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으으…….”
몇몇 생존자가 인상을 찡그렸다. 요한은 좀비 시신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하진과 스위퍼가 서로 주고받으며 시시덕거렸다.
“끔찍하네.”
“골드문 상무가 떠오르는데.”
“아, 진짜 그 이름 오랜만이네. 그게 우리의 시작이었는데. 전설의 시작 말이야. 그렇지, 형씨?”
“그때 너희를 만나지 않았어야 했는데 말이지.”
“그랬으면 형씨는 진즉 죽지 않았을까?”
두 사람이 떠들든 말든 요한은 여전히 좀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대장 형씨, 뭘 그렇게 봐?”
“상처가 있는지 찾고 있었어.”
“상처는 왜?”
스위퍼가 되물었지만, 요한은 그저 고개를 저었다. 스위퍼는 고개를 갸웃했다. 표정이 뭔가 복잡한 느낌인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뭔가 시선이 느껴지는 기분인데.”
“응?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기분 탓인가.”
요한은 좀비에게 안식을 선물한 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무언가 시선이 느껴지는 기분인데 주변에는 카메라도, 인기척도 없었다.
“참. 스위퍼.”
“응?”
“골드문 하니까 갑자기 생각난 건데, 너 그때 나 처음 만났을 때 말이야.”
“으, 응?”
“H백화점에 뭔가를 찾으러 왔다고 하지 않았나. 그때 뭘 찾으러 들어간 거야?”
“와 정말 빨리도 물어보네!”
“어쩌다 보니까 잊고 있었거든. 딱히 물어볼 타이밍도 없었고.”
요한의 질문에 스위퍼는 대답할 생각이 없는지 그저 방긋방긋 웃기만 했다. 요한은 굳이 다그치지 않았다.
“뭐야, 비밀인가.”
“…….”
“그래. 뭐, 말하기 싫은 비밀도 있는 거니까.”
“굳이 대단한 비밀은 아니야. 흑역사가 좀 있을 뿐이지.”
“다시 전진하자. 스크린도어 넘어서부터는 긴장하고.”
수색조는 다시금 전진했다. 숨 막힐 것 같은 어둠 속에서 숨죽인 채 이동하던 그때,
쾅! 끄아아아!
“아 씨! 깜짝… 이야.”
훅 치고 들어오는 유리문 두드리는 소리와 좀비들의 울음소리에 세리가 화들짝 놀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조원들에게 심장마비를 선사할 뻔한 건 멈춰 있는 전철 차량이었다.
긴급 정거한 듯 엉뚱한 선로 위에 멈춘 객실 안에는 당장에라도 유리창을 깨고 나올 법한 좀비들이 가득했다.
“으, 진짜 싫다.”
생존자들이 가까이 오자 인기척을 느낀 좀비들이 객실 안에서 발광하기 시작했다.
문을 두드리고 몸을 비틀다가 저들끼리 누르다 못해 맨 앞의 좀비는 압력에 못 이겨 그대로 내장이 터져 나왔다.
“그만 봐. 가자.”
요한은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사람들을 재촉했다.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닌데, 사건 하나하나에 너무 일희일비하는 것도 자제해야 했다.
몇 분이나 걸었을까, 재호가 손전등으로 역 명이 적인 안내판을 비추며 말했다.
“신길역이에요.”
신길역에서 1호선으로 선로를 옮기면 거기는 지상철이다. 지금처럼 속이 꽉 막힌 공포감은 느끼지 않아도 될 터. 몇몇 조원의 안색이 밝아졌다.
객실에 갇혀 동물원 원숭이 신세가 된 좀비들을 제외하면 좀비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스크린도어를 넘어 이 선로 위를 걸어 다니는 것 자체가 좀비들에게는 어려운 일일 터다.
저벅저벅 걷는 발소리마저도 크게 들릴 정도로 적막만이 가득했고, 빛 하나 들지 않는 시커먼 지하철 속 흔들리는 열여섯 개의 손전등 불빛만이 이리저리 흔들릴 뿐이었다.
지하도는 안전했다.
다만,
‘생각보다 할 짓이 못돼.’
폐소공포증을 유발할 만큼 답답한 어둠, 걸어 다녀야 한다는 불편함, 장기간 이용할 수 있는 조명의 여유, 위의 세 가지 조건을 이겨낼 수 있어야 했다.
그중 오감이 빳빳하게 일어날 만큼 시커먼 어둠은 예민해진 감각을 점점 무디고 피로하게 했다.
신경 써야 할 것은 하나 더 있다. 지하도 하면 떠오르는 놈. 변종 골룸.
변종 자체가 흔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나마 생존자들이 가장 자주 만나게 되는 변종 중 하나가 바로 골룸이다.
주 출몰지가 동굴이나 지하철 같은 어둡고 음습한 지역인데, 특히나 서울처럼 도시 곳곳에 지하철이 펼쳐져 있는 곳에는 놈의 출현 빈도가 더욱 높았다.
골룸처럼 특정 환경에서 자주 나타나는 변종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다윗. 놈은 군부대를 특히나 좋아했다. 쇠를 뜯어먹고 뱉는 놈의 습성을 생각하면, 아마도 쇠 냄새나 화약 냄새에 반응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평화로우면 꼭 초를 치는 놈들이…….’
그르르르….
‘있다니까.’
생각하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좀비보다는 더 낮고 선명한, 명백한 한 마리 짐승의 울음소리.
변종 골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시대에 와서 첫 번째로 마주쳤던 변종이 또다시 자신을 향해 누런 이빨을 들이밀었다.
요한이 지척을 비추던 손전등을 살짝 들어 먼 곳을 비췄다. 박쥐처럼 천장에 매달려 울음소리를 내는 변종 골룸이 시야에 밟혔다.
“정지. 변종이다.”
요한의 신호에 사람들이 순식간에 몸을 경직시키고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당장에라도 전투를 시작할 것처럼. 요한은 수신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인지라 또박또박 음성으로 지시를 전달했다.
“총은 쏘지 마. 옹 상병, 소희, 세리는 쇠뇌랑 양궁 들고 따라오고, 스위퍼, 하진은 근접전 준비. 나머지는 반반 나눠서 반은 시야를 밝히고 반은 뒤쪽에서 접근하는 좀비 없는지 경계해.”
골룸에 대한 공략은 여기 있는 모두가 숙지하고 있다. 단순한 패턴에 난이도로 따지면 중간을 웃도는 수준의 변종. 위기감조차 들지 않았다.
전투 인원으로 뽑힌 여섯 명이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놈도 그들의 접근을 인지했는지 붉은 안광을 내뿜기 시작했다.
요한은 골룸이 공격을 시작하는 경계선 바로 바깥쪽에서 원거리 공격을 지시했다.
핑-!
세 명이 쏘아낸 화살이 동시에 변종의 몸에 틀어박혔다.
끼에에엑!
화살에 맞은 변종이 씩씩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요한이 곧바로 투척용 단검 하나를 들어 놈의 아가리에 집어 던졌다.
단검은 그대로 놈의 목구멍에 틀어박혔다.
다시 한번 변종의 끔찍한 비명.
놈은 사정거리 밖에서의 공격이 계속되자 몸을 한번 움츠리더니 벽을 타고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핑! 그 와중 소희가 쏘아 보낸 화살 한 발이 놈의 몸에 틀어박혔다.
몸에 몇 발의 화살을 꽂은 채 빙글빙글 도는 골룸. 흡사 고슴도치가 쳇바퀴를 도는 듯한 모습이었다.
세 바퀴, 그리고 네 바퀴, 다섯 바퀴째.
“온다.”
캬아악!-
요한의 짤막한 경고와 동시에 변종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 순간, 하진이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 나가며 놈의 몸을 철제 방패로 들이받았다.
쾅! 묵직한 충격음과 함께 변종의 공격이 방패에 틀어막혔다. 깔끔한 방어였다. 제 공격이 실패했다는 걸 깨달은 변종이 다시 뛰어오르려는 찰나, 요한과 스위퍼가 놈의 양팔을 각각 잘라냈다. 눈 깜짝할 새였다.
끼에에에엑!!-
변종의 비명이 선로 위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마치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끔찍한 목 울림.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아야 할 정도였다.
잠깐 공격이 주춤한 사이, 골룸이 다시 뛰어오르려는 듯 도약 준비 자세를 잡았으나, 놈이 뛰는 것보다 하진의 방패가 놈의 머리통을 후려치는 게 먼저였다.
쿵!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골룸이 바닥을 뒹굴었다. 곧바로 요한과 스위퍼의 무기가 거의 동시에 양쪽 다리를 잘라냈다.
끽, 끼엑-!
몸과 머리만 남아 꿈틀거리는 변종은 처참할 정도로 일방적으로 공격당했다.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시도해보지 못하고 팔다리가 잘리게 된 신세. 그 위로 하진이 방패 끄트머리를 가져다 댔다. 이내 힘껏 내려찍기 시작했다.
퍽! 퍽!
철제 방패에 찍힐 때마다 시뻘건 피가 허공으로 파박 튀어 올랐다. 그의 무식한 난도질은 골룸의 울부짖음이 멎을 때까지 한참을 계속됐다.
기세등등하게 달려들었던 변종이 곤죽이 되기까지는 1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세 사람은 칼과 방패에 묻은 피를 툭툭 털어냈고, 그들을 보는 모든 수색 조원들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답도 없는 괴물들…….”
이젠 누가 괴물인지 헷갈릴 지경이라고 생각하면서.
“얘들아.”
요한의 차가운 음성에 다들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찔했다.
“누가 경계할 때 한눈팔래.”
“죄… 죄송…….”
요한은 가장 앞에 있던 정수의 어깨를 툭 친 후 턱짓했다.
“가자.”
요한의 한 마디에 사람들이 후다닥 움직였다.
“게임 같았으면 보상이라도 줄 텐데, 이건 뭐 잡아도 얻는 것도 없고. 괜히 힘만 빼고 말이야.”
“그래도 빨리 처리해서 다행이지. 더 오래 시간 끌었으면 좀비 객차 안에 타던 좀비들이 유리 깨고 튀어나왔을 거야.”
“그건 좀 끔찍하네.”
요한은 속도를 줄였다. 본의 아니게 약간의 소란이 있었다. 지하철로는 너무 어두웠고 불안한 기운이 팽배했다.
그때, 스위퍼의 발 근처에서 양다리가 물어뜯긴 채 죽은 듯이 잠자고 있던 좀비가 눈을 번쩍 떴다.
그러고선 곧바로 스위퍼를 향해 이빨을 들이대 왔다.
스위퍼가 좀비의 이를 피한 후 곧바로 발뒤꿈치로 놈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콰직! 소리와 함께 좀비의 얼굴이 땅바닥에 처박혔다. 스위퍼가 목 뒤로 도끼를 내려쳤다.
“아, 깜짝이야. 진짜 왜 이래, 좀비 형씨들. 공포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나.”
“천천히, 더 천천히 가자.”
요한이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행렬을 멈췄다. 어두움이 주는 불안감 때문인지 행군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분위기는 당장에라도 뭔가 터질 듯 팽팽하다. 이쯤에서 한번 제동을 걸어 주어야 했다.
“지금 전진 속도가 너무 빨라.”
어느 순간부터 바닥이나 벽에 붙어 죽어 있는 좀비들의 시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점점 숨소리마저 사라진 채 수색 조원들은 그저 조용히 최대한 벽 근처에 붙어 이동했다.
마침내 신길역 승차장에 도착하고 환승하기 위해 문 닫힌 점포들이 즐비한 몇 번의 통로를 지나치자 밝은 빛이 그들을 맞이했다.
지하철에서 지상철로 갈아탄 것. 이제 서너 정거장 정도만 더 이동하면 목적지였다.
요한은 신길역 승차장에서 쌍안경으로 정면의 선로를 샅샅이 훑었다. 좀비들은 없는지, 혹시 다른 생존자들의 흔적은 없는지.
위험요소가 없다고 판단한 요한이 이동을 지시했고, 그렇게 대방역, 노량진역을 지날 때까지 평온한 여정이 계속됐다.
마침내, 한강철교와 철교 너머 용산역이 보이기 시작했다.
요한이 정지 신호를 냈다.
“우선 오늘은 여기까지 이동하고, 내일 새벽에 해 뜨기 전에 용산역 뒤쪽 철길로 우회해서 남영역까지 이동하자.”
“왜 하필 해 뜨기 전에?”
“용산역에 생존자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 마주치지 않으려면, 최대한 시야가 어두울 때 움직이는 게 좋아.”
거기에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일행의 표정은 하나같이 지쳐 있었다. 제법 길게 이어진 좀비와의 싸움. 그리고 일 분 일 초가 극도로 심력을 소모했던 지하도의 행군 때문에라도 그들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좁아터진 신길역 고객센터 안에서 사람들은 하나둘 주저앉았다.
“불편하겠지만 모두 한곳에서 자고, 불침번은 1조부터 두 시간 간격으로 하자.”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은?”
“알아서 쉬겠지. 걱정하지 마.”
휴식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사람들이 대리석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이거, 진짜 죽겠네.”
“역대급 수색이에요, 정말.”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이어졌다. 요한은 덤덤하게 경계를 서기 위해 일어났다.
잠시 후, 2시간이 지나고 교대를 위해 들어온 요한의 시야에 네 명의 여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깔깔거리는 것 같기도, 꺄르륵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피오, 교대해. 너희는 자라니까 왜 그러고 있어?”
“아직 해도 안 졌잖아. 잠이 안 오는걸.”
요한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화다닥 무언가를 숨기는 모습이 상당히 수상쩍다.
“수색 중에 뭔 사고를 치려고. 이 악동들이 도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거야.”
요한은 정은이 숨긴 물건을 홱 낚아챘다. 그녀가 들고 있던 것은 맥심 잡지였다.
고객센터에 일하던 직원의 개인 사물함에서 꺼낸 듯했다.
슥 내용을 훑어본 그가 당황스러움을 감추며 툭 던지듯 잡지를 돌려줬다. 적당한 긴장감 해소는 중요한 부분이니까.
요한이 애써 태연한 척하자 네 여자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시선을 던졌다. 요한은 홱 뒤돌아섰다. 한겨울인데도 실내에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공기가 후덥지근했다.
* * *
뜨거웠던 밤이 지나가고 새벽이 울었다.
다음날 새벽, 아직 해가 뜨기 전의 아침. 라이트 불빛마저도 최소한으로 줄인 채 요한 일행은 용산역을 빙 돌아 철길을 따라 움직였다.
마치 골목 사이사이를 거니는 밤 고양이들처럼 은밀하게 움직이던 그들은 용산역의 끄트머리에서 멈춰야만 했다.
“막혀 있어, 형.”
용산역 뒤쪽 철길을 지나가는 통로마다 날카로운 가시철조망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양쪽 옆에는 선로의 소음을 막기 위해 세워 둔 거대한 철판이, 정면에는 누군가가 설치해 둔 철조망이 가로막은 상황.
“앗, 따가워. 뭐지?”
요한이 생각하는 사이, 정수가 따끔거리는 팔을 붙잡았다. 처음엔 무언가에 물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뭔가 날카로운 종이나 유리 같은 겉에 베인 듯 실처럼 핏줄이 그어져 있었다.
요한이 약간의 소음에 정수를 바라봤다.
“목소리 더 낮춰. 무슨 일이야?”
“뭔가, 날카로운 실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피가 나네요…….”
요한이 인상을 찡그렸다. 날카로운 실?
“일단 소독하고 테이핑부터 해.”
정수가 허겁지겁 군장을 열어 비상 의약품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어두워서 가방 안이 보이지 않았다. 허둥지둥 대던 정수가 라이트를 최소 밝기로 살짝 켜서 군장 안을 비춘 순간,
탕! 익숙한 소음과 함께 그의 이마를 무언가가 뚫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