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166화 (166/176)

<166화>

스위퍼는 서둘러 근처 병원으로 이동했다. 그의 주변으로 비명소리와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도망치는 움직임이 휙휙 지나갔다. 현실감 없는 광경이었다.

거의 10분을 한 호흡에 내달린 듯했다. 스위퍼가 호흡을 가지런히 고르며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병원 안에 도착한 순간,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병원 안은 이미 좀비들에게 점령되어 있었다.

내부가 어떤지는 몰라도, 로비부터 복도, 계단 쪽까지 희멀건 좀비들이 가득했다.

이건, 진짜다.

현실감 없던 장면은 금세 현실이 되어 눈앞에 닥쳐왔다.

병원 안쪽으로 진입하자마자 다수의 좀비가 까드득 소리를 내며 몸을 틀었다. 초점 없는 시선이 날아와 처박혔다. 흡사 귀신의 집에서나 나올법한 흉물스러운 모습이었다.

놈들의 입에서는 타액과 살점 섞인 핏물이 뚝뚝 떨어졌고, 손과 온몸 여기저기에서도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

상태가 멀쩡한 좀비도 있었지만, 대부분 어디 한 군데를 물렸는지 검붉은 피가 줄줄 새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좀비는 복강이 열린 채 내장을 덜렁거리며 다가왔다.

“God damn…….”

제법 담력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그였으나, 이 모습은 정말이지 소름 끼치는 장면이었다.

“끄아아악!”

그사이 스위퍼에게 접근한 좀비 한 마리가 입을 쩍 벌리고 누런 이를 들이댔다. 스위퍼가 반사적으로 놈의 아래턱을 가격했다. 잽을 날리듯이. 빠르게 내지르고 손을 거뒀다. 놈의 움직임이 잠시 멈칫한 사이, 스위퍼가 발을 들어 발바닥으로 놈을 힘껏 밀어냈다.

놈들의 정체도 원인도 모른다. 하지만 좀비라는 단어는 익숙했다. 할퀴거나 물리면 그를 감염시켜 좀비로 만드는 바이러스 덩어리.

아니, 애초부터 저런 흉물스러운 놈들이 가까이 접근하게 두는 것 자체가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거 참. 놀랄 여력도 없네.

좀비.

말로는 많이 들었지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상상했던 적은 단연코 한순간도 없었다. 그게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상식이었으니까. 하지만 우선은…….

‘눈앞의 위기를 타개해야 한다고.’

심장이 차갑게 식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몸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고 배도 든든해 체력이 넘쳤다.

어떠한 돌발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철저한 훈련을 받았던 그다. 무기도, 총도 들지 않은 놈들에게 호락호락 당하진 않으리라.

일반인들은 저 괴기한 모습에 얼어붙을지 모르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피. 그리고 살점.

그에겐 휴대폰 배경화면이나 다름없는 장면들이었으니까.

스위퍼가 몸을 돌려 뒤돌려차기로 놈의 관자놀이에 발뒤꿈치를 돌려 꽂았다.

부웅- 하는 파공음과 함께 한쪽 발이 시원하게 날아가 놈의 머리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바닥에 처박힌 좀비는 꿈틀거리며 다시 일어섰다.

징하다, 진짜.

스위퍼가 하룬 소화기를 들어 유리 상자를 깬 후 헬코 브랜드의 작은 소방용 손도끼를 꺼내 들었다.

작은 나이프들은 소지하고 있었으나, 이게 외관상이든 호신용이든 좋을 것 같았다.

그런 다음 허리띠에 손도끼를 단단하게 고정하고 병원 밖으로 나와 왔던 길을 내달렸다.

이미 헌팅녀는 좀비가 되어 있었다.

이로써 예상하던 가설이 확실해졌다. 이건 좀비가 맞다.

확신과 동시에 스위퍼는 가지고 있는 좀비에 대한 상식을 총동원했다.

물리거나 상처를 입으면 감염된다.

지치지 않는다.

머리(뇌)를 깨면 죽는다.

그 외에도 후각에 반응한다든지, 시각이나 청각에만 반응한다든지, 좀비 피와 내장을 뒤집어쓰면 못 알아본다든지 하는 기억들은 접어두었다.

미디어마다 다른 내용은 소용없었다. 통상적으로 통하는 내용만 기억하고 있는 게 좋으리라. 이러나저러나,

‘이거 죽여도 되는 거야, 마는 거야?’

밀어내도 계속해서 접근하는 헌팅녀 좀비를 보며 스위퍼가 머리를 긁적였다.

좀비들의 꼬락서니를 보아서는 금방 정리될 것 같으니, 혹시라도 사태가 종료된 이후 뒤처리가 골치 아파질까 봐 걱정이었다. 유족들이 가족 살해자라고 달려들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스위퍼의 시선이 주변 곳곳에 매달린 방범용 CCTV를 힐긋 향했다.

역시, 불안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달려드는 좀비를 밀어내고 넘어뜨리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달려드는 좀비가 어느새 두 마리가 되고, 도롯가에서부터 두어 마리의 좀비들이 더 접근하고 있었다.

조금씩 초조함이 찾아왔다.

접근하는 좀비들은 그에게 피해를 줄 순 없었으나 언제까지고 밀어내며 버틸 수는 없었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런 다음 본사에 보고해야 한다.

‘그 전에… 우선 식량부터.’

만에 하나라도 이 사태가 며칠 이상 길어질 수도 있으니 식량도 준비해 두어야 했다. 혈혈단신으로 입국해 목표만 달성하고 복귀할 예정이어서 당장 잘 곳도 먹을 곳도 없었다.

스위퍼가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 입구에는 사람들이 뛰어들어갔다가 질색을 하며 달려 나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예상대로, 좀비가 있었다. 그것도 식사가 진행 중인.

“사, 살려주세요…….”

좁디좁은 매장 안에는 세 마리의 좀비와 두 명의 안타까운 좀비 밥이 있었다. 한 명은 완전히 기절했는지 입에 흰 거품을 물고 몸을 부르르 떨었고 한 명은 좀비 두 구에 깔린 채 발버둥 치면서 살을 뜯기고 있었다.

스위퍼가 인상을 찡그리며 편의점 문을 잠갔다.

그를 따라오던 좀비들이 유리문에 다다 달려들어 달라붙었다.

‘세 마리.’

“도와주세요…….”

‘붙잡힌 인간은 두 명.’

희생자들은 상당히 많이 물어뜯겼다. 의심의 여지 없이 감염될 거다. 저들을 포함하면 좀비는 다섯 마리.

“살벌하구만.”

스위퍼의 목소리를 들은 좀비 한 마리가 방향을 틀어 이쪽으로 향했다.

스위퍼가 곧바로 근처에 잡히는 청소도구를 붙잡고 계산대 위로 펄쩍 뛰어올라 CCTV를 후려쳤다. 콰직,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두어 번 쑤셔 그 안의 카메라를 박살 냈다.

끄아아아악!-

어느새 발치까지 다가온 좀비가 신선한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스위퍼가 휘두른 마대가 놈의 명치께에 틀어박히는 게 먼저였다.

휘두르기보다는 찌르기에 가까웠다. 순간적인 힘에 좀비의 균형이 무너지며 그대로 뒤쪽으로 미끄러지듯 넘어졌다.

스위퍼가 그대로 놈의 명치를 마대로 꽉 누르며 계산대 옆에 걸린 마스크의 포장을 뜯어 입에 걸었다.

준비를 끝낸 그가 허리춤에서 손도끼를 꺼내 손아귀에 꽉 쥐었다.

팍!

팍팍!

피가 튀고 살점과 뇌수가 튀었다.

소음을 들은 두 마리가 달려들었으나 스위퍼는 곧바로 매대 한쪽을 무너트린 뒤 반대로 돌아 놈의 뒤통수를 찍어버렸다.

“……!”

물어뜯기고 있던 청년 한 명이 흡,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켰다. 나머지 한 명은 이미 절명해 있었다. 스위퍼는 절명한 시체의 머리를 깨고 나서야 마스크를 살짝 내렸다. 그의 손도끼가 자신을 향하자 좀비에 물린 청년이 흠칫 몸을 떨었다.

“형씨, 거기 딱 있어. 움직이면 다쳐.”

청년이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파요… 살려주세요…….”

“아프면 병원을 가야지. 여기 건물 안쪽에도 좀비들 많아?”

“네. 네네.”

빠져나가게 해주렸더니, 그건 어렵겠네. 스위퍼가 안타까움에 숨을 내쉬더니 냉장고에서 이슬 톡톡 하나를 꺼내 그에게 던졌다.

“……?”

“곧 갈 건데 가는 길에 한잔해. 저승길에서 생각날 거야.”

“혀, 형 제발… 살려주세요.”

“거참, 나한테 그렇게 말해도 어쩔 수 없는걸. 미안해. 형씨. 아아, 움직이지 말고. 머리 깨지고 싶어?”

흑, 흑흑-

선명한 울음소리가 귀에 콕콕 틀어박혔다. 거참, 사내새끼가 울기는.

안타깝긴 하지만 자업자득이다.

어떤 영화처럼 좀비가 되었다고 움직임이 미친 듯이 빨라지는 것도, 완력이 세진 것도 아닌데 이걸 처리 못 해서 피식자가 되고 있으면 안 되지.

“1분이라도 오래 살고 싶으면 움직이지 말라고, 형씨.”

스위퍼는 청년을 향해 손도끼를 위협하듯 가리킨 뒤 100L짜리 종량제 봉투를 꺼내 식량들을 쓸어 담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 그리고 통조림이나 가볍고 열량이 큰 것들을 위주로 담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위퍼는 일단 지금 당장 먹고 싶은 것, 취향에 맞는 것 위주로 담았다.

사태가 길어지더라도 식량이야 또 구하면 된다. 뭐, 훔쳐도 되고. 이미 식량을 확보한 사람에게 뺏… 상냥하게 받아오면 된다.

묵직하게 음식과 식수를 담은 스위퍼의 주변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스위퍼가 번개같이 도끼를 뽑아 후려쳤다. 도끼날이 관자놀이에 박혀 묵직한 충격을 주며 벽에 부딪혔다. 좀비가 된 청년이었다.

“한 7분쯤인가.”

좀비로 변하는 시간. 7분. 상황마다 다를 순 있겠지만 일단 기억해 두었다.

스위퍼는 봉투 두 개를 잘 밀봉한 뒤 포장 끈으로 양쪽 날개뼈 쪽에 고정한 뒤 손도끼를 꺼내 전투준비를 끝냈다.

매장 유리문에는 몇 마리의 좀비만 붙어서 문에 묻은 피를 할짝거리고 있었다.

으, 더러워.

스위퍼가 인상을 찡그렸다.

* * *

스위퍼는 좀비들을 따돌린 뒤 근처 모텔로 들어왔다. 평일 오후인 만큼 손님들이 많은 시간은 아니었다. 모텔 내부는 텅텅 비어 있었다.

그가 카운터를 뒤적거려 손에 잡히는 아무 키나 꺼내 객실로 들어갔다.

객실 안에 다른 불청객이 없는지 쓱 둘러본 후 호출기를 들었다.

코드 네임 ‘블라인드데이트’, 별명 소개팅 어플 관리자. 블데에게 상황 보고를 해야 했다. 통화 버튼을 누르니 자동으로 암호 같은 번호가 입력되고 곧바로 수신음이 들렸다.

-어, 스위퍼!

그답지 않게 약간은 상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형씨, 나야. 잘 지냈어?”

-넌, 지금 이 상황에…….

이 상황?

스위퍼가 곧바로 미간을 좁혔다. 비단 이곳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던가.

“여기 좀 이상한데. 뭐, 들으면 재미없는 농담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형씨도 알다시피 내가 상당히 유머러스한 사람이잖아?”

-알아. 지금 난리 났어. 이쪽도.

“전화국에도 좀비가 나타났다고?”

-아니, 그건 아닌데. 본사 쪽에 좀비가 나타난 모양이야. 아까부터 연락이 안 돼. 다른 전화국들도 난리야. 유럽, 북중미, 오세아니아, 동남아시아 전부다!

“Oh, my goodness… 말도 안 돼!”

스위퍼가 인상을 찡그렸다. 본사의 보안은 웬만한 군사시설에 비견된다. 자신 못지않은 전투 요원이 즐비한 곳이다. 그런데 이딴 하등한 좀비들에게 점령당했다고?

“다른 지부는?”

-대부분 수신 대기 중인 곳이 태반이야. 아마 각 요원이랑 통신하느라 바쁘겠지. 한국 상황은 어때?

“장난이 아니야 형씨. 완전 아포칼립스라고!”

스위퍼가 창문 아래로 쏟아지는 인파를 보며 신난 듯이 대답했다. 처음에는 도망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으나, 어느새 좀비가 되어 비척거리는 좀비들이 가득했다.

조금만 늦게 대피했어도 저 흐름에 휩싸일 뻔했다.

-왜, 왜?

“존X 많아. 좀비가.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서 전화국으로 가고 싶은데, 보트 보내줄 수 있어?”

-지금은 힘들어. 일단 본사 연락 오면 탈출로 만들어 줄 테니까, 보트 콜(Boat call) 잘 갖고 있어. 위치 찍어줄게. 송수신 신호 정상이지?

스위퍼가 원 모양 수신기를 꺼냈다. GPS 기능이 탑재된 신호 송수신기였다. 원 모양 위로 튀어나온 버튼을 누르자 신호가 잡혔다는 시그널이 흘러나왔다.

“정상이네.”

-곧 연락할게. 조금만 버텨.

“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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