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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151화 (151/176)

<151화>

비명에 가까운 고함이 산중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변종 모스퀴토의 날카로운 꼬리가 세리의 가드 위를 강타했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세리가 뒤로 넘어져 바닥을 굴렀다.

놈은 자신의 꼬리에 사냥감이 뚫리지 않은 것에 충격이라도 받은 듯 멈칫했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허공으로 솟구쳤던 놈의 꼬리가 수직으로 낙하했다. 세리가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굴리며 피해냈다.

꼬리가 푹 소리를 내며 흙바닥에 박혔다. 그와 동시에, 가장 빠르게 도착했던 스위퍼의 손도끼가 놈의 꼬리를 잘라냈다.

끼야아아아악-!

듣기 싫은 괴성이 산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꼬리가 잘린 놈이 도마뱀처럼 꿈틀거렸고 그사이에 거의 동시에 도착한 요한과 노아가 그의 팔과 다리를 한 짝씩 걷어냈다. 발광하듯 발버둥 쳤지만 유의미한 저항은 아니었다.

고통에 찬 괴물의 비명이 연속적으로 들렸다.

마지막에 도착한 하진이 대변종 수류탄을 놈의 입에 꽂아 넣으려는 순간,

“하진. 멈춰!”

요한의 외침이 날아들었고, 하진이 멈칫했다.

냉병기가 통하는 놈이다. 굳이 아까운 대변종 수류탄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요한이 끝장을 보기 위해 마체테를 번쩍 들어 올렸다. 놈이 비틀거리며 바닥을 엉금엉금 기었다. 벼락처럼 쏘아진 마체테가 놈의 목 부분을 향해 휘둘러졌다. 외골격을 갖춘 변종과 달리 잘리는 느낌이 생경했다. 마치 말가죽을 찢는 느낌. 그 찝찝한 느낌과 함께 놈의 목이 뚝 끊겨나갔다.

잘린 목 위에서 계속해서 변종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요한이 쾅쾅, 마치 반죽을 다지듯 놈의 머리를 짓이겼다.

그러고선 등을 돌려 하진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서는 세리를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괜찮아?”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이 천천히 그녀의 팔을 들어 올리고 변종 슈트를 벗겼다. 왼쪽 팔꿈치 위로 검푸른 피멍이 들어 있었다.

다행히, 관통상은 없었다. 변종의 침이 슈트를 뚫지 못한 것이다. 변종 슈트가 그녀의 목숨을 살린 셈이었다.

요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선 세리를 칭찬했다.

“잘했어.”

만약 그녀가 반격하기 위해 무기를 휘둘렀다면, 그래서 팔이 아니라 내장에 충격을 받았다면 더 크게 다쳤을 수도 있었다. 그뿐 아니라 위협적이었던 두 번째 공격 또한 잘 피해냈다. 대견했다.

요한이 그녀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고 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어. 복귀하자.”

요한이 그녀를 부축해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진이 그녀의 부축을 도우려 걸어가다 스위퍼에 의해 제지당했다. 그가 스위퍼를 바라보자 스위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짐이나 챙겨. 넌씨눈 소리 듣기 싫으면.’

하진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스위퍼가 변종의 잘린 목을 그에게 집어 던졌다. 하진이 반사적으로 의수를 꺼내 놈의 머리를 꼬치처럼 꽂았다.

두 사람을 보며 노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스위퍼의 시선에 요한에게 반쯤 기대 걷는 세리의 모습이 담겼다.

그래.

그 정도면 됐지.

누군가의 눈에는 조금은 느리고 답답해 보일지라도.

정환과 지혜. 아끼던 두 동료의 죽음 이후 특히나 이성에게 철벽을 치던 요한이 저만큼이나 마음을 연 상대가 있다는 것.

왈가닥이던 세리가 그 앞에서만큼은 저렇게 얌전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손뼉을 칠 만한 변화였으리라. 좋은 그림이었다.

스위퍼가 아빠 미소를 지으며 두 남정네의 어깨를 툭 쳤다.

“뭐해, 병풍들. 짐이나 들자고.”

멀뚱멀뚱 서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스위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너희들이 뭘 알겠니.

* * *

오클랜드.

11인 회의실.

“…….”

“…….”

결속력이 좋은 캠프 요한에도 상당히 어색한 조합이 존재했다.

부딪힐 일은 잦지만, 생각보다 궁합이 안 맞아서 만나면 종일 먼 산만 바라보고 있는다든가, 혹은 견원지간처럼 물어뜯고 싸운다든가 하는.

이 경우에는 전자에 가까웠다.

용 노인과 재호.

“그래서… 조례를 받으러 오셨다고요?”

“그래. 인마. 뭘 멀뚱히 섰어?”

각자의 섬으로 되돌아간 섬 관리자들을 제외하고 졸지에 육지에 남은 실무 관리자가 둘밖에 없었기에, 두 사람은 원하든 원치 않든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두 사람이 더없이 데면데면한 사이라는 점이었다.

과거 언젠가 제1 스쿼드가 장기 출타를 나갔던 적이 있었다.

출타를 끝내고 되돌아온 요한에게 용 노인은 ‘난 안경잡이랑 책벌레들이랑은 궁합이 안 맞는가보다 애송이야.’ 라는 볼멘소리로 요한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어… 그러니까 굳이 별일이 없으시면 따로 보고하러 오시진 않으셔도 괜찮은데요…….”

재호가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와 조례해야 한다며 치대고 있는 용 노인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 용 노인은 당연하다는 듯 반발했다.

“안경잡이 애송이야. 네가 대장 애송이 대리가 아니냐?”

“예. 맞아요.”

“전투조는 매일 아침 별도로 조례하는 걸 모르느냐.”

“알고 있… 어요.”

“그럼 당연히 누가 말하지 않아도 너는 조례를 열어야 하고 나는 조례에 참석해야 하는데, 웬 말이 많아?”

용 노인의 강퍅한 언성에도 재호는 안경을 올려 쓸 뿐이었다. 이 노인은 답지 않게 FM이라 쓸데없는 시간 낭비가 잦았다. 안 그래도 할 일이 제법 많은 재호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실상 긴 출타가 되지 않을 거고,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의미 없는 의전이 될 것 같은데요? 대장님이 조례를 여는 거야 수색조 활동을 조율하기 위한 거고, 지금은 일시적으로 수색 활동이 중단되었으니까…….”

“그래서 애송이가 하지 말라고 지시했든?”

“그건 아니죠…….”

“그럼 해. 까라면 까야지. 너, 기본군사훈련 다시 받을래?”

“…아뇨. 죄송합니다.”

출타한 지 고작 하루가 된 날이었다. 급한 일이야 요한이 모두 처리한 뒤였고, 별다른 일이 없는 이상 둘 사이에 다른 회의 주제가 있을 리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조례 시간 내내 그저 먼 산을 바라볼 뿐이었다.

재호는 책을 꺼내 책장을 넘기고 있었고 용 노인은 다리를 꼬고 앉아 넘어질 듯 의자를 뒤로 젖힌 채였다.

몇 시간 같은 몇십 분이 흐르고, 용 노인이 툭 던지듯 말을 꺼냈다.

“안경쟁이야.”

“예?”

“내가 캠프에 합류하기 전에는 네가 별로 눈에 안 띄어서 모르겠지만. 갈수록 어째 초췌해지는 느낌이다?”

재호가 그의 말에 뜨끔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표정을 숨기는 게 능숙하지 못했다.

“뭔 고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뭘 그리 혼자 꼭꼭 싸매고 있는지, 쯧. 간부란 놈이. 칠칠찮게. 진짜 이러다가 애송이가 비명횡사라도 하면 대체 어찌 될랑가 모르겠네.”

노인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요한이 죽으면? 재호는 이어진 상상에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캠프는 끝나는 거지, 뭐.’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찾아올 거다.

유능한 전투 조장이 4명이나 되는 데다, 그 네 명이 동시에 인정하는 것은 오로지 요한뿐이다. 그가 죽는다고 당장에 서로 물어뜯고 싸우지는 않겠지만, 의사결정과정이 지금보다 배는 복잡해질 것이었다.

결국 누군가는 총대를 메고 캠프를 책임져야 하는데, 만약 후계자를 골라야 한다면…….

재호는 고민했다.

어차피 자신은 리더의 깜냥이 못 되고. 전투 조장 중 한 명이 그 자리에 올라서는 게 맞다.

하진은 리더라는 자리 자체를 버거워하고, 노아는 캠프 내에 지지기반이 약하며, 용 노인은 거칠고 과하게 FM인 데다가, 스위퍼는 정반대.

결국, 우왕좌왕하다 맞지 않는 몇몇 사람들끼리 모여 뿔뿔이 흩어지고 말 거다.

그러고 보면 대장은 대단한 인물이다. 이렇게 강하고 개성 있는 사람들을 한데 묶어서 철저히 관리하면서도 충성에 가까운 지지를 받는 걸 보면.

재호가 시계를 힐끔 바라봤다.

“사 조장님.”

“왜.”

“시간 끝났네요. 그럼 오늘도 수고하세요.”

“쯧, 대장을 닮아가는 건지, 흉내 내는 건지.”

그래도 오늘은 두 사람이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날이었다. 두 사람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헤어졌다.

사이가 안 좋다거나 원한이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색한 사이일 뿐이었다.

자리로 되돌아온 재호는 의자에 눕다시피 앉았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확실히 초췌하다.

‘뭔 고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뭘 그리 혼자 꼭꼭 싸매고 있는지, 쯧. 간부란 놈이. 칠칠찮게.’

그렇게 티가 났나.

원래도 키와 비교하면 마른 몸집이었으나 꾸준히 살이 빠져갔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가 않고 어느 순간부터 기계적으로 일을 해왔던 것 같았다.

고민과 고뇌가 끊이질 않는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 누구도 답변하지 않는 질문.

그저 처음에는 충격적인 사실일 뿐이었으나, 갈수록 제 정신을 갉아먹었다. 마치 뇌리에 붉은 불길이 일어나 뇌 한쪽 어딘가를 살라 먹는 기분이었다.

재호가 천천히 문제의 그 책을 펼쳐 들었다. 10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자신을 괴롭혔던 그 책.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고민하며 영혼을 갉아먹었던 고뇌들은 아직까지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미로처럼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

재호가 버릇처럼 마지막 장을 손으로 쓸었다. 그 순간 덜컥, 문이 열렸다.

요한이었다.

“……!”

재호가 화들짝 놀라 책을 숨겼다. 요한은 그런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제 집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복귀가 빨랐다. 몇 주 동안 골머리를 앓던 변종을 하룻밤 만에 잡아 온 것이다.

“어… 대장님. 일찍 오셨네요.”

“뭐 해. 죄지었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행동이었다. 게다가 한심한 것은,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었다.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요한은 차분한 시선으로 옅게 숨을 내쉬고서는 말을 내뱉었다.

“재호야.”

“예?”

“네가 뭘 숨기는지, 뭣 때문에 고민하는지는 물어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티는 내지 말아야지. 그렇게 계속 나 고민 있어요, 하는 얼굴에다가 누가 봐도 수상한 티를 내고 있으면 모른 척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잖아.”

요한의 지적은 추궁이 아니었다. 이미 다 무언가를 숨기는 걸 알고 있는데, 굳이 묻지 않는 부분을 티 내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재호는 그가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원망스러웠다.

“대장님.”

“왜.”

“대장님께서는 제가 국립중앙도서관에 다녀온 이유를 아시잖아요.”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알지.”

“그런데 왜, 한 번도 그에 관해서 물어보지 않으셨어요?”

어쩌면 건방지고 적반하장격인 질문일 수 있었다. 애초에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아니었나.

그런데 애먼 요한에게 왜 묻지 않았느냐고 따지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 요한은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저, 무심했다.

“만약 우리가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되고 필요한 정보를 얻었다면, 네가 얘기했겠지. 하지만 너는 복귀했던 그 날,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이야기를 했어. 마치 자신이 갔던 이유 따위는 모조리 잊어버렸다는 듯이.”

“…….”

“더 해?”

재호는 말이 없었다. 요한은 그의 앞자리에 엉덩이를 붙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 수확도 없었다면 수확이 없었다고 말했겠지. 하지만 너는 무언가를 봤고, 내게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던 거야. 모르는 게 약이라고 생각했겠지. 네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정보가. 지금 네 몸과 정신을 갉아먹고 있는 것처럼 생존자들 사이에서 전염병처럼 퍼질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맞지?”

“…대장님.”

“뭘 숨기지?”

추론에서 시작된 요한의 말은 이윽고 추궁이 되었다.

“넌 무엇을 알고 있지?”

“대장님…….”

“아니, 질문을 바꾸지.”

마치 앵무새처럼 대장을 불러대는 재호를 무시하고 요한은 끝끝내 마지막 질문을 내뱉었다.

“네가 혼자 짊어지고 있는 것, 그 진실이 뭐야?”

이어진 재호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대장님, 절…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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