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123화 (123/176)

<123화>

조악한 급유차가 헬기 하단부에 급유를 시작했다.

루카가 농사용 급수차를 조악하게 개조한 급유차로 헬기 하단부에 급유를 시작했다. 요한은 그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차가 없으면 급유가 안 되나?”

“어렵지. 하단에서 상단으로 기름을 넣는 거라.”

“원정 중간에 급유는 힘들겠네.”

“포인트를 만들어서 급유차랑 연료창고, 헬기장을 만들어서 중간중간 들르는 방식으로는 가능해.”

“참고하지.”

루카가 손을 털고 일어나 손걸레로 기름기를 쓱쓱 닦았다.

“출발하자고.”

프로펠러 돌아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헬기가 상공으로 떠올랐다. 어느덧 익숙해진 부유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헬기는 서해 상공을 지나 쏜살같이 인천항으로 도착했다. 항구 근처까지 도착하자 헬기는 조금 더 고도를 높였고 요한은 외창을 통해 헬기가 상륙할 만한 곳을 물색했다.

인천항 인근 앞바다에는 표류선이 둥둥 떠다녔으며 항만과 물류센터에는 군데군데 좀비가 가득했다. 마치 기어 다니는 개미 떼 같다.

“히야, 오랜만이구만.”

루카가 넓게 펼쳐진 항만을 보며 감탄사를 흘렸다. 서해 최대의 교역항인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다.

한쪽으로는 정리되지 않은 수많은 컨테이너와 수출입 물건들을 보관하는 물류창고들, 물류센터와 공장들까지.

군데군데 모여 있던 좀비들이 헬기 소리를 듣자마자 홀린 듯이 모여들었다. 놈들을 바라보는 요한의 눈이 형형했다.

“루카, 남동쪽으로 1km 지점 건물 옥상에 헬기장 하나 있다. 착륙하자.”

“내리게?”

“확인할 것들이 있는데, 아까운 연료를 낭비할 순 없잖아.”

“오래 걸리는 게 아니면 그냥 떠 있는 게 연료를 덜 먹을 텐데.”

“세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아.”

“내려갑니다요.”

헬기장에 헬기가 내려앉자 오랫동안 쌓여 있던 흙먼지가 허공으로 둥둥 떠올랐다.

막 내리려던 요한의 시야에 프로펠러 소리를 듣고 몰려든 좀비들이 비상구 통로에서부터 들어오는 모습이 들어왔다.

“좀비들 잡아봤지?”

“응? …잡아본 적이야 있지.”

“밖에 좀비들 몰려오네. 처리하자.”

“하하.”

“뭐야, 처리하자니까?”

“하하하!”

루카는 더욱 큰 소리로 억지 웃음소리를 냈다. 요한이 그에게 빤한 시선을 보냈다.

“혹시 좀비 한 마리도 안 죽여 봤나?”

“이봐, 전투는 피오랑 베르다의 담당이었다고.”

“턱도 없는 소리.”

이런 세상에 좀비 몇 마리를 무서워해서는 그대로 좀비 밥이 되기에 십상이다. 얼마나 편안한 시기를 보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요한은 그 나약함을 용납할 수 없었다.

“운이 좋네.”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은데…….”

요한이 헬기 문을 열며 가까이 붙은 좀비의 몸통을 두 발로 힘껏 밀었다. 가장 가까이 붙어있던 좀비 한 마리가 맥없이 밀려 나갔다.

“나한테 일 대 일로 과외받는 사람은 드물거든.”

요한이 공간을 확보하고 내리자마자 다가오는 좀비들을 향해 마체테를 휘둘렀다.

잘 벼려진 마체테는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한 마리의 좀비를 쓰러트렸다. 크게 힘주어 휘두르지 않는 것 같은데도 그의 공격에 당한 좀비들은 깔끔하게 썰려 나갔다.

다섯 마리의 좀비를 쓰러트린 후 비상구 문에 도착한 요한은 비상구 안쪽에 있던 두 마리의 좀비를 바닥에 굴린 후 문을 닫았다. 쿵쿵, 문밖에서 좀비들이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

루카가 의문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이 녀석이 또 무얼 하는 걸까.

요한은 포획한 좀비 두 마리의 팔을 자르고 턱부터 코까지 베어냈다.

“자, 처리해. 봐 줄 테니까.”

“거 참, 어른 공경이라곤 1도 없는 친구구만.”

“좀비가 애 어른 가리면서 공격하는 거 봤어?”

“간다, 가.”

루카의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오히려 멀쩡한 좀비보다 두 팔과 하관 절반이 잘린 채 덜렁거리며 걸어오는 모습이 더 끔찍했다. 절로 오줌을 지릴 만한 비주얼이었다.

“총을 쓰면 안 되겠지?”

“안 돼. 그리고 자세가 불안정해.”

요한이 접근하는 좀비들을 다시 밀어 넘어뜨리고서는 그의 뒷발을 툭툭 쳐서 뒤쪽으로 뺐다.

“무게중심을 살짝 앞으로 하고 있어야 힘에서 밀려도 안 넘어져.”

“그래? 다른 애들 싸우는 건 안 그렇던데.”

“걔들은 이미 좀비한테 힘으로 밀리는 시기는 지났으니까. 온다.”

루카가 힘껏 나이프를 휘둘렀다. 휘두른 나이프는 좀비의 목에 반쯤 박혀버렸다.

“으윽…….”

나이프를 회수하려 애를 썼지만, 틀어막힌 나이프는 곱게 빠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사이 좀비 한 마리가 근처에서 주억거렸다.

“아악!”

아가리에서 피를 뚝뚝 흘리던 좀비가 요한에 의해 뒤로 내팽개쳐졌다. 요한은 루카에게서 나이프를 건네받아 좀비를 매단 채로 옥상 난간에 후려쳤다. 반쯤 잘렸던 좀비의 목이 두 동강이 나고, 촤악, 피가 튀어나왔다.

요한이 다시 나이프를 건넸다.

“아직 목 채로 베는 건 힘들 거야. 눈을 찔러. 자, 한 마리 더.”

요한의 말대로 루카가 재빨리 접근하는 놈의 뒷머리를 잡고 눈깔을 찔렀다. 뿌직, 마치 터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검은 피가 솟구쳐 나왔다.

“잘했네. 다음부터는 손을 뻗어서 목을 잡거나 하지 마. 붙잡는 게 아니라, 상완으로 밀어내는 거야. 헬기에서 내릴 때 보호구 꼭 차고.”

“그, 그래.”

요한은 좀비들의 시체를 한쪽으로 치우고 몸의 높이를 낮춘 채 쌍안경으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생존자의 흔적, 좀비들의 수, 그리고 전반적인 지형지물까지. 청소를 위한 사전 답사였다.

‘경계 철책이나 장벽이 있었으면 좀비 몰이라도 해 보겠는데.’

인천항은 완전히 개활지에 가까웠다. 바로 옆에는 임대 아파트까지 있어 좀비들이 얼마나 더 튀어나올지 모른다. 아예 이 지역 전체를 정리하려면 장기전이 될 확률이 높았다.

문제는 그렇게 좀비들의 씨를 말린다고 해도, 언제 다시 좀비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

요한은 수첩을 꺼내 이것저것 적어나갔다. 그중 가장 신경 쓴 것은 지형도.

무턱대고 좀비들을 때려잡기에는 너무 큰 규모였다.

우선 가장 중요한 거점들을 위주로 위치를 표시했다. 물류센터, 정유공장, 컨테이너 창고의 규모별 위치 등등, 잊지 말아야 할 부분들.

거의 한 시간가량을 옥상에서 주변을 둘러보던 요한이 헬기에 기대 팔짱을 끼고 있던 루카를 불렀다.

“출출한데, 밥 먹고 하자.”

“…여기서?”

“그럼, 내려가서 먹을래?”

요한의 말에 루카의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다. 바로 뒤쪽에 좀비들의 시체와 핏자국이 낭자한데, 여기서 밥이 넘어간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루카의 속내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요한은 지혜가 싸준 도시락 뚜껑을 열어 입에 욱여넣기 시작했다.

에라 모르겠다.

루카도 반쯤 포기한 상태로 숟가락을 놀렸다.

“사적인 질문 좀 해도 될까?”

“얼마든지.”

좀비들의 하울링 소리와 달그락거리는 숟가락 소리만이 가득하던 정적을 깨고 요한이 질문했다.

“헬기 조종 자격증은 해경본부에서 얻은 건가?”

“아니, 오슬로 NOP에서 사관생으로 교육받고 근무했었지.”

“오, 해외파.”

“그럼. 해외물을 조금 많이 먹었지. 한국은 경력직으로 들어온 거고. 우리나라는 알다시피 경력직을 좋아하잖아?”

NOP가 뭔지는 몰라도 해외에서 헬기 조종사 자격을 취득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경력이라는 건 예상됐다.

“그런 대단한 경력의 조종사가 어째서 리나의 개인 전용기사 역할을 하고 있는 거야. 리나와는 어떻게 만나게 됐지?”

“음, 리나보다는 리나의 아버지, 회장님과 인연이 깊은 사이였지.”

“회장님?”

“뭐, 짐작했겠지만 아가씨의 집안은 오슬로에 본사가 있는 유럽 10대 기업 사주일가 가문이거든.”

“그런 대단한 가문의 따님이 왜 수녀를?”

“예지몽 때문이지. 아가씨가 어릴 때부터 예지몽을 꾼다고 말했다가 미친 여자 취급을 많이 받았거든. 귀신들렸다는 이야기를 그다음으로 많이 듣고. 뭐, 후계들의 견제 탓도 있었지만.”

가능성 큰 이야기네. 요한이 맞장구쳤다.

“리나 아가씨가 처음 예지몽을 꾼 건, 그녀의 모친이 사망사고였을 때야. 기억나지? 오대양항공 여객기 추락사건.”

요한은 어렴풋이 고개를 내미는 기억을 더듬었다. 워낙 오래된 기억이라 희미하기는 하지만, 어릴 적 뉴스에 대서특필 될 만한 비행기 추락사고가 있었다는 것은 어렴풋이 기억났다.

“하필 거기 일등석에 그녀의 모친이 타고 있었어. 사모님이 공항에 계실 때, 리나 아가씨가 울며불며 난리를 쳤거든. 엄마가 죽게 생겼다고.”

요한은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사모님은 오슬로로 돌아오던 와중에 돌아가셨고 뭐, 그때부터 한 일 년에 세 번 정도는 그런 무서운 이야기들을 했다고 하더군. 근데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한 게 재앙을 예고 받으면, 그걸 부정하고 예고한 사람이 마치 저주라도 내린 양 취급해 버리는 거야.”

“일반적인 반응이지. 그래서 수녀가 됐다고?”

“맞아. 신의 계시라는 껍데기를 빌린 거지. 신앙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도 믿게끔 만드는 힘이 있으니까.”

요는 수녀가 되어서 예지몽을 꾸게 된 게 아니라, 예지몽을 믿게 하려고 수녀가 되었다는 소리네. 제법 요망한데.

“뭐, 아가씨 이야기는 그만하지. 아무래도 뒷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아 찝찝하네. 아, 비밀은 아니야. 아마 물어보면 아가씨도 상냥하게 답해 주실걸. 그러니 자세한 건 직접 물어보라고.”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혜가 싸준 도시락 안의 내용물은 거의 깨끗하게 비워진 상태였다.

“참, 루카 씨 가족들은?”

“죽었어. 사고로. 리나의 말을 믿지 않았던 대가지.”

숟가락을 깔짝거리던 요한의 손짓이 멈칫했다. 그는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예의 그 간사한 사람 중 하나였던 루카 또한 처음에는 그녀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었다. 괜히 재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며 뒤에서 구시렁거렸을 뿐.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고 나서야 그는 그녀를 원망했다.

‘왜, 왜……. 더 강하게 절 말리지 않았습니까.’

‘미안해요, 미안해요. 아저씨…….’

오히려 적반하장임을 앎에도, 가족을 잃은 슬픔에 누군가를 탓해야만 했던, 그래서 그녀를 책망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위해 그녀는 기꺼이 원망의 대상이 되어주었다.

아니. 어쩌면 정말 자신이 막지 못했다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서 미안해.”

“아니. 괜찮아. 오래된 일인걸.”

“그럼 피오와 베르다도 그런 비슷한 경우인가?”

“아니, 세 사람은 소꿉친구야. 회장님은 보육원에서 데려온 두 사람을 아예 어릴 때부터 같이 지내게 하고 특수요원들이나 받을 법한 훈련을 거쳤어. 자기들이 리나의 보호자인 줄 알지.”

요한은 리나의 집안 사람들이 지금은 무얼 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지만, 그에게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 직접 물어볼 날이 있으리라.

“우리 좀 친해진 것 같지, 어린 친구?”

“그래. 대답해줘서 고마워.”

요한은 다시 지도를 그려 넣기 시작했고, 루카는 휘파람을 불며 조종석에 기대어 누웠다.

한 시간 후, 두 사람은 신도로 복귀했다.

* * *

사전 답사 일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요한은 수색일까지 남은 일자 동안 몸 상태를 끌어올리기 위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독서. 이른 아침부터 저수지 중앙의 정자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책이나 읽는 게 정신건강에는 가장 도움이 되었다.

한참을 몰입해서 책을 읽고 있던 와중, 멀리서부터 인기척이 났다.

“뭘, 그렇게 열심히 봐. 오빠, 어울리지 않게.”

세리가 슬쩍 책을 들어 제목을 확인했다. ‘스미노 요루’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라는 제목이 들어왔다.

“…그런 내용이 아닌 건 알지만, 지금 되돌아보니 제목이 좀 섬뜩한걸.”

요한이 씩 웃으며 책을 덮고 일어났다. 그 순간, 신경이 곤두서고 뭔가 저릿저릿한 느낌이 났다. 요한이 휙휙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지?

샤크는 죽었다. 껍질이 다 벗겨지고 산산이 조각난 것까지 확인했으니까. 그렇다면 그러면 이 느낌은 도대체.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전까지의 위협이 바로 코앞에서 느껴지는 살기 같았다면, 지금은 마치 멀리서부터 위협이 자신을 조여들어 오는 듯한 느낌.

하지만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었다.

요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리나를 향해 달려갔다.

“어, 오빠? 오빠!”

세리가 요한을 향해 외쳤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이 불안감의 원인을 빨리 알아내야 했다.

전속력으로 성당 부근까지 내달리자 입구 쪽에서 급하게 튀어나오는 리나와 베르다가 보였다.

뭔가가 있다. 분명 뭔가가 있어.

그녀들도 때마침 자신을 찾으러 나가려던 참이었는지, 요한을 발견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왔다.

“헉, 헉. 요한 님…….”

“어. 무슨 일이야?”

그녀가 요한을 보자마자 내뱉은 이야기는, 듣는 순간 멘탈을 산산 조각내는 이야기였다.

“발전소가…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는 것 같아요.”

종말이 그에게 체크메이트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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