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4. 캠프확장
수색조는 요한이 쉘터에 들러 탄약을 충원한 이후 움직임을 개시했다. 일행들은 요한의 외출에 고개를 갸웃했으나 요한은 총포상에 총알을 충원하러 갔다 왔다고 둘러댔다.
마트에는 소총 두 정을 두었다. 하나는 정문, 그리고 하나는 주차장 경계 시에 경계병들에게 주어 교대할 때마다 소총을 전달하고, 탄약의 수를 확인하라고 지시해 두었다.
탄약은 각 소총당 세 발씩이었다. 실탄은 혹시 모를 침입자를 대비한 방책이었다. 탄약이 너무 많은 것도 위험했고 아예 없는 것은 더 위험했다. 지금 거리에는 좀비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 분명 생존자들이 하나둘 방문할 수 있었다.
“경고문을 읽고도 정문으로 들이닥치는 생존자는 고민하지 말고 쏴. 주차장 쪽으로 사람들이 돌아오면 무장해제시키고 전신을 확인해서 상처가 없는 경우에만 들여보내고. 들여보낸 뒤엔 먹을 걸 주고 격리해 둬. 이유를 잘 설명해주고 그래도 거부하면 마찬가지로 그냥 쏴버려.”
요한의 지시에 정환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 정리를 마치고 수색조는 H백화점으로 향했다. 마트와 마찬가지로 입구 부근에 몰려 있던 좀비들은 대부분 대로로 몰려간 뒤였다. 백화점 안에도 다수의 좀비가 남아있었으나 좀비 웨이브가 끝난 후의 좀비는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포지션은 마트의 문을 봉쇄할 때처럼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진형을 잡았다. 요한이 선두, 하진이 후방, 그리고 세리와 스위퍼가 양쪽 날개를 맡았다. 우려와는 달리 세리는 한쪽 날개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수색조는 가장 먼저 백화점 내의 대차(:엘 트레이너)를 두어 개 확보해 종합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 앞, 요한은 문을 두어 번 두드리고 반응을 기다렸다. 반응이 없자 넷은 문을 박차고 들어가 동시에 진입했다. 내부는 비어있었고 물자들은 그대로였다.
요한이 들고 있던 권총을 허리춤에 넣은 후 물자들을 싣기 시작했다.
“상무는 죽은 걸까?”
하진이 물었지만, 요한은 대답할 수 없었다. 정황상은 그 추측이 가장 가능성이 크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어떻게든 티가 났을 터다.
남아있던 물자들을 대차에 실은 후 수색조는 옥상에 들러 무전기 두 개를 챙겼다. 옥상에 펼쳐진 시체에 세리가 인상을 찡그렸다. 시체의 사망 원인은 대부분 총상이었다. 그녀가 요한을 힐끗 바라봤다. 시선을 느낀 요한이 세리와 눈을 마주치자 세리가 금세 시선을 돌렸다.
수색조는 곧바로 지하로 내려왔다.
지하에는 갓 생긴 좀비들과 이미 썩어들어가는 좀비들이 뒤섞여 있었다.
일행은 손속을 두지 않고 좀비들을 팍팍 쓰러트려 넘겼다. 그러다 요한이 한 여성 좀비를 죽이려던 찰나, 세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
그리고 그 좀비를 향해 비척비척 걷는 세리의 동공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언니?”
그 좀비는 세리의 언니였던 모양이다. 요한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리가 무작정 달려들려 하자 요한이 한 손을 들어 그녀를 끌어당겼다. 세리의 표정이 무너져 내렸다.
“진정해라. 그러다 물린다.”
좀비는 괴성을 지르며 세리와 요한을 향해 달려들었으나 달려들 때마다 요한에게 밀쳐졌다.
품에 갇힌 세리의 움직임이 멎었다. 혹시나 또 울고불고 난리를 치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하는 사이 세리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힐끗 쳐다보니 다행히 울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얼빠진 듯한 표정. 어쩌면 이렇게 될 걸 예상했다는 듯.
“저 좀비만 놔두고 나머지는 다 처리해.”
요한의 지시에 두 사람이 사이드로 빠지면서 좀비들을 줄여나갔다.
요한이 세리의 언니였던 좀비를 붙잡아 끌었다.
“이미 죽은 사람이다. 네가 처리해.”
“···못 해.”
“네 가족이잖아.”
“···그냥, 죽여. 됐으니까.”
“남의 가족을 죽였다는 죄책감을 안겨줄 셈이야?”
세리의 잠긴 목소리에도 요한은 단호했다.
요한의 말에 세리가 지친 표정으로 일어나 얼굴을 비비더니 좀비의 얼굴에 힘껏 나이프를 꽂아 넣었다.
“실은 백화점으로 좀비들이 몰려 들어가는 걸 계속 보고 있었어.”
“그랬군.”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시체를 보기 전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어.”
가족의 죽음이다.
가족이라고 좀비를 질질 끌고 다니는 꼴을 볼 생각은 없었지만, 최소한 살아있다는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다고. 그리고 죽은 자를 위한 애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요한이었다.
이 시대에서 죽은 자에 대한 가장 최선의 애도는 사랑하는 이에게 받는 안식이리라.
세리가 씩씩하게 일어났다.
요한은 그녀가 일어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을 지시했다. 마치 방금 가족을 잃은 상황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진짜 냉정하게 부려먹는구나. 냉혈한.”
“알면 밥값 해라.”
정신없이 일하고 움직이는 게 그 상황을 잊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통조림, 건식품, 캔 음료, 물 위주로 챙겨.”
“라면은 어떻게 해? 유통기한 지난 게 대부분인데.”
“챙겨. 배고프면 쓰레기도 주워 먹게 돼 있어.”
라면의 권장 섭취 기간은 육 개월이지만, 이 상황에서 유통기한, 사용기한 따위를 따지는 건 사치였다. 먹고 죽는 게 아니라면 먹을 것은 전부 챙기는 게 맞았다.
대차를 끌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건 상당히 고된 작업이었다.
어쩔 수 없이 모든 물자를 챙겨 대차들을 입구에 모아놓은 후, 세리와 스위퍼에게 맡겼다.
하진과 요한은 골드문의 잔당 중 생존자가 없는지 백화점 내부를 샅샅이 훑었다.
괜한 전투가 이어지고 번거로운 작업에 체력이 점점 떨어져 갔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작업이었다.
네 개의 무전기를 모두 회수하고 마지막 층까지 전부 뒤졌지만, 생존자는 없었다.
“요한.”
마지막으로 합류한 하진이 요한을 불렀다.
“이것 참 이상한데······.”
“뭐가?”
“상무의 시체가 없어. 죽었으면 좀비가 되든, 시체라도 남아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뒤져도 없네.”
하진의 말에 요한의 눈썹 사이 골이 깊어졌다.
삼류 악당 명줄이 길기도 하네. 요한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할까?”
“음··· 일단 염두에 두고만 있자. 마음 같아선 확실히 처리하고 싶지만, 무리할 순 없어. 캠프의 경계를 강화하고 주기적으로 주변을 순찰해야겠어. 아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야.”
수색조 네 사람은 H백화점의 물자를 싹싹 긁어모아 캠프에 던져놓고 주변 편의점 두 곳을 더 털었다. 웨이브로 모여들었던 좀비들은 어느덧 흩어져 위협적인 수는 아니었다.
호재인 점은 좀비들이 유난히 많았던 거리인 만큼 많은 편의점이 아직도 물자 보전상태가 양호했다는 것.
서너 번을 더 왔다 갔다 하니 창고와 하역장에 물자가 점점 쌓여 갔다.
“휴, 그만 모아도 될 것 같은데.”
스위퍼의 말에 요한이 고개를 젓는다. 이곳을 캠프들의 중심이 되는 보급캠프로 만들 예정이다. 도시 전체의 물자를 싹싹 긁어모아도 모자라다.
“그보다 시체를 더 효율적으로 태울 무언가가 필요해.”
전투가 잦아질수록 쌓여 가는 시체가 늘어났다. 시체를 방치해 둘 수도 없고 매번 시체를 태울 때마다 아까운 기름을 낭비할 수도 없다.
요한이 부천시의 지도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상념에 잠겼다.
할 일이 산더미다. 캠프도 확장해야 하고, 이왕이면 무기도 수급해야 하고, 주변 도시에서 좀비들이 무한정 들어오는 걸 막으려면 길목도 차단해야 한다.
우선 그 전에 도시의 생존자들부터 모으는 게 먼저다. 계획은 확실했으나 변수가 많았다. 아포칼립스 시대에서 6개월이면 상당히 긴 시간이다. 도시 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지 상상도 하기 힘든 시간.
“요한 씨. 잠시 이걸 봐.”
관리자로 일하고 있던 서준이 그를 불렀다. 그는 요한이 1층을 최초로 점령할 때, 안전을 위해 문을 잠갔단 이유만으로 관리자가 되었던 사람으로, 생각보다 그 역할을 잘 해주고 있었다.
“그건······.”
“새총이야.”
서준이 보여준 건 나무와 긴 고무를 이용해 만든 ‘Y’자 모양의 새총이었다.
“마트 철물판매대에 볼트 같은 게 엄청나게 많잖냐. 총알은 아껴야 하고, 화살은 사용하면 회수를 해야 하니까 이렇게 볼트로 주차장 쪽 경계를 강화하면 편리할 것 같지 않냐?”
“한 번 시범을 보여줄 수 있습니까?”
서준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주차장으로 앞장섰다. 핑- 날아간 볼트가 허공을 가른다. 서준이 계면쩍은 표정으로 몇 번을 더 시도하더니 이내 한 발이 좀비의 머리에 깊숙이 박힌다.
좀비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볼트를 머리에 박은 채 두리번거리다 이내 픽 쓰러졌다.
“저놈들, 두개골의 경도가 일반 사람들보다 약해. 이것만으로도 좀비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더라고.”
“오. 훌륭합니다.”
요한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의 말대로 이 가볍고 간편한 새 무기는 여러모로 쓸모가 있었다. 대인전에 살상력이 모호해 굳이 무기로 쓸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주차장 경계용으로 쓰자면 이만한 게 없었다.
순수한 감탄에 서준이 완연한 미소를 감추려 애썼다. 마치 너한테 칭찬받으려고 한 것은 아냐! 라는 표정으로 머리를 쓱쓱 긁적이더니 요한에게 건넸다.
“아무튼, 참고하라고, 내가 열 개쯤 더 만들어 둘 테니까.”
“수고 부탁드립니다. 경계할 때 한 명은 총을, 한 명은 새총을 들고 경계하면 딱 좋겠네요.”
“흠, 뭐 별것도 아닌데. 호들갑은.”
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요한이 웃음을 흘렸다. 요한은 며칠 동안 휴식도 취할 겸 캠프 내부를 정리했다. 캠프는 한동안 좀비로부터는 안전할 거다.
수색조를 포함해도 20명에 한참 못 미치는 인원. 게다가 수색조는 웬만해서는 캠프에 머무르지 않을 생각이었고, 수색조를 제외하면 고작해야 열 명이 다였다.
보조 인원들까지 경계근무를 서야 할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캠프는 점점 안정화되고 있었다.
기술 조는 다섯 명. 요한이 한 명 한 명 면담을 통해 결정한 사안이었다. 포지션이 명확한 지혜야 지금처럼 빼어난 요리실력으로 생존자들의 사기를 담당해주면 되는 부분이었고 의외로 관리직에 수완을 보이는 서준도 관리자로서 제 역할을 충실하게 해주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기술조로 뺀 정 할머니는 수선공이었다. 정확히는 수선공이었다기보다는 생존자 중 유일하게 오버로크 기계를 다룰 수 있었기에 그쪽 포지션을 맡게 됐다.
그리고 의외의 재능을 보인 사람이 있었는데, 요한은 수면을 취하던 중 시끄럽게 백화점을 울리는 소리에 잠이 깨 소음의 근원지를 찾아갔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좀비 병사들이라도 모으고 있니.”
“아- 형, 무서운 소리 하지 마세요. 이거 보세요, 형.”
정환이 가리킨 곳에는 철문의 경첩과 틈 부분이 철판으로 용접되어 있었다.
생존자 중에 용접 기술자가 있었다. 정문과 주차장 비상구를 제외한 다른 출입구를 전부 용접할 예정이라고.
사실 옆문이나 비상구 등등은 모두 손잡이를 부수면 어떻게든 열 수 있게 되어있다.
그러나 아예 손잡이를 부숴버리고 안에서부터 용접해 놓으면 이야기가 다르다. 예상치 못한 루트의 외부침입을 거의 완벽하게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정환은 미리 각 생존자의 특기를 파악해두고 있었고,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상무의 존재를 듣자마자 경계를 강화한 것.
“굉장한걸. 훌륭해.”
요한이 두 사람을 한껏 칭찬했다.
진심 어린 감탄사에 두 사람은 마치 상장이라도 받은 듯한 표정으로 들떠 올랐다.
요리사, 수선공, 용접공, 행정가 다음의 기술조는 바로 박 노인이었다. 박 노인의 보직은 다름 아닌,
“요한 군. 혹시 밖에서 흙과 비료를 좀 구해줄 수 있겠나?”
“흙이요?”
“옥상에 텃밭을 만들어 보려 하네만.”
농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