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문제라기보다는?
노아는 말을 하려다 말고 머뭇거렸다.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노아의 망설임에 요한이 그를 재촉했다. 노아의 표정은 마치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한 달이 조금 넘었나. 물자를 구하기 위해 합참 쪽에 진입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너무 이상한 일이 있었어.”
“이상한 일이라면?”
노아는 약간은 가라앉은 듯한 표정으로 심각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당시 개백정이 실종되고, 막 캠프를 키워나가던 시점에서 내가 다른 캠프 운영진들에게 극심한 정치질을 당한 원흉이 된 사건이었지.”
노아는 침통한 표정으로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요한 일행은 담담한 어조로 설명하는 그의 말에 점점 빠져들었다.
* * *
비가 와서 물안개가 올라온 것도 아닌데 은은히 낀 안개가 유난히 신경 쓰이는 날이었다.
노아와 그를 포함한 물자 탐색 인원 열 명은 삼각지역 앞의 용산 감동교회의 꼭대기 층에서 합동참모본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준비하던 원정.
위험성이 높아 계속해서 준비만 하던 원정이었으나, 이번만큼은 들어가야 했다.
이미 주변에 털 만한 포인트들은 탈탈 털어 먼지도 안 나오는 시점. 마지막으로 이곳만 확인하고 서울역 쪽까지 원정 범위를 넓힐 생각이었다.
‘여전히 바글바글하네.’
원정대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 모두 동의한다는 듯 질린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연합 캠프에서도 제법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이 모인 원정대였으나, 저곳만큼은 뭔가 불길하고 불안했다.
‘노아, 그냥 위쪽으로 넘어가는 게 어때?’
‘안 돼. 다른 건 몰라도 탄약고랑 무기고는 꼭 확인해야 하니까.’
사실 상당히 탐났던 장소였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곳을 건드리지 않았던 것은, 한마디로 불길해서였다.
첫 번째로 좀비가 너무 많았고, 두 번째로 이 근처에 자리를 잡았던 개백정마저도 이곳의 좀비들은 정리하지 않았다는 게 신경이 쓰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명색이 육·해·공군의 지휘를 통합하고, 국군의 통수에 관해서 군의 최고 통수권자를 보좌하기 위한 참모기관이다.
이곳이 좀비들에게 점령되었다면, 청와대나 국회의사당만큼이나 많은 병력이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투입되었을 거라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생각이었으니까.
실제로 본부 안에 보이는 수많은 좀비는 다양한 부대 마크를 달고 있었다.
군부대가 정말 많이 투입됐는데, 결국은 좀비 밭이 됐다. 그 과정을 지켜보지 못해서 여전히 납득은 안 됐지만, 불길한 장소인 것만큼은 확실했다.
문제는 그 때문에 보급창고의 물자들도 넉넉하게 남아 있으리라는 희망이었다. 점점 물자의 압박을 받는 노아의 캠프 사람들로서는 욕심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
위험하긴 하지만, 역시 가야 했다.
‘가자. 굶어 죽나, 물어뜯겨 죽나 무슨 차이가 있겠어?’
노아가 웃으며 눙치자 아홉 명의 원정대원들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책임감이 강한 이들이었다.
‘뭔가, 뭔가 이상한데.’
본부는 상단에 철조망이 감긴 장벽으로 꼭꼭 둘러싸여 있었고, 그 안에 갇힌 좀비들이 장벽 밖에 있는 그들의 먹잇감을 찾기 위해 벽 쪽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노아는 점점 더 커지는 위화감을 느꼈다.
이곳의 좀비들은 이상했다.
좀비들의 상태가 너무 멀쩡했다. 보통 상처를 입거나 물어뜯겨 좀비가 되는 만큼 시내의 좀비들은 모두 하나같이 시체 보존상태가 지저분하기 마련인데, 유난히 이곳의 좀비들은 흔한 상처 하나 보기 어려웠다.
대부분이 군복을 입은 좀비들. 이렇게 많은 군인이 탈환 작전에 투입됐는데도 이곳은 어째서 한낱 좀비들에게 점령당했을까.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좀비들에게 말이다.
‘뭐 해? 안 들어가?’
재원이 노아를 툭 건드렸다. 실외로 나온 이상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건 위험했다.
‘들어가야지. 청사 쪽은 안 봐도 돼. 중요한 건 복지관이랑 식당, 보급창고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는 거야. 무기고 탄약고도.’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지방 동네 군부대도 아닌 만큼 과연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군 시설이니만큼 보안을 위한 첨단 시스템이 있을 테니까.
노아는 본부를 둘러싸고 있는 장벽을 한 바퀴 돌았다. 정문 쪽에는 좀비가 많아도 너무 많아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고, 장벽은 위의 철조망들 때문에 도저히 넘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소음을 내서 좀비들을 한쪽으로 유인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근방의 좀비들이 몰려들어 고립될 걸 걱정해야 했다.
‘뒤쪽 산으로 들어가자.’
결국, 노아는 장벽을 따라 산길을 돌은 뒤 후문 쪽 검문소를 통해 진입했다.
‘선발대 들어가.’
두 명의 선발대가 천천히 담을 넘었다. 다행히 정문보다는 좀비들의 수가 적었고 선발대가 시간을 버는 사이 나머지 인원들이 재빨리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노아가 소방도끼를 휘두르며 좀비들의 머리를 까부쉈다.
능숙하게 도끼를 붕붕 휘두르며 좀비들을 쓰러트렸다.
그들은 천천히 움직이며 아주 작은 소음도 내지 않기 위해 애를 썼고, 예상보다 오랜 시간을 소요해 복지관 안으로 들어왔다. 복지관 안, 1층 PX 앞에 도착한 그들이 숨을 골랐다.
‘후, 정말. 너무 긴장되네요.’
누군가가 숨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면 군복에 개인화기를 무장한 좀비들이 이 삼십 마리씩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놈들과 부딪치면 곧바로 주변 좀비들이 소음을 듣고 돌아올 것. 마치 가시밭길을 걷는 듯 위태위태한 원정이었다.
쨍그랑!
PX의 유리문이 깨지고 열 명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PX 안에 들어서자마자 군복 입은 좀비가 달려들어 재원이 들고 있던 송곳을 놈의 안면에 쑤셔 박았다.
‘저 혼자 살겠다고 문 잠그고 숨어 있던 건가.’
PX 안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PX 입구 쪽 유리 벽에 덕지덕지 묻은 손 모양 핏자국이 눈에 밟혔다.
그들은 참치크래커에 달린 마요네즈 참치통조림과 음료수를 입에 털어 넣으며 긴장한 손과 발을 주물렀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보급창고.’
복지관이야 떡하니 건물에 [복지관]이라고 붙어 있었기에 금방 찾을 수 있었지만, 보급창고와 무기탄약고는 하나하나 뒤져보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오늘은 큰 수확이 없더라도 내부 구조만 파악하고 되돌아가도 큰 성과이리라.
충분한 휴식을 취한 그들은 복지관에서 나가기 위해 일어섰다. 그때, 누군가가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아악!’
‘뭐야, 소리 내지 말라니…….’
노아가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본 순간, 그는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세 명의 동료가 어느새 좀비로 변해 각기 한 명의 동료를 붙잡고 물어뜯고 있었다.
우드득! 찍!-
방금 막 좀비가 된 건강한 좀비들이 동료의 코뼈를 씹고 살점을 뜯어냈다. 끔찍한 고통에 참지 못한 비명이 여기저기서 새어나갔다.
노아가 순식간에 도끼를 휘둘러 한 명의 머리를 깨부쉈고, 그 사이 재원이 두 사람의 머리를 힘껏 밀어 벽에 틀어박았다.
‘아, 아아…….’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물린 사람들은 망연자실하게 노아를 바라봤고 노아는 그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왜?’
그 누구도 물리거나, 상처 입은 적이 없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좀비가 됐다. 이렇게 갑자기.
‘미안하다.’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었다. 노아는 캠프 원칙대로 물린 사람들의 숨통을 하나하나 직접 끊었다. 남은 한 명이 제 차례가 되자 무기를 휘두르며 저항했으나, 그의 억센 손아귀를 벗어날 순 없었다.
순식간에 영문도 모르게 여섯 명을 잃고, 남은 사람은 고작 네 명이었다.
‘노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나도 도저히 모르겠어.’
이전까지의 상식을 완전히 박살 내는 현상에 그저 멍청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형…….’
계산대 옆쪽에 붙어 있던 거울을 보던 일행이 노아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그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있던 동료까지도.
‘잠깐.’
노아가 달려가 그들의 이마를 짚었다.
‘형… 아니죠…?’
뜨겁다.
감염의 증상이다.
‘대체 왜!’
노아는 자신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저도 모르게 소리를 쳤다. 그리고선 소중한 동료가 좀비로 변하는 장면을 똑똑히 목도했다.
피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죽이고, 남은 것은 자신과 재원뿐. 노아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뒤돌아섰다.
‘여긴, 이상해.’
물리지도 다치지도 않았는데 감염되는 곳이라니.
노아는 그 순간 국군의 중심부가 왜 이렇게 빠르게 무너졌는지, 이곳을 탈환하고 구조하기 위해 들어왔던 군부대가 왜 변변찮은 전투도 못 해보고 무너졌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한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도.
‘나가자.’
자신 때문에 죽은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을 가질 시간조차 사치였다. 노아와 재원은 황급히 복지관을 빠져나가 후문 검문소를 향해 달음박질쳤다.
그러나 오던 길에 어그로가 끌렸는지 지나왔던 길로 좀비들이 몰려들었다.
두 사람은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헉, 헉…….’
사방에서 몰려드는 좀비들. 두 사람은 약간의 공간마저 감사하며 좀비 사이를 달리고, 또 달렸다. 시체들의 차가운 손길이 스치듯 지나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당장에라도 좀비가 발목을 붙잡고 내던질 것 같은 기분.
느려터진 좀비들이었지만, 기세는 흡사 해일과도 같았다.
절망과 땀으로 눈앞이 흐려지기 직전, 눈앞에 넓고 높은 잔디 화단의 모습이 보였다.
노아가 파쿠르 하듯 한 번에 뛰어올랐다. 그리고 고개를 든 순간, 두 사람은 얼어붙었다.
그의 눈앞에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괴이쩍은 모습의 변종 한 마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게, 뭐야…….’
뱀 같은 머리. 몸은 마치 만화 드래곤볼의 자폭하기 직전의 셀 같이 부풀린 모양새. 제 발로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몸체를 가진 변종.
몇 마리의 변종을 만났지만, 보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고 구역질이 올라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앞에는 변종, 뒤에는 몰려드는 좀비들. 노아는 죽음을 직감했다. 두 사람이 무기를 그러쥐었다.
* * *
“그땐 정말 아찔했지.”
노아는 악몽을 떠올리듯 몸을 부르르 떨며 양손을 교차해서 쓰다듬었다. 지금 떠올려도 소름이 돋는 듯.
“그다음은 어떻게 됐지?”
요한은 빨리 이야기를 이어가라고 그를 재촉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곳의 모든 이들이 그 충격적인 사건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너무도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상상도 하기 어려웠으니까.
“어차피 죽을 걸 각오했고, 도망치느니 칼침이라도 한 대 놓으려고 결심했지. 그래서 다짜고짜 놈을 공격했는데… 이상하게도 놈은 반격하지 않았어.”
“반격하지 않았다고?”
“맞아. 그냥 괴성을 꽥꽥 질러댈 뿐 변변찮은 공격도 할 줄 모르는 놈이더라고. 칼로 도려내고 도끼로 후려칠 때마다 그냥 입에서 이상한 꾸물거리는 액체를 토해낼 뿐이었지. 끔찍하더라. 그래서 뒤쪽의 좀비들이 올라오기 전에 머리와 사지를 전부 절단 내고 뇌를 부순 다음 뒤쪽으로 도망쳤지. 그날은 정말,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는지 모르겠어.”
노아의 말을 가만가만히 듣고 있던 요한이 이내 눈을 번쩍 떴다. 마치 그의 눈에서 새파란 안광이 형형하게 빛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