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변종 골룸.
저 장신의 몸으로 전투 중엔 네발로 기어 다니는 좀비. 마치 생김새가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와 닮아 부르기 편한 대로 붙인 이름이었다.
이번 웨이브의 원인이 근처의 군부대를 박살 낸 변종이 아닐까 싶었는데, 이놈이라면 군부대를 공격한 놈과는 다른 변종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게 아니라면 부대의 전투력이 극심하게 낮았거나. 이놈은 대처법만 알면 충분히 대응이 가능한 종이었으니까.
위험도를 1부터 10까지 매긴다면 한 5쯤 되는 놈. 군부대 하나를 박살 내려면 8이나 9 정도는 되어야 할 터다. 대한민국 육군은 전 세대 중 가장 혈기왕성하고 전투력 있으면서도 중화기와 병기로 무장한 집단. 웬만한 위협에 무너질 집단이 아니었으니까.
요한이 기억하는 가장 두려운 변종은 ‘다윗’.
군인들은 파편에 상처 입은 채 대기 중 감염된 동료들과 철책을 밀어붙이는 좀비들, 양쪽으로 전투를 치러야 했다. 대부분의 군대가 무너지는 패턴이 비슷했다.
변종의 존재만 아니었다면, 대한민국 군대가 무너지는 일은 절대로 없었을 터다. 아니, 최소한 변종들의 대처법만 알았더라도. 예상하지 못했던 괴종들의 등장이 종말을 부추긴 셈이었다.
“뭔가 소름 끼치는군.”
하진이 한마디 거들었다. 요한이 노리쇠를 한 번 후퇴전진 한 뒤 조정간 위치를 자동으로 변경했다.
“나쁜 소식 하나와 좋은 소식 하나, 그리고 상당히 좋은 소식이 있는데 뭐부터 들을래.”
“상당히 좋은 거부터.”
“좋은 소식.”
두 사람의 대답은 거의 동시였다.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 소식부터 말하자면, 저 녀석은 일반 좀비들보다 수십 배는 까다롭고 강해.”
“아니, 그럴 거면 왜 물어본 거야?”
“좋은 소식은?”
스위퍼가 볼멘소리를 하자 하진이 요한을 재촉했다. 대화는 편안했지만, 분위기는 사뭇 긴장된 채였다. 저 변종 좀비가 스멀스멀 내뿜는 기운이 상당히 불길한 느낌을 준다.
“저놈을 잡으면 이 웨이브, 좀비들이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게 끝날 거야.”
“오, 상당히 좋은 소식은?”
요한이 총기의 조준점을 변종의 머리로 조정하면서 대답했다.
“저놈을 내가 상대할 줄 안다는 거지.”
“상대법? 그게 뭔데?”
요한의 말에 스위퍼가 물었다.
“하나하나 설명해주긴 너무 길고, 그렇게까지 위험한 놈은 아니라는 것만 말해두지. 패턴이 일정해. 싸우는 걸 잘 봐.”
요한의 말에도 두 사람의 긴장감은 쉽게 풀리지 않는 듯했다. 변종은 세 사람이 떠드는 소리에도 그 시뻘건 눈을 데룩데룩 굴릴 뿐 움직이지 않았다. 하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그런데 저놈은 왜 안 움직이는 거지?”
“아직 놈의 거리에 들어가지 않았거든.”
요한이 하진에게 손전등을 던지며 덧붙였다.
“하진, 스위퍼, 더 물러서. 열 걸음 정도. 하진은 후방을 경계하고, 스위퍼는 놈을 비춰. 빠르다고 놓치지 말고 잘 따라가.”
요한의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다. 지금은 우선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물러서자 요한이 방아쇠를 당겼다. 자동 연발 사격 소리가 철도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끄아아악!-
요한이 쏜 총알 첫발이 변종에게 명중했다. 첫발은 정확하게 놈의 머리를 꿰뚫었으나, 이후의 사격은 반동 때문에 약간 스치는 데에 그쳤다. 요한은 조정간을 바꾸지 않은 채 침착하게 사격을 계속했다.
놈이 귀가 찢어질 듯한 괴성을 질렀다. 다시 한번 총알이 놈의 아가리에 꽂힌다. 사람의 모양을 했던 얼굴이 반죽처럼 무너지고 뿜어진 피가 낭자했다. 보통 좀비였으면 벌써 쓰러질 상처였으나, 놈은 휘청거릴 뿐 쓰러지지 않았다.
그 순간, 놈의 몸이 시야에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뭐, 뭐야!”
변종의 움직임을 놓친 스위퍼가 당황해서 손전등을 여기저기 비췄다. 실낱같은 빛이 분산되며 시야가 이지러진다. 요한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날아와 꽂혔다.
“손전등 흔들지 마! 왼쪽 천장! 모서리! 반시계방향으로 돈다!”
요한의 일갈에 스위퍼가 그제야 놈의 모습을 제대로 비췄다. 놈은 지하도 천장 모서리에 네 발을 붙인 채 요한의 주변을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발톱이 놈이 발을 디딜 때마다 시멘트벽에 콱 박혔다. 시야가 돌아온 요한이 다시 사격을 시작했다.
놈은 천장을 따라가다가 펄쩍 뛰어 땅을 한 번 밟고는 다시 반대쪽 천장에 붙는 식으로 요한의 주변을 배회했다.
마치 사냥꾼이 먹잇감을 노리는 듯한 모양새.
다다다! 자동 사격의 발포 음이 계속해서 지하도를 울렸다. 요한의 에이밍이 꾸준히 놈의 움직임을 따라갔지만, 맹수가 달리는 듯한 속도에 쉽사리 명중시킬 수 없었다.
달칵, 요한이 사격을 멈추고 곧바로 예비 탄창을 갈아 끼웠다. 정지 동작 없는 부드러운 탄창 교체였다.
‘셋, 넷······.’
요한은 조준점으로 열심히 놈을 따라가면서도 놈이 돌은 바퀴 수를 꼼꼼히 셌다. 스위퍼가 놈을 놓쳤을 때 제 등 뒤로 착지하는 소리가 들렸으니 이제 네 바퀴째, 그리고 다섯 바퀴.
요한이 견착을 풀고 뜨겁게 달아오른 총열이 몸에 닿지 않게 핸드가드와 개머리판을 몸에 바짝 붙이고 옆으로 굴렀다.
옆 구르기 시전과 동시에 팍! 하고 방금 전까지 요한이 있던 자리를 변종이 벼락같이 습격했다.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놈은 다시 천장에 붙어 돌기 시작했다.
곧바로 일어난 요한이 다시 사격자세를 잡았다. 정조준해서는 놈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없다.
어느 정도 변종의 속도에 익숙해진 요한이 놈의 이동 속도와 거리를 예측해 놈의 이동 방향 앞쪽에 사격하는 예측사격으로 바꿨다.
파바박, 살점 튕겨 나가는 소리와 함께 유효타가 몇 발 들어갔다.
사냥은 수월했으나 탄약이 문제다. 남은 탄창은 두 개. 탄창이 모두 떨어지기 전에 놈을 무력화시켜야 한다. 근접전으로 들어가게 되면 위험도가 훨씬 높아진다.
사격하는 요한의 몸짓에 조금씩 조급함이 생겨났다.
침착하게.
좀 더 침착하게.
긴장감에 몸이 굳을 때마다 요한이 스스로 뇌까렸다.
얄따란 불빛이 이따금씩 놈을 조명할 때마다 그 섬뜩함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난다. 놈은 마치 무대를 즐기는 마술사처럼 조명 안에 나타났다 사라졌다가를 반복했다. 스위퍼가 나름 애써주고는 있었지만.
탕! 운 좋게도 몸통을 노려 쐈던 총이 놈의 팔에 명중했다. 다시 한번 유효한 총알 한 발이 명중한 순간, 놈의 팔 한 짝이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키에에엑! 변종이 고통에 찬 괴성을 질러 댔다.
“하진! 좀비가 온다!”
요한이 변종의 괴성을 듣고 후방을 경계하던 하진에게 소리쳤다. 넋을 놓은 채 요한의 싸움을 지켜보던 하진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시 후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좀비는 없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지하도 안을 메우고 있었다.
약 3분 정도가 지났을 때 어둑어둑한 지하도 끄트머리부터 좀비들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시야가 어두워 몇 마리나 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하진이 마른침을 삼켰다.
스위퍼는 변종의 움직임을 손전등으로 밝혀야 하는 상황. 요한의 전투를 지원해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어둠 속에서 혼자 싸울 수밖에 없다. 괜히 좀비를 놓쳤다가는 뒤에 있는 녀석들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생각을 정리한 하진이 나이프를 꽉 쥐고 놈들이 도착하기 전에 좀비들이 다가오는 곳으로 먼저 다가가기 위해 움직였다.
더 앞에서 버텨야 혹시라도 좀비들이 빠져나가 뒤의 녀석들을 덮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리라.
한 마리도 지나가게 놔둘 수 없지.
하진이 기합을 내질렀다.
요한은 다시 한번 탄창을 갈았다. 마지막 탄창. 등 뒤에 한 정의 총이 더 있었지만, 남은 탄약은 여유가 없었다.
놈은 몇 개의 총상을 입었으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요한이 결리는 팔 근육을 두어 번 접었다가 펴며 조정간을 다시 반자동으로 바꿨다.
빠른 타겟을 최대한 한 발이라도 더 맞추기 위해 자동 사격을 했었다. 하나 이제는 한 발 한 발을 정확하게 맞추는 수밖에 없다.
“형씨! 앞에도 뭔가 있어!”
설상가상, 정면에서도 좀비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손전등의 불빛이 잠시간 정면을 비췄다가 다시 변종을 따라갔다. 그 찰나의 순간, 요한이 놈들과의 거리를 파악했다. 약 3~5분 정도의 거리.
좀비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손전등을 비췄다가 떼는 행동에 요한이 감탄했다. 제법 전투 센스가 있는 녀석이다.
그리고 다시 다섯 바퀴째, 요한이 몸을 굴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스타트가 약간 늦었다. 요한이 구르는 순간이 좀비가 도약한 뒤였던 것.
놈의 공격으로부터 멀리 피하지 못했고, 착지할 때 일으킨 먼지가 얼굴을 덮쳤다. 텁텁한 느낌에 기침이 나오고 터럭들이 눈에 들어갔는지 눈이 떠지질 않는다.
이 상태로 공격받으면 끝장이다.
긴장감에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일어났다. 다행히 놈은 사냥에 실패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금 외벽에 달라붙었다.
일단 비척거리며 일어나 사격자세를 했다. 눈이 따갑다. 몇 번 눈을 비빈 후에 쓰라린 눈으로 놈을 쫓고 있는데 스위퍼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울렸다.
“형씨! 곧이야! 다섯 바퀴!”
두 번의 공격 만에 놈의 패턴을 파악한 모양이다. 그의 도움 덕에 공격 타이밍은 잡았으나 피하기엔 늦은 상태.
요한은 속으로 그에게 감사하며 핸드가드와 개머리판을 잡고 총기를 정면으로 들어 올렸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변종의 몸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요한이 총기로 그의 돌격을 막았다. 짓누르는 무게감에 무게중심이 살짝 뒤로 휘청였으나 허리에 힘을 꽉 주고 버텨냈다.
놈이 하나 남은 팔로 요한의 총기를 밀어붙이며 이빨을 딱딱거렸다. 눈앞에서 딱딱거리는 이빨이 섬뜩하다.
쩍 벌어질 때마다 실처럼 늘어나는 침 때문에 고약한 악취가 코를 찔러왔다.
“스위퍼! 발밑으로 도끼 보내!”
스위퍼가 한쪽 손으로는 변종을 비춘 채 몸을 낮춰 도끼를 미끄러지듯이 흘려보냈다. 빙글빙글 돌던 손도끼가 정확하게 요한의 발밑에서 멈춘다.
요한이 도끼를 집기 위해 몸을 숙였다. 거의 변종이 자신을 덮치고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손도끼를 잡기 위해 한쪽 손을 떼자마자 힘의 균형이 무너진다. 요한은 뒤로 넘어지며 손도끼를 집었다. 딱! 놈의 이빨이 바로 제 귀 옆을 씹었다.
이어 번개같이 요한의 손이 움직였다. 휘둘러진 도끼가 놈의 머리와 목을 분리했다. 검붉은 피가 분수같이 터져 나왔다.
목이 날아갔는데도 놈의 공격이 이어진다. 요한이 다시 한번 구르기로 손톱을 피한 뒤 이번엔 한쪽 다리를 도끼로 잘라냈다.
“끄아아!”
변종을 상대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다가온 일반 좀비가 어깨를 덥석 잡았다. 요한이 기겁하며 반대쪽 주먹으로 일반 좀비의 턱을 가격했다.
빠각! 경쾌한 타격 소리와 함께 좀비가 뒷걸음질 치는 사이 변종의 남은 다리 하나를 잘라낸다. 놈이 무너진다.
남은 거라곤 몸뚱어리와 한쪽 손뿐인 변종이 발작하듯 꿈틀거린다. 요한은 홱 몸을 돌려 전방에 총을 난사했다.
좀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최대한 넓은 범위로 총을 난사했다. 근처까지 다가온 좀비들이 쓰러지거나 충격에 움직임이 느려졌다. 곧바로 스위퍼의 손전등이 뒤늦게 좀비들을 비춘다.
“합류!”
“그 말을 기다렸어!”
요한이 손도끼를 뒤집어 손잡이 부분을 앞으로 나오게 잡았다. 스위퍼는 달려오면서 도끼를 홱 낚아챈 뒤 한 손에는 손전등을, 한 손에는 손도끼를 들고 좀비 잔당들을 처리해댔다.
변종과의 힘 싸움 끝에 체력이 너덜너덜해진 요한을 지나쳐 스위퍼가 좀비들을 처리하는 사이 숨을 고르고 총기를 바꿔 멨다. 곧바로 남은 탄환을 확인하는 요한.
‘열한 발.’
충분한 개수였다. 요한은 꿈틀거리는 변종의 머리와 몸통에 남은 총알을 모두 쏟아부었다. 놈의 꿈틀거림이 멎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