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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24화 (24/176)

<24화>

정환이 좀비 작살을 빙빙 휘두르며 시선을 끄는 사이 두 명의 청년이 내려갔다. 무사히 문까지 달려간 두 청년이 정환을 불렀다.

“형!”

이제는 바리케이드는 그저 발돋움 판이 되었을 뿐인 듯 좀비들이 우수수 넘어갔다. 정환도 더는 버틸 수 없어 탑차에서 뛰어내려 바닥을 굴렀다.

무릎과 손바닥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파할 새도 없다. 정환이 좀비들이 없는 공간을 헤집으며 철문을 향했다.

철문 앞에서 먼저 내려갔던 성배와 기문이 좀비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몇 보를 더 뛰던 정환이 발걸음을 멈췄다. 자신과 철문 사이에 너무나 많은 좀비가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문을 지키고 있는 저 둘도 무사하지 못 한다.

“문 닫아!”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두 사람에게서 정환의 모습이 좀비들에게 완전히 가려졌다.

성배가 도저히 못 버티겠는지 문을 닫았다. 쿵쿵거리며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기문이 소리쳤다.

“야, 잠깐, 정환 형이!”

“지금 문 앞에 좀비가 몇 마리가 있는지나 알아?”

기문이 다급하게 문을 열려고 했으나 성배가 만류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들린다. 대체 저 건너편에는 몇 마리의 좀비나 자신을 향해 아가리를 들이밀고 있을까. 기문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러나 위기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쨍그랑! 무언가가 깨지는 쩌렁쩌렁한 소리에 기문과 성배의 눈이 동시에 한 곳을 향했다. 1층의 유리문이 깨지고 그 깨진 통로를 통해 좀비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사람 하나가 간신히 통과할 것 같던 통로는 제 살이 통째로 찢겨나가는지도 모르는 좀비들 때문에 점점 균열이 커지고 있었다.

드득, 드드득, 끔찍한 소리를 내며 수십 수백 마리의 감염자들이 좁은 유리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다. 어떤 좀비는 깨진 유리 조각에 흘러나온 내장을 덜렁거리기도 하고 어떤 좀비는 얼굴이 반쯤 찢어져 있다.

모여드는 좀비에 불안한 마음으로 경계를 서고 있던 사람들도, 1층에서 햇볕을 쐬며 쉬고 있던 사람들도 눈에 경악이 물든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도 모르겠다는 표정.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회색빛이 되었다가 흙빛이 되었다.

사람들이 물어뜯기기 시작한다.

빛이 사라져간다.

가장 먼저 상황을 파악한 것은 병진이었다. 민서와 함께 입구에서 밀고 들어오는 좀비들을 처리하던 병진이 석고상처럼 굳어버린 생존자들에게 소리쳤다.

“빨리 일어서! 좀비가 온다! 떨어져!”

‘혹시 내가 없을 때 좀비 웨이브가 터지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지하로 내려가서 버텨. 모든 식량이 다 떨어질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밖으로 나오지 마.’

요한이 생존자 캠프의 관리자들에게 남겨놓은 마지막 말. 그리고 그가 덧붙였던 말이 뒤이어 떠오른다.

‘절대 막으려고 하지 마. 그건 막을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병진은 처음 유리문이 뚫렸을 땐, 경계 인원들과 함께 어떻게든 이곳을 막아보려고 했다.

유리가 깨졌다고 해도 입구는 하나뿐이다. 몇 개월 전처럼 좀비 한 마리에 전전긍긍하던 겁 많던 도망자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대로 버티다가는 더 희생자가 생길 수도 있었다. 이렇게 위험한 곳에 자신의 부인을 계속 둘 수도 없다. 병진은 제 옆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민서를 보며 마음을 바꿔먹었다. 부재중인 자신들 리더의 말을 따라야 한다.

“지하로 내려가자!”

병진의 외침에 생존자들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차분히 대처하면 희생자 없이 대피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병진은 곧 생각을 바꿨다.

‘좀비들이 너무 빨라.’

이놈들의 속도가 자신이 알던 그 속도가 아니었다. 놈들은 절뚝거리면서도 성인 남성의 속보 수준으로 다가왔다. 마음 급한 생존자 몇 명이 도망가다 부딪히거나 넘어졌다. 첫 번째 희생자가 생겼다. 좀비들이 넘어진 생존자에게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다. 새된 비명이 날카롭게 새어 나왔다. 한 명의 죽음을 목도하자 생존자들이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병진도 민서의 손을 붙잡고 뛰었다. 이제는 일행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그녀부터 살리고 봐야 했다.

“아악!”

민서의 비명이 들렸다. 병진이 화들짝 놀라 그녀를 바라봤다.

“민서야!”

민서가 반대쪽 팔을 붙잡고 있었다. 하필 좁은 통로를 통과하다 튀어나와 있던 가구의 절단면에 팔꿈치를 베인 것. 병진은 자신이 우려하던 상황이 아님에 감사하면서도 다급한 마음으로 제 상의 속옷을 찢어 그녀의 팔에 감쌌다.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좀비. 병진이 그녀의 팔에 매듭을 꽉 묶으면서 다가온 좀비의 명치께를 발로 걷어찼다. 좀비가 괴성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가 다시금 일어나 다가온다.

“오빠, 빨리 가자.”

병진은 고개를 끄덕이곤 곧바로 비상구까지 달렸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성배와 기문을 끝으로 비상구의 문이 닫혔다. 잠시 후 끼이익하는 문 긁는 소리와 좀비들의 괴성이 철문을 뚫고 들어왔다. 사람들의 눈에 공포가 감돌았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병진아. 정환이는?”

한 노인이 병진에게 물었다.

“좀비들이 수도 없이 들이닥치고 있어요. 1층 유리가 깨져버렸습니다. 아무래도··· 1층은 다시 포기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철문을 뚫고 들어오진 못할 테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병진이 사람들을 안심시켰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지우지는 못했다.

그제야 숨을 고르던 병진이 기문과 성배를 바라봤다.

“정환이는?”

“주차장도 뚫렸어요. 얼마나 좀비 새끼들이 많은지, 죽이고 죽여도 시체를 밟고 넘어오더라니까요······.”

“그래. 정환이는?”

“형은 못 들어왔어요······.”

“죽었다고?”

“죽지는 않았어요. 아마 반대쪽으로 도망치셨을 거예요.”

죽지 않은 건 다행이었지만 어쨌든 이곳으로 도망쳐오지 못한 이상 위험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기문의 말을 들은 병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요한도 없고, 그가 대리로 지정해준 정환도 없다. 리더의 부재. 예고한 위기상황이 닥쳤는데 자신들을 이끌어 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민서는 소독을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피가 묻어있는 걸 보면 사람들이 더 불안해할 것 같아서였다.

생존자들은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지하 1층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혼자 있는 것이 더 불안한 듯 평소에 홀로 생활하던 사람들도 빠짐없이 모였다.

“세리는?”

인원파악을 하던 병진이 세리의 안부를 물었다. 주차장에서 당한 사람과, 1층에서 당한 사람을 제외하고 자리에 없는 건 정환이와 세리뿐이었다. 정환이는 주차장에서 낙오되었다고 하지만 세리는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모, 모르겠어요. 옥상에 있나?”

세리가 좋아하는 장소는 옥상이었다. 옥상에서 요한이 언제쯤 돌아오나 바라보는 게 그녀의 새로운 취미였으니까.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했다. 이곳은 그렇다 치더라도 옥상에 고립되어 있다면 당장 식량부터가 문젤 터다.

쾅쾅거리는 소리와 꺼억대는 좀비들의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흔들렸다. 좀비들이 당장에라도 에스컬레이터의 바리케이드를 무너트릴 기세로 달려들고 있었다.

두 명의 생사도 중요했지만 당장 저 덜컹거리는 에스컬레이터 바리케이드부터가 해결해야 할 불안요소다. 워낙 많은 가구를 빈틈없이 쌓아 둔 덕에 쉽사리 뚫리지는 않겠지만, 그 새로 새어 나오는 좀비들의 울음소리는 자꾸만 신경을 갉아먹었다.

병진은 두려운 듯 곁에서 떨고 있는 민서를 품에 안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줄게.”

“어지러워.”

“너무 놀라서 그래. 기대 쉬고 있어.”

민서가 대답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몇 년을 믿고 의지했던 사람. 가만 보면 자신과 똑 닮아 겁 많고 소심했던 사람의 품이 이렇게 든든하게 느껴지게 될 줄은. 민서의 눈빛을 받은 병진이 가만가만히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안 되겠네. 병진 군. 사람들이 불안해하니, 바리케이드를 좀 더 쌓는 게 어떤가?”

“좋습니다. 다들 날 좀 도와주겠어?”

박 노인의 제안에 병진이 일어섰다. 요한과 정환이 없으니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병진을 따랐다.

생존자들은 이미 이중 삼중으로 쌓여 있는 바리케이드에 더 많은 가구를 쌓아놓기 시작했다.

하나의 틈도 없어질 때까지 쌓아놓자 좀비들이 내는 소음이 다소 가로막혔다. 그러고 나서야 요동치는 심장이 가라앉는다.

몇 분, 아니 몇십 분이나 지났을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도 상황에 익숙해진 듯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호흡 곤란이나 과호흡이 온 것처럼 헉헉대던 사람들도 쌕쌕거리는 가는 호흡을 내뱉었다. 특히나 펑펑 울어 대던 아이들의 울음이 그치니 마치 위험이 지나간 것만 같았다.

세 아이의 엄마가 아이들을 꼭 껴안았다. 괜찮아. 아이들은 엄마의 옷자락을 꼭 붙잡았다.

노인들도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병진은 민서를 품에 안은 채 진정시켰다.

생존자들의 마음은 동상일몽이었다.

빨리 이 난리가 지나가기를.

기문은 무언가 불안한 듯 나이프를 쥐었다가 폈다가를 반복하다 가슴이 답답했는지 주머니에서 자동식 차 키 하나를 꺼냈다.

말 한 마리가 허공을 향해 앞발을 들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저 기분이나 내고자 4층 주차장에서 좀비 한 마리를 처리하고 얻은 전리품이다. 아직 시승도 안 해본.

“좀 안정되면 주차장에서 페라리 한 번 몰아보려고 했는데 이게 웬 난리냐. 안 그냐?”

몇억씩 하는 외제 차 한번 간지 나게 끌어보려고 했는데. 기문의 중얼거림이 힘없이 사라졌다.

기문은 성배가 대답이 없자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성배는 피곤한지 앉은 자세로 무릎을 반쯤 접은 채 그 위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피곤한가. 기문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렇게 약 십 분 후 같은 자세로 한참을 있자 기문이 성배를 툭툭 쳤다.

“야, 뭐 해? 피곤하면 가서 좀 누워 있어.”

툭툭 쳐도 반응이 없다. 기문이 고개를 갸웃했다.

“야.”

그리고 고개를 든 성배는 눈에 검은자위가 보이지 않았다. 회백색 눈동자가 당장에라도 빠질 듯 튀어나와 있었다.

“성배야?”

성배가 기문을 덮친 건 한순간이었다. 기문은 당장 그를 공격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순간 망설였다. 방금까지도 웃고 떠들던 친구를 차마 단호하게 찔러낼 수 없었던 그 찰나의 망설임.

기문을 덮친 성배가 그의 목을 물어뜯었다. 파악, 시뻘건 핏물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순식간에 홀이 비명으로 물들었다. 성배는 비명에 반응이라도 한 듯 타겟을 바꿔 가까이 있는 노인의 팔을 물어뜯었다.

“아아악!”

실내는 곧 아비규환이 되었다. 한 명의 좀비가 벌써 두 명을 감염시켰다. 병진의 눈에 상처 입은 성배의 다리가 들어왔다.

물린 상처였다.

병진이 황급히 성배를 막기 위해 달려들었으나 어느새 기문이 좀비가 되어 일어나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동시에 두 마리를 처리하는 건 무리였기에 병진이 기문의 배를 걷어찼다. 그 사이 희생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다들 실내로 들어가! 민서야, 너도!”

병진이 황급히 외치며 민서를 손으로 밀쳤다. 성배와 기문은 웨이브에 영향이라도 받은 듯 너무나 빠른 속도였고, 병진에게는 민서를 보호하는 게 더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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