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72화 (72/176)

<72화>

요한은 빠르게 상황을 전파하고 다시 한번 코너 밖으로 나가 응전한 뒤 몸을 숨겼다. 뒤늦게 격발음과 파바박, 총알 꽂히는 소리가 들린다.

사격 간격으로 봐서는 적은 소수다. 적으면 둘, 많아야 셋. 충분히 제압 가능한 숫자였다.

요한이 다시 몸을 돌려 목표에 정확히 사격했다. 기둥 뒤에서 사내 한 명이 몸통을 맞고 쓰러졌다. 연달아 나타난 사내.

요한은 한결 침착하게 사격했고 쏘아진 탄환이 사내의 이마를 관통했다. 두 발의 격발로 두 명을 사살한 후 코너 안쪽으로 몸을 숨겼다.

‘추가 교전은?’

없다. 사위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요한이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주변을 확인했다.

“읍읍-”

뒤에서 포박당한 사람이 발버둥 쳤다. 요한이 개머리판으로 뒷머리를 내려치자 곧 잠잠해졌다.

-여기는 스위퍼. 구청에도 의문의 적 다수 발견. 기습할게.

스위퍼가 교전 신호를 알려왔다. 아직 적의 규모를 알 수 없는 상황이라 불안감이 들었지만, 믿었다. 3조에는 가장 강력한 전력이 두 명이나 있다.

이동 수신호에 요한과 세 사람이 매장 안쪽 기둥으로 잽싸게 이동했다. 매장은 사무실을 겸하고 있던 상가였는지 파티션과 기둥이 어지럽게 솟아 있었다. 은폐 엄폐하기에 좋은 공간이었다.

기둥 안쪽에 자리 잡은 몇 초 후, 왼쪽에서 닫혀 있던 문이 벌컥 열렸다.

탕! 순간적으로 소리에 반응한 요한이 문이 열리자마자 탄환을 쏘아냈다. 리볼버 권총을 들이대려던 사내가 몸이 휘청이며 쓰러졌다.

찰나의 교전 후 요한이 인상을 찌푸렸다. 총성 끝에 이질적인 소리가 끼어들었다. 일반적인 관통음이 아니었다.

‘방탄복이다.’

방탄복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사내에게 추가사격 했으나 사내는 이미 몸을 굴려 시야 바깥으로 벗어난 뒤였다.

그것도 섬유 재질이 아닌, 철판으로 된 방탄재질이다.

한 명 한 명이 총기 무장을 한 것도 모자라 어떤 사람은 방탄복까지 입고 있었다. 어쩌면 더 어려운 싸움이 될 수도 있다.

요한이 침착하게 상황을 추가 전파했다.

“추가 전달한다. 놈들은 방탄복을 입고 있다. 얼굴을 사격할 것.”

전파를 끝낸 요한이 조원들에게 지시했다.

“혁이는 놈 잘 붙잡고 있고, 두 사람은 정면 경계해.”

방탄복을 입은 게 문 안쪽의 사내 하나뿐이 아니라면, 최초 사격해서 쓰러트렸던 사람도 완벽하게 사살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요한은 조급함을 티 내지 않았다. 저 안의 적은 자신들이 밀고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적의 규모와 전력을 모르는 불안함에 성급하게 움직이면 모든 걸 그르칠 수 있었다.

놈들도 우리의 규모나 전력을 모르기는 매한가지다.

믿고, 기다린다.

적이 불안함에 휩싸여 기어 나올 때까지.

드르륵-!

귀를 긁는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의 원인은 방 안에 있던 사내. 그는 140cm 사무용 책상을 세운 채 그걸 밀면서 돌진하고 있었다. 그 위로 총탄이 다다다 쏟아졌지만, 철제 테이블을 뚫어낼 순 없었다.

“피해!”

사내는 마치 불도저처럼 책상을 밀며 부딪혀 왔다.

책상을 세우고 밀면서 들이닥친다. 무식하게 달려드는 철벽을 피하려고 몇몇 조원들이 바닥을 굴렀다. 그런 다음 일사불란하게 흩어져 훈련받은 대로 각자 자리를 잡으며 지원 사격을 준비했다.

요한은 반대쪽으로 피함과 동시에 사내의 뒤에 사격하려 했으나 사내는 헬멧까지 뒤집어쓴 채였다. 방탄복에 헬멧까지.

순간적으로 타격점을 잃은 요한이 멈칫하는 사이 사내의 손에서 서슬 퍼런 소방도끼가 날아들었다. 붕, 하고 대기를 가르는 소리가 위협적이다. 요한이 황급히 소총을 들어 도끼를 막아냈다.

덩치가 큰 편도 아닌데 제법 손아귀 힘이 강력했다. 충격에 손이 얼얼했다. 소총에도 흠집이 난 듯하다.

한 합의 격돌 이후 자리를 잡은 조원들의 지원 사격이 이어졌다. 적과 요한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에, 대부분이 헬멧 인간의 등 뒤쪽으로 한참 빗나갔다. 혹시라도 요한이 맞을까 봐 제대로 지원 사격하기가 어려웠다.

헬멧 인간은 요한이 대검을 꺼내 들자 기둥 반대쪽으로 도망쳤다. 총성과 총성 이후에 날아간 탄환이 철판에 튕겨 나가는 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였다.

“정면! 한 명은 정면 경계해!”

요한이 기둥에 바짝 붙으며 소리쳤다. 왼쪽만 신경 쓰다가는 정면이 빈다. 정면의 적을 확인 사살하지 못했으니 누군가는 정면을 봐야 했다.

어그로가 잠깐 끌리기는 했지만 다행히-

“스톱.”

“세리야!”

젠장.

헬멧 인간은 처음부터 시선 끌기였다. 한 명이 무리하게 돌진해서 진형을 흐트러트리고 시선을 끄는 사이 총탄에 맞았던, 아니 맞은 척했던 사내가 반대쪽으로 돌아 세리를 제압했다.

매장 안의 지형을 모른다는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지만, 놈들은 상당히 잘 훈련되고 오랫동안 합을 맞춘 전사들이었다. 요한이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헬멧을 쓴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며 이죽거렸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헬멧 안에서 뭉그러졌다.

“무장해제하고 순순히 잡혀.”

“거절하지. 인질은 이쪽도 있으니까. 혁아 놈들이 세리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바로 쏴버려.”

“우리는 인질 따위 통하지 않아. 애송이야.”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세리야, 즐거웠다. 복수는 확실히 해주마.”

“허!”

오토바이 헬멧을 쓴 사내는 헛웃음 소리를 냈다. 이런 침입자는 처음이었다. 동료 한 명이 죽었을뿐더러 자신과 남은 동료도 상당히 위험할 뻔했다.

게다가 인질은 서로 한 명씩 잡고 있는데도 꿈쩍 않는 배짱이 대단했다. 하지만 사내는 확신했다. 말은 저렇게 해도 거래라는 목적으로 모인 자신들과 달리 동료를 버리는 생존자들은 드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인질 하나씩 죽이고 다시?”

“무장해제 해. 목숨은 살려주지.”

“내가 할 소리다. 애송이.”

요한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대안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눈앞의 사내는 제법 강했고, 방탄복에 헬멧까지 쓰고 있어서 단숨에 제압하는 건 어려웠다. 인질이 있었지만, 이쪽에서도 세리가 인질로 잡혔다.

수 싸움은 삼 대 이. 나쁘진 않지만, 좋지도 않은 상황.

-형씨, 듣고 있어?

팽팽한 긴장감 속에 무전기가 울렸다. 스위퍼의 목소리였다. 요한은 일부러 무전에 답하지 않았다. 섣불리 움직였다가 놈들을 자극하게 돼서 벌어질 상황을 방지해야 했다.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상황이 어렵나 보군. 여기, 체크메이트야. 대장이라고 불리는 놈을 잡았어.

요한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하, 이건 정말 나이스샷인데.”

“개소리하네. 할배가 잡혔다고? 개수작 부리지 마.”

놈은 무전의 내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총기를 들어 올렸고, 요한과 지원도 총을 들어 사내를 겨냥했다. 그러나 무전은 끝난 게 아니었다.

-할아범, 죽기 싫으면 당신 애들 빨리 무기 내리라고 해. 혀 깨물려고 하면 할아범 고추 잘라서 재갈을 물릴 거야. 알겠지?

남자의 목소리가 저렇게 달콤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꿀처럼 달달한 목소리 뒤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개자식들아. 똥 밟았다.

흠칫하는 사내들을 보며 요한이 입꼬리를 씩 들어 올렸다. 우리 쪽 퀸이 상대 킹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요한은 활짝 웃으며 이죽거렸다.

“뭐 해? 무기 안 내려?”

헬멧을 쓰고 있던 사내가 헬멧을 벗어 바닥에 던지듯 내려놨다. 떨어진 헬멧이 기우뚱거리며 몇 번을 휘청이다가 움직임이 멎었다.

사내의 얼굴에는 왼쪽 눈썹부터 오른쪽 턱까지 긴 흉터가 나 있었다. 날붙이에 의한 상처, 그리고 제법 생긴 지 오래되어 보이는 흉터였다. 사내는 한껏 인상을 찡그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제기랄. 할배가 잡혔다고? 대체 어떻게 돼먹은 새끼들이야 이거?”

“쓸데없이 힘 빼지 말고 무기 내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흉터 사내는 요한이 시건방지다 생각했는지 바닥에 침을 탁 뱉고선 세리를 인질로 잡은 사내를 향해 눈짓했다. 눈짓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는지 그가 다시 흉터 사내에게 물었다.

“어쩔 거야?”

“뭘 어째.”

“진짜 이대로 항복해? 할배 한 명 잡혔다고?”

“총 내려 새끼야. 할배 죽으면 내가 널 죽일 거니까.”

흉터 사내의 으르렁거림에 세리를 인질로 붙잡고 있던 남자가 꼬리를 내렸다.

천천히 세리의 관자놀이에 대고 있던 총기를 내리자 세리가 이때다 싶어 워커 굽으로 사내의 발등을 세차게 내리찍었다.

“아악!”

사내가 순간적으로 움찔한 사이 허벅지 주머니에서 리볼버를 꺼낸 세리가 사내의 가슴에 손을 올린 채로 턱에 리볼버를 갖다 댔다.

“이 계집이······.”

딸깍, 세리가 리볼버를 장전하는 소리가 사내의 바로 턱밑에서 들려왔다. 그가 침을 꿀떡 삼켰다.

“어디서 더러운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난리야, 죽고 싶어?”

서슬 퍼런 눈빛이 쏘아졌다. 자신이 인질로 잡혔던 상황이 영 마뜩잖은지 머리끝까지 열이 받은 게 눈에 훤한 모습이다.

스스로 인질에서 인질을 잡은 상황을 만든 그녀를 보고 허허로이 웃고 있자 세리가 요한을 노려봤다.

“뭐어? 세리야아 즐거웠다아아?”

짐짓 노려보는 눈총이 따갑다. 요한이 머쓱하게 웃으며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어, 미안.”

“진짜 인질로 잡히기만 해 봐. 죽여달라고 고사를 지낼 테니까.”

뾰로통해 있는 세리는 혁에게 맡겨 놓고 요한은 직접 의문인들을 포박했다. 주먹을 교차시켜 쥐게 한 뒤 천으로 주먹을 감싸고 그 위로 8자 매듭까지 튼튼하게 조였다.

“야 이 애송아, 피 안 통하잖아!”

“썩으면 직접 잘라내 주마.”

포박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의문인들은 입만 살아 구시렁거렸다. 요한은 팔을 묶고 있는 매듭을 한 바퀴 더 둘러준 후 수색2 조에 무전을 넣었다.

“하진, 1조로 합류해. 총소리 때문에 좀비들이 많이 몰렸다. 여기서 합류해서 구청으로 간다.”

-알겠어.

요한이 담배 두 개비를 연달아 태우는 사이, 하진과 2조 두 명이 상가 건물로 합류했다.

요한은 하진을 정면에, 혁과 세리를 측면에 세우고 자신이 후면에 섰다. 인질 세 명은 남은 세 명의 조원이 붙잡았다.

2조의 두 명과 진수가 중앙에서 인질들을 끌었다. 이 건물부터 구청까지는 짧은 거리였어도 인원 대비 전투 조가 적었다. 언제나처럼 팽팽하게 긴장감을 끌어올려야 했다.

일반 좀비와의 단독전투에서 희생자가 나온 지는 제법 되었지만, 여전히 놈들은 스치기만 해도 사망자를 내는 무서운 질병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질병은 익숙해지고 방심하게 될 때 가장 무서운 모습으로 돌변한다. 특히나 저런 모습을 본다면 방심하기에 십상이다.

“하압!”

하진은 좀비의 턱 아래에서부터 의수에 달린 대검을 푹 밀어 넣고선 차내고 다시 푹 밀어 넣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세상을 종말 직전까지 몰아넣은 좀비를 마치 어린아이 장난감 다루듯 박살 내고 있었다.

“빌어먹을, 어차피 도망도 못 치고 반항도 안 할 건데 풀어줘 이 개자식들아!”

좀비들이 몰리자 포박된 사람들이 버둥거렸다. 양손이 묶인 채로 좀비 떼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으니 두려울 법도 했지만, 수색조는 그들의 요청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한바탕 좀비 떼를 뚫고서야 구청으로 도착한 일행은 이미 모여 있는 무리를 발견했다. 스위퍼는 여전히 한 노인의 뒷목을 잡은 채 총을 들이민 채였고 세 생존자가 열댓 명의 생존자들을 긴장감 역력한 표정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요한은 노인에게 시선을 향했다.

노인이라기엔 중년과 장년의 모호한 경계선에 있는 인물이었다. 겪은 세월을 방증하듯 주름이 자글자글했으나 다부진 체격과 군데군데 보이는 근육이 제법 강퍅해 보이는 인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가 죽거나 주눅 든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이 상황을 관조하고 있었다.

아마 이곳에 있는 인원이 전부는 아닐 터다. 여성회관 쪽에도 숨겨 놓은 인원들이 있겠지.

요한은 스위퍼를 보자마자 엄지를 추켜올렸다.

“보진 못했지만, 최고의 플레이였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