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선발대는 이러다 정말 네 명으로 본부 안의 좀비들을 싹쓸이할 기세로 좀비들을 처리하며 돌아다니다, 청사 주변에 변종이나 위협요소가 없다는 걸 확신할 즈음 돼서야 신청사 입구로 이동했다.
시계를 보니 진입 이후 세 시간가량이 흘러 있었다. 한겨울에도 옷이 젖을 만큼 땀이 흘렀고 전신에서 열기처럼 아지랑이가 뿜어져 나왔다.
신청사는 ‘ㄴ’자 모양의 제법 큰 건물로, 제법 깨끗한 신축 건물이었다. 정문 위쪽으로 ‘완벽한 전방위 군사대비태세 확립’이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정문에 도착한 요한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청사의 출입문을 보며 잠시 망설였다.
평소 같았으면 문을 부수고 들어갔겠지만, 군사시설인 만큼 혹시나 있을 경보체제가 불안해서였다.
여기서 삐삐거리며 소음이라도 냈다간 골치 아파질 테니까.
요한이 퉁퉁 유리문을 두드렸다.
“이거 방탄유리인가.”
요한의 질문에 세 사람이 고개를 으쓱했다. 역시 정보가 없다는 건 너무 불편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침입할 만한 경로가 눈에 띄지 않았다.
유리를 깨는 작업을 하더라도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는 하고 싶지 않은데.
요한의 시선이 3~4층 쪽 튀어나온 정원을 향했다. 저기까지 올라갈 수 있으면 어떻게든 안전하게 진입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 다음 내부에서 문을 여는 게 차라리 수월하리라.
문제는 저길 어떻게 올라가느냐인데.
“올라가게?”
“응. 저쪽 하늘정원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면 안쪽으로 왔다가 갔다가 할 수 있게 문이 열려있을 것 같아서. 그게 아니더라도 지상보다는 유리를 깰 때 더 안전하겠지.”
“내가 올라가 볼까?”
“가능하겠어?”
“못할 건 아니지.”
건물 외벽을 맨손으로 클라이밍 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훈련받기도 했지만, 취미 차원의 기록을 위해 몇 번이고 시도했던 적도 있었다.
홀드도, 안전장치도 없다는 점은 불안요소였지만, 설령 떨어진다고 해도 죽지 않을 정도의 높이다. 벽면에 지지할 만한 발판들도 충분해 보였다.
“무리하지는 마.”
요한도 그의 실력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제지하지는 않았다. 지난 생에서도 이런 상황이 있었고, 그의 외벽 클라이밍 솜씨에 감탄했었다.
노아가 눈으로 외벽을 쭉 훑어보더니 창틀과 외벽 환풍구 등등을 발판 삼아 성큼성큼 외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 뒤로 세 사람의 걱정 반 기대 반의 시선이 날아가 꽂혔다.
우려와는 달리 생각보다 높은 높이를 노아는 순식간에 타고 올랐다. 마치 거미처럼 벽에 달라붙어 오르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하진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저 친구, 유능하네.”
“다재다능하지.”
탁, 공중정원 바닥에 발을 디딘 노아가 그들에게 지지 줄을 내려주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쉽게도 주변에는 저를 발견하고 다가오는 좀비들뿐이었다.
둘, 셋….
대략 서른 마리. 혼자 상대하기엔 부담스러운 숫자긴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담스러운 정도. 이 정도 넓이면 기동력을 활용하기에 충분했다.
노아가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손아귀에 힘을 꽉 쥐었다.
같이 싸운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는지 몸이 가볍다. 적당하게 풀린 근육이 힘껏 꿈틀거렸고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좀비들이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노아가 등에 매달아 두었던 소방도끼를 그러쥐고 손을 휘둘렀다. 접근하던 좀비 두 마리가 동시에 아스러졌다.
뒤이어 동시에 네다섯 마리의 좀비가 그를 향해 달려들 듯 다가왔다. 노아가 곧장 가까이에 있는 좀비 한 마리를 밀치며 빠르게 포위망에서 빠져나와 아래쪽으로 도끼를 휘둘렀다.
다리가 잘려나간 좀비 너머로 놈들이 자기들끼리 뒤엉켜 무너졌다.
쓰러진 좀비를 향해 도끼를 내리치니 썩은 피가 파박! 튀어 올랐다.
가까이 붙는 좀비는 어깨나 발로 밀쳐내고 요리조리 빠져나가면서 거리에 걸친 좀비들을 먼저 쳐내기를 몇 번 반복하니 어느새 자신을 노리던 좀비들이 전부 시체가 되어 있었다.
‘후…….’
노아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달아오른 몸의 열기가 날숨과 함께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요한의 예측대로 공원 입구와 건물을 연결하는 문은 열려있었다. 노아가 저벅저벅 걸어 건물 입구로 들어간 순간, 갓 태어난 아기 같기도 한, 거의 농구공 두 개를 붙여놓은 듯한 모양새의 괴물이 자신을 향해 팅, 튀어 올랐다.
“흣!”
속도는 빨랐으나 노아는 반사적으로 놈의 접근을 피해냈다.
아예 새로운 종류의 변종 같기도, 아니면 덜 자란 변종 같기도 했다. 노아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탱탱볼 같은 변종을 피함과 도끼의 손잡이 부분을 이용해 놈을 벽에 밀어 찍었다.
꾸에엑!
놈이 벽에 고정된 채 작지만 걸리적거리는 비명을 질렀다. 노아가 발버둥 치는 놈의 배 부분을 군홧발로 압박했다. 마치 개구리 배를 밟는 듯한 꺼림칙한 느낌이다.
노아가 등에서 펌프식 더블배럴 샷건 하나를 놈의 머리통에 조준했다. 딱 한 방이면 머리통이 산산 조각나리라.
하지만 격발 버튼을 누를까 하는 고민은 금세 접어두었다. 총성이 울리면 밑에 친구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
노아가 도끼 손잡이 부분으로 누르는 대신 군홧발로 놈의 몸통을 고정하고, 머리 부분을 도끼로 비스듬히 후려쳤다.
파바밧!
금녹색 피가 터지듯 퍼져 나왔다. 변종은 시시하리만큼 간단하게 제압됐다.
‘이건 또 뭐야.’
노아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신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 * *
1층 정문에서 대기하던 요한 일행의 시선에 노아가 잠깐 보였다. 위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땀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뭐 던진다, 조심.”
시야 밖으로 사라졌던 노아가 들고 왔던 이동식 케이블 코드 부분을 정원 나무에 여러 번 결박하고서는 케이블 릴을 바닥으로 휙 던졌다.
릴의 줄이 파르르르 풀리다가 바닥에 닿기 직전, 하진이 받아냈다.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케이블을 지지대 삼아 건물을 오른 네 사람은 속전속결로 내부 좀비들을 정리해나갔고, 노아가 만났던 탱탱볼 좀비들을 서너 마리 더 처리한 이후에는 위협이랄 것도 없었다.
마침내 좀비 청소를 끝내고 안전을 확인한 요한은 본대를 불러들여 내부 수색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작전본부, 전략기획본부, 군사지원본부, 분석실 순서로 들어가자. 어딘가 서류를 보관하는 장소가 있을 거야. 해군과 관련된 정보는 그냥 다 가지고 정원으로 와.”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자료들을 찾아다녔다. 공중정원 한쪽으로 수많은 서책이 산을 이뤘다.
이 정도면 원하는 양을 확보하기에 충분할 듯 보였다.
쌓이고 쌓이다가 더는 나올 건더기가 없다고 판단이 되자, 요한이 재호를 부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시야에 재호가 없었다.
“재호는 어디 갔어?”
“응? 재호 오빠? 아까 전까진 있었는데.”
요한이 약간의 불안감을 가진 채 재호를 찾기 위해 무전기를 들었다.
설마, 아니겠지.
떠오르는 생각을 애써 부정했다. 그의 성실함과 협조성을 생각했을 때, 자신에게 말도 없이 무리를 이탈하거나 할 리는 없을 터였다.
“재호야, 어디야.”
무전을 쳤으나 재호에게 응답이 오지 않았다. 요한이 다시 한번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를 찾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가려는 찰나, 정원 위쪽 층 창가에서 창문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그가 시야에 들어왔다. 요한이 걸음을 옮겼다.
“뭐해, 여기서. 무전도 안 받고.”
약간은 날 선 음성이 날아가자 재호가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 죄송해요. 잠시 딴생각 좀 하느라….”
“정신 차려야지. 내려가자. 네 일이다.”
“저, 대장님.”
“안 돼.”
“아직 말씀도 안 드렸는데요?!”
듣지 않아도 뻔하다. 국립중앙도서관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이리라.
“코앞이에요. 다리 하나만 건너면 그곳이 있어요.”
“왜 그렇게 미련을 가지는 건데, 거기에 뭔가 확실한 정보가 있다는 보장도 없고, 알고 보니 그냥 쓰레기일 수도 있어. 만약 정말로 이 난리와 조금이라도 관계있는 책이라 해도, 뭐? 그걸 보면 뭐가 달라지나?”
“그런 건 아니지만요. 하지만 대장님. 마지막 기회잖아요. 한국을 뜨기 전에 확인해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 마지막 단서.”
“…….”
“윌리엄 워트는 말했죠. 궁금증을 풀고 싶다면 어느 주제에 대한 것이든 호기심이 발동하는 그 즉시 그것을 붙잡으라고. 그 순간을 흘려보낸다면 그 욕구와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 있고, 당신은 무지한 채로 남게 될 거라고. 말이에요.”
“네 목숨을 거는 거야. 도와줄 수도, 기다려줄 수도 없어. 무리에서 벗어난다는 건, 그저 죽으러 가는 것과 다를 게 없을 거야.”
“알고 있어요.”
“그만한 가치가 있나? 그깟 호기심인지 탐구심인지가, 네 목숨만큼?”
“네.”
재호의 대답은 대화가 이어질수록 단호해져 갔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겠지. 여기까지 와서야 그의 마음을 다잡은 것이다.
“난 너 같은 놈은 이해 못 하겠다.”
“대장님.”
“하지만 존중해주마. 출항준비까지 시간이 필요할 거야.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 돌아와. 출항 전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버리고 간다.”
“감사합니다.”
“가기 전에 일은 하고 가.”
“…네?”
“저 자료들 분류하고 필요한 것만 챙길 수 있게.”
“…네.”
“불만 있으면 가지 말든가.”
“아닙니다!”
“돌아올 때 꼬리 달 거면 그냥 죽어.”
“예…….”
세상엔 정말 많고 다양한 종류의 인간이 있다는 걸, 요한은 깨달았다.
그리고 제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는 이를 말릴 권리는, 요한에게 없었다.
* * *
볼일을 마친 요한 일행은 썰물처럼 서울에서 빠져나갔다. 빠져나가는 데는 망설임도 장애물도 없었다.
그저 최대한까지 집중력을 끌어올려 이곳을 벗어날 뿐이었다.
재호가 사라진 것에 대해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있었으나 요한이 침묵을 지키자 더 이상 묻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들은 부평구청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부평구청은, 그가 예상했던 대로 캠프 춘향의 공격을 받았다.
만약을 위해 남겨두었던 용병단의 경계병들과 캠프 생존자들은 모두 죽었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시체와 텅 빈 창고뿐이었다.
좀비가 된 이는 없었다. 캠프 춘향 사람들은 자비를 베풀었다. 잔인성을 보이진 않고 그저 물자만이 목적이라는 듯 깔끔하게 사람을 죽였다. 최대한 고통 없이. 좀비가 되는 사람이 없는 죽음을 선물한 게 역력히 보였다.
“니-미.”
용병단 인원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홀로 남은 노인이 수습된 시체들 앞에서 담배만 뻑뻑 피우고 있었다. 그의 바로 앞에는 정미의 시신이 있었다.
요한은 그를 위로하지도,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 대신, 가감 없이 거래의 대가를 말해주었다. 용산에 가게 된 경위, 원자력 발전소와 방사선 피폭의 위험성에 대해서.
거래의 내용을 들은 노인은 그렇구만, 잣 됐네. 하고 짤막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노인은 정미의 시체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담배만 태웠다. 아마도, 그는 정미를 양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지 않을까, 건방진 추측을 할 뿐이었다.
“할배.”
다음 날, 사람들의 장례가 한참 진행 중일 때 사라졌던 철구가 되돌아왔다.
“왔냐.”
“예. 할배.”
“놈들은.”
“말씀하신 대로, 본보기를 보인 후… 보내주었습니다.”
철구는 피에 물든 천을 한 손에 쥐고 있었다.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잘린 머리가 담겨 있었다.
요한 일행이 캠프 춘향에 도착했을 때 안내를 해주었던 사내였다.
본대가 공격당한 걸 확인하자마자, 노인은 철구를 추격대로 보냈다. 그리고 그들의 후발대 꼬리를 잡아 모조리 죽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노인은 본보기로 후발대 인원을 죽였을 뿐 그들을 전멸시키지 않았다.
그 또한 자비를 베푼 것이다.
캠프 춘향은 생존을 위해 이런 짓을 벌였다. 아이 한 명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캠프. 그저 살아남기 위해 이런 짓까지 벌인 그들을, 노인은 묵인했다. 묵인해 버렸다.
요한은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대비를 못 하고 곁을 내준 그의 잘못이다. 그녀 때문에 아끼던 조원인 정수를 잃었지만, 그 또한 복수를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일에 대한 피의 복수는 어쩌면 무의미하다.
요한은 그저 무덤 앞에 서서 떠난 이들을 추도했다. 추도하고 있는 그를 향해 노인은 허탈한 듯한 표정으로 읊조렸다.
“애송아.”
“예, 어르신.”
“춘향맘은 지 딸내미를 지키고 싶었을 뿐일 거야.”
“예.”
“궁지에 몰려 있었겠지. 그년이 어떤 삶을 이겨내 왔는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난 아니까. 찾아가 죽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꼭 그래야만 할까 하는 생각이 더 큰 거지. 나한테 그만한 딸내미가 있었으면 나라고 달랐을까 하니까 말이야.”
“…….”
“시부럴, 개 잣 같은 세상.”
요한은 그를 위로하지 않았다.
저보다 훨씬 훌륭한 결정을 한 이를 위로하는 것은 자만하고 오만한 행동이었으니까. 요한은 그저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어르신. 제가 말씀드린 것 기억하고 계십니까.”
“뭐, 원자력 폭발이니 어쩌니 하는 거 말이냐.”
“예.”
“그래. 기억하지. 근데 어쩔 거야.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닌걸. 시펄, 그냥 궁둥이 붙이고 있을 걸 그랬어. 괜히 너 따라다닌다고 엄한 애들만 죽어 나갔지 않냐.”
“제가 용산에 간 것은 군함을 타고 방사능 안전지대로 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 그랬겠지.”
“덕분에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어르신.”
“축하해 애송이야. 이 말이 듣고 싶은 거냐.”
요한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준비하고 있던 말을 꺼냈다.
또박또박,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서.
“돌아가신 분들은 유감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에 흔들리실 내공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와 함께 가시지요. 제 지시와 오더를 따라주셔야 하겠지만,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노인이 놀랐다는 듯한 표정으로 요한을 바라봤다. 요한은 그 시선을 마주 봐 주었다.
“마지막까지 저와 함께 이 싸움의 최종적인 적, 종말 그 자체와 싸워주시기를 바랍니다.”
노인의 얼굴 근육이 꿈틀거리더니,
“제 동료가 되세요.”
마침내 그늘졌던 얼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