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아는 사람이야, 대장?”
스위퍼의 물음에 요한이 고개를 저었다. 다섯 명의 남녀를 겨냥한 서늘한 총구들은 그들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움직임을 보였다가는 곧바로 온몸에 바람구멍을 낼 것처럼 흉흉한 기세였다.
무슨 일인지 모르고 그저 쫄래쫄래 따라오기만 한 최소희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 눈에서 경계심, 그리고 살기가 엿보였다.
모르는 이가 요한의 이름과 얼굴을 안다는 것, 충분히 경계심을 일으킬 만한 일이었으니까.
세작이 있든 감시를 해 왔든 정보가 누출되었다는 소리다.
상당히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으나 말을 꺼낸 수녀의 표정은 다소 평온했다. 그와 반대로 주변의 네 사람의 얼굴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수녀의 바로 옆자리에 있던 소년은 자신들도 무언가 무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움직이지 마.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면 다섯 명 모두 벌집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요한의 일갈에 소년이 움찔했다. 그러고서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대로 해요, 피오 님.”
“하지만…….”
“절 믿어요.”
자신을 믿으라는 말에 피오라고 불린 소년이 손을 내렸다. 여전히 얼굴에는 불만을 품은 채였다.
요한이 천천히 수녀에게 다가갔다. 수녀의 표정은 여전히, 불쾌할 정도로 평온했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대답해야 할 거야. 난 좋은 사람이 아니라서.”
“무엇이든지요.”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지?”
“당신을 기다렸으니까요.”
요한이 허리춤에서 나이프를 꺼내 그녀의 볼에 가져다 댔다. 그 순간, 네 사람이 동시에 움찔했다. 당장에라도 요한을 공격하려는 태도. 요한이 으르렁거리듯 말을 이었다.
“한 번만 더 그따위로 눙치면 두 번 안 묻는다. 진심이야.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지?”
“어느 순간부터 예지몽을 꾸기 시작했어요. 죽은 자들이 일어나 사람을 공격하고, 사람들끼리 약탈과 살인을 자행하는 꿈… 그리고 최근 꿈에서 당신들이 싸우는 걸 봤어요. 저 옆에 있는 섬에서요.”
“…….”
돌아온 것은 어처구니없는 대답.
무거운 침묵이 찾아왔다. 분명 두 번 장난치면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그녀는 되지도 않는 장난질 같은 대답을 했다.
어찌할까.
많은 의미를 담은 시선이 교차했다.
요한은 일단 대화를 이어나갔다.
“싸움? 누구랑?”
“좀비들. 그리고 괴물 좀비였어요.”
“섬에서 좀비들과 괴물 좀비들이 나타났다고?”
“네.”
“좀비들이 어떻게 나타났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어요. 저는 장면의 편린만을 볼 수 있었으니까. 확실한 건, 여러분은 좀비들의 습격을 받아요. 그리고 모두 죽습니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개소리.”
요한은 일축했다.
애초에 섬에 좀비와 변종이 나타난다는 것도 믿기 어렵지만, 한 명도 빠짐없이 죽는다는 사실은 더더욱 믿기 힘들다.
하지만 저 표정. 수작을 부리면 정말 죽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의 저 진지하고도 단호한 표정은 흡사 그녀의 말이 사실인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말도 안 되는,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라는 걸 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제 이름을 부르며 예지자라고 주장하는 걸 믿는 것은 정말 멍청한 행동이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거짓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
회귀자의 존재.
신의 딸이 미래를 본다는 게 자신이 회귀했다는 사실보다 현실성 있지 않은가.
그 근거는 저들 자체다. 다섯 명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로도 일말의 근거가 될 수 있었다.
“다음 질문. 우리를 기다렸다고 했지. 이유가 뭐지?”
“당신들과 함께 있는 꿈을 꿨었어요.”
“우리와 함께?”
“네. 미래의 저희는 당신들과 함께 싸우고 있었어요.”
“이미 모순이 아닌가? 한쪽에서는 우리가 모두 죽는다고 해 놓고, 이제는 함께 싸운다?”
“다른 갈래의 미래를 볼 수도 있어요. 한쪽은 우리를 만나지 못한 미래일 수도, 또는 요한 님이 저희를 믿지 않고 죽인 이후의 미래일 수도 있고요. 다른 미래는 제 말을 믿고 미래를 대비한 결과의 미래일 수도 있고요.”
“근거를 댈 수 있나.”
“저희 자체가 그 근거입니다. 요한 님. 저는 괴물들이 나타나기 전부터 이 미래를 알았고,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처음엔 저들도 믿지 않았지만…….”
그녀의 주장은 요한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했다. 가장 확실한 근거는 종말을 미리 알고 대비했다는 게 그 증거다. 100%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이 사태가 터지리라는 사실만큼을 알고 있었다는 게 되니까.
“이 사태에 대해 또 다른 아는 게 있나?”
“질문이 너무 광범위합니다. 요한 님.”
“좀비들이 왜 나타났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수녀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 또한 모르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고 확인해보지. 너희는 누구지?”
“저희는 마리아 성당의 신도들. 저는 수녀 차진희. 수도명 바울리나라고 합니다. 리나라고 불러 주세요. 그리고 이분들은 사태가 터지기 전에 제가 본 예지몽에서 선택한 사람들. 피오, 베르다, 루카, 라모스예요. 전부 세례명입니다. 불편하시겠지만 세례명으로 불러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요한이 대기 신호를 하자 조원들이 총구를 내렸다.
“무장은?”
“없습니다. 무기는 모두 건물 안에 두고 나왔어요.”
일부러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현명한 판단이다. 아무리 그들이 자신들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하더라도, 무장한 채였더라면 쉽사리 이야기하려 들지 않았을 테니까.
요한이 수녀 뒤쪽으로 그녀를 엄호하듯 서 있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예지몽이 선택한 자들이라고 했다.
그 말인즉슨 이들을 고른 게 그녀가 아니란 이야기다.
꿈에서 자신과 함께 싸우거나 자신을 지켜 준 사람들이겠지. 예지몽을 꾼 것은 좀비 사태가 처음이 아닐 거다. 그만한 신뢰는 있어야 사람들이 종말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미래를 믿고 준비할 테니까.
만약 자신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들먹이며 누군가에게 종말을 대비하자고 주장했다면, 그저 미친놈 취급을 받았을 게 뻔했다.
아니면 그저 재미없는 농담 따먹기라도 한다고 생각했겠지.
그녀는 이 사태 전부터 꾸준히 예지몽을 꿔왔을 테고, 그 경험을 근거로 이번 예지를 믿게끔 한 것이리라. 그리고 그 예지가 맞은 이상 그녀에 대한 신뢰가 남다를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다섯 명뿐이지만, 단단한 신뢰로 뭉쳐진 집단.
그게 요한이 내린 평가였다.
“그 말은, 당신들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나?”
“예. 요한 님께서 허락하신다면요.”
“그건 몇 가지 확인 후에 결정하도록 하고, 소개를 부탁하지.”
요한의 말에 리나가 한 사람씩 이름과 성격 등등을 설명하며 나열했다. 쓸데없는 미사여구, 예를 들어 얼마나 신앙심이 높은지 따위가 들어가긴 했으나 알아서 필터링해서 들었다.
“리나에게 흑심을 품으면 전부 죽여버릴 거야.”
이 건방진 꼬맹이는 피오. 리나의 경호원이자 캠프 마리아의 핵심 전투 요원이다. 특기는 싸움. 요한 일행이 성당을 포위하고 있을 때, 이상함을 느끼고 나와봤던 그 대학생이었다. 독특한 기감을 가진 청년. 요한의 평가는 명료했다. 전투력은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었지만.
“아가씨를 잘 부탁드립니다.”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뿔테 안경에 하녀복을 입고 있는 이 여인은 베르다. 유모다. 독특하게도 포지션은 전투 요원.
그리고 박재범 의사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의료인 라모스와 능글맞은 아저씨 같은 인상의 해경 출신 헬기 조종사 루카까지.
독특하고 상당히 균형 잡힌 구성이었다.
리나의 설명을 들으면서 한 가지 추가로 알게 된 사실은, 그녀가 수녀이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잘 사는 집안의 아가씨였다는 사실이다. 아버지가 외국계인 혼혈아인데, 개인 경호원까지 둘 정도라면 그 규모가 훤히 보였다. 왜 수녀로 직업을 정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수녀가 되기 이전에는 잘 사는 금수저 집안의 아가씨였다는 뜻이다.
“마지막이라고 해 놓고 다시 질문해서 미안한데, 그만한 집안이라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왜 이들만 선택해서 살리기로 한 거지? 이건 뭐라 하는 건 아냐. 순수한 궁금증이지.”
요한의 질문에 리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모든 사람이 제 말을 믿어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또…… 예지를 거스르는 것은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릅니다. 예지는 따르고 준비하는 것이지 거스르는 것이 아니니까요.”
요는 이거다.
“많은 사람 중 이들을 선택하신 신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어요.”
이들을 선택한 것은 그녀에게 예지를 내려준 신의 뜻이라는 것. 동의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제 권한 밖의 일이었다.
신, 신이라.
머리 아픈 이야기다. 요한은 고개를 휘휘 젓고는 스위퍼와 하진을 불렀다.
“일단 기다려. 스위퍼, 하진. 안으로 들어가자.”
요한이 두 사람을 호명하자 두 사람이 총구를 내리고 요한에게 다가왔다.
성당 내부를 확인해 봐야 했다.
“형씨, 저들 말을 믿어?”
성당 입구에서 두리번거리던 스위퍼가 물었다.
“회귀도 있는 마당에 미래 예지를 못 믿을 건 없지. 가능성은 염두에 두고 있어. 그들이 말하는 게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별해야 한다는 사실도.”
“조금 있으면 초능력자들도 나와버리겠는데. 근데 지금 행동은 뭐랄까 믿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믿지 않아. 하지만 미심쩍은 부분들이 너무 많아.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잘 지내고 있는 사람들이 마치 알고 있다는 듯이 이쪽으로 신호를 보냈다는 점도, 그리고….”
요한이 안쪽 창고로 보이는 문을 열어젖혔다. 창고 안쪽에는 식량과 식수가 가득했다.
“이렇게 미리 재난을 준비했다는 사실도. 근거로는 충분하지.”
다섯 명이 앞으로도 일 년은 넉넉하게 버틸 양이다. 재난을 예측하지 않고서는 준비할 수 없는 양.
‘믿을 수밖에 없나.’
예지몽을 꾼다는 사실을 믿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단지 뒤따라올 사실이 인정하기 싫었을 뿐.
그렇다는 건…….
‘모두 죽습니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저들과 함께하지 않기로 하면 모두 죽는다는 것도 사실일 수 있다.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몰라도.
“우리가 전멸한다는 건 도저히 믿기지 않는데. 특히나 대장 형씨는 죽어서도 지옥에서 기어 올라올 것 같은 이미지란 말이지.”
요한은 동의하지 않았다. 고작 한 달 만에 벌써 평화에 젖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안전한 상태로 몇 개월이 지나면 점점 안전불감증에 물들어 갈 터다.
그때 기습적인 좀비들의 습격이 진행되면, 게다가 그 안에 변종까지 포함되어 있다면 충분히 전멸할 수도 있다.
물론 예언, 예지몽 따위 얼토당토않은 말이라는 것은 안다. 이곳은 섬이고, 좀비들은 이곳을 덮칠 수 없다.
하지만 이 세상이 과연 자신의 상식 안에서의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던가.
만약에라도 이곳도 안전하지 않다면.
그렇다면 반드시 대비해야 한다.
그들과 함께할지 아닐지는 별개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이곳은 안전하다’라는 상식의 틀을 깨는 것이다.
항상 요한의 뒤통수를 치고 그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것이 바로 그 ‘이곳은 괜찮아.’라는 생각이었으니.
계속해서 혼자 고뇌하는 요한이 답답했는지 하진이 재촉하듯 물었다.
“그래서, 결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