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100화 (100/176)

<100화>

사람과 물자를 잔뜩 실은 낡은 어선이 바다를 가르며 나아갔다. 시원한 밤바람과 바다 짠 내가 코끝을 찔렀다.

“간다! 고잉 요한 호! 전속력으로!”

제발 그만둬.

요한은 갑판 위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소리를 꽥꽥 질러대는 세 명의 해적단을 보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왜 부끄러움은 제 몫인지 모르겠다.

요한이 조타를 잡은 어선은 빠르진 않았지만, 안정적으로 나아갔다. 배 운전이라곤 딱 두 번 해본 게 전부여서 불안한 마음이 컸다. 괜히 암초라도 들이박았다가는 기껏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모래성이 될 테니까.

가까운 거리라지만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요한이 운전대와 씨름하는 사이 정환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운전실로 들어왔다. 배를 본 순간부터 자기도 조타를 배워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그였다.

“형은 언제 이런 것까지 배우신 거예요?”

“사건 터지기 한 달 전쯤에. 두 번 몰아본 게 다야.”

“대단해…….”

항해에 대한 부담과 정환이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양쪽에서 느끼며 요한이 운전한 어선은 다행히 첫 번째 항해를 마쳤다.

영종도에서 신도는 눈으로 보일 정도의 거리였지만, 운전이 서툰 탓에 생각보다는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요한은 선발대를 내려놓고 무인도로 향했다.

사실 무인도에 물자들과 가축들을 풀어놓은 것은 하나의 도박이었다. 어차피 웬만한 장소에 숨겨 봤자 약탈자들을 피하기 어려웠을 테고, 여기가 안 되면 어디에 숨겨도 안 된다는 그런 생각.

다행히 무인도의 물자들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었다. 아니, 고스란히 보관되다 못해 새끼를 친 돼지들이나 종종거리며 돌아다니는 병아리들까지 있었다.

“자, 일하자.”

요한의 입으로 지긋지긋하게 나왔던 신호를 시작으로 일행은 산 중턱에서부터 물자들을 나르고 가축들을 잡아다 어선에 태웠다. 여기저기서 돼지 잡는 소리가 꽥꽥대며 울리고 닭이 푸드득 날아오르는 소리, 꺅꺅거리는 비명, 끙끙대는 신음이 가득했다.

“오빠, 병아리들은 어떻게 해요?”

“다 우리 재산이다. 잘 담아서 데려가. 한 마리도 빼놓지 말고.”

병아리는 물론이고 갓 낳은 달걀까지 깡그리 찾아서 차곡차곡 담는 요한을 보며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사는 생각보다 긴 시간을 잡아먹었다.

* * *

신도에 먼저 도착한 스위퍼 일행은 전투를 앞두고 하나둘 몸을 풀었다.

“잠시, 상황 좀 보고 올게. 형씨들.”

스위퍼는 짤막한 대기 지시를 내리고서는 가까운 송전탑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사뭇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이었으나 스위퍼의 몸놀림은 높이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가벼웠다.

“호우.”

스위퍼는 목에 걸려있던 쌍안경으로 경치 좋은 섬 내부를 둘러보며 감탄사를 냈다. 저수지며, 논이며, 민가들이 섬의 규모에 비해 알차게 모여 있었다. 딱 보자마자 치밀한 대장 형씨가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 깨달을 수 있을 만큼.

살아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거리에는 그저 먹이를 찾는 좀비들만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을 뿐.

스위퍼가 하진을 향해 소리쳤다.

“형씨, 총이라도 한 발 쏴 봐! 이거 일일이 찾아다니다간 끝도 없겠어!”

“괜찮겠어?”

하진의 질문은 좀비들로부터 위협이 괜찮겠냐는 질문은 아니었다. 혹시 모를 생존자들에 대한 위협을 걱정하는 것.

“생존자들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 그러지.”

하진이 허공을 향해 권총 한 발을 발사했다.

탕! 작지 않은 소리가 섬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길거리를 헤매던 좀비들이 소음이 들린 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좀비들이 마치 물결처럼 점점 모여들기 시작했다.

“준비해라. 전투다.”

하진의 말에 네 명의 인원이 하진을 중심으로 반원 모양으로 자리를 잡고 전투를 준비했다. 좀비들의 수는 대략 이삼 백. 적은 수는 아니었지만, 워낙 넓은 공간에서 간헐적으로 접근하는 탓에 위협은 되지 않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들의 기준이었겠지만.

핑! 핑!

멀리서 접근하던 좀비들이 정환과 세리가 발사하는 쇠뇌에 맞아 픽픽 쓰러졌다. 쇠뇌를 장전하는 사이 접근한 좀비들을 가장 먼저 맞이한 건 부천시 중동 여포메타의 선두주자, 하진이었다.

하진의 쿠크리에 맞아 퍽퍽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좀비들은 인간이 봐도 불쌍할 지경이었다. 기껏 하진을 피해 옆 사람에게 달려들어도 혁과 정환의 능숙한 나이프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들은 기다란 나이프로 좀비들이 접근조차 하기 전에 그들의 머리를 날렸다.

애초에 일당백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 그들을 막기에는 좀비들의 수가 너무나 적었다.

“헉, 헉…….”

유일하게 고전하고 있는 것은 옹 상병이었다. 홀로 고전하고 있었다. 항상 원거리에서 저격하는 포지션을 잡고 있던 그였기에, 근접전이 익숙하지 않은 것.

오랜만에 붙은 한 마리 좀비를 처리하고서도 호흡이 거칠어져 주변의 시선을 끌었다. 그 모습을 본 정환이 한 마디 덧붙였다.

“옹이, 뭐해? 그냥 뒤쪽에 자리 잡고 쏴 죽이지. 어차피 그 총은 소음기가 소리도 잘 잡아주던데.”

“그렇긴 한데… 칠 탄이 수급이 안 되어서요. 총알을 아껴야 해서.”

옹 상병이 탄띠를 가리키며 울상을 지었다. 7.62mm 탄약이 끝을 보이는 상황.

“아. 그랬지.”

안 그래도 며칠 전부터 탄약이 모자란다고 볼멘소리를 했던 그였다. 정환은 고개를 끄덕이고선 그를 향해 쇠뇌를 던져주었다.

“뒤로 빠져서 멀리 오는 놈들만 잡아. 우리 같은 타입이 근거리 전투에 취약하긴 하지. 쇠뇌 숙련도도 올려두는 게 좋을 거야.”

우리 같은 타입이 뭘까. 옹 상병은 궁금증이 들었으나 이내 눈앞에 나타난 좀비에 집중했다.

쇠뇌 사용법은 기본적으로 익혀 두었으니 발사하는 덴 문제가 없었지만, 날아간 화살은 좀비의 목뼈에 박혀버렸다. 목이 꿰뚫린 좀비는 검붉은 피를 쏟으면서도 계속해서 옹 상병에게 다가왔다.

허겁지겁 화살을 재장전한 옹 상병이 다시 한번 쇠뇌를 발사했으나 이번엔 주둥이에 박혀버렸다.

“으아아!”

옹 상병이 지척까지 다가온 좀비를 쇠뇌로 후려쳤다. 그러고선 쓰러진 좀비를 군홧발로 박박 밟아 머리통을 으스러뜨렸다.

스위퍼가 송전탑에서 내려와 전투에 가세했을 때는 이미 전투가 한바탕 종료된 뒤였다.

“뭐야, 형씨들. 내 건 안 남겨놨어?”

“그러니까 그냥 뛰어내리지 그랬어.”

“저기서는 낙법을 써도 내장이 다 터질 것 같은데.”

싸우지 못해 근질근질하다는 표정을 짓는 스위퍼에게 세리가 물었다.

“이게 끝이야?”

“아니. 섬 끝에서 기어오는 애들은 여기까지 오려면 한참 걸릴 것 같아. 아무래도 뭉쳐 다니면서 작업하다가는 끝도 없을걸.”

섬은 생각보다 넓었다. 정확히는 여섯 명이 수색을 몇 시간 안에 끝내기에는 넓은 섬이었다. 걸어서 한 바퀴 도는 데도 한두 시간 이내 걸릴 듯한 정도였으니.

“일단 신시도연도교에 한 명 대기해서 섬 넘어오는 좀비들 잡고, 두 명은 선착장에서 일꾼들 엄호, 나머지 세 명은 부채꼴 모양으로 흩어지면서 쓸자.”

“또 개인전인가.”

“왜, 외팔이 형씨. 겁나?”

“말 같잖은 소리를.”

도발하는 듯한 스위퍼의 말에 하진이 주먹 감자를 쥐어 보였다. 두 사람은 계속 티격태격하다가 누가 먼저 좀비를 쓸고 돌아올지 내기를 시작했다.

정환이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간신히 말리며 스위퍼에게 물었다.

“형, 그런데 안에 사람들은 정말 없을까요? 혹시 숨어 있던 사람들이 나와서 기습이라도 하면 위험할 텐데.”

“걱정하지 마, 새 고추 정환아. 좀비들이 이렇게 많은데 정작 시체는 하나도 없었어. 생존자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려면 최소한 좀비 시체 하나쯤은 나왔겠지.”

“그건 그렇네요.”

“그럼 인원 나누자. 세리랑 혁이가 선착장, 옹이가 다리, 나머지가 세 방향 수색. 난 왼쪽.”

“그럼 난 오른쪽.”

“그럼 제가 중앙으로 가면 되는 거… 잠깐만 형들, 여기 중앙은 완전 산길인데요?!”

“화이팅.”

두 사람은 정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지나갔다.

정환은 이 두 사람에게 또다시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 네 시간 후, 신도에 모든 짐을 옮긴 후 인원을 체크하던 요한은 자리에 없는 정환이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정환이는 어딨어?”

“글쎄. 아직 안 돌아왔는걸.”

두 사람은 자기들은 모르는 일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요한이 미간을 좁히며 정환에게 무전을 쳤다.

“김정환. 어디야.”

-지금 갑니다아…….

한 삼십 분을 더 기다리자 멀리서부터 정환이 헉헉거리면서 뛰어온다.

정환을 보며 요한이 한마디 내뱉었다.

“빠져가지고, 일찍 일찍 안 올래?”

정환은 억울했다.

* * *

“신도는 사람들이 성실하고 순박하기로 유명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진 섬이죠. 소금, 쌀, 망둥이, 맛조개가 유명한 섬이고요.”

재호가 좀비들의 시체를 정리하며 말했다. 온종일 이어진 고된 노동에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고, 그나마 재호가 쉴 새 없이 떠들어 준 덕분에 지루한 노동이 그나마 재밌었다.

“여기가 인천 삼형제섬인데 섬끼리 도연도교로 연결이 되어 있죠. 이곳을 거점으로 판단하신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에요. 자연자원이 풍부한 곳이거든요.”

물어본 사람도 없는데 재호는 혼자 중얼거렸다. 들뜬 것 같기도, 가라앉은 것 같기도 했다.

요한은 묵묵히 그의 말을 들으면서 다른 쪽에 집중하고 있었다. 특히나 요한이 유심히 본 것은 신도 주민들의 시신 보존상태였다.

좀비들의 부패가 일반 시체보다는 더디게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들의 시신은 상당히 보존상태가 양호했다.

마치 죽은 지 고작 두어 달 정도 지난 시신들처럼 보였다. 육지에서 떨어진 곳이기 때문일 터다.

아포칼립스의 영향을 상당히 뒤늦게 받았겠지. 섬 크기에 비해 주민들의 수도 적으니 진행도 더뎠겠고.

요한의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박 노인이 허공을 향해 읊조렸다.

“여기 사람들은 최근에, 한두 달 전에 죽은 것 같구먼.”

“아, 네. 그걸 어떻게…….”

좀비가 된 후 한 달만 지나도 시체는 썩는다. 웬만큼 눈썰미가 좋지 않고서야, 한 달 된 시체인지 육 개월 된 시체인지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요한의 대답에 의문이 들어 있자, 박 노인이 덧붙였다.

“논들이 관리가 잘 되어 있네. 최근까지 사람 손을 탄 모양일세. 이거, 올가을에 추수할 수 있겠구먼. 참으로 다행인 일이야. 고인들의 한 해 노력이 헛되게 되지 않아서.”

경험과 연륜의 차이일까. 요한은 그저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박 노인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감탄하는 박 노인의 말을 듣고 논을 향해 시선을 던지자 푸릇푸릇한 논밭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말대로 최근까지 관리받은 듯 푸른 논은 생기를 가득 담고 있었다.

“허허, 이거 농기계가 없으면 수확하는 것도 일이겠는데.”

“여기보다 안쪽에 신도3리랑 신도4리가 논이 더 커요.”

어느새 대화에 끼어든 재호가 신이 나 덧붙였다.

“신도는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제법 높은 편이거든요.”

“그래 보이네. 이 정도면 농사꾼만 수십 명은 필요할 것 같은데 사람이 모자란 게 아쉽구먼.”

“그렇네요.”

일손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기대치. 전혀 예상도 못 했던 수확이었다.

아무래도 생각했던 것보다 생산조에 더 많은 인원을 투입해야 할 것 같다.

배부른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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