안으로 들어오니 1층을 가득 메운 좀비들이 보인다. 정문의 유리는 깨져 있었다. 수많은 좀비의 무게와 압력을 못 버틴 듯했다.

“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따라 시선이 움직였다.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이 소란스럽다. 무리의 잔당들이 식품매장 앞에서 좀비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단발적으로 총소리도 들려오는 것을 보아, 예상대로 상황이 그렇게 좋지는 않은 듯했다.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명의 희생자가 좀비의 먹잇감이 되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희생자가 점점 늘어나자 조폭 무리의 사람들도 점점 자리를 이탈한다. 그러나 이탈한 사람들도 결국 좀비 떼에 가로막혀 잇따른 비명을 내지를 뿐이었다.

요한은 핏자국을 따라갔다. 핏자국은 2층 종합쇼핑몰로 향했다. 상당했던 출혈의 흔적도 점점 따라갈수록 간헐적으로 바뀌었다.

어느덧 도착한 구름다리 근처에 좀비들이 몰려 있다. 아마 상무가 지나간 이후 모여든 좀비인 듯했다. 요한은 소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방향을 틀어 3층으로 올라갔다. 예상되는 곳은 두 군데. 의무실과 종합사무실.

의무실의 위치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 요한은 우선 종합사무실로 향했다. 1층에 점점 쌓여 가는 좀비에 요한의 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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