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171화 (171/176)

<171화>

온전한 암흑이었다.

단지 불빛이 많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체육관 실내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창가로 새어 들어오는 몇 줄기 빛이 있었으나, 여기저기에 좌절하고 무너진 사람들이 가득했다. 체육관 전체에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기동타격대의 실패. 그리고 첫 자살자의 등장은 한 줄기 희망을 앗아갔다.

책임자였던 성 중사와 김 하사가 죽고 돌아온 것은 병사들뿐이었다. 그나마 겁에 질려 있던 병장이 선두로 도망친 탓에 절반이라도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대형 할인점 앞에서 좀비들의 기습을 당했습니다… 좀비에게 붙잡힌 박 이병을 구하려고 총을 쐈는데, 그게 시작이었어요. 주변에서 수십, 수백 마리의 좀비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도망쳐도, 도망쳐도 끝이 없었어요…….”

마트 안으로 진입조차 못 했다는 상황 보고를 받은 수뇌부는 병사들을 탓할 수 없었다. 살아 돌아온 사람들에게 죄를 묻는 것은, 앞으로 내보낼 사람들은 그저 죽으란 뜻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수뇌부마저 침묵하자 흔들리던 체육관 내에는 점차 폭동에 가까운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옅은 갈등에서 시작했던 파문은 이내 정치가 되고 시비가 되어 마침내 폭력에까지 이르렀다.

군인들은 폭력적으로 변해 가는 생존자들을 제어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군인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초코바 하나를 빼앗기 위해 사람을 때리는 일이 허다했다.

스위퍼는 모든 상황을 한발 떨어져서 지켜봤다.

첫날 그 소란 이후, 스위퍼에게 접근하는 불량배들은 없었으나, 저녁만 되면 자신의 주변을 서성거리는 이들이 늘어났다.

떠날 때가 됐다, 고 생각했다.

용쓰는 군인들은 안타까웠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어둠이 자욱하게 내려앉은 밤. 스위퍼는 누운 그대로 눈을 떴다. 그러고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가 양쪽 재킷 주머니에 고이 보관된 휴대 전화기와 보트 콜을 가만히 바라봤다. 신호는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본사 또한 이 난리를 견디지 못한 게 분명했다. 이제는 구조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살아남아야 할 때라고 판단이 들었다.

몸을 일으키려던 찰나, 무언가가 자신을 꼭 붙잡는 촉감이 들었다.

보라였다. 꼬맹이가 눈을 감은 채 자신의 소맷자락을 꼭 잡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는 듯.

‘이래서 어린애는 싫다니까.’

미세한 떨림이 잠들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기실, 떠난다고 해도 아이가 자신을 붙잡을 힘은 없을 테니까.

‘…에라 모르겠다.’

고사리 같은 손을 지켜보던 스위퍼가 다시 벌러덩 드러누웠다. 어떻게든 되겠지.

다시 눈을 떴을 때, 보라는 곁에 없었다. 스위퍼가 눈을 비비며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멀리서부터 물병을 들고 오는 녀석이 보였다.

“아침부터 어딜 그렇게 갔다 와?”

“배급받으러요. 요새는 늦게 가면 물도 구하기 힘들어요.”

“그깟 거, 안 받아와도 돼.”

스위퍼가 덮었던 재킷을 입으며 대답했다. 보라가 눈을 끔뻑이며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물었다.

“네?”

“지금부터 구하러 갈 거니까.”

“그게 무슨….”

보라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스위퍼는 그대로 경계병들이 서 있는 2층 게이트로 올라갔다. 게이트 아래에는 좀비들이 사, 오십 마리 정도가 매달리듯 그들을 향해 손을 휘저어 댔고 병사들은 질린 얼굴로 그것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스위퍼가 이젠 얼굴이 익숙한 경계병을 향해 말을 걸었다.

“군인 형씨.”

“예?”

“혹시 밧줄 같은 거 있어?”

“아, 예. 총기탈취방지 끈 예비 끈 뭉치가 있을 겁니다.”

“그거랑 내 손도끼, 잠시 쓸 수 있을까?”

스위퍼의 말에 두 병사가 잠시 서로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곤란합니다.”

“아직도 날 못 믿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여기서만 쓸 거야. 잠깐이면 돼.”

단호한 스위퍼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상병이 곧 일병에게 턱짓했다. 일병이 손도끼와 탈취 방지 끈을 꺼내왔다. 스위퍼가 그것을 손도끼 손잡이 부분의 작은 구멍에 끼워 묶었다.

“위험하니까 잠시 떨어져 있어.”

“예? 대체 무엇을 하시려고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한 스위퍼가 마치 카우보이처럼 도끼가 매달린 끈을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끈 끄트머리에 매달린 손도끼가 위협적인 파공음을 냈다.

곧이어 스위퍼의 손을 떠난 손도끼가 쏜살같이 날아가 아래쪽 좀비의 머리를 깨부쉈다.

“흐읍!”

스위퍼가 힘껏 줄을 당기자 손도끼가 검붉은 피를 흩뿌리며 딸려왔다.

“와, 와아…….”

절로 입이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그는 그대로 몇 번을 반복하면서 좀비들을 박살 내 갔다. 소음을 듣고 몰려든 좀비들이 있었으나 그들 또한 시체의 산을 쌓게 될 뿐이었다.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게 될 무렵, 철제 사다리 아래쪽에는 꿈틀대는 좀비 시체만이 남아있었다.

스위퍼는 도끼의 끈을 풀은 뒤 허리에 칭칭 감아 묶고 손도끼를 그 위에 고정했다.

“누가 찾으면 나 잠깐, 나갔다 온다고 말해.”

“중위님! 어딜 가시게요?”

“쇼핑.”

스위퍼의 대답은 짤막했다.

* * *

무덤덤하게 출발했던 스위퍼는 약 세 시간 후 경계병들의 경악을 일으키며 되돌아왔다. 바짓단과 소매에 피를 잔뜩 묻힌 채 마스크를 쓴 채로.

그의 등에는 등짐처럼 등에 묶인 세 개의 상자가 업히듯 얹혀 있었다. 스위퍼가 시쳇더미 위에 올라타 등짐을 풀었다.

“두 상자는 라면이고, 하나는 물이야. 라면 상자 위에 부탄가스 있어. 창고에 버너는 있지?”

“이게 다…….”

“괘, 괜찮으십니까?”

스위퍼가 자신의 발밑에서 산처럼 쌓인 시체 중 숨이 붙어있는 좀비의 두개골을 부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해, 안 받을 거야?”

그의 대답에 멍청히 바라보던 병사들이 허겁지겁 내려왔다. 스위퍼는 눈에 힘을 주고 다가오는 좀비들이나 움직이는 시체가 없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그러고선 다시금 몸을 움직였다.

오백 명이 먹으려면 두 상자로는 턱도 없었으니까.

그날 밤, 오랜만에 체육관이 음식 냄새로 가득했다. 사람들의 안색에는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개고생한 보람은 있네. 스위퍼가 중얼거렸다.

“대체 어떻게 다녀오셨습니까?”

스위퍼의 앞에서 라면 봉지에 라면을 담아 먹는 대대장의 질문에 스위퍼는 담담하게 설명했다.

“고생 좀 했지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무려 세 번을 왕복했다. 그 와중에 죽인 좀비가 세 자릿수가 넘었다. 갈 때는 좀비들을 피해갈 수 있었지만, 돌아올 때는 전투가 불가피했다. 등 뒤를 보호할 수 없는 전투. 좀비보다 빠르게 움직여 앞의 모든 적을 박살 내고 뒤쪽에서 있을 수 있는 좀비의 기습을 사전에 차단해야 했다.

흡사 신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에 스위퍼가 시선을 피했다. 저런 부담스러운 시선은 사양이었다.

“왜 혼자 이런 고생을 했어요. 다음부터는 저희 군인들도 함께하겠습니다.”

“아니, 오히려 혼자 다니는 게 더 안전합니다.”

“…못 미더워하는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안 돼요. 너무 위험합니다.”

“그럼, 체력 좋고 날쌘 에이스 한 명만 붙여주세요. 단, 억지로 말고 자원으로요.”

대대장의 진심 어린 걱정에 스위퍼가 못 이긴 척 고개를 끄덕였다. 괜한 발목을 잡을 수도 있지만, 역시 혼자서는 짐을 나르는 것과 좀비와 싸우는 것을 감당하기엔 벅찬 것은 사실이었으니.

“그리하지요.”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대대장을 보며 스위퍼가 피식 웃었다. 그러고선 괜히 옆에 앉은 보라를 툭 건드렸다.

“많이 먹어라. 꼬마야.”

“네. 아저씨. 오늘도 감사합니다.”

꼬박꼬박 감사 인사를 하는 녀석이 귀엽다는 듯 머리를 한바탕 헤집어 놓고선 라면 봉지에 담긴 국물까지 쪽쪽 빨아 먹은 뒤 일어섰다.

“어디 가세요?”

“뭘 물어봐. 당연히 이거지.”

스위퍼가 검지 중지를 동시에 입에 갖다 대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선 앞을 보려는 찰나,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병사와 어깨를 부딪쳤다.

“어이, 형씨. 조심하라고.”

뭐가 저렇게 급해서 뛰어다니는 거야. 채신머리없기는.

“대대장님!”

뒤쪽에서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스위퍼가 힐긋 시선을 돌렸다.

“김서령 상병. 무슨 일이야? 소란스럽게 굴지 마.”

“그, 그게. 좀비들이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좀비들이 뛰어다닙니다. 게다가,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어요!”

김서령 상병의 말에 대대장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선 헐레벌떡 뛰어갔다. 스위퍼도 그 뒤를 따라갔다.

“이게, 뭐야…….”

눈앞의 광경을 목도한 사람들이 한탄 섞인 숨을 내쉬었다. 눈앞에 좀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마치 가뭄을 일으키는 메뚜기 떼처럼.

어슬렁거리며 걷던 그 좀비들이 아니었다, 저놈들은 거의 뜀박질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정문에 세워둔 바리케이드도 의미 없었다. 놈들은 동료들을 짓밟으며 넘어왔다. 바리케이드를 넘어 체육관으로 다가오는 좀비 떼의 행진을 본 사람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수천? 아니 많으면 만 마리까지 될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좀비들이 하이에나처럼 모여드는 모습은 정말이지 괴이쩍고 섬뜩했다.

“저놈들, 이곳을 목표로 달려오는 것 맞죠?”

“……그런 것 같은데.”

따라 왔던 한 중년 사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밑으로 내려갔다.

“지금 당장 빠져나가야 해.”

대대장이 넋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스위퍼 또한 직감했다. 저런 놈들이 이곳을 습격했다간 자신 또한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다.

한국에 온 후 처음으로 목숨에 대한 위협을 느꼈다. 저 많은 좀비가 이곳을 둘러싸면 밖으로 빠져나갈 길이 없다. 그렇게 되면 꼼짝없이 둘러싸여 아사하게 될 거다.

둘러싸이기 전에 빠져나가야 한다. 빠져나가려면 지금이다.

스위퍼가 내려가자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후문에서 아웅다웅하고 있었다. 스위퍼가 곧바로 보라를 들춰 어깨에 멨다.

“꺄악? 이게 무슨…….”

“설명은 나중에 할게, 꼬마야. 일단 튀자.”

스위퍼가 강당 후문 쪽으로 걸어갔다. 이미 빠져나가려는 사람들과 그들의 앞을 막고 있는 군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빨리 내보내 줘!”

“잠시만 기다리십쇼! 대대장님 명령이 아직….”

“밖에 좀비들이 오고 있어! 여기가 둘러싸이기 전에 빠져나가야 한다고!”

“밖은 위험합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여기가 더 위험해!”

“총기와 탄약 반출 중입니다! 여러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지금 그대로 나가시면 위험합니다! 부대원들이 전투준비가 끝나면 곧바로 여러분들이 무사히 대피할 수 있게 돕겠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대장의 결정은 빨랐고 행동은 기민했다. 어느새 군인들이 총기 탄약 분배를 끝내고 양쪽으로 정렬을 시작했다.

“물러나세요! 문밖에 좀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대대장이 권총을 찬 채 선두에 섰다. 그리고 그때, 부상 때문에 누워 있던 한 청년이 일어나 터벅터벅 걸었다. 그는 몇 걸음 걷더니 이내 달려들 듯이 인파를 향해왔다. 그의 친구가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살짝 돌아봤다.

“우진아 뭐야, 일단 넌 다쳤으니까 앉아 있- 꺄아악!”

피 분수가 튀었다. 급작스럽게 등장한 좀비는 닥치는 대로 생존자들의 후방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물어뜯긴 사람은 순식간에 좀비가 됐다. 감염이 빨랐다. 물린 후 거의 몇 분, 아니 몇 초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비명이 우레처럼 쏟아졌다.

“악!!”

“뒤, 뒤쪽에 좀비가!”

“문! 문 열어!”

뒤쪽이 소란스러워지자 마음 급해진 생존자들이 군인들을 밀치고 굳게 닫힌 문을 열기 시작했다.

덜컹-

문이 열리고 탁 트인 밤거리가 드러났다. 사내가 환하게 웃으며 한 발 내디뎠다.

“끄아아악!”

그 순간, 바로 문 옆에 있던 좀비가 사내의 얼굴을 물어뜯었다.

탕!

귓가를 얼얼하게 때리는 소리.

대대장이 당황해 소리쳤다.

“누, 누가 격발을…….”

한 이등병이 자신에게 다가온 좀비를 향해 총을 격발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은 좀비들이 멀리서부터 개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당황한 대대장이 병사들을 지휘하려 소리친 순간, 또다시 등장한 좀비 한 마리가 그의 목을 물어뜯었다.

“대장님!!”

“꺄악! 아아악!”

고함과 비명이 어지럽게 뒤섞인다.

그야말로, 아비규환.

“제기랄.”

상황을 지켜보던 스위퍼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선 그대로 방향을 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