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즉사였다. 찬물을 뿌린 듯 싸늘한 공기가 대기를 적셨다. 전투 경험이 적은 조원들은 그 자리에서 얼음처럼 얼어붙었다.
“데이븐!”
근처에 있던 두 분대장이 고성을 지르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눈에는 핏발이 서고 입에선 절로 욕설이 새어 나왔다.
오랜 기간 함께해온 동료의 죽음은 순간적으로 이성을 날려버리기 충분했다.
끄아아아악!-
놈의 약점은 오로지 하나. 소화기관뿐.
한 명의 분대장이 몸체를 낮춰 다리를 피격하는 사이 또 다른 한 명이 놈의 아가리를 향해 펌프 액션 산탄총을 들이밀었다.
그 순간, 아이언피스트의 날카로운 손톱이 거의 동시에 두 분대장의 복부를 꿰뚫었다. 그들은 눈을 부릅뜬 채 그대로 절명했다.
순식간에 분대장급 세 명이 당했다. 부하들이 당하는 걸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던 용 노인의 눈이 휙 돌아갔다.
“개 X발! 다 물러서!!”
용 노인이 산탄총을 손에 쥐고 대변종 수류탄을 등에 멘 채 변종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뒤로 철구가 따라붙었다. 자신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드는 사냥감을 본 변종이 노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조장님! 조심-”
여기저기서 비명 같은 소리가 울렸다. 당장에라도 노인의 몸을 찢어발길 것 같은 놈의 기세가 노인을 덮쳐갔다.
이미 노인의 눈에는 뵈는 게 없었다. 그저 눈앞의 저 괴물을 쳐 죽이고 싶은 마음만이 뇌를 지배했다.
분대장 하나를 키우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아느냐, 이 빌어먹을 자식아, 하고 변종을 향해 욕설을 내뱉을 뿐이었다.
놈의 손톱이 노인의 얼굴을 움켜쥐기 직전, 노인의 몸이 땅으로 쑥 꺼지듯 사라졌다.
뒤이어 이어진 격발. 노인은 정확하게 놈의 무릎 관절을 노렸다.
탕!-
노인의 몸이 묵직한 반동을 견뎌냈다.
산탄총에서 터져나간 구슬들이 변종의 단단한 철갑 위를 때렸다.
그러나 효과는 미미했다. 변종은 아무렇지 않은 듯한 얼굴로 노인을 향해 다시 한번 팔을 휘둘렀다.
“할배!”
철구의 몸이 날 듯이 뛰어올라 용 노인의 몸을 건져냈다. 위력적인 손짓이 땅바닥에 틀어박혔다.
키에에에엑!-
놈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사냥감들이 못마땅하다는 듯 주둥이를 벌리고 포효했다. 동시에 바닥을 구르고 그대로 일어난 철구가 놈의 주둥이에 대변종 수류탄을 꽂아 넣는 데 성공했다.
‘이거나 먹으시지.’
쾅!
손잡이를 향해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
최대한 깊게 박아넣었다고 생각했는데, 놈의 입속에서 튀어나온 파편 하나가 안면 보호대를 스치고 지나갔다. 운 좋게도 파편은 피해갔지만, 그다음에는 변종의 몸부림이 그를 위협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부장!”
누군가의 간절한 외침에 응답이라도 하듯 어느새 자리를 잡은 할배가 산탄총을 놈의 배에 정조준한 후 발사했다. 놈이 멈칫하는 사이 철구가 뒤쪽으로 잽싸게 빠져나왔다.
“구경났냐, 이 쳐 죽일 놈들아!”
용 노인의 일갈과 함께 분대장들의 총탄 세례가 이어졌다.
소총 탄환들이 비 오듯 놈의 껍질을 두드렸다. 여기저기서 유탄이 튀었다.
놈은 내부에서 터진 화약의 충격이 가시질 않은 듯 비틀거렸다.
사냥감들의 거센 저항에 아이언피스트가 화난 듯 뛰어올라 한 분대장을 노렸으나, 어느덧 평소의 모습을 되찾은 분대장은 날렵하게 놈의 공격을 피해냈다.
노인과 철구의 활약 덕분이었다.
두 번째 공격도, 세 번째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놈의 공격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승기가 보였다.
최고 난이도 변종과의 전투. 면역자들 하나 없이 오로지 숙련된 전사들로만 구성된 4조의 승리.
이 승리는 분명 흘린 핏값만큼이나 값진 선물을 가져다줄 것이었다.
용 노인과 그의 직속 부장들은 무아지경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축배를 너무 빨리 들었다.
“제기랄! 피해!”
비틀거리던 변종은 어느덧 체력을 회복했는지 이번엔 분대장들이 아닌 뒤쪽의 신입 조원들을 향해 뛰어올랐다.
“……아?”
살점이 뚫리고 피가 튀었다.
놈은 벼룩처럼 뛰어다니며 안쪽 생존자들의 복부에 바람구멍을 하나씩 만들어냈다. 놈이 생존자들 사이에 섞여 들어간 순간, 더 이상의 사격은 불가능했다.
“아, 아아…….”
분대장들은 허탈하게 변종을 바라보고, 조원들은 무기력하게 쓰러지고, 쓰러진 이들이 다시 좀비가 되어 되돌아왔다.
입구를 지키던 이들은 안과 밖, 동시에 양쪽으로 적을 맞았다.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좀비들이 전선의 전투원들을 뜯어먹으며 길을 열었다.
“죽을…… 거야. 모두.”
한 신입 생존자가 절명하기 직전, 검붉은 피로 얼룩진 제 복부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 공포는 전염병처럼 퍼져 비적처럼 희망을 앗아갔다. 비명, 핏물, 살점이 물감처럼 뒤섞여 이지러졌다.
생명들이 꺼져 갔다.
“아아…….”
올리비아는 그저 멍하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변종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나, 죽어?
왜?
이럴 거면 왜, 이곳에 온 거지?
이렇게 무력하게 죽을 거면 그간의 고생은 왜 한 거지?
공포와 방향 잃은 후회가 거미줄처럼 온몸을 옭아맸다.
“이 팔푼이 등신아! 뒤지기 싫으면 움직여!”
올리비아의 앞을 용 노인이 막아섰다. 그의 앞을 가로막은 노인의 복부에 선연한 발톱이 꽂혔다.
캉!
아니, 정확히는 부딪혔다.
남들보다 배는 무겁고 두꺼운 철갑이 내장이 뚫리는 건 막아주었으나 충격은 여전했다. 용 노인이 바닥을 데구루루 구르며 여기저기를 피로 물들였다. 온몸이 저릿저릿하게 울렸다.
노인이 가까스로 균형을 잡으며 울분을 토해냈다.
“시부럴, 몸이 안 움직인다, 이제.”
충격에 전신이 얼얼하다. 전신 타박상에도 모자라 어디 뼈가 한두 군데 부러진 느낌이었다.
쓰러진 노인을 향해 다가가는 변종을 본 올리비아는, 본능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죽을 걸 알면서도, 그래야만 했다.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총탄에 머리를 맞은 변종이 으르렁거리며 그녀를 응시했다.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미안해… 엄마.’
모든 것이 끝났다,
고 생각이 미칠 무렵 생존자들의 귓가를 때리는 희망의 소리.
두두두두-
멀리서부터 들려오던 헬기 소리는 순식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착륙도 전에 문을 연 헬기에서 쏟아진 탄환들은 허공에서 움직이는 와중에도 생존자들과 뒤섞인 좀비들만 쏙쏙 골라내 땅바닥에 처박았다.
옹 상병이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선 요한은 굳은 표정으로 변종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당장에라도 변종을 찾아 찢어발길 표정으로 천천히 내뱉었다.
“하진, 변종을.”
“아아!”
“스위퍼, 노아, 입구 지원.”
“라져.”
“옹, 세리. 원거리 지원.”
“옙.”
원거리 지원을 맡은 두 사람을 제외한 네 명은 헬기가 떨어지기도 전에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제1 스쿼드를 뱉어낸 헬기는 마치 허공에서 곡예라도 하듯 부드럽게 깃발이 세워진 곳으로 착륙했다.
가장 먼저 뛰어내린 요한이 용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뒤이어 세 인영이 번개같이 달려들고 지원사격이 쏟아졌다.
두 명의 사수들이 쏘아 보내는 탄환이 뒤엉켜 싸우는 좀비들을 정확하게 사격하기 시작했다.
스위퍼와 노아가 순식간에 사람들을 수습하며 라인을 뒤로 물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그들을 스쳐 지나가는 총탄을 무시라도 하듯 좀비들을 사냥했다.
아군의 총알이 자신을 위협하지 않을 거라는 흔들림 없는 믿음이었다.
요한은 멀리서부터 단검을 던져 노인에게 접근하는 좀비들을 쓰러트리며 다가간 뒤 용 노인을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아 썩을 놈아.”
“물리셨습니까?”
“염병, 물렸으면 저놈 대가리 붙잡고 수류탄 키스라도 하고 있었겠지.”
“몇 발 먹이셨습니까.”
“한 발.”
한 발.
아이언피스트의 내구도를 닳게 하기에는 부족한 숫자다.
이만한 피해를 보았는데도 고작.
뼈아픈 실책이다.
몇 번이나 수색해 변종이 없음을 확신했지만, 이 사달이 났다.
자신들이 왔다면, 아니 차라리 1조나 2조만 되었어도 조금 더 수월했을 터다.
피해 인원은 거의 절반. 그보다도 중요 전력인 분대장들이 많이 상했다. 전력 손실로만 따지면 근래 최대규모의 피해였다. 웬만해서는 평정을 잃지 않는 자신조차 손이 부르르 떨렸다.
요한이 시선을 돌렸다. 아이언피스트와 힘겨루기를 하는 하진이 보였다.
하진의 얼굴은 당장에라도 터질 듯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마치 레슬링 선수들처럼 두 손을 맞잡고 힘겨루기를 하던 하진이 비명을 지르며 두 손을 놓았다.
곧바로 놈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하진이 가까스로 고개를 숙여 피했다.
부웅!-
오싹한 파공음이 울렸다.
하진이 고개를 숙인 뒤 곧바로 주먹을 내질렀다.
“윽…….”
저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바위를 후려친 느낌이다.
요한이 시선을 돌렸다. 그의 역할은 안정적으로 전선을 형성할 때까지 변종의 발목을 붙잡는 것. 무슨 일이 있어도 제 역할을 완수할 터다.
그가 들고 있던 총의 총구가 화염을 뿜었다.
하진이 변종을 마크하고 나머지 세 사람이 좀비를 썰어 나가는 사이 철구와 남은 분대장들이 생존자들을 수습했다.
“어르신, 차로 입구부터 막아주세요.”
“하지만 입구를 뚫어놓지 않으면 철책이 무너질 텐데.”
“그 전에 잡습니다.”
시간을 벌 목적이라면 좀비들이 철책에 매달리지 않게 입구를 뚫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철책이 무너지기 전에 반드시 변종을 잡는다.
요한의 단호한 말에 용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켜!”
철책을 지탱하고 있던 트럭들이 열린 입구를 틀어막았다. 차량이 움직일 때마다 좀비들이 밟혀 터지고 짓눌렸다.
입구가 막히자 철책을 둘러싼 좀비들이 철책 여기저기에 매달려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벽은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 위태위태하게 흔들렸다.
“노아! 스위퍼!”
요한의 부름에 양쪽에서 두 사람이 뛰어와 변종을 포위했다. 하진도 지친 표정으로 놈에게서 벗어났다.
“고생했어.”
“느리긴.”
네 사람이 내뿜는 살기가 형형했다.
변종은 눈앞에 자신을 가로막은 인간이 불쾌하기라도 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캭캭 소리를 냈다.
변종이 가장 가까이에 있던 스위퍼를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스위퍼는 어린애 주먹이라도 피하듯이 놈의 공격을 흘려보내고 다시금 거리를 벌렸다.
그 사이 노아가 대 변종 그물 총을 발사했다. 변종이 스위퍼에 달려드는 그 경로에 정확히 날아간 그물은 놈의 다리에 뒤엉켰다.
그물이 후두두 끊어지며 놈의 스텝이 순간적으로 꼬였다. 그 사이 정면에 있던 스위퍼가 놈의 머리를 후려쳐 놈의 균형을 무너트렸다.
“하아아!”
하진과 요한이 달려들었다. 하진이 괴성을 지르며 놈의 이마를 찍어누르고 요한이 대변종 수류탄을 놈의 목구멍 깊숙이 꽂아 넣었다.
끼엑! 끼에엑!-
놈은 마치 물가에 떨어진 상어처럼 꿈틀거렸다.
세 사람이 전력으로 놈을 내리눌렀으나 전신이 들썩거릴 정도였다.
‘아직이야.’
박힌 깊이가 얕다. 놈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더, 더 깊숙한 곳에 타격을 입혀야 한다. 요한이 내장 깊숙이 수류탄을 집어넣기 위해 끙끙거리자 멀리서부터 고함이 들려왔다.
“나와!”
노아가 5파운드짜리 슬레지해머를 양손으로 끌고 와 그대로 힘껏 내리쳤다. 허공으로 붕 떴던 해머가 바닥으로 내리찍어지고, 세 사람이 동시에 떨어지며 등을 돌렸다.
쿵! 하는 충격음, 그리고 뒤이은 폭발음. 대변종 수류탄이 못처럼 변종의 몸에 틀어박히고, 동시에 폭발했다.
파편들이 슈트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한 발 더 간다!”
놈은 괴로운 듯 괴성을 질러댔다.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모든 사람은 변종을 상대로 집단 폭행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에 기가 질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