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6시간 가까이 계속된 강행군이었다. 땀으로 얼룩진 옷에 흰 소금기가 솔솔이 일어날 무렵이 되어서야 수색조는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마침내 거점에 도착한 하진이 먼저 목표했던 땅을 밟았다. 넓은 울타리 안에는 끝없는 풀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군데군데 마치 종말이 무슨 상관이냐는 듯 무리 지어 다니는 양과 소 떼가 많았다.
하진과 노아가 앞서 대목장을 수색했다. 목장 안에 생존자는 없었다. 그 대신, 목장 외 울타리에 걸려 발버둥 치는 노부부 좀비가 있었다. 목장 주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하진, 이쪽에도 있다.”
노아가 목장 근처 목조 건물에서 한 구의 좀비를 더 발견했다. 그 좀비는 이미 머리가 으깨진 채로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농장 부부가 죽인 시체 같은데.”
“응. 아마 이놈과 싸우다가 좀비가 된 것 같네.”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썩은 좀비였다. 그저 입은 옷을 바탕으로 노부부보다는 젊은 좀비이리라, 추론할 뿐이었다.
“운이 좋네.”
목장을 한 바퀴 수색한 하진이 소감을 내뱉었다. 목장은 보존상태가 훌륭했고,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위치가 대단히 외진 곳에 있었다. 넓게 양을 사육할 만한 위치를 고르다 보니 그런지 몰라도, 근처 대도시에서도 상당히 깊숙이 들어와야만 발견할 수 있는 장소.
게다가 들어오는 오프로드에는 변종이 서식하고 있었다. 만약 이곳의 위치를 알고 들어오는 생존자들이 있었어도, 그 변종의 먹잇감이 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이곳의 생존자들도 일찍이 감염되어 가축들은 그대로 살아남을 수 있었고, 울타리 안에 녹음과 작은 호수 덕분에 건강상태도 훌륭했다.
양들의 털이 상당히 덥수룩해 보였지만, 자연에서 오래 방치된 것치고는 상태가 좋아 보였다.
“이상 없다. 모두 들어와서 휴식해.”
하진이 목장 바깥을 경계하던 수색조 조원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그들은 지친 기색으로 목장 여기저기 들어앉아 숨을 골랐다.
하진과 노아도 울타리 한쪽에 기대 체력을 회복했다. 얼핏 보기에도 수백 마리 가까이 되어 보이는 양과 소 떼. 보기만 해도 배부른 광경이었다.
“복귀하면 소고기 먹겠는데.”
“아니면 허락받고 여기서 한 마리 해치우고 가도 되지 않을까?”
“아서라, 잔소리 폭탄 듣는다.”
“하하, 어디 죽어가는 놈 없나.”
노아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사이, 두 명의 부장이 그들의 곁으로 다가왔다.
“조장님, 경계조 편성 끝났습니다.”
“어, 옹이. 수현이. 수고했다. 이리 와서 앉아. ”
120cm짜리 장신 대물 저격 총기, Barrett M82 A1을 바닥에 세우듯이 내려놓았다. 개인화기치고는 믿기지 않을 만한 화력을 자랑하는 옹 상병의 6번째 컬렉션이었다.
저격총을 모으는 취미라니, 고상하기도 하지. 하진이 옹 상병의 여섯 번째 애인으로부터 시선을 거뒀다. 옹 상병이 가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을 꺼냈다.
“히야, 이 많은 놈을 다시 차량 세워둔 데까지 옮기려면 죽어나겠습니다.”
“지원 요청을 하든가, 뭐 어디서 전기톱이라도 구해서 길을 터야지. 이것들 데리고 걸어서는 곧 죽어도 못 간다.”
창고 쪽을 뒤지던 조원이 다가와 찾는 물건이 있다고 보고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하진이 대자로 드러눕더니 다시 벌떡 일어나 슈트를 벗기 위해 버둥거렸다. 한참을 꿈틀거리던 하진이 앞에 지나가던 두 신입 조원들을 불렀다.
“거기 둘, 잠깐만 도와주겠나.”
양을 치려고 돌아다니던 두 조원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이번에 첫 수색작전인 두 사람이었다. 그런 만큼 군기가 잔뜩 잡힌 모습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기초 군사 훈련을 담당하는 용 노인이 신입들을 얼마나 쥐 잡듯 잡아대는지.
하진이 슈트를 벗기 위해 두 사람의 부축을 받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육포를 뜯던 노아가 하하 웃으며 장난치듯 덧붙였다.
“친구들 조심하라고. 거기 팔 잘못 건드리면 칼날에 뭐 하나 잘려나갈지도 몰라.”
“맞습니다. 조장님은 거의 신체병기지 말입니다.”
두 사람이 숨 들이켜는 소리를 냈다. 하진이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짓자 노아가 튕기듯 일어나 하진의 의수 칼날 버튼을 눌렀다. 핑, 하고 날카로운 칼날이 쏘아져 나왔다.
두 신입이 기겁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쫄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여기서 레이저 빔도 나간다고?”
“예에?!”
“저. 정말요?!”
“그럼. 보여주지.”
노아가 하진의 팔을 들어 옹 상병에게 겨냥했다. 그러고선 있지도 않은 버튼을 누르는 시늉을 했다.
“피융!”
“으악!”
갑자기 옹 상병이 팔을 잡고 쓰러져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두 사람의 표정이 괴상스레 변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당황한 표정의 조원들.
노아가 멋쩍게 하하 웃었다.
“역시 신입이라 반응이 별로네.”
“사회생활을 더 배워야 하지 말입니다.”
“맞아. 역시 옹 상병이 군바리라 뭘 잘 안다니까.”
“에이, 삼 조장님. 대체 언제적 군바리랍니까? 지금까지 군대에 있었으면 전역해도 한참 전에 전역했겠습니다!”
“말투가 아직도 군바리잖아. 불만 있으면 전역증 갖고 오려무나.”
“말투는 그냥 군기 잡힌 모습 보이려고 쓰는 거죠, 형. 요즘 군대에 누가 다나까 써요. 봐봐요. 저 서울말 잘 쓰잖아요!”
“옹 상병, 개 빠졌네?”
“아니, 하다못해 병장으로 진급이라도 시켜주십쇼!”
“그래, 옹 병장.”
하진은 말없이 두 남자의 머리를 양쪽 겨드랑이에 낀 채 질질 끌고 갔다. 두 사람은 한참을 발버둥 쳤다.
시큼한 땀내에 정신을 못 차리던 두 사람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뒤에야 회의가 시작됐다.
어떻게 가축들을 옮길 것인지, 변종은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가 주된 쟁점이었다.
“일단 조를 네 개로 나누자. 나랑 하진은 각각 나뉘어서 주변을 수색하면서 변종을 찾을 테니까 옹 상병은 길을 터. 차고에 픽업트럭 한 대 있다더라. 창고에 전기톱도 있고. 수현이는 나머지 인원 데리고 경계 서면서 여기를 지켜.”
“두 분이 따로 움직이십니까?”
“둘밖에 없는데 뭉쳐 다녀서 어느 세월에 수색하겠어. 걱정하지 말고 대기해. 위험하면 지원 요청할 테니까.”
옹 상병이 쓰게 웃었다. 두 사람의 자신감도 자신감이었지만, 궂고 위험한 일을 마다치 않는 그 희생정신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왜, 웃어?”
“그냥요. 두 분 조장님은 권위가 높아질수록 편해지는 게 아니라 더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요.”
“그러게 말이다. 요한의 감언이설에 속은 거지. 개처럼 굴리기 위한 큰 그림이었는데.”
구시렁대는 듯한 말에 웃음소리가 넘쳐 흘렀다.
“그래도, 대단하십니다.”
“그렇게 아부해도 일 안 줄여준다. 길 뚫으러 가기 무서워서 뺑끼 부리는 거면 안 통해.”
“으억, 아닙니다…….”
하진의 말에 노아가 장난을 거들며 웃어 젖혔다.
옹 상병을 책임자로 보내는 것은 다소 위험하게 느껴질 수는 있었으나, 그가 적당한 인사였다. 2, 3조에서 조장들을 제외하고는 가장 성과가 많은 특급 에이스였으니까. 실제로 그는 위험도 4짜리 변종을 단신으로 처리한 경력도 있었다.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시작하자.”
노아가 손뼉을 두어 번 치자 널브러져 있던 조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툭툭.
하진은 산길을 헤치며 수색을 하고 있었다. 산속 여기저기에 야생동물들의 흔적이 가득했다. 아니, 흔적뿐만 아니라 실제로 머리 위와 발밑으로 야생동물들이 휙휙 지나다니고 있었다.
하진이 달라붙는 벌레들을 쳐내며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뭐야, 저건.”
머리 위로 웬 짐승 한 마리가 후다닥 지나갔다. 쥐 같기도, 다람쥐 같기도 한 포유류였다. 오밀조밀한 회색빛 털에 둥글둥글한 얼굴이 귀엽게 생긴 포유류였다.
오클랜드에서 한번 본 적이 있는 놈이었다. 생각보다 사나운 동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녀석은 나무 위에서 푸드덕거리며 돌아다니다 나뭇잎을 헤집어 놔 여기저기에 나뭇잎이 봄철 벚꽃처럼 흩날렸다.
발밑에서는 웬 도마뱀 한 마리가 지나다녔다. 잡으면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하진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하진의 전신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날씨는 선선했지만, 몸을 덮고 있는 슈트가 문제였다. 이 슈트를 입고 있으면 조금만 움직여도 몸에 열기가 확 올라왔다.
“아무것도 없군.”
몇 시간 동안 주변을 뒤졌으나 딱히 성과라 할 만한 것들은 없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어느새 거점에서 상당히 멀리까지 떨어져 나왔다.
조금 쉬었다 할까.
하진이 그루터기에 주저앉듯 엉덩이를 붙였다. 엉덩이 아래쪽에서 뭔가 으깨지고 터지는 촉감이 들었으나 깨끗하게 무시했다.
“여기는 하진, 거점엔 이상 없는지.”
으레적인 통신에 곧바로 장거리 수신 무전기에서 무전 음이 흘러나왔다.
-이상 없습니다. 조장님은 괜찮으십니까?
“어, 관광 나온 것 같다.”
아니면 파충류 채집이라든가.
하진은 발에 채는 도마뱀들을 걷어내며 구시렁거렸다.
변종 수색이라곤 하지만, 사실상 변종이 나타날 거라고 기대하고 하는 작업은 아니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변종도 찾으려면 더럽게 안 나오는 놈들이었으니까.
집에서 편히 쉬고 있을 땐 더럽게 찾아와 문을 두드리면서, 막상 찾아서 두들겨 패려고 하면 꼭꼭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변태 같은 놈들이었다.
변종 수색은 흔하고 잦은 작업이었다. 사실상 지금의 작업은 변종을 찾기보다는 놈들의 흔적을 찾는 작업에 가까웠다.
놈이 장거리를 이동하는 종류의 변종일 수도 있고, 근처에 서식하는 변종일 수도 있었으니까. 근처에 놈이 있는지 없는지. 그런 흔적을 찾는 것이 목적인 수색.
한마디로 단순 노가다였다.
최초 발견지에서 30km나 떨어진 지점이다. 변종이 이동하는 종류라고 해도 방향이 겹칠 확률은 미약하고, 거주하는 종이면 최초 발견지 근처에서 서식하고 있을 터.
“옹이는, 도착했나?”
-예, 조장님! 제초 작업 중입니다.
“벌목이겠지. 그래, 조심하고.”
-예압.
목소리는 밝고 활기찼다. 옹 상병은 걱정하지 않았다.
대물 저격용 총에 대변종 수류탄까지 철저하게 무장되어 있었고, 본인의 사격 실력은 언터쳐블의 캠프 탑이었다.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명사수는 딱 그를 두고 하는 말이었을 정도로.
기존에도 눈에 띌 정도로 훌륭했지만, 뉴질랜드에 정착하고 난 이후 실력은 날이 갈수록 농익었다.
그럴 만도 했다. 재능도 재능이거니와, 심각한 수준의 밀덕이라 단 한시도 총을 놓고 살지 않았으니까.
쉬는 날에도 하루 열 시간 이상을 사격연습에 매진하는 총알 먹는 하마였다.
그나마 요한이 옹 상병의 사격 훈련에는 지원을 아끼지 말라는 지시를 내려서 망정이지, 탄환이 모자랐으면 집안의 기둥뿌리를 뽑아 먹고도 남을 녀석이었다.
“흠.”
하진이 수풀을 가르며 걸어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발자국이었다. 변종이 아닌, 인간의 흔적. 생존자가 있었다. 하진은 곧바로 무전을 쳤다.
“여기는 하진, 생존자 흔적 발견. 신호탄 쏜다. 요청 시 지원할 것.”
하진이 곧바로 황색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핑, 소리를 내며 황색 구름이 흰 구름을 가르고 기둥을 세웠다.
우선 신호를 보낸 하진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서 있던 방향에서 큼지막하게 반시계방향으로, 천천히 돌았다.
그러고선 있던 방향에서 크게 반시계방향으로 돌며 주변을 천천히 수색했다.
아마 생존자가 있다면 그들도 이 소리와 신호를 확인했을 터다.
‘목장 근처에 사람이 살던 흔적은 없었는데.’
이 정도 거리면 목장까지 충분히 오갈 수 있는 거리였다. 미심쩍은 느낌이 든다.
하진이 천천히 모기향처럼 나선을 그리며 범위를 좁혀 갔다. 팔을 크게 휘두르자 의수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뽑혀 나오고, 등에서 어깨 고정형 윈체스터 펌프 액션 샷건, 트렌치건을 꺼내 어깨에 고정했다.
총열 끝부분과 방아쇠 앞부분에 연결된 끈을 어깨에 고정해 한 손으로 사격할 수 있도록 개조한, 그 전용 무기였다. 물론 초 근접전에서나 정확한 사격이 가능했지만.
어차피 그의 포지션은 스위퍼의 말을 빌리자면, 고기 방패였다.
원의 반지름 정도의 거리를 움직이자 하진의 눈앞에 드러난 것은 목조 건물이었다.
마치 오두막 같기도, 초막 같기도 한 건물. 주변으로는 작은 농장처럼 보이는 밭떼기와 창고가 있었고 앞마당에는 땔감이 어지럽게 흩어져있었다.
그리고 땔감 받침 통나무에 한쪽 발을 올린 채 하진이 쏘아 올린 신호를 그늘진 표정으로 바라보는 한 생존자가 있었다.
여성 생존자였다.
인적이 닿을 수 없는 깊은 산속에서 땔감을 자르는 눈부신 미인. 이상하리만큼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하진은 순간적으로 마녀에 홀리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