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125화 (125/176)

<125화>

스위퍼는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라고 요한에게 한 차례 타박을 당한 후,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고, 요한의 전달이 이어졌다.

“인천항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생존자 구출이나 물자 수색은 그만둔다. 일단 지금 중요한 건, 저 군함을 어떻게 운용할지야.”

“대장님, 만만치 않을 거예요.”

“알아. 하지만 대안이 없잖아.”

답은 정해져 있다.

“우선 구해야 할 것은 연료인데. 루카, 군함 연료는 어떤 걸 쓰지?”

“해군 함정은 대부분 MDO를 쓰는데(:Marine Diesel Oil), F-76이라고 중유랑 휘발유를 섞은 거지. 인천항만 정유공장 창고에 가면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거야. 군용 연료를 납품하는 업체 중 한 곳이 거기서 정유공장을 하거든.”

“응? 함정 연료는 벙커 씨유 아니에요?”

“벙커 씨유는 지금 우리가 쓰는 어선에나 쓰는 거지.”

이상하네, 재호가 중얼거렸다.

“둘 다 챙겨. 어차피 인천항은 정리하려고 했으니까 헬기 연료 구할 때 같이 구하면 되니 문제없을 거고. 가장 큰 문제는 군함 운용을 위한 정보들인데…….”

모든 군사시설과 장비에는 사용법이 있다. 그리고 국군 매뉴얼은 생각보다 잘 정리되어 있었다. 다른 부분은 모르더라도 함선을 띄우고 조종하는 정도라면, 어쩌면 자료들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해군 함정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운용법부터 급유, 정비까지 가급적 많은 정보를 구할 수 있는 곳.”

지식을 소화할 수 있는지는 다음 문제다. 못한다면 할 때까지 사람들을 믹서기에 넣듯 갈아 넣으면 된다. 가방끈 긴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지금 눈앞에서 핑핑 머리를 굴리고 있는 신유형의 인재처럼.

“재호야.”

재호는 본인이 호명되자마자 요한이 궁금해한 부분을 주르륵 설명했다.

“일단 함선 운용을 위한 자료는 군사기밀이라 관련 시설을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어요. 우선 가장 유력한 곳은 충남 계룡 해군본부고요, 그다음 경남 진해에 해군사관학교가 있어요. 두 장소는 문서를 100% 구할 수 있는 장소라고 봐야 하죠.”

“너무 먼데.”

“여의대방로에 해군 회관이 있는데, 아마 그쪽은 군사훈련이랑은 전혀 관계없을 테고… 아!”

재호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국립중앙도서관.”

“도서관? 군사기밀이 도서관에 들어가 있을 리가 없잖아.”

“민간인들에게 공개하는 자료는 당연히 그렇지만, 국립중앙도서관은 대한민국에서 발행하는 모든 공식간행물, 비공식간행물을 최소 1부 이상 보관하게 되어 있어요. 정부, 군사 간행물까지요.”

요한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재호가 황급히 말을 덧댔다.

“대부분 모르는 사실이지만요, 중앙도서관이 중요 보호시설인 데는 이유가 있죠. 정부와 군 발행 비공식간행물 중 1급 문서로 취급하는 간행물은 관계자 외에는 접근이 불가능하거든요. 해군 함정 운용에 대한 간행물은 군사기밀 급까진 아니더라도, 수병이나 부사관들을 교육하기 위한 교육자료들은 보관되어 있을지도 몰라요. 교본 같은 거요.”

“확실해? 괜히 가 보고 싶어서 던져 보는 거라면 지금 말해.”

아무리 생각해도 군사자료가 도서관에 들어가 있는 건 이상한데.

“……확실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지금 시국에 제 개인적인 욕망으로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릴 만큼 멍청하진 않아요, 대장. 전 개인적으로 충남 계룡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호의 또박또박한 말에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진심을 말하는 표정이라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있다가 아니라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어디까지나 의견일 뿐이니까 참고만 하면 된다.

“그래, 의심해서 미안하다. 가까운 곳부터 가 보지. 국립중앙도서관, 해군본부, 해군사관학교 순서로 가자.”

“근데 정말 괜찮을까요? 정부시설인데… 위험하지 않을까요?”

“글쎄, 개인적으로 세 곳 중 어느 곳도 정상적인 운영이 되지 않을 거라 확신은 한다만. 또 모르지. 아, 혹시 서해 라인에 해군기지는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서울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사람이든, 좀비든 가장 많이 득실대는 곳,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이었으니까.

자신의 목숨 하나 지키는 거야 자신 있었지만, 동료 중 희생자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군사기지에도 수병 교육용 교재 정도는 있긴 하겠지만… 해군기지는 제가 정확한 위치를 몰라요. 평택이나 진해, 제주, 부산같이 유명한 곳들은 그저 그 도시에 있다, 정도만 대충 알고요.”

“일단 알겠어. 추가로 물어볼 사람이 있으니 너무 그렇게 미안하다는 표정 지을 필요 없어.”

그가 준 도움은 지금도 충분했다. 그만해도 충분히 지금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가닥이 잡혔으니까.

요한은 재호에게 잘했다는 의미로 엄지를 한 번 들어 보이고선 탁자를 두어 번 두드렸다.

“다음은 이번 수색에 참여할 인원인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기 수색이다. 마음 같아서는 주력 구성원을 모두 끌고 나가고 싶지만, 섬 주민들의 안전도 신경 써야 했다.

천혜의 장벽이 되어줄 거라 확신했던 바다는 알고 보니 구멍 뚫린 벽이었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인류와 변종 샤크라는 존재는 언제라도 그 벽을 넘어올 수 있었다.

밖으로 나가는 인원들은 더 위험한 상황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닥쳐올지 모르는 위협.

몇 명을, 누구를 데리고 나갈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지금 결정이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 모르는 사항이니까.

또다시 누군가가 죽을 수도, 최악의 경우 어느 한쪽이 전멸할 수도 있는 중대한 선택.

‘확률적으로 생각하자. 어느 곳이 더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은가.’

지금까지 만난 변종은 총 세 번. 사실상, 골룸, 다윗, 샤크가 전부였다. 5개월 동안 3번, 최소 5주 이상의 간격이다. 원정은 길어야 1, 2주.

핵심 구성원이 빠졌을 경우, 그들의 손길이 아쉬워질 확률이 높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수색조다.

요한은 결정을 내렸다.

“총력으로 간다. 조 편성은 대인 전 기준으로 1조부터 4조까지 전부. 추수도 끝났으니까 생산조들을 한동안 경계병으로 돌려. 경계조는 서준 아저씨가 맡아주세요.”

“야, 남은 수색조도 있는데 내가 왜…….”

“그들은 무리를 이끌어본 경험이 너무 적습니다. 아저씨가 맡아주세요.”

“아, 알았다.”

서준이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1조 리나는 상황실 대기로 빠져. 공석엔 베르다가 1조로 자리 이동한다. 3조 베르다가 빠진 자리에는 루카가 전투보조 겸 수색조로 들어온다.”

“살려줘, 어린 대장.”

요한은 깨끗하게 무시했다.

“4조 조장 공석은 하진이 들어가고, 2조 공석은 정은이가 들어와.”

“오예, 1부리그 복귀했당.”

정은은 두려움을 이겨내려고 일부러 더 밝은 목소리를 내며 웃었다.

총원 16명.

캠프 요한의 전(全)력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의료인 둘 중 한 명을 데려가고 싶었지만, 요한은 갈증을 참아냈다. 어차피 응급처치법은 모두 숙지하고 있었다.

“인천항부터 시작하자. 서준 아저씨, 군장 준비해 주세요. 최소 1주 치 분량으로 최대한 가볍게요.”

“그래.”

“출발은,”

모두가 침을 꼴깍, 삼켰다.

“내일 오전. 시간 끌 필요 없지.”

* * *

사람들은 헬기와 배에 나눠탄 채 인천항으로 향했다. 헬기가 먼저 빗자루를 쓸 듯이 인천항의 선착장 부분부터 좀비들을 유인해서 아파트 단지까지 날아가고, 뒤늦게 도착한 어선에서 세 개 조의 사람들이 내렸다.

“1조는 돌격대. 2조는 수송조 호위, 3조는 헬기조, 4조는 수송조야.”

우선 헬기조가 좀비들의 시선을 끌고 최대한 멀리까지 좀비들을 끌고 간다.

그 사이, 1조는 닥치는 대로 좀비를 쓸어담고, 2조는 4조를 엄호, 4조는 물자들을 섬으로 옮긴다.

3조와 4조에 각각 헬기와 어선을 운용할 수 있는 루카, 재호가 있는 걸 염두에 둔 임무 배정이었다.

“1순위는 연료, 2순위는 식량. 두 가지를 제외한 모든 건 버려. 식량도 가성비 떨어지는 건 놔둬, 어차피 다 가져가지도 못할 테니.”

옆에서 수송조 호위를 맡게 된 스위퍼가 볼멘소리했다.

“1조가 더 재밌어 보이는데. 우리가 돌격대 하면 안 될까?”

“너희 조에서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요한이 턱짓하자 스위퍼가 세리, 지원, 정은이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세 사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피오, 좀비 위치 확인되는 곳 있어?”

“어, 멍청한 놈들이 북동쪽 회색 건물에 몰려 있어. 헬기 따라가다가 담벼락에 막혔나 봐.”

“옹, 루카, 베르다. 가자.”

요한은 짤막하게 지시한 후 앞장서서 달려갔고, 세 사람이 뒤따랐다.

네 사람이 도착한 곳에는 좀비들이 근 사오십 마리는 몰려 있었다.

헬기가 지나간 곳을 향해 그저 허우적거리기만 하던 놈들은, 네 사람이 도착하자마자 하나둘 뒤를 돌아보더니 그들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옹이는 뒤에서 쇠뇌로 지원하고, 베르다 왼쪽, 피오가 오른쪽. 조금씩 뒤로 라인 당기면서 처리한다.”

요한은 최대한 안전한 작전을 지시했다. 신입 전투원들의 대 좀비 전 전투력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 실수하더라도 곧바로 옹 상병이 백업할 수 있는 포지션.

요한이 가장 앞에 접근한 좀비의 관자놀이에 마체테를 휘둘렀다. 썩을 대로 썩은 좀비의 두개골이 통째로 잘리면서 놈이 쓰러졌다.

“하앗!”

“합!”

두 사람은 힘껏 기합을 내지르며 좀비와의 전투를 이어갔다.

베르다의 무기는 나무 봉.

굳이 날붙이들을 놔두고 저렇게 평화로운 무기를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자기 몸만큼이나 긴 봉을 마치 죽창 찌르듯이 좀비들을 쑤셔대고 있었다.

“하앗!”

베르다와 반대로 피오의 무기는 상당히 짧은 단거리 무기였다.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을 넣을 수 있고 엄지 쪽에 스프링과 고정기가 있어 넣었다가 빼거나, 뺀 채로 고정할 수 있는 날카로운 컴뱃 나이프.

한때 나이프를 구하기 위해 시장을 알아봤던 요한이 보지 못했던 제품인 걸 보아, 아마도 직접 제작했을 듯했다.

안전성을 제외하고 단지 효율성으로만 따지면 대 좀비 용으로는 최고의 효율을 자랑할 듯한 그런 무기였다.

휴대도 간편하고, 그립을 잡는 힘도 단단할뿐더러 종종 찌르는 힘마저도 아낄 수 있을 테니.

이 무기를 선택한 이유를 방증이라도 하듯 피오의 움직임은 깔끔했다.

마치 자신을 닮아 있었다. 스위퍼처럼 화려하지도, 묵직하지도 않지만, 효율적으로 딱딱 필요한 만큼만 몸을 움직여 좀비들을 처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섬에 오랫동안 처박혀 있어서 실전 감각이 부족할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이 친구들은 대좀비 훈련과 시뮬레이션으로 끊임없이 단련해 온 전사였다.

“마지막, 한 마리.”

어느덧 두 사람이 합쳐 죽인 좀비 수가 제가 혼자 잡은 수를 웃돌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거의 피가 튀지 않았다. 한바탕 좀비와 전투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오히려 지원은커녕 구경만 하게 된 옹 상병이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다.

퍽!

마지막 남은 좀비 한 마리의 머리에 나무 봉이 박히고 베르다가 품에서 물티슈를 꺼내 봉에 묻은 피를 쓱쓱 닦아냈다.

“옹아, 올라가서 다른 좀비 있는 데 확인해라.”

“옙.”

요한은 옹 상병을 건물 안으로 올려보내고 나서 베르다를 향해 조언을 던졌다.

“베르다, 나무 봉 끝부분은 조금 날카롭게 다듬는 게 좋겠다.”

“예? 그치만…….”

“찌르기만 하면 될 걸 굳이 박살 낼 필요는 없잖아. 체력적으로 부담이기도 하고. 왜 무슨 문제 있어?”

요한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던 베르다는 이를 어쩌지, 라며 발을 동동 구르다 눈빛으로 재촉하는 요한 때문에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러면 피오 명치를 세게 칠 수 없는데.”

“……한쪽만 깎고 반대쪽으로 때리면 되잖아.”

“아, 그런 방법이?”

베르다가 손뼉을 짝 치자, 뒤에서 피오가 중얼거렸다.

“아니, 안 때리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러다가 잘못해서 날카로운 쪽으로 찌르면 어떻게 해?”

“어쩔 수 없지. 그럼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죽으렴.”

“뭐, 이 절벽 가슴 멍청이가…….”

“누가 멍청이래, 이 꼬맹이가!”

“그냥 멍청이가 아니라 절벽 가슴 멍청이거든?”

요한이 짧게 한숨을 쉬고선 티격태격하는 두 꼬맹이에게 시선을 거두고 높은 곳에 올라가 있는 옹 상병을 향해 물었다.

“옹아, 뭐 보이니.”

“다수는 안 보이고, 한 마리 돌아다니는 게 있는데, 처리할까요?”

“그래.”

옹 상병은 대답하자마자 견착하고 있던 볼트액션식 K-14 저격소총을 쏘아 보냈고, 소음기에 걸린 탄환 소리가 났다. 날카롭게 쏘아졌다.

‘굳이 소총을 쓰는 걸 보니, 상당히 손이 근질근질했나.’

나름 캠프의 에이스 중 한 명인데 넋 놓고 구경만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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