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148화 (148/176)

<148화>

4부-생존 외전

* * *

16. 좀비사이드 스쿼드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의 생존자 사이에서는 ‘좀비사이드 스쿼드’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다.

인간 같지 않은 움직임을 보이며 총탄도 통하지 않는 괴상한 슈트를 입고 좀비와 변종을 닥치는 대로 쓸어 담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그들은 인류의 패색이 짙던 오클랜드에 혜성같이 등장하여 종류를 가리지 않고 좀비와 변종을 사냥하러 다녔다.

처음에는 인간과 좀비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쓸어나갔으나, 적대적이었던 폭력집단 몇 개를 집어삼킨 이후부터는 대부분 좀비, 그중에서도 변종과의 싸움을 이어나가는 네 명의 생존자.

그리고 그들의 다른 이름은, 캠프 요한의 선봉대. 제1 스쿼드였다.

* * *

두두두-!

공중에서 헬기 한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다가 헬기장으로 안착했다.

“대장, 퀴진에 도착했어요.”

재호가 요한에게 도착을 알렸다. 요한은 안면의 입술까지 내리덮었던 가죽을 눈썹 위까지 살짝 들어 올렸다.

“그래.”

요한은 고개를 끄덕이고선 헬기에서 걸어 나와 한 발 내디뎠다.

헬기에서 걸어 나오는 그의 모습은 괴이쩍기 짝이 없었다. 등 뒤에는 정체를 모르는 괴상한 무기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전신에는 알 수 없는 가죽이 몸을 가렸다. 그 거죽의 머리 부분, 그러니까 요한의 머리 위에는 변종의 머리가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흡사 변종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마치 원시 시대, 동물의 가죽을 뒤집어쓴 족장처럼 요한은 변종의 시체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가 변종의 머리 모양 후드를 벗으니 짧게 다듬은 머리가 드러났다.

“수고했어, 요한.”

마중 나온 스위퍼가 씩 웃었고 요한은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인근 섬을 돌며 몇 가지 송사를 끝내고 며칠만의 복귀였다.

4개의 수색조가 모인 인공 섬, 퀴진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상 기지 방어로 여기저기가 분주했다. 요한은 타성처럼 질문했다.

“별일은?”

“그다지. 평화로워. 좀비 웨이브가 한 번 있었는데 사상자는 없었어.”

“보고받았어. 히드라?”

“어.”

변종의 출현과 좀비 웨이브를 별일 아니라는 듯이 치부하는 두 사람의 대화에 재호는 곁에서 헛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뉴질랜드에 자리 잡은 지 11개월.

캠프 요한은 안정적이었고, 강건했다. 누군가는 오버 파워라고, 누군가는 먼치킨이라고 평했을 정도로.

사실상 이미 캠프 수준을 넘어선 거대한 조직에 가까웠다.

“섬 사람들은?”

“다들 잘 지내.”

“못 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한번 휴가라도 다녀와야겠는걸.”

스위퍼의 말에 요한이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캠프 요한의 주민들은 오클랜드 항구 인근의 섬에 나뉘어 생존해갔다. 그리고 요한을 포함한 네 개의 수색조는 항구 바로 앞에 만들어진 인공 섬, 퀴진에 자리 잡았다.

각 섬의 주민은 스무 명을 넘지 않았지만, 퀴진에는 백여 명에 달하는 전투 요원들이 거주했다.

좀비 웨이브가 인근의 가장 생존자가 많은 곳을 먼저 타격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요한은 좀비 웨이브를 피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많은 사람을 한곳에 집중해 좀비 웨이브를 유도했다. 그러고선 그곳에 전력을 집중했다.

퀴진은 24시간 철저하게 경계가 이루어졌고,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경보체계와 전력을 동원해 좀비 웨이브를 정면으로 맞받아치며 변종들을 제거해 나갔다.

실제로 퀴진의 전투 요원들이 변종과 좀비들을 막아내는 사이, 섬의 주민들은 한결 수월하게 생산 활동을 이어나갔다.

종종 떠밀려온 좀비들이 섬에 등장하기도 했으나, 기본군사훈련에 성실하게 임한 주민들의 실전 경험치가 될 뿐이었다.

인류는,

적응하고 있었다.

‘그만큼 많은 희생을 짓밟고 선 적응이지만.’

그런 면에서 참 아쉬웠다.

면역이라는 선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종의 우월함을 따졌을 때 완벽한 정보만 있었다면 인류는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종말은 갑작스러웠고, 낯설었으며, 빠르게 덮쳐왔다.

게다가 종의 전투 외에도 인간은 싸워야 할 것이 많았다. 같은 인간, 굶주림, 질병, 등등.

만약 자신이 더 단단하게 대비할 수 있는 군사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달랐을까. 오클랜드 기지가 단단해질수록 그런 아쉬움이 커져갔다.

“회의는?”

“예정대로. 사무실만 들렀다가 바로 들어갈게.”

“라져.”

세 마리째의 피콜로를 잡은 이후에는 좀비 웨이브 자체도 드문 일이 되었다. 애초에 출현 빈도가 낮았던 변종들은 이제 거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마지막에 잡았던 피콜로 주변에는 피콜로가 ‘낳은’ 변종들이 널려 있었다. 아직 덜 자란, 인간을 먹어 성장하기 전의 농구공 크기의 작은 변종들.

요한은 변종의 탄생을 눈앞에서 목격했고 그의 사전에는 또 다른 규칙이 추가됐다.

그리고 지금.

오클랜드에는 더 이상 변종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등장하는 놈들은 아마도 대부분 다른 지역에서 넘어온 놈들일 공산이 컸다.

툭, 요한이 가죽을 벗어 집무실 한쪽에 걸어두었다. 묵직하다. 매번 깨끗하게 소독하지만 진득하게 밴 땀 냄새와 피 냄새는 슈트 깊이 스며들어 빠지질 않았다.

연구팀 창설 이래 가장 큰 수확, 변종 슈트.

변종 그레이브즈라고 불리는 철갑 변종을 잡았을 때, 요한은 그것의 시체를 연구소에 이관했다.

그리고 연구소가 내놓은 결과물은 놀라웠다. 요한은 연구소장 잭 리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이는 놀라운 물건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던 어떤 광물도, 가죽도 설명할 수 없는. 특수한 조직구조로 되어 있어요.’

‘특수한 조직구조?’

‘외부 표피는 충격에 정말로 강합니다. 그 대신 안쪽은 조금 덜하네요. 변종들이 이렇게 단단한 피부를 가지고도 무리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이유를 알겠어요. 보통 강도는 질량과 무게와도 비례하기 마련이라 이만한 강도를 가진 껍데기를 갖고 있으면 절대로 몸을 가눌 수 없어요.’

잭 리는 열변을 토하듯 말을 뱉어냈다.

‘흔히 외골격은 가진 곤충이 사이즈가 인간 만큼 커지면, 그 외골격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마디마디가 부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외골격계 곤충들이 작을 수밖에 없는 이유죠. 그런데 이 생물은 그런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어요. 질량이 낮은데도 강도가 어마어마합니다. 다만 껍질의 안쪽과 바깥쪽의 강도가 달라 내부 충격이 지속하면 외부 강도 자체가 점점 약해집니다. 소화기관이 약점인 이유가 있어요.’

‘흠. 재단하거나 가공할 수 있겠어?’

‘음… 글쎄요. 쉽게 설명해 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이 껍질 자체가 세포와 세포, 조직과 조직의 연결점이 아주 끈끈해요. 맹세코 지구상에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생체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바로 앞에서 총을 쏴도, 통째로 불태워도 껍질이 타지 않아요. 내부의 내장기관들만 연소할 뿐이고요, 대신 지속해서 안쪽에서 충격을 주면 이중으로 되어 있는 표피 구조가 떨어져 나갑니다. 근데, 그렇게 되면 충격을 흡수하는 기능 자체가 상실되어 버려서 쓸모가 없어지죠.’

요한은 슬슬 그와의 대화가 피곤해지려던 참이었다.

‘결론은?’

‘지금 시설환경으로 재단 및 가공은 불가능합니다. 더 확실하게 준비된 연구소가 있지 않다면 모를까요. 현 시점에서 이걸 활용하려면 내부 내장기관을 싹 다 태워버린 다음에 껍데기만 남은 상태에서 이불 뒤집어쓰듯이 쓰고 다니면 최소한 슈트처럼 활용할 수 있을 거예요.’

한마디로 시체 그대로 뒤집어쓰고 다니란 뜻이었다. 요한은 처음에는 부정적이었으나, 잭 리의 강력한 권유로 먼저 총대를 메고 좀비 슈트를 뒤집어썼다. 결과는 정말로 놀라웠다. 놀랍도록 가볍고, 안전했다.

슈트를 벗은 채 얼마간의 안전 검사를 마친 요한은 직접 슈트를 입고 탄환을 맞았다.

모두가 만류했으나 어느 정도 충격이 오는지 직접 느끼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으니까.

첫 안전 검사. 100m 거리 밖에서 소총 사격을 맞았고 요한의 등에 명중했으나 총알은 슈트를 뚫지도, 박히지도 않고 튕겨 나갔다.

‘놀라운걸.’

50, 30m 안에서 진행된 사격도 마찬가지였다. 10m 안의 사격은 안전을 이유로 진행하지 못했지만, 개인화기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결실이었다.

요한은 그날부터 변종 슈트를 뒤집어썼다.

바닥에 질질 끌리고 거적을 뒤집어쓴 듯한 모양새였으며, 마치 변종을 업고 있는 듯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주변 사람들만 깜짝깜짝 놀라 나자빠졌을 뿐.

요한이 오랜만에 욕망이 번들거리는 눈빛을 했다.

‘오클랜드 밖을 나가서라도 변종들을 다 잡아 와야겠어. 제1 스쿼드. 준비해.’

그게 불과 보름 전의 이야기였다.

지혜의 죽음 이후, 변종을 완전히 다 제거했다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오클랜드 내에는 최근까지 많은 수의 변종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제1 스쿼드는 요한이 선봉에 서서 끝까지 숨어 있던 변종들의 머리채를 잡고 끄집어냈다.

네 면역자와 그들을 받치는 수색조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많은 사람이 합류하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캠프 요한에서 내실을 다져온 핵심 조원들의 생존력은 나날이 올라갔다.

섬을 습격했던 변종 샤크 한 마리와 최근까지 자신들을 괴롭혔던 변종 그레이브즈와의 싸움을 제외하면, 오클랜드의 생활은 위험하지 않았다.

그렇게 11개월이 지났고, 캠프 요한은 완전히 안정을 되찾았다.

저벅저벅.

진득한 발소리가 면면하게 복도를 울렸다.

요한이 천천히 퀴진의 간부 회의실 문을 열자 그 안에는 자신을 제외한 10명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

11인 회의.

요한은 덩치가 커질 대로 커진 캠프 요한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 10명의 유능하고 믿을 만한 관리자들을 세웠다.

부천에서 네 개의 캠프, 그리고 네 명의 관리자가 있을 당시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그들의 분야는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으며, 역할은 주되 권한은 최소화한 상태의 철저한 중앙집권형 조직이었으니까.

요한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시선을 던지며 인사했다.

“안녕하셨습니까.”

관리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인사를 받았다. 요한의 뒤를 따라서 하진, 스위퍼, 노아가 들어서자 먼저 도착해 있던 용 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 정말. 그것 좀 벗으라니까 애송이들아. 가끔 변종인 줄 알고 흠칫흠칫 놀라서 총 갈길 것 같다고.”

용 노인이 변종 슈트를 걸치고 있는 하진, 스위퍼, 노아를 향해 불퉁거리며 드르륵, 총으로 세 사람을 긁는 시늉을 했다. 스위퍼가 그를 보며 낄낄거렸다.

“왜, 노인장. 부러워해도 소용없다니까?”

“우라질 것. 말이나 말지.”

요한이 획득한 변종 슈트는 총 네 장이었고 스위퍼, 하진, 노아의 순서대로 슈트를 전달했다. 다른 의도는 없는, 그저 기여도에 따른 분배였다.

순번으로 따지면 다음번 것은 용 노인에게 돌아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좀처럼 변종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 탓에 저렇게 투덜대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면 직접 가서 한 마리 잡아 와도 괜찮잖아? 할배. 정정하니까.”

“아예 납골당에 처넣지 그러냐. 응?”

“엄살은.”

“조용히 해라, 애송이야. 난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거니까.”

스위퍼의 눙치는 듯한 말에 노인이 씩 웃으며 맞받아쳤다. 두 사람을 멀거니 바라보던 재호가 요한을 향해 물었다.

“대장님, 시작해도 되죠?”

“어.”

“예, 그럼. 전략연구본부, 전투수색본부, 생산관리본부 순으로 보고 부탁드립니다. 우선 전략팀은 큰 이슈는 없고요. 연구소에서 NGH-2번 모델 개발이 완료되었어요. 폭발 이후에 포박과 추적이 가능한 모델입니다.”

재호가 막대 모양의 수류탄을 꺼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몇 가지의 사용법과 설명을 한 뒤, 박 노인과 서준, 박재범 의사가 돌아가면서 각자 맡은 분야에서 문제나 애로사항이 없는지를 구술했다. 그런 다음 수색 조장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수색의 결과를 보고했다.

요한은 골치 아픈 문제 한 건을 뒤로 미뤄두고 마지막으로 리나를 향해 물었다.

“리나는 별일 없지?”

“네. 요한 님.”

리나가 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11인 회의에서 그녀의 역할은 그게 끝이었다. 무슨 위험을 감지하면 그걸 공유해주는 것. 평소의 그녀는 섬들을 돌며 예배를 드리고 미사와 고해성사를 받으며 신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제일 골치 아픈 문제가 남았군.”

끄응, 수색 조장들이 머리를 쥐어 싸맸다. 문제란, 다름 아닌 식량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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