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그다음 날도 수색조는 거의 죽은 듯이 잠을 잤다. 밥을 먹을 때와 하진의 상태를 확인할 때를 제외하곤 요한도 몸 상태 회복에 주력했다. 사흘째 되는 날이 되어서야 요한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요한이 일어났다는 것은 곧,
“일어나, 일하자!”
노동이 시작된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으아, 저 일 중독자 좀 누가 잡아가아······.”
“동감.”
“악, 놀라라! 뭐야? 언제 들어왔어?”
세리가 꾸물거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리자 한쪽 구석에서 언제 기어 들어왔는지 모를 스위퍼가 몸을 불쑥 일으키며 덧붙였다.
“어, 미안. 아가씨. 마땅히 잘 데가 없어서 말이지.”
“아니 거실도 넓은데··· 그래 뭐,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때. 그보다 오빠 그 아가씨 호칭 좀 어떻게 할 수 없어?”
“그럼, 언니?”
“그건 좀 더러운 느낌인걸.”
“와, 너무한데······.”
밖에서 꾸물거리지 말고 나오라는 요한의 타박이 이어졌다. 정말이지, 그의 쓸데없는 부지런함은 할 말을 잃게 한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군말 없이 요한의 부름에 거실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며칠 전 전투가 마치 꿈이라도 꾼 듯한 느낌을 받는 듯 공허한 표정이었다.
사실 그 정도로 현실감 없는 전투이기도 했다.
죽은 자들에 대한 슬픔과 애도. 살아남았다는 안도감. 그리고 그 생생했던 공포와 체력의 한계치까지.
마치 방금 꾸다 일어난 꿈만 같다.
“물자와 탄약을 새로운 쉘터로 옮길 거다. 여러 번 왔다 갔다 할 것 같으니까 해지기 전에 끝내려면 부지런히 움직여. 스위퍼, 정은, 재호는 남아서 쉘터 지키고. 나머진 전부 따라와.”
요한의 지시는 명료했고, 조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까치울부터 상동까지의 거리는 차량 주행이 가능했다. 물론, 도로가 아닌 갓길과 인도 주행이었지만.
새로운 쉘터는 기존의 쉘터와 비슷한 전원주택이었으나, 기존보다 더 크고 넓었다.
까치울처럼 마을 하나를 둘러싼 담장이 없다는 건 아쉬운 점이었다. 그래도 스무 명 남짓이 생활할 건물로는 더할 나위 없었다.
무엇보다 남녀가 트인 공간에서 생활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듣고선 여성 조원들이 반색했다.
“4층을 통째로 탄약고와 간이 보급창고로 쓸 거고, 지하실을 메인 창고 겸 대피소로 개조한다. 3층이랑 4층에 각각 네 명씩 들어가라. 여자애들은 301호 쓰고.”
요한의 지시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누군가가 질문했다.
“1층이랑 2층은요?”
“1층은 공용으로 쓸 거야. 201호는 이후에 들어오는 사람들 넣을 거고.”
“그럼, 202호는요?”
“내 방.”
“······.”
그의 단호한 말에 질문했던 조원이 입을 뚝 다물었다.
확연히 쾌적해진 공간에 사람들에게서 들뜬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몇 개월, 아니 몇 주 전만 하더라도 식량과 안전만 보장된다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던 이들이다.
편안한 안식처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그런 사람들에게 쾌적한 거처는 사치와도 가까웠다.
떠난 자에 대한 애도도 짧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6개월의 아포칼립스를 정면으로 견딘 사람들답게, 그렇게 무뎌져 가는 거니까. 잃을수록 되레 밝은 척하는 게 습관이 되었을 거다.
몇 번의 왕복으로 대부분 이사가 끝났고, 요한은 인원을 반반 나누어 새 쉘터와 기존 쉘터에 배치했다. 아직 발전판 이전공사가 덜 끝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마지막 짐 나르기를 끝내고 전원단지에 도착한 요한을 기다리는 것은 간절히 바랐던 희소식이었다.
“요한 군, 하진 군이 깨어났어요.”
“아······!”
요한은 빠르게 그가 누운 곳까지 달려갔다. 하진은 파리해진 안색으로 반쯤 침대에 기대어 있었다.
결국, 일어났다. 독하디독한 녀석이다. 침대 근처에는 수액 팩이나 각종 영양제, 비타민제들이 잔뜩 흐트러져 있었다.
“몸은 좀 어때?”
“돌아가신 부모님을 뵙고 왔다.”
“···어 그래?”
“안녕하시더군.”
시답잖은 농담에 요한이 피식 웃었다. 상태를 보아하니 죽지는 않으려는 모양이다.
허전해진 그의 왼쪽 팔을 보니 죄책감이 밀려왔다. 죽은 자에게도, 다친 자에게도 자신이 져야 하는 책임의 무게는 무거웠다.
그가 결정했고, 그가 진행했으니까.
“한동안 적응하려면 불편하겠네.”
요한이 유감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괜찮다. 새로운 시대에 선사하고 왔으니까.”
“······뭐?”
갑자기 저게 뭔······.
“뭐야, 원피스 몰라? 너희 집에 있는 만화책인데. 붉은 머리 샹크스가 팔을 잃고 나서 흰 수염에게 한 대사지.”
“아니. 그건 아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갑자기 왜 어울리지 않는 덕질을 하고 그래.”
“만화책은 초등학생 이후에 여기 와서 처음 봤는데, 재밌더라고.”
“재밌는 건 재밌는 거고. 지금 농담이 나와?”
“아까 스위퍼는 잘 받아주던데.”
요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무 큰 부상을 입어 정신적으로 어디 한 군데 같이 다친 건 아닐까.
게다가 네 비주얼로 샹크스 코스프레는 무리야. 흰 수염이나 검은 수염이라면 모를까. 일단 샹크스는 잘생겼다고.
“아무튼, 이번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널 만나고부터는 하루하루가 가시밭길인 느낌이야.”
그의 말에는 왠지 모르게 뼈가 느껴졌다. 악의를 갖고 하는 말은 아닐 터다. 그런 것 치곤 누구보다 믿음직하게 자신을 따라와 주고 있었으니까.
그저 도둑이 제발 저려왔다. 요한은 진심을 담은 말을 뱉었다.
“계속 위험한 일에 말려들게 해 미안하다.”
“뭘 또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러냐. 어차피 너 아니었으면 진작에 죽었을 목숨인데. 그리고 어차피 이런 세상에 안 위험한 게 어딨겠어.”
“······.”
“난 신경 쓰지 마라. 널 인간적으로 존경하고 있으니까.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네가 날 얼마나 믿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앞으로도 그냥 너를 따를 생각이니까. 뭐, 팔이 이래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죄책감에 책임감이 더해졌다. 애써 밝은 척하는 모습도, 오글거리고 몽글거리는 대사도 부담이었다.
요한이 뭐라 말을 꺼내려는 찰나, 스위퍼와 세리가 문을 벌컥 열고 들이닥쳤다.
세리는 둥근 난간 손잡이를 든 채였고 스위퍼의 머리에는 웬 밀짚모자가 씌워져 있었다. 뭔가 사악한 간계를 꾸미고 있는 듯한 표정에 요한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저건 또 어디서 가져온 거야. 대체.
“내 패왕색 패기를-”
“나가 이 자식들아.”
“······.”
“당장 안 튀어 나가?”
요한이 눈을 부릅뜨자 스위퍼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고, 세리가 덧붙였다.
“대장 형씨는 모험과 낭만을 몰라.”
“맞아. 몰라.”
요한은 가만히 무전기 송신 버튼을 눌렀다.
“다 내려와서 여기 해적왕들 상동 호수에 던져버려.”
두 사람은 곧 정환 일행에게 질질 끌리듯 밖으로 내보내졌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쩐지 쉬라고 할 때마다 다들 만화책만 붙들고 있더라니.
똑똑. 문이 두드려졌다. 이 쉘터에 저렇게 점잖게 노크까지 하고 다니는 인물은 단 한 명뿐이었다.
“들어오세요, 선생님.”
“아, 요한 군. 다름이 아니라. 하진 군 보조기 때문에요.”
박재범 의사가 방으로 들어와 의자를 끌어 앉았다. 그가 간단하게 다양한 의수 모형을 그려 놓은 종이를 내밀며 하진에게 달아줄 의수의 필요성을 종용했다.
“이대로는 무게중심 잡기가 힘들어서 생활이 좀 불편할 거예요. 병원 재활과에 가면 범용성 좋은 의수들이 있을 테니까, 어떤 거로 할지 골라주면 착용을 도와 드릴게요. 모양 자체는 기능형이 보기 좋지만, 실생활에 유용하게 쓰이는 건 이거, 후크형이 좋을 거예요.”
가만가만히 그의 말을 듣던 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실생활은 아무래도 상관없고. 이왕이면 싸울 수 있는 무기를 달아주십시오.”
하진의 요청에 박 선생이 난색을 보였다. 의수에 날붙이를 다는 것은 위험하기도 할뿐더러, 기성품 중에서 무기로 쓸 수 있는 의수 따위는 없었다.
“그건 좀······ 위험하기도 하고, 불편하실 텐데요.”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대화를 듣고 있던 요한이 끼어들었다. 그 또한 하진의 전투력 감소가 우려되던 터였다. 전투를 한 손으로 하는 것은 동료에게도, 본인에게도 마이너스였다.
“김 씨 아저씨가 이것저것 잘 만드시니까 기존 의수를 개조해 달라고 부탁하면 되지 않을까요. 필요한 게 있으면 구해 드릴게요.”
“하지만······.”
박 선생은 여전히 곤란한 눈치였으나, 단호한 두 사람의 표정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김 선생님과 얘기해 볼게요. 어쨌든 한동안은 격하게 움직이면 안 됩니다. 기껏 봉합한 혈관이 터질 수도 있어요. 가능하면 병원으로 같이 가셔서 사후관리를 하는 게 좋겠어요.”
“그렇게 하시지요. 어차피 한동안은 정비를 할 생각이었으니까요. 너도 무리하지 말고 몸조리해라.”
“그래. 고맙다.”
요한은 하진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고 본인의 방으로 되돌아왔다.
욕조에 따듯한 물을 받아 그 속에 몸을 담갔다. 나른한 느낌과 함께 피로가 노곤하게 풀어진다. 그 와중에도 머릿속에 이후의 계획들이 무차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가장 중요한 건 안전지대 조성. 그리고 수색조 확장.
지체할 것도 없이 내일부터 바로 들어가면 되는 작업이었다.
중대사를 끝마친 다음이어서 왠지 모르게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마치 소설의 한 장을 끝내고 새로운 막이 열리는 느낌.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나름대로 잘 해왔다. 믿을 만한 동료들도 만들었고, 탄탄한 기반도 세웠다. 식량이며, 장비도 충분했다. 회귀 전에도 이 정도로 탄탄했던 조직을 만든 적이 없었다.
3년의 경험과 실패는 요한에게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반 시간 정도 목욕을 마친 요한이 몸을 일으켰다. 물방울들이 다부지게 단련된 몸을 따라 후두둑 떨어졌다.
거울 속에 잔근육으로 도배된 신체가 비쳤다. 최근에 생긴 자잘한 상처들. 그리고 어깨에 물린 상처. 어깨의 상처는 변종의 이빨 모양을 따라 딱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직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아 제대로 된 소독이나 치료를 받지 못해 흉터가 뚜렷하게 남을 것 같았다.
이 상처야말로 면역의 가능성을 증명해주는 방증이다.
요한은 자신이 물렸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감염이 진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숨겼다. 새롭게 얻은 정보는 쉽사리 동료들에게 말해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확신은 없었고 정보는 부족했다.
어설프게 감염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주는 건, 무조건 감염된다는 사실보다도 더 위험하고 가혹한 결말을 줄 수 있었다.
물렸지만 감염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전제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은 분명 동료를 포기하지 못할 거다. 그리고 감염자를 어떤 방식이든 곁에 두게 되겠지. 위기 상황에서 물린 동료를 포기할 수도 없게 된다. 그 사람의 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결국, 좀비에 물린 사람들이 골치 아픈 짐 덩어리가 된다. 미안한 표현이지만, 터질지 안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위해 더 많은 사람의 희생을 초래할 거다.
일단 더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는, 혼자 안고 가는 게 맞으리라. 요한은 결심을 굳혔다.
목욕을 마친 그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경계를 서고 있던 재호를 내려보낸 뒤 캠프용 의자에 앉아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를 멍하니 바라봤다.
낮에는 그렇게나 을씨년스럽던 풍경이 밤이 되니 눈부시게 감성적으로 변한다. 종말 이후 7개월이 지났다.
7개월 만에 서울 하늘에서도 드문드문 별을 볼 수 있었다. 별인지 인공위성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르면 더 뚜렷하게 보이겠지.
뭉근한 여름 밤바람이 훅,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더운 감각과 바람과 함께 맡아져 오는 퀴퀴한 썩은 냄새가 살아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