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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116화 (116/176)

<116화>

요한은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한 점들, 이 세계의 법칙들 등등을 떠올렸다. 놀랍게도, 그녀의 말이 맞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인류를 향한 공격을 중단해 주세요. 집단적 생존이 아닌 종(種)의 생존을 위한 싸움이 필요할 때입니다. 저는 지금 모인 여러분들이 그에 맞는 역할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혁이 놈이 들으면 좋아할 소리겠군.”

“나 듣고 있는데, 형.”

“그래, 네가 들으면 좋아할 소리라고.”

요한은 천천히 상황을 정리했다. 흑마법이 한 괴물을 만들고 그 괴물들은 계속해서 변종을 낳는다. 변종들은 사람들을 좀비로 만든다.

목적은 인류의 말살.

그리고 이 계시라는 것을 받는 리나의 존재. 그리고 세계 유일의 회귀자인 자신의 존재.

‘진짜 말도 안 되는 개소리의 향연이군.’

더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이 개소리의 향연이 하나로 모여들면서 마치 하나의 퍼즐처럼 조각이 딱딱 맞아떨어져 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누군가는 인류 멸종을 위해, 누군가는 그것을 막기 위해 계속해서 안배한다는 사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그 사실을.

“저, 대장님.”

그때 재호가 입을 열었다.

“이 타이밍에 조금 뜬금없이 죄송한데… 단독행동을 좀 해도 괜찮을까요?”

“무슨 단독행동?”

“국립중앙박물관을 좀 다녀오고 싶어서요.”

“안 돼.”

요한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다.

“정보는 잘 담아 듣겠다. 하지만 그런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혹해 조원 위험에 빠트릴 수 없어. 모두 눈앞의 생존에 집중한다.”

한쪽은 인류를 멸종시키려, 한쪽은 인류를 지키려 파워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게 리나의 주장. 여전히 설득력이 부족하다.

차라리 신격 존재들이 지구를 대상으로 한바탕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게 더 현실적인 느낌이다.

초반에는 좀비들로부터의 생존게임, 중반에는 생존자들끼리의 약육강식 게임, 그리고 마침내 한 줌의 생존자들까지 전부 말살하면서 낄낄대고 지켜보고 있는 신격 존재들.

차라리 이편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물론 비약이다.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결론은 아주 단순명료했다.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여전히 정보는 취약하고 미래는 단편적이다.

“재호는 꿈도 꾸지 마.”

“대장님, ‘현상과 지식에 대한 탐구심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라는 말이 있어요.”

“개죽음이야.”

요한은 일축했다. 개죽음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가서 얻을 만한 게 확실치 않다.

“이럴 때일수록 더 조심하고 웅크려야 해.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처박혀서 존버한다. 경계를 두 배 세 배 더 강화하고 군대에 대한 습격은 없던 거로 해. 그리고 지금부터 전술, 사격 훈련. 본격적으로 한다. 목표는 여전히 의문의 변종에 대한 대비와 추수. 하지만 놈들이 우리에게 조금만 낌새를 눈치채거나 선제공격을 해 오면 가만있지 않을 거야.”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요한의 결론은 바뀌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서 굳이 추가적인 교전을 하지 않는 것으로. 리나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해요. 요한 님.”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신입들 포함해서 조 짤 거니까. 이 악물고 따라와.”

항상 살아남는 게 먼저다.

그래도 우린 아직, 여전히 이곳에 살아있었으니까.

* * *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고, 한쪽에서는 추수가 시작됐다. 어느덧 시월을 넘어선 날씨는 점점 쌀쌀해져 겨울에는 두꺼운 옷을 꺼내 입어야 할 정도.

요한이 가장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춘 것은 대변종 전투.

변종과의 싸움은 대비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곤 리스트에 있는 변종 패턴과 약점을 파악해서 숙지하는 것.

변종과의 전투에서는 거리 유지, 행동방식 파악 후 정확하고 빠른 사격이 핵심이다. 요한은 누가 어디서 변종을 만나더라도 대처할 수 있도록 변종의 상대법을 숙지시켰다.

두 번째로 강화한 것은 팀플레이.

세력 대 세력, 스쿼드 대 스쿼드가 만났을 경우를 대비한 훈련이었다.

“분대 단위의 전투가 일어났을 때, 한곳에 모여있는 건 자살행위야. 가장 중요한 건 네 가지. 인원 분배, 사운드 플레이, 포지션, 양각이다.”

요한이 상황판 위의 장기 말을 슥슥 옮겼다. 사람들은 귀를 쫑긋대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첫 번째로 인원 분배. 한 지역을 장악할 때는 이인 일조로 총 네 명이 한 스쿼드로 움직인다. 절대로 두 명 이상 뭉쳐 있지 마. 감시할 수 있는 시야 범위가 줄어들고 수류탄이나 유탄 한 방에 전멸할 수 있으니까.”

설명이 길어지자 요한은 한 번 호흡을 쉬었다가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한 스쿼드는 네 명 중 명중률이 좋은 두 사람이 한 조, 움직임이 빠른 두 사람이 한 조. 이렇게 구성한다. 같은 조는 항상 반대 방향을 주시하면서 서로를 백업해 줘야 해. 만약 교전이 일어나 누군가 다쳤을 때, 곧바로 부상한 사람을 구한답시고 달려들지 마라.”

“그러면?”

“적의 제거가 먼저다. 적을 눈앞에 두고 다친 사람을 챙기다가는 둘 다 저승행이 십상이니까. 적을 제거하거나 적이 완벽히 사라졌다고 판단되면, 그때 부상자를 챙긴다. 항상 기억해. 적의 제거가 먼저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은 다시 상황판을 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두 조는 건물 하나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로 다른 방향을 경계한다. 1조가 북동, 2조가 서남 방향을 보는 방식으로. 적이 나타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게 뭘까?”

“브리핑이요.”

요한의 말에 대답한 건 베르다였다. 그녀를 향해 요한이 한 번, 씩 웃어주었다.

“정답이야. 다른 조원들을 포함한 그 자리의 모든 그룹원이 알 수 있게 무전으로 위치, 거리, 수를 브리핑하는 게 일 순위다.”

위치, 거리, 수. 요한이 다시 한번 또박또박 그들의 귀에 때려 박듯 반복했다.

“두 번째로 사운드 플레이. 소음이 없는 세계인 만큼 총소리, 발소리, 뭐가 떨어지는 소리 등등. 이쪽의 소음을 최소한으로 하고 소리가 난 방향과 거리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거지. 반대로 이쪽에서 움직일 땐 항상 소음을 내는 것에 주의한다. 교전 중 잡음을 내는 건 죽여달라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해. 특히 너희.”

요한이 세리와 정환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을 가리켰다.

“잡담하지 마.”

“…알겠습니다.”

“세 번째로 포지션. 내 모습을 감추고 상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해. 높고 엄폐물이 많은 곳에서 자리를 잡는다.”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요한은 빠르게 넘어갔다.

“마지막은 팀플레이의 핵심. 양각을 잡는 거야.”

“……양각이라면?”

생소한 단어에 피오가 되물었다.

“말 그대로 양쪽 각을 잡는 거다. 교전 중에 서로가 엄폐물을 끼고 있는 경우. 수류탄을 투척할 만한 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사격 실력이 좋은 두 명은 기존에 있던 자리에서 숨어 있는 상대를 계속해서 견제해. 그리고 빠른 두 사람은 곧바로 적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크게 돌아 적의 엄폐물 뒤쪽을 잡는 거야.”

“쉽게 말해, 뒤치기지.”

스위퍼가 헤실헤실 웃으며 덧붙였다.

“브리핑부터 시작하지. 오른쪽, 왼쪽은 교전 중에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어. 자신의 기준이 아니라 항상 중립을 기준으로 해서 브리핑해. 몇 미터 떨어진 무슨 색깔 집. 몇 층에 몇 명. 이런 식이어야 한다. 네 명이 동서남북 방위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으면 방위로 설명해도 괜찮지만, 가능한 정확한 ‘장소’를 브리핑해야 해.”

이론 설명을 끝낸 후 요한은 신입 전투원들에게 계속해서 브리핑하는 훈련을 시켰다.

객관적인 위치, 거리, 수.

전투원들은 자면서도 벌떡벌떡 일어나 브리핑하는 연습을 해야 했다.

며칠 동안 앉은 자리에서 입으로 소리 내어 브리핑하는 연습을 해본 뒤, 요한은 본격적인 실전 훈련에 도입했다.

“스쿼드는 총 네 개로 운영한다. 1조는 나를 포함해서 리나, 피오, 옹 상병. 2조는 스위퍼를 포함해서 하진, 세리, 지원. 3조는 혁이를 포함해서 베르다, 정수, 에디. 4조는 정환이를 포함해서 소희, 진수, 재호. 가장 앞에 부른 사람이 조장이야.”

기존과는 다른 생소한 조합이었다. 스위퍼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외팔이 형씨는 조장이 아닌데? 3조, 4조 전력은 좀 불안해 보이고.”

막내 조장에, 신입 전투원들에, 미숙한 조원들까지 몰려 있으니 그런 걱정도 무리는 아니었다.

“1, 2조가 주력이야. 3, 4조는 조력이고. 웬만하면 1, 2조로 모든 걸 끝낼 거고, 3, 4조까지 나갈 정도면 거의 전쟁이라고 봐야지.”

“여기에 없는 정은이나 나머지는?”

“백업이야.”

어디까지나 세력전을 상정한 조였다. 요한의 특성상 조 편성은 시시각각 변했기 때문에, 굳이 더 왈가왈부하는 사람은 없었다.

실전 훈련은 서바이벌 장비가 없는 관계로 전술훈련과 사격 훈련을 구분해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빈 총을 들고 땅따먹기하는 듯 가볍게 참여하던 사람들도 요한의 불호령을 한번 듣고 난 후부터는 진지하게 임할 수밖에 없었다.

위치선정, 브리핑, 이동 타이밍 등등 한 가지라도 마뜩잖은 움직임이 나오면 곧바로 요한의 일갈이 떨어졌다.

“브리핑 똑바로 해. 전방에 파란 지붕 집은 두 개잖아. 사람들이 안 헷갈리겠어? 무전기 브리핑은 짧고 명확하게, 끝나면 무전기 송신 버튼 바로 떼고.”

“브리핑이 겹치잖아. 동시에 송신 버튼 누르지 마라니까.”

“백업! 느려!”

“정신 안 차릴래?”

“팀원들한테 브리핑도 안 하고 격발부터 하면 어떻게 해? 혼자 적 다 쓸어담을 자신 있어?”

다다다다 쏘아붙이던 요한이 마침내 한 명의 희생자를 잡아 불러세웠다.

“정환, 이리 와.”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유독 이 대세력전 전술훈련은 그와 맞지 않은 느낌이었다. 특히나 조장이었기에, 요한은 그를 정신없이 몰아쳤다.

“스쿼드 조장이 그런 식으로 하면 널 믿고 움직여야 할 세 명은 그냥 죽으라는 건가.”

“죄송해요, 형.”

“똑바로 하자.”

“예.”

사격 훈련은 서서쏴, 앉아쏴, 엎드려쏴부터 시작해서 이동 간 사격과 움직이는 표적 사격을 모두 진행했다.

소음기가 달린 장비들이 많지 않았기에 제법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요한은 지독할 정도로 높은 명중률을 요구했다.

특히 정환이 챙겨 온 다량의 드론 효과를 톡톡히 봤다.

격투술은 스위퍼와 하진이 담당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체력 훈련.

마치 월드컵 국가대표 전지훈련을 하듯, 요한은 그 어느 때보다 조원들을 사정없이 굴렸다. 입에서 단물이 나오고 위액을 쏟을 때까지 굴리고 또 굴렸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훈련뿐이야.’

요한의 생각은 단호했다.

영종도의 군부대, 변종 샤크(:캠프 요한을 전멸시킨다던 변종에게 요한이 붙인 이름), 변종 피콜로(:변종을 낳는 변종에게 스위퍼가 붙인 이름) 등등. 주변을 둘러싸고 수많은 위협과 위험들이 있는데도 정작 요한이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없었다.

마치 배틀그라운드에서 자기장이 줄어 들어오듯, 위기감은 천천히 그의 목을 억죄어 왔지만, 그저 할 수 있는 거라곤 훈련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롭고 평화로운 기간 동안, 요한은 그들을 굴리고, 또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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