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150화 (150/176)

<150화>

* * *

다섯 대의 이륜차가 본부를 출발했다. 산지 이전까지의 루트는 깨끗하게 닦여 있었기에, 선봉대는 거리낄 것 없이 도심을 내달렸다. 그들을 수색 4조와 용 노인이 배웅했다.

캠프 리더와 수색 조장 셋이 전부 자리를 비우는 일정이었던 만큼 용 노인의 표정은 어두웠다.

부담이라기보다는 짜증에 가까웠다.

물론, 제1 스쿼드의 누구도 남아 있는 사람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행보관으로서의 자질이 충분했으니까. 오히려 자신들이 없는 동안 용 노인의 갈굼에 군기가 바짝 들 것이 분명했다.

“잘 다녀 와라. 뒈지지 말고.”

“어르신도 남아 있는 사람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요즘 다들 개 빠졌던데, 이참에 정신교육 좀 해놔야겠어. 이 썩어 빠진 애송이들.”

노인의 말에 선발대는 웃었고, 노인 뒤의 조원들은 울상이 되었다.

요한의 짤막한 지시에 선발대가 표정을 지우고 산지 초입으로 진입했다.

산지에 들어간 요한 일행은 조악하게 그려진 지형도를 따라 북동쪽에서부터 남서쪽으로 수색을 진행했다.

작전은 별다를 게 없었다. 전투에서는 제 몫은 할 만한 사람들이었고 변종 사냥은 익숙했다. 만약 놈이 일단 시야에 들어온다면 그들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왼쪽 선두에는 추적과 흔적을 찾는 데 능숙한 노아가, 오른쪽 선두에는 세리와 흑구가 섰다. 흑구는 아직 두 돌 된 강아지였지만, 종자 자체가 크고 용맹했다. 그러니까 그 아비규환이 된 좀비 밭에서 기어코 살아남을 수 있었으리라.

요한은 아차 하는 얼굴로 앞서가는 세리를 불렀다.

“세리야.”

“으, 응?”

“잠시, 이리로.”

세리가 머뭇거리며 요한에게 다가갔다. 요한은 그녀에게 변종 슈트를 벗어 건넸다.

변종 슈트가 없으면 모스퀴토의 표적이 된다. 가장 취약한 전력에게 그 역할을 맡길 수는 없었다.

슈트를 바라보던 세리가 머뭇거리자 요한이 그것을 펼쳐 그녀의 머리 위로 씌우듯이 올렸다.

“만세.”

“어? 어….”

그녀가 허둥지둥하는 사이 칙칙한 슈트가 그녀의 몸에 안착했다. 약간은 길어 가죽 아랫부분이 땅에 끌리기는 했지만, 움직이는 데 지장을 주는 정도는 아니었다.

“으, 이거 무겁네.”

“그래도 걸치고 있어라. 벗고 있으면 위험하니까.”

“알겠어.”

그녀는 고분고분히 대답했다. 세리의 얼굴에 보일락 말락 한 작은 웃음이 걸렸다. 슈트는 따듯했다.

다섯 명의 선발대는 산지 수색을 시작했다.

이 이름 모를 산지를 지키는 변종만을 제거한다면 수직 직경 40여km, 수평 직경 30여km의 오클랜드 주변 대도시 생활권의 길이 모두 뚫린다. 게다가 오클랜드 배후지에는 아직도 살아 있는 가축들이 많았다.

지금도 마음먹으면 제1 스쿼드 정도는 이곳저곳을 오갈 수 있었으나, 본격적인 수색과 물자를 확보하려면 이곳에 상주하는 위험요소는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

흑구는 조용했다. 아마 놈이 어느 정도 가까워지면 반응하리라. 그 대신 앞장서서 수색을 진행하는 것은 노아의 몫이었다. 노아는 산지를 꼼꼼하게 뒤지며 놈의 흔적을 추적했다.

규모가 큰 산지는 아니었으나 굴, 나무 덤불까지 꼼꼼히 수색하느라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노아, 오늘은 이만하고 야영 준비하자.”

1/3가량 수색을 마친 요한은 떨어지는 해를 보며 노아를 불러세웠다.

“오케이. 저쪽에 봐둔 굴이 있어. 스위퍼, 하진. 수색 끝난 라인에 인계철선 설치할 건데 좀 도와줄래?”

“흔쾌히.”

“그러지.”

능숙하게 장비를 챙기는 노아를 바라보고선 세리를 향해 요한이 말을 걸었다.

“우리는 야영이랑 식사 준비하자.”

“응!”

세 사람이 수색라인을 정리하기 위해 떠났다.

요한은 세리와 함께 노아가 미리 봐뒀던 작은 굴로 들어갔다.

요한이 마른 가지를 모아 굴 안에 불을 피우는 사이, 세리는 배낭에서 직육면체 모양의 큰 통조림 캔 두 개와 장갑, 나무젓가락과 종이컵을 꺼냈다.

불길이 오르자, 그녀가 챙겨온 통조림을 능숙하게 익히기 시작했다. 고기 통조림통에 열기가 나오면서 내용물의 국물에 거품이 바글바글 올라온다.

두 사람은 말없이 끓는 고기 통조림에 빤한 시선을 보냈고 약간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요한으로서는 의아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둘만의 시간이었다. 전투 중을 제외하면 외부에서도 조잘대는 게 그녀의 일상이었으니까.

“무슨 일 있어?”

“응? 무슨 일?”

요한의 물음에도 세리는 그저 눈을 끔뻑이며 되물을 뿐이었다.

기분 탓인가. 요한은 어깨를 살짝 으쓱했다.

“아냐, 약간 처져 있길래.”

“별일 없는데. 오랜만에 최전선이라 긴장했나 봐.”

“네가? 별일이네.”

요한의 태도에 세리가 배시시 웃었다.

“뭐야, 그 반응은. 나도 긴장한다고.”

“그런가.”

“…오빠, 이제 얼추 준비 다 됐어.”

“그래. 좀 쉬고 있어. 내가 경계 설게.”

“아냐. 같이 있지 뭐.”

요한이 동굴 입구에 서자, 세리가 그 근처까지 걸어와 기대었다.

별것 아닌 사사로운 대화였지만, 그것도 좋았다. 그가 주는 애정이 목말랐다. 그저 슈트 하나 벗어 준 것만으로도 안달복달할 만큼.

강요하고 싶지도 부담을 주기도 싫었다. 밀어내져 상처받기 싫어 티 내지 않았다.

속은 점점 문드러져 갔으나 포기가 안 됐다. 여전히 곁에만 있어도 설렜고, 든든했고, 사랑스러웠다.

외롭고, 사랑스러운 사내.

욕심인 걸 알지만, 포기가 안 됐다.

포기. 사실은 포기하고 싶었다. 동시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외사랑이 지치고 힘들었지만, 여전히 그의 손을 잡고, 그를 품에 안고, 그와 함께 아침을 맞고 싶었다.

“울어?”

맙소사, 저도 모르게 쓸데없는 눈물이 샜나 보다. 세리가 깜짝 놀라 그의 시선을 피했다.

요한의 굵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비수처럼 파고들었다. 냉담하면서도 이율배반적으로 한없이 다정하게만 느껴지는 목소리.

“왜?”

세리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 아냐. 하품….”

세리가 허둥지둥 눈가를 비볐다. 요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설핏 웃었다.

“좀 쉬라니까.”

“괜… 찮아.”

요한은 시선을 밖으로 향했고 세리의 시선이 그를 따랐다.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 여기저기에 흙먼지를 묻힌 세 사람이 되돌아왔다.

“이야, 맛있는 냄새가 나는걸.”

노아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말을 건넸다. 그 순간, 그의 양쪽에서 두 인영이 번개같이 지나갔다.

“응?”

어느새 스위퍼와 하진의 젓가락이 통조림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마치 꿀을 향해 날아가는 벌처럼.

노아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으나,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소리 없는 젓가락 전쟁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세리마저도 하진의 젓가락을 자신의 젓가락으로 쳐내며 제 밥그릇을 지키고 있었다.

“뭐해. 늦으면 없다.”

“…….”

요한의 단호한 말에 노아는 황급히 자리로 달려갔다.

“밖에서부터 노아, 하진, 스위퍼, 나, 세리 순으로 자라. 경계는 90분 간격으로.”

“라져.”

식사가 끝난 뒤, 경계 배치까지 마무리하고 각자 간단한 식후운동 뒤에 잠자리에 들었다. 산지의 해는 빨리 졌다. 어느새 불빛 하나 없는 오클랜드에 샛노란 모닥불 불빛만 윤곽을 잃은 듯 아른거렸다.

“먼저 잘게.”

세리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들과 함께할 때면 체력적으로 부족한 만큼 충분한 휴식을 쉬어 둬야 했다.

다른 수색 조원들과 비교하면 남자와도 뒤지지 않는 그녀였지만, 이 네 사람만큼은 예외였다. 지친다는 걸 모르는 괴물들.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 체력을 충분히 보충하는 게, 그녀가 짐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이 스쿼드에서 버티는 방식이었다.

세리의 품에 흑구가 파고들었다. 꿉꿉한 개 냄새와 함께 온기가 스며들었다.

타닥, 모닥불 소리와 함께 노아와 요한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작게 나누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잠자리가 생각만큼 불편하지 않았다. 문득, 세리는 자신의 자리에만 모포가 네 장 놓여 있는걸 발견했다.

요한이었다. 가장 구석 자리에 자리를 마련해 준 것도, 불침번을 마지막으로 미뤄준 것도, 모포를 여러 장 놔준 것도 그였다.

티 나지 않는, 세심한 배려.

다른 상황 같았으면 무시하느냐며 정강이를 걷어찰 수도 있었지만, 세리는 그저 두 장의 모포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배려가 좋은 게 아니라, 그가 주는 배려가 좋았다.

옅은 호흡이 선연하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물론 세리는, 인당 두 개의 모포에, 훌륭한 전력인 흑구에게도 모포가 배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알지 못했다.

세리는 그가 잠자리에 들자 몸을 조금씩 비틀어 그의 곁에 조금이라도 다가갔다.

잠버릇인 척 손을 뻗자, 그의 팔이 제 팔에 닿았다.

세리는 온기를 느끼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다음 날, 일행은 수색을 재개했다.

세 시간가량 쉼 없이 수색이 계속되고, 마침내 노아가 놈의 흔적을 발견했다. 꼬리가 끌린 흔적이다.

“6시간 이내의 흔적이야. 다들 긴장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의 말에 여러 시선이 따라붙었으나, 흔적이라고 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모양이었다.

일행은 의문을 품는 대신 경계 태세를 갖췄다. 그의 감각은 때로는 동물보다 예리했으니까.

그의 인도에 따라 산지를 걸어가니 일반인의 눈에도 보일 만한 변종의 흔적들이 점점 많아졌다.

이제 슬슬 흑구가 활약할 차례였다.

“이거, 놈의 체액 같은데.”

“흑구야.”

월!

노아의 말에 세리가 곧바로 흑구를 불렀다.

흑구는 세리의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에 다가가더니 나무를 빙글빙글 돌며 냄새를 맡았다.

“이 냄새를 찾아줘.”

월월!

흑구는 꼬리를 살랑거리더니 코를 킁킁대며 걷기 시작했다. 다섯 명의 사람이 조금씩 떨어져서 그를 따라갔다.

30분쯤 걸었을까, 흑구가 갑자기 멈춰서 짖기 시작했다. 다섯 사람의 주변으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나 봐.”

“정지. 원형으로 대기.”

세리의 말에 요한이 경계태세를 지시했다. 다섯 명의 사람들이 동그랗게 서서 빈틈없이 주변을 경계했다.

산속은 바람 소리와 바람에 스치는 풀잎 소리, 풀벌레 소리만 가득했다. 그 위로 흑구가 사납게 짖는 소리가 덧씌워졌다.

적막. 그리고 긴장감.

수많은 변종과 싸워 승리했지만, 여전히 변종과의 전투는 근육이 팽팽 땅겨지다 못해 살을 에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유의 위기를 감지하는 감각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위협적인 놈은 아니라는 뜻일 터다.

방심은 금물이겠지만, 땅겨진 근육을 이완시키는 데는 충분히 도움이 됐다.

파스스, 파스슥.

낯선 소리가 끼어들었다.

그 순간,

쐐액-!

공기를 가르는 듯한 파공음이 들린 것과 요한이 잘 벼려진 마체테를 휘두른 것은 거의 동시였다.

요한은 본능적으로 놈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 것을 알았고,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흉기를 휘둘렀다.

마치 무협 영화에서 연출될 법한 교차.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파앗!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피가 터져 나왔다.

끼야아아악!-

사냥감에 불의의 일격을 당한 변종이 공중에서 회전하며 바닥에 퉁퉁 튕겨 나갔다.

목격자들의 진술처럼 짧고 얇은 다리와 몸의 두 배 가까이 되는 꼬리, 악어 같은 이빨이 도드라지는 녀석이었다.

변종 모스퀴토.

그 몸체 위로 스위퍼의 손도끼가 벼락같이 쇄도했다.

쿵!

도끼는 흙바닥을 찍었다.

놈은 미꾸라지처럼 꼬리를 말고선 뱀처럼 수풀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스위퍼! 추격!”

“라져!”

스위퍼가 빠르게 손도끼를 회수하고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다람쥐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녀석의 몸체를 스위퍼가 눈으로 훑었다.

“짜식, 잽싼데.”

탁! 탁! 파스스, 흙바닥을 짓이기는 발소리와 옷깃에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진과 요한, 노아가 놈을 포위하는 듯했다.

스위퍼가 손도끼를 빙그르르 돌려 등에 고정한 후 왼쪽 옆구리에서 바주카포처럼 생긴 원통형 관을 꺼내 들었다.

강화 낚싯줄로 만든 대변종 그물탄. 하진이 들고 있는 것까지 딱 두 발이다. 정확하게 사격해야 했다.

“붉은 꽃나무 뒤쪽! 사선으로 뛴다!”

스위퍼의 브리핑에 세 사내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놈이 멀리 도망치지 못하도록 빠르게 제압해야 했다.

그 순간, 놈의 동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라졌-”

그와 동시에 놈이 돌격한 곳은, 가장 후방에 있던 세리 쪽이었다.

놈은 흑구의 짖는 소리에 반응이라도 하듯 그곳을 향해 꼬리를 내밀며 돌진했다.

흑구가 용맹하게 짖으며 놈에게 달려들었으나 모스퀴토가 바로 꼬리를 휘둘렀다. 흑구는 힘없이 날아가 그대로 나무에 부딪혔다.

“세리야!-”

네 남자가 동시에 방향을 틀고 그녀를 향해 달려왔지만, 놈은 그보다 빠르게 그대로 세리를 향해 꼬리를 찔러 갔다.

세리가 손에 들고 있던 거버 브로드컷 마세티에 손아귀 힘을 꽉 쥐었다. 그러나, 놈의 선연한 꼬리 침을 본 순간 그녀는 본능적으로 가드를 올리듯 두 손을 모았고 그 위로 놈의 공격이 들이닥쳤다.

“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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