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아직 난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었으나, 생존자 수와 비교하면 수급되는 식량의 양이 턱없이 부족한 것은 확실했다.
낚시와 채집, 사냥으로 섬마다 어느 정도 자급자족은 하고 있었지만, 퀴진의 수색조가 문제였다.
“역시 도시 바깥으로 나가야 할까.”
오클랜드 생존자들의 말에 따르면, 오클랜드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국가 규모치고는 변종의 출현이 잦았기 때문.
한국, 중국, 일본의 상황과는 다르게, 뉴질랜드와 호주의 주적은 일반 좀비가 아닌, 변종이었다. 실제로도 좀비들보다 변종에 죽는 수가 더 많았으니까.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인구 밀집도가 크지 않아 정부가 무너진 다음에도 제법 많은 생존자가 뿔뿔이 흩어져 살아남고 있었지만, 대부분 전역에 흩어진 변종의 사냥감이 될 뿐이었다.
“오클랜드 외곽지역으로 나가야 하는데. 전투수색본부 조장들 생각은?”
네 사람은 잠시 고민하더니 스위퍼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선발대는 우리 넷이겠지?”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증되지 않은 지역을 들어갈 때는 무조건 요한과 1~3번 수색 조장으로 이루어진 1번 스쿼드가 간다. 피해 없이 변종에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오클랜드 외곽에 있는 모기 새끼만 먼저 처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이번에 승부를 봐야지.”
캠프 요한이 오클랜드 밖으로 나갈 시도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식량난이 코앞으로 닥치기 훨씬 전. 두 번 정도 외곽지역으로 수색을 시도했었지만, 실패했다.
실패 원인은 오클랜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지에서 출몰하는 변종 모스퀴토.
1번 스쿼드가 근 한 달 가까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는 특이한 종류의 변종이었다.
요한이 평가한 위험도는 8. 다윗이나 샤크에 비견되는 위험도였으나, 놈이 위험한 진짜 이유는 전투력이 높아서가 아니라 놈의 습성 때문.
놈은 다른 변종들과 다르게 사람을 먹지 않는다. 모기의 주둥이처럼 생긴 긴 대롱을 꼬리에 달고 있고, 그걸 인간에게 꽂아 감염시킨다. 그리고 감염된 인간은 그대로 두고 또다시 다른 인간을 찾아다닌다.
주 서식지는 굵고 오래된 나무가 있는 산지. 대도시로 들어오지는 않지만, 도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지에 출몰한다.
찾자니 인력이 많이 들고, 피해가 큰데 가만히 놔두면 영역에 들어오지 않으니 불편한 방관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다.
“변변찮은 전투도 안 해보고 도망치는 놈이라니까.”
“정작 우리가 갈 땐 코빼기도 안 비치고 말이야. 그렇지?”
하진과 노아가 한 마디씩 주고받았다.
“이 변종 슈트 때문인 것 같긴 한데.”
“변종 슈트에 밴 변종의 냄새가 인간의 냄새를 지우기 때문일 겁니다.”
여러모로 특이한 변종이었다. 여기저기서 지방방송이 흘러나오는 걸 요한이 손을 저어 가라앉혔다.
“지난 두 번의 시도에서는 산지를 통과하는 게 목표였으니 더 힘들었을 수도 있어. 이번엔 놈을 찾고 박살 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샅샅이 뒤져서 찾아내는 거로.”
“목표는 좋은 데 요한, 어떻게 찾을 건가?”
“세리를 불러. 5인 스쿼드로 가자.”
“…시끌시끌하겠네.”
요한의 말에 다들 웃음기 반 당황 반의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그들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이내 나갔던 재호가 세리를 데려왔다.
“나 불렀어?”
세리가 언제나처럼 밝은 얼굴로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섬 관리자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이 마주 웃으며 화답했다.
헤실헤실 웃던 그녀는 슬쩍 스치듯이 요한을 노려봐준 후, 빈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인데?”
목소리는 심드렁했다.
“다음 수색에 제1 스쿼드가 나설 거야. 목표는 변종 모스퀴토의 제거. 너랑 흑구도 참가한다.”
“지난번에는 따라간다고 해도 그렇게 바득바득 밀어내더니.”
“휴가 중이었잖아.”
“내가 안 쉬겠다는데, 신경 쓸 게 뭐람.”
세리의 불만 가득한 말에 요한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튼, 난 좋아. 열심히 할게.”
세리의 말에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이기는 했으나, 그녀는 훌륭한 전력이었다.
오클랜드 적응 기간에, 세리는 흑구와의 협동 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1번째로는 생존자를 찾는 것, 2번째로는 좀비와 변종을 찾는 것.
강도 높았던 훈련만큼 둘의 호흡은 훌륭했고, 훈련이 끝난 이후부터는 오클랜드 안정화 작업의 선봉에 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제1 스쿼드는 어디까지나 면역자들로만 구성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녀의 면역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게 요한의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수색에 최적화된 그녀의 포지션은 최선봉이 어울렸으나, 면역자로 증명이 되지 않아 항상 2선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던 게 현실이다.
다른 방법도 찾아보려 했으니, 안타깝게도 면역자 네 사람 중 누구도 사냥개 훈련에는 재능이 없었다. 성질껏 강아지를 두드려 패다가 애견 애호가들에게 몰매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었으리라.
그녀뿐만이 아니라 제법 많은 사람에게 사냥개를 짝지어 추적대를 꾸리려 했으나 좀비, 생존자, 변종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수색을 할 수 있던 건 세리 흑구 조합이 유일했다.
그래서 반쯤은 어쩔 수 없이. 제1 스쿼드에 세리가 포함되는 경우가 많았고 물론 그녀는 그 사실을 마뜩해 했다. 요한은 정확히 그 반대였고.
“위험할 거야.”
“언제는 안 위험한 적이 있나. 괜찮아. 죽으면 죽는 거지 뭐.”
지혜의 죽음 이후, 한결 더 까칠해진 듯했다. 조장들은 자신 때문이라곤 했지만, 요한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었다.
재호가 11인 회의의 끝을 알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와 인사를 하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남은 것은 재호와 제1 스쿼드, 그리고 세리뿐이었다.
“그럼 곧바로 작전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작전 회의랄 게 있나. 놈에 대해 뭐 알아낸 거 없잖아?”
하진의 물음에 재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상 전력을 모르는 것에 가깝지요.”
“제1 스쿼드랑 정면으로 붙어본 적이 없으니까. 애초에 놈에게 싸울 생각이 있는지조차 궁금하다니까.”
누가 지었는지 모를 이름, 변종 모스퀴토는 정말이지 놈과 딱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귀찮게 피를 빨고 도망치는 모기 같은 존재.
가만히 듣고 있던 요한이 눈을 홉뜨며 말을 붙였다.
“전투가 길어지는 걸 피하고 치고 빠지듯이 게릴라전을 하는 습성만 보면 자체 전투력이 강하다고는 판단할 수 없어. 만약 그렇다면 정말 역대 적으로 어려운 승부가 되겠지.”
“동감.”
놈은 존재 자체로 오클랜드를 벗어날 수 없게 하는 천혜의 장벽이 되어버린 녀석이었다. 나가려는 사람들도, 들어오려는 사람도 놈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새 죽어 나가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붙어 본 적이 없으니 작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네요.”
재호가 계면쩍은 표정으로 코를 긁적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장비는 기존 수류탄이랑 NHG-2번, 대변종 덫이랑 그물 정도만 챙기면 되겠네요.”
NHG는 연구소가 개발한 대변종 수류탄이다. 기존 수류탄보다 파편의 크기가 크고 폭발력이 강하다. 대신 투척이 불가능하고 막대 모양으로 변종의 아가리에 처넣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파괴력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1번 모델은 이미 시연까지 끝나고 실제 변종들을 상대로 큰 효과가 있다는 게 증명됐다.
2번 모델은 그거에 한층 업그레이드를 거쳐, 안전성을 올리고 폭발 이후 막대 부분에 달린 강화 줄을 통해 추격하거나 변종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무기였다.
철저하게 대변종용으로 기획된 무기로, 캠프 요한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를 받는 연구소의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과해.”
“과한가요?”
“NHG-2번은 안전성 검증이나 위력 시연이 필요한데, 패턴 파악이 안 된 새로운 변종에 쓰기엔 무리야. 1번 모델로 들고 간다. 덫과 그물을 많이 챙겨.”
“하지만 대장, 2번 모델에 달린 추격이나 속박 효과가 이번 변종을 상대하기엔 안성맞춤으로 보이는데요. 차라리 덫과 그물 대신에 2번 모델을 하나라도 챙겨가시는 게 어때요?”
요한이 재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감 있는 표정. 그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안전성 검사나 위력 시연은 충분히 해봤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예. 그럼 그렇게.”
“준비 시기는 얼마나 걸릴 것 같지?”
요한이 대원들을 보며 물었다. 다들 서로를 바라보다 스위퍼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뭐 우리야. 준비할 거라곤 몸뚱어리뿐이니까. 우리의 홍일점은?”
“음… 나는 괜찮은데, 수색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어서 흑구가 휴식이 좀 필요할 것 같아.”
“그래. 그럼 이틀 뒤에 출발하지. 재호야. 준비 부탁해.”
“예.”
“해산.”
요한은 손뼉을 두 번 부딪치고는 자리에서 탁 일어났다. 그가 일어나 걸어가려는 걸 세리가 따라가려는 찰나, 이미 그의 뒷모습은 멀리 사라지고 난 뒤였다.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 * *
퀴진의 식당.
모두가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식사시간의 마지막 무렵까지, 세리는 자리를 뜨지 못하고 식당 중간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어디에 정신이 팔린 듯 시선이 탁했고 초점은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족한 배급량에 입맛을 다시던 스위퍼가 넋 놓은 그녀에게 다가가 툭 건드렸다. 그녀의 동태 같던 시선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어, 안녕.”
스위퍼가 시선을 접시로 향했다. 그녀는 생각에 잠겨 있던 채로 습관적으로 포크를 깨작거렸고 접시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난자된 고깃덩이가 있었다.
“훈련 중?”
“밥 먹고 있는데.”
“…밥을 작살내는 것 같은데. 난 또 모스퀴토 상대로 이미지 트레이닝 하는 줄 알았지.”
세리가 무슨 소리 하느냐는 듯 제 접시를 바라봤다가 갈기갈기 찢긴 제 식사를 보고선 픽 웃음이 새어버렸다.
나 참,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세리 아가씨.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너답잖게. 이미 망한 연애 주식을 붙들고 있어 봐야 너만 손해라니까. 서브프라임 모기지랑 IMF를 양쪽으로 때려 맞은 주식시장만큼이나 답이 없는 걸 알잖아?”
“아저씨, 복장 뒤집어 놓을 거면 그냥 가던 길 가세요. 응?”
스위퍼가 의자를 빼 앉으며 그녀의 옆에서 턱을 괴었다. 알 만한 사정이긴 했으나,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그녀의 어깻죽지 어느 부분을 툭툭 두드려줄 뿐이었다.
“아저씨.”
“오빠란다.”
“아저씨 생각에도 내가 매력이 없어?”
“세상에, 좋아하는 사람을 닮는 건 좋은데 하필이면 왜 지 할 말만 하는 걸 닮아야 했을까?”
“내가 매력이 없냐구.”
“음… 출제자의 의도를 잘 모르겠는데. 조원으로서? 아니면 개 주인으로서?”
“농담할 기분 아니거든.”
세리가 인상을 쓰며 헛웃음을 내뱉자 스위퍼가 여봐란듯이 히죽 웃었다. 그녀의 고민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녀가 요한에게 구애해 왔던 건 오래전부터 이어진 일이었고, 요한은 생존자 집단을 위한 일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관심 없다는 태도를 일관했으니까.
사수급 회의를 11인 회의로 명명한 이후부터는 사실상 요한은 제1 스쿼드가 출격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전선에 나서지 않았고, 그녀가 요한과 시간을 보내는 나날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와 별개로, 스위퍼는 세리가 요한이 생각하는 중요 전력 중 하나라는 건 분명히 알고 있었다.
욕망을 버리면 모두가 해피엔딩일 텐데.
“내 생각에는 말이지. 네 매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해. 젊고, 강하고, 아름답지.”
스위퍼의 말에 세리가 고개를 들었다. 느닷없는 칭찬에 얼굴까지 붉어진 듯했다.
“하지만 뭐, 사람에게는 취향이라는 게 있잖아. 너는 강하고, 매력 있는 사람이지만. 첫 단추를 잘못 끼우기도 했고. 요한의 취향이 아닐 수도 있잖아. 뭐, 때로는 좀 과한 부분들이 있고.”
“과한 부분들?”
“가령 전투 중에 너무 풀어진 모습을 보인다든가, 섹X 어필을 강하게 한다든가. 우선 녀석이 싫어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아야지.”
“…아저씨, 섹X 어필이라니.”
“아아, 그런 뜻이 아니야. 이성으로서의 매력발산을 좀 과하게 한다고 해야 할까. 너도 어느 정도 중직을 맡고 있으니까 오히려 좀 더 무게감 있는 모습을 어필하는 게 좋지 않을까. 성장한 모습 말이야. 요한은 생각보다 엄청 보수적인 꼰대거든. 그리고 넌 왜 요한이 이성에 관심을 안 두는지 알잖아?”
“그렇지만.”
“사실상 사상자들이 줄어들고 있고 점차 전력도, 생활도 안정되고 있지만, 놈은 지금도 이 생존이라는 게 언제 우리의 뒤통수를 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놈이걸랑. 그때 녀석의 판단력을 흐리게 할, 자신이 가진 최후의 선을 넘는 사람들 만들고 싶지 않은 거야. 자신에게만큼은 약점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
“녀석만의 특이한 책임감이랄까. 그래도 널 밀어내지는 않잖아.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는 것도 그렇다고 밀어내는 것도 아니고. 녀석을 품었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네가 감당해야 할 몫이란다. 세리야. 포기하든가. 포용하든가.”
한결 나아졌다기보다는 오히려 각오를 다진 듯한 모습이었다. 스위퍼는 먼 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쯤 하면 둘 중 하나는 포기할 법도 한데.
아무튼, 고집 하나는 대단한 녀석들이다. 이쪽이나, 그쪽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