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 이상하지만, (11/20)

11. 이상하지만,

찰박찰박 물소리가 났다. 체온과 엇비슷한 물이 어깨를 적시고 있다. 단단한 손바닥으로 맨살을 쓸어 주는 느낌에 익숙한 안정감이 들었다. 진우가 매번 이렇게 씻겨 줬었는데…… 어렴풋이 정신이 든 정서원이 서진우에게로 고개를 기댄다. 물기가 셔츠에 그대로 스며들었지만 아직 몽롱한 기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정서원은 잠투정이나 부리고 있다.

“진우야…….”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웅얼거리는 그를 서진우가 웃으며 지켜본다. 

“응, 왜 불러.”

“……미안…….”

“뭐가 미안해?”

서진우가 묘한 표정으로 웃더니 아직 응석을 부리는 고개를 붙잡고 입을 맞춘다. 한껏 고개를 젖힌 정서원이 우물거리는 사이, 입술이 맞닿고 혀가 침범해 왔다. 서진우는 잠에 취해 제대로 응하지도 못하는 그를 붙잡고 마음껏 욕심을 채웠다. 혀가 섞이며 질척거리는 소리가 흐르고 벌어진 입에서 앓는 소리가 샜다. 턱을 붙잡혀 억지로 입술을 내어 주던 정서원은 서서히 잠이 깨는 걸 느꼈다. 그는 고개를 틀어 더 적극적으로 입을 맞추며 젖은 손으로 서진우를 끌어안았다. 꽤 절절한 입맞춤이었으나 서진우는 오래 받아 주지 않았다.

입술을 떼어 낸 서진우가 못마땅한 얼굴을 쓰다듬으며 웃는다.

“일어나, 몸 닦아 줄게.”

“으응…….”

서진우가 손과 허리를 잡아 그를 부축해 준다. 싱숭생숭한 맘으로 그 친절을 받아들인 정서원은 타월이 깔린 바닥에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상처가 완전히 아문 발은 이제 체중을 실어도 아프지 않았다.

서진우를 보지 못하고 발끝만 보고 있자 배스타월이 머리부터 씌워진다. 정서원은 머리를 말려 주고 몸에 남은 물기를 꼼꼼히 닦아 주는 손길에 얌전히 몸을 맡겼다. 잠이 어느 정도 깨고 나니 페로몬에 취해 추태를 부렸던 것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정말이지 왜 진우 앞에서는 매번 못난 꼴만 보이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는 소변도 제대로 못 가려서 진우를 피곤하게 하고, 식사와 목욕은 일일이 진우의 손을 빌려야 하는 데다, 말도 잘 듣지 못해 체벌까지 하게 만드는 수고를 들이게 하고……. 그 결과 발에 상처까지 나는 바람에 진우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스스로 걷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었다. 하나같이 진우가 질릴 만한 일이다. 이번에는 또, 바보같이 페로몬에 취해서는……. 눈물이 핑글 돌았다.

‘내가 너무 밝혀서 질렸겠지? 이번엔 진짜 질렸을 거야.’

정서원이 초조하게 손끝을 매만진다. 서진우는 물기가 말라 보송해진 몸을 끌어안고는 머리 가마에 키스했다. 등을 토닥이는 손이 아주 다정하여 정서원은 타월 한 장에 가로막힌 게 퍽 아쉬워졌다. 달콤함에 취해 있는 정서원에게 문득 정신이 바싹 드는 물음이 떨어진다.

“형, 이상현이랑 있는 게 좋아?”

나지막한 목소리는 언뜻 다정했지만 이제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화들짝 놀란 정서원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아, 아니……. 나는, 진우랑 있는 게, 더…… 좋아.”

“내가 한눈팔 때마다 형은 늘 그 새끼랑 있으니까, 형이 날 좋아하는 건지, 그 새끼를 좋아하는 건지. 내가 참 헷갈려.”

“아니야, 진우야. 난, 나는…….”

아까까지만 해도 품에 안겨 행복해하던 정서원이 조마조마해하며 말을 더듬는다. 혹 내쳐질까 소심한 손이 옷자락 끝을 그러잡았다. 서진우는 아직 물기가 남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면서도 정서원의 초조함을 굳이 달래 주지 않았다. 몇 주간 그 없이 일상생활도 못 하게 만들어 놓고는 정작 가장 필요할 때는 도움조차 주지 않는 매정함에 정서원만 속이 벌렁거렸다. 마주치지 못하는 시선이 대답을 고민하느라 바닥을 구른다. 나는…… 그러니까, 이상현 씨랑은, 그게…… 조각난 말이 겨우 완성된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난, 진우가, 진우가 좋아.”

“그래?”

“응, 응.”

“형이 그렇다면 됐어.”

서진우는 더 추궁하지 않고 옷을 입혀 주기 시작했다. 그가 단추를 잠그고 속옷과 바지를 입혀 주는 동안 정서원은 계속해서 눈치를 살폈다. 혹시 진우가 아까보다 표정이 안 좋지는 않은지, 말이 없는 이유가 혹시 자기가 대답을 늦게 내놓아서 그런 건지, 그의 태도 전반이 방금과 비교해서 차갑거나 싸늘하진 않은지. 이윽고 정서원은 서진우가 더 만족할 만한 대답을 생각해 내지 못한 스스로를 탓했다. 말재주도 없고 제대로 비위도 못 맞추는 스스로가 한심하기만 하다. 푹 내리깐 눈에 구슬픈 물기가 맺힌다. 서진우가 한숨을 쉬며 눈가를 닦아 주자 정서원은 더 속상해져 울음을 터뜨릴 뻔한 걸 가까스로 참아 냈다.

“뚝. 그만 울어. 아까 많이 울었잖아. 응?”

“응응…… 미안. 자꾸, 울어서…….”

“그만 사과하고.”

“미…… 으, 응. 안 그럴게.”

닦아 내는 족족 눈물을 흘리는 정서원을 서진우가 살뜰히 챙긴다. 정서원은 그의 품에서 미적거리며 진정하려 노력했으나 이미 페로몬으로 한바탕 추태를 부린 탓인지 서진우는 흐릿한 체취조차 내주지 않았다. 눈치만 볼 줄 알지 정작 눈치는 없는 정서원은 서진우의 뜻조차 모른 채 정말 제게 질린 줄만 알고 한참을 더 울었다. 품에 꼭 매달려서 눈물만 떨어뜨리는 모습은 꽤 안쓰러웠지만, 서진우는 안타까워하면서도 그가 원하는 말은 해 주지 않았다. 

“우리 형은 언제 눈물이 마르려나. 다 컸는데, 그치?”

“흑, 으응…….”

“점점 애 같아지니까 내가 맘이 안 놓여, 형.”

“신경 쓰이게 해서, 미…… 잘못했어…….”

“혼내는 거 아니야. 그만, 응? 뚝 해.”

서진우는 정말 어린애 다루듯이 정서원의 울음을 달랬다. 예전 같은 애인을 향한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지라도 어쨌든 그런 다정함이나마 간절했으므로 정서원은 애써 안정을 찾았다.

서진우가 겨우 눈물이 그친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선다. 한결 의존증이 심해진 정서원이 서진우에게 꼭 매달린 채 걸음을 옮긴다. 거실에는 이상현이 서 있었다. 순간 정서원은 페로몬에 취해 빨고 싶다고 서럽게 빌던 것이 생각나 고개를 푹 수그렸다. 히트싸이클 때의 기억은 희미하긴 하지만, 그때도 매번 이런 식이었나 싶어 뺨이 화끈거렸다. 피하고 싶은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상현은 가까이 다가와서는 숙인 고개를 잡아 올렸다. 발긋한 뺨과 눈가가 그대로 드러났다. 이상현이 안타까운 듯 탄식하더니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멋대로 넘겨 준다.

“서원 씨, 진우가 또 울렸어요?”

“아, 아니에요…….”

“서진우랑 있으면 맨날 우네. 저런 놈이랑 정말 같이 있어도 되겠어요?”

“관심 꺼.”

서진우는 손을 사납게 쳐내고는 정서원을 품으로 끌어당겼다. 어린 티를 감추지 못한 견제에 이상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진우야, 서원 씨 이제 애도 뱄는데 그만 괴롭혀야지. 네 애 아니라고 막 대하는 거야?”

“헛소리 작작해. 내 애 맞으니까.”

“몇 년간 박아 놓고도 임신도 못 시켰는데 지금이라고 다르겠어?”

빈정거리는 솜씨는 언제 어느 때나 일품이다. 또 둘이 싸울까 두려워진 정서원이 결국 흐리멍덩한 말솜씨로 끼어들었다.

“하, 하지 마세요.”

“하지 말까요?”

“네…….”

그래 봤자 눈치를 보는 수준에 그치는 만류라 이상현은 웃기만 할 뿐 진지하게 듣는 것 같지 않았다. 우물쭈물 입을 다문 정서원을 서진우가 꼭 끌어안는다. 품에 갇힌 정서원이 보지 못하는 얼굴은 감추지 못한 독점욕과 서늘한 분노로 싸늘히 식어 있었다. 그 얼굴을 이끌어 낸 이상현만 즐겁게 웃고 있다.

그는 씨를 그렇게 뿌려 놓고도 임신 한 번 못 시킨 고자 취급을 하고 있었지만, 애초에 서진우는 정서원의 외도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퍽 다정한 남자 친구였다. 싫다는 것은 하지 않았고, 콘돔도 꼬박꼬박 사용했으며, 히트싸이클 때는 주기를 체크해 손수 약까지 챙겨 주는 그런 남자 친구 말이다. 노팅은 아프다며 싫다는 정서원을 위해 자궁을 찾아 씨를 뿌리는 행위조차 하지 않았으니 임신을 못 시킨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정서원이 갑자기, 그것도 뜬금없는 시기에 임신을 한 것은 페로몬 덕이 컸다. 서진우는 오늘 의사와 상담을 하고 온 바를 모조리 기억하고 있었지만 구구절절 읊어 주진 않았다. 

다만 자신이 없었던 때, 이상현이 콘돔도 없이 정서원의 자궁구까지 처박고 씨를 뿌렸을 걸 생각하며 질투에 시달리고 있을 뿐이었다.

“지, 진우야…….”

“왜, 형.”

“……무서워서…….”

셀 수도 없는 밤을 일일이 상상해 가며 새삼 질투에 시달리던 그가 가까스로 분노를 가라앉힌다. 그러자 은근하게 흐르던 기세도 가라앉았다. “미안해, 무서웠어?” 정서원은 아무 대가 없이 다정하게 구는 서진우가 다소 낯설어서 우물거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겨우 형성된 따스한 분위기를 이상현이 흐려 놓는다.

“서원 씨는 그 애가 정말 진우 애라고 생각해요?”

“네? 네, 네에…….”

“얘한테 쓸데없는 거 묻지 마.”

이상현은 정서원을 싸고도는 서진우를 보며 자상하게 웃었다. 정말 어린놈 보듯 말이다.

“오늘 병원 갔다 왔다며, 진우야. 의사한테 들었을 거 아냐, 애 아빠한테 더 안정을 느낀다는 거. 공교롭게도 우리 서원 씨가 그랬거든. 서럽게 울다가도 내 품에 안겨서는 얼마나 얌전해지는지.”

“씨발, 개수작 부리지 마.”

그래 봤자 이상현은 질투 많은 서진우가 쉽게 믿지 못한다는 걸 안다.

“서원 씨, 내가 거짓말하고 있어요? 저 새끼 무서워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요. 당신도 애 아빠 케어 필요하잖아요.”

“저, 저는, 그게…….”

“형, 대답할 필요 없어. 저 새끼가 씨발 공수표 날리는 거잖아. 어?”

“모르겠어. 나, 나…… 울다가, 잠들어서…….”

이럴 땐 정말 그래도 아니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요령도 없고 거짓말도 못하는 정서원은 곧이곧대로 대답하고 앉았다. 서진우는 속에서 울컥하는 걸 참느라 무던히 애를 썼다. 이미 한 번 정서원에게 본의 아닌 페로몬 샤워를 시켰기 때문이었고, 또 임신 초기에는 유산되기 쉽다는 사실을 억지로 상기시킨 덕이었다. 무섭게 혼을 내고 닦아세웠던 동안 유산되지 않은 게 기적이었다. 

정서원은 말이 없는 서진우의 눈치를 살피며 품에서 몸을 옹송그렸다. 고개를 서진우의 가슴에다 기댄 채 어깨를 웅크린 뒷모습이 퍽 안타까워 이상현은 짧게 탄식했다.

“아, 우리 서원 씨. 맹랑하게 대드는 게 참 귀여웠는데. 누구 때문에 이렇게 기가 죽어서 어떡해요. 응?”

“닥쳐.”

“진우야, 서원 씨가 왜 멀쩡한 애인을 두고 바람을 피웠겠어. 네가 재미없어서 그런 거잖아. 그럼 놓아 줄 줄도 알아야지.”

“씨발, 닥치라고 했지.”

정말 다시 불이 붙으려던 때, 정서원이 크게 딸꾹질을 하는 소리가 났다. 그는 딸꾹질을 해 놓고도 본인이 놀라서는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글썽거리는 두 눈이 이상현과 서진우를 오간다. 곤두선 신경이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서진우는 잔불만 남은 맘을 진정시키며 정서원을 끌어안고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이상현의 개수작에 넘어가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가 모르는 때 정서원과 가장 가까이 붙어먹었던 새끼의 말이라 매번 무던하게 넘길 수가 없었다.

“적당히 해. 겁먹잖아. 어?”

“네가 얼마나 무섭게 굴었으면 그래? 서원 씨, 울지 마요. 응?”

“아, 안, 울어요…….”

누가 봐도 우는 목소리였기에 설득력은 전혀 없었다. 서진우는 울고 있는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닦아 주었다. 괜찮은데…… 정서원이 우물쭈물 눈치를 살피면서도 기쁜 듯이 얼굴을 기댄다. 그러는 사이 따뜻한 물을 가져온 이상현이 그에게 컵을 내민다. 종일 위아래로 물이란 물은 다 쏟았던 정서원은 유리컵을 받아 들고 열심히 마셨다. 가득 찼던 물이 순식간에 바닥이 났다. 여기서 더 울렸다가는 녹아서 사라지기라도 할 것 같다. 이상현이 축축한 눈가를 손끝으로 문질러 준다.

“그만 울어요. 하루 종일 울었잖아요.”

“그건, 상현 씨 때문에…….”

“미안해요. 내가 서진우 골린다고 좀 심하게 굴었어.”

“진우한테 그러지, 마, 마세요…….”

“안 그럴게요. 내가 서원 씨 말 잘 들을 테니까, 응? 울지 말고.”

어차피 서로가 애 아빠라고 생각하는 지간이었다. 그들은 제 새끼를 밴 정서원에게 퍽 너그러웠으며 그건 곧 상대를 봐주는 흐름으로 빠졌다. 저 납작한 배에 들어앉은 애새끼는 결국 자기가 뿌린 씨인데, 낳기만 하면 종결될 치정 싸움에 굳이 열을 올리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누그러진 분위기와 앞다투어 흘러드는 페로몬이 흐느끼던 정서원에게 안정을 찾아다 준다. 눈물이 잦아들자 마른 딸꾹질만 간간이 올랐다. 눈물이 그칠 때까지 토닥이며 달래 주던 서진우는 문득 애틋해졌다. 감정 기복이 심해진 게 단순히 갇힌 것 때문인 줄 알았더니 임신 때문인 건가 싶었다. 지금도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배가 불러 오고 애를 낳고 나면 또 얼마나 힘들어할지. 그러면서도, 그 힘든 와중에 굳이, 이상현과 함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속이 뒤틀린다. 

“형. 저 새끼, 이상현이, 옆에 있는 게 도움 되는 것 같아?”

쉼표마다 인내가 들끓는 질문이었다. 정서원은 무조건 “아니,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가, 여전히 무심한 얼굴을 보고 쩔쩔매며 입을 다물었다. 사실은 그로서도 알 수가 없었다. 원래 이상현의 체취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건 그냥 서진우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얼굴도, 체격도, 체취도, 모두 비슷하여 외로울 때마다 몰래몰래 취해 왔었을 뿐이다. 그래 봤자 안정감을 느끼는 이유라 확신할 수 있는 답은 못 되었다. 망설이는 정서원을 바라보던 서진우가 결국 한숨을 내쉰다.

“형은 순진한 건지 영악한 건지 모르겠네. 결국 내가 져 줄 거 알고 그러는 거 아니야, 형.”

“아니, 나…….”

서진우가 더듬거리는 입술을 손끝으로 훑다가 불쑥 턱을 움켜잡는다. 상담을 받는 그 잠깐 사이 사라진 정서원 때문에 내려앉았던 심장은 아직도 그대로였다. 상담을 끝마치고 나왔을 때 텅 빈 복도를 본 순간 그는 이상현을 떠올릴 틈도 없었다. 정서원이 정말 제 발로 자신에게서 도망친 것인지 그 가능성만을 떠올렸다. 후회하고 분노하고, 그러다 어떤 형태로든 좋으니 곁에만 붙잡고 싶다는 욕심이 마지막 분출구처럼 치솟았다. 정서원은 늘 제발 버리지 말라며 애원했지만 서진우는 그 필사적인 구애 아래 숨겨진 우유부단한 성정을 잘 알았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심하게 몰아세웠거나 애정의 여지조차 주지 않았다면 정서원은 정말로 그에게서 달아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상현이든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 모를 양아치 새끼든 제게 그저 잘해 주는 놈에게 가서 위안을 받으려 들었겠지. 차라리 이상현이 데려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정서원이 제 발로 도망쳐 나간 건 아니니까.

겁에 질려 자신을 바라보다 눈을 내리깔고, 무슨 말이든 기다리는 정서원을 지켜보던 그가 움켜쥔 손에서 서서히 힘을 뺀다. 동시에 정서원이 참은 숨을 몰아쉬기 시작한다. 억센 손이 떨어져 나간 하얀 살결에 불그스름한 손자국이 남았다.

“내가 형을 어떻게 이기겠어. 응? 안 그래, 형?”

“지, 진우야…….”

“근데, 내가 보는 앞에서 해. 좆같은 가출이든, 이상현과 씹질 하는 거든 뭐든.”

당황한 정서원에게는 의미가 그다지 와닿지 않는 용서였다. “대답 안 하네. 또 아무 말 없이 사라지려고?” 서진우가 몇 수나 물러 준 건지 짐작도 못 하는 그는 그저 겁에 질려 고개만 끄덕거렸다. 곁에서 지켜보던 이상현이나 뜻 모를 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다. 

“서원 씨, 우리 또 보겠네요. 잘됐네, 그렇죠?”

“……상현 씨, 저…….”

“형, 나중에 얘기해. 일단 집에 가서 쉬자.”

“으응…….”

이상현은 정서원에게서 컵을 받아 드는 척 손을 잡더니, 잡은 손을 놓아주지 않고 매만졌다. 의미 가득한 눈빛과 멋모르는 눈빛이 맞닿고 손끝과 손끝이 야릇하게 스친다. 서진우의 눈치를 보던 정서원이 손을 빼려던 찰나, 이상현은 순순히 놓아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아, 보고 싶어서 어떻게 견디지.”

몸조심하라던 인사와는 사뭇 다른 뉘앙스였다. 물론, 서진우는 얼떨떨해하는 정서원에게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손을 잡아끌고 나왔다. 건물을 빠져나올 때까지 서진우에게서는 사나운 한숨 하나 새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니 빌딩들이 높게 줄지어 선 번화가가 보였다. 차량이 오가는 소음과 사람들이 모여 나는 번잡한 소음을 아주 오랜만에 듣는 것 같다. 몇 달간 서진우에게 붙잡혀 있느라 잊고 있던 현실감각이 깊게 묻힌 밑바닥에서 꿈틀거렸다. 멀거니 서 있는 정서원을 서진우가 부드럽게 안으며 차로 이끈다. 그는 정서원을 조수석에 앉히고는 눈을 맞췄다. 다정한 빛이 어린 눈이었다.

“형, 다음부턴 말없이 사라지지 마. 알았지?”

“으응, 미안.”

“이제 애도 있잖아, 형. 나 정말 걱정돼서 죽는 줄 알았어.”

“걱정 끼쳐서 미안해, 진우야…….”

손수 벨트를 매 주며 말하던 서진우가 마지막에는 다정히 키스까지 해 준다. 정서원은 몹시 상냥해 보이는 그가 사실은 굉장히 화가 많이 난 상태라는 걸 눈치챘다. 그리고 그렇게 화가 나고도 벌을 주지 않는 것은 배 속의 아이 때문이라고 어림짐작도 했다. 애 때문에 아껴 주는 것이라면 진우는 나를 아껴 주는 걸까, 애를 아끼는 걸까? 이 아이가 혹시 사라진다면 또 전처럼 무섭기만 한 진우로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정서원은 납작한 배에다 손을 얹으며 생각에 잠겼다.

병원으로 향했을 때는 한참을 달렸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창밖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정서원은 언젠가 지겹게도 많이 봤던 풍경이 펼쳐져 있는 걸 깨달았다. 

“속은 괜찮아?”

주차를 마친 서진우가 정서원의 벨트를 풀어 주며 묻는다. 정서원은 고개를 끄덕거리려다 의식적으로 입을 열어 괜찮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저 몇십 분 동안 차에 앉아만 있었을 뿐인데, 서진우가 못내 기특하다는 듯 웃었다. 화장실을 잘 가리기만 해도 칭찬받는 강아지가 된 기분이었다. 딱히 다를 바 없기도 했다.

차에 내리는 순간까지 서진우의 손을 빌린 정서원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엘리베이터는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최고층까지 올라갔다. 이곳으로 들어왔을 때나 나왔을 때나, 깨어 있던 적이 없었기에 기분이 매우 이상했다. 병원에 다녀와서는 또 그 방에 갇힐 걸 예상하고 있던 터라 설레기까지 했다. 정서원이 밝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자 서진우가 손을 꼭 잡아 주며 웃는다.

“돌아와서 집 구경시켜 준다고 했는데, 실망했어?” 

“아니, 아니야. 안 그래. 진우야.” 

“형은 여기가 더 좋아?” 

“응, 응.”

이마에다 입을 맞추며 천천히 숨을 들이쉬는 서진우에게서 누그러진 페로몬이 느껴졌다. 체취를 빨아들이는 것 같기도 하고 제 체취를 묻히는 것 같기도 하다. 한참 얌전히 안겨 있던 정서원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에야 조마조마하던 맘을 놓을 수 있었다. 

집 내부는 인테리어가 조금 바뀐 것 빼고는 변한 게 없었다. 현관 러그가 달라져 있었고 소파와 가구, 침대도 바뀐 것 같았다. 서진우의 손을 붙든 채로 새삼스럽게 집 안을 둘러보던 그는 통유리 너머 풍경을 구경하다 불현듯 서진우의 품으로 빨려 들어갔다. 페로몬에 휘감긴 느낌이었다. 순간 긴장했던 몸이 천천히 풀어졌다. 서진우는 제 품에서 긴장을 푸는 몸이 퍽 좋았는지 감싸 안은 팔을 놓지 않고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간지러운 숨결이 호흡을 따라 목덜미를 건드렸다.

“형, 많이 힘들었지.”

“아냐, 진우야. 하나도 안 힘들었어.”

“이제 안 그럴 테니까, 굳이 거짓말할 필요 없어.”

“…….”

서진우가 뒤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모르겠다. 유리창에 비치고 있겠지만 확인할 용기가 나지는 않았다. 

“내가 앞으로 잘할게. 형 힘들게 안 할게. 응?”

“으응.”

“그러니까 괜히 나쁜 생각은 하지 마.”

언뜻 간절함마저 엿보이는 목소리였다. 정서원은 그가 말하는 나쁜 생각이 무엇인지 고민해 봤지만 무엇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 그저 알았다는 피상적인 대답만 내놓았다. 그걸 모를 리가 없는데, 서진우는 한숨 섞인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 * *

갇히기 이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방에 묶이지도 않았고 움직일 때마다 존재감을 알렸던 방울도 다시 걸리지 않았다. 곧장 벗겨져 나체가 될 줄 알았더니 홈웨어지만 옷도 주어졌다. 서진우도 그를 딱히 통제하려 들지 않는 것 같았다. 무릎에 앉혀 놓고 애새끼 먹이듯 떠먹여 주던 때와는 다르게 그의 몫으로 스푼도 내어 주었다. 정서원은 스스로 쥐어 본 지 까마득한 것 같은 스푼을 어색하게 쥐고서 수프를 떠먹었다. 지켜보던 서진우가 작게 웃는다.

“형, 왜 이렇게 흘리고 먹어.”

“응? 아, 어…… 어떡하지.”

식탁을 보니 수프 한 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스푼을 쥐는 게 어색해지니 식사 예절도 퇴화하나 보다. 정서원이 난처한 얼굴로 스푼을 내리자 서진우가 티슈로 입가를 닦아 주고 더럽혀진 식탁까지 닦아 준다. 그러고는 다정히 위로한다.

“괜찮아, 왜 부끄러워해.”

“미안, 성가시지…….”

“아니야. 형 익숙해질 때까지 포크 스푼 써야겠다.”

진짜 애들처럼 포크가 달린 스푼을 쓰는 자신을 떠올린 정서원은 얼굴이 빨개져서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큰 손이 뒤통수와 목덜미를 천천히 쓸어 주고 있다. 아랫사람 대하는 듯한 스킨십이었지만 우습게도 정서원은 거기서 묘한 안정감을 얻었다. 그러나 다시 스스로 스푼을 드는 일은 없었다. 서진우가 결국엔 본인이 직접 스푼을 쥐고 먹여 주기 시작한다. 한 입 먹일 때마다 철부지 애를 대하는 것처럼 티슈가 입가를 닦았다. 서진우는 스스로 무얼 할 의지조차 없는 정서원이 퍽 맘에 드는지 걱정스러운 척하면서도 웃음을 지었다. 

“다음부터는 형이 먹어야 돼?”

그래도 나름대로 다정한 걱정을 섞어 주며 말이다. 

식사를 끝마친 뒤에는 정서원이 서진우의 뒤를 머뭇머뭇 따라다녔다. 서진우는 뒤에 따라붙은 그를 안아 주며 “왜 그럴까, 형이?” 응석에 참 난처해하는 사람처럼 웃었다. 몇 달을 외따로 시간을 보낸 적이 없는 정서원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방치를 오래도록 당하기는 했지만,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갇혀 있는 처지였다. 자유가 주어져도 뭘 해야 할지 스스로 정할 입장이 못 되었다. 

혹시 어디가 불편한지, 속이 안 좋은지, 하고 싶은 게 따로 있느냐는 질문까지 나오던 문답은 결국 욕실로 이끌려가 양치를 당하는 걸로 끝이 났다. 

“졸려? 잘까?”

타월로 얼굴을 닦아 주던 서진우가 묻는다. 정서원은 무거운 눈꺼풀을 깜빡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뒤늦게 졸리다는 대답을 꺼냈다. 가물거리는 눈꺼풀에 입술이 내려앉는다. 그는 자연스럽게 서진우의 어깨에다 팔을 둘렀고, 서진우는 당연하게 그를 안아 들고 침실로 향했다. 비몽사몽간 침대에 눕혀진 정서원이 이불을 덮어 주는 손길을 느끼며 잠에 든다. 

꼭 붙잡고 있던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정서원은 몽롱한 정신을 일으키며 옆자리를 더듬거렸다. 조금 자고 일어났더니 곁에 서진우가 없었다. 가슴이 철렁하고 뒤이어 드는 가득 찬 요의가 혼을 빼놓는다. 그는 조마조마해하며 침대 맡을 확인했다. 그리고 배변 패드가 없는 걸 확인하고는 당황해하다 이곳이 그곳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왜, 그런 데 싸는 게, 더, 익숙해져서…….’

뜨끈한 얼굴을 손으로 비비던 정서원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미 몇 주를 묵었던 곳이었기에 화장실을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정서원은 화장실까지 가서 변기 앞에 섰으나, 한참을 서 있어도 나오는 것이 없었다. 이미 아랫배는 요의로 딴딴해진 지 오래였는데도 말이다. 그는 배변 패드가 없는 걸 봤을 때보다 더욱 당황하여 울먹거렸다.

‘왜 안 나오지? 왜지?’ 

배변 패드에 대고는 잘도 싸던 자지가 왜 정작 변기 앞에서는 조용한지 모르겠다. 정서원은 요의가 한계까지 차올라 당장 바지에 지릴 것 같은 초조함을 느꼈지만, 정작 그런 초조함을 느끼면서도 오줌 한 방울 내보낼 수가 없었다.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혼자서는 변기에 제대로 쌀 수도 없어진 스스로가 너무 이상했다. 결국 그는 눈물을 함빡 쏟아 내며 이 넓은 집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서진우를 찾아 나섰다.

다행히도 서진우는 침실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서재에 있었다. 그는 서진우를 발견하자마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진우야아…….”

“왜 울어, 형? 어디 아파? 응?”

“흑, 흐으.”

곧장 다가온 서진우가 서럽게 우는 정서원을 붙잡고 달래며 묻는다. 서진우는 자꾸만 품으로 파고드는 얼굴을 확인하고자 어깨를 잡았지만 정서원은 고개를 저어 가며 흐느끼기나 했다. 엉엉 우는 소리가 품에서 흘렀다. 진우야, 나 어떡해…… 이렇게 서럽게 우는 것은 혼을 다 낸 후뿐이었던지라 서진우는 드물게도 당황하여 떠는 등을 쓸어 주었다. 어차피 오래 참지 못하는 정서원에게서는 서진우가 굳이 캐묻지 않아도 온갖 사연이 떠듬떠듬 토해졌다.

“나, 일어나니까, 흑, 진우가 없어서…….”

“응, 그랬구나.”

“화장실, 가고 싶어서, 흑, 흐으, 가, 갔는데…….”

“응, 그랬어.”

“그랬는데, 나, 나…… 안 나와서…… 흑. 흐윽, 나 어떡해?”

눈을 뜨지도 못하고 발갛게 얼굴을 물들인 채 더듬거리는 그에게로 안도인지 웃음인지 모를 한숨이 떨어졌다. 한숨 뒤로 나직한 웃음소리가 이어진 걸 보면 웃음이 맞는 것 같았다. 

“혼자 못 싸서 온 거야? 그랬어, 형?”

“응, 응…….”

“아, 어떡하지. 혼자 쉬도 못하고, 내가 계속 옆에 있을 수도 없는데. 응?”

“흑. 어떡해, 진우야…….”

결국에는 목 놓아 울기 시작한 그를 서진우가 아주 정성껏 달래 주기 시작한다.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울지 마, 뚝…… 다정한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다. 가르친 걸 무엇 하나 잊지 않았으니 서진우로서는 퍽 기쁘고 기특해할 만했다. 

서진우는 품에서 미적거리는 정서원을 화장실로 이끌었다. 변기 앞에 세워 놓아도 울기만 하느라 스스로 무얼 할 줄도 모르는 그를 대신하여 바지를 내리고 속옷에서 자지를 꺼내도 저항 따위는 없었다. 서진우는 아무것도 못 하는 정서원을 뒤에서 끌어안은 채 소변을 처음 누는 아이에게 가르치듯 그의 손을 잡아 제 손과 겹쳤다. 의지가 미약한 손 대신 서진우가 자지를 붙잡고 있었다.

“안 어려워, 안 무서워, 형. 응? 이렇게 싸면 되는 거야.”

“똑같이 했는데, 안 나왔는데…….”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항변하기가 무섭게 잡힌 자지에서 오줌이 새기 시작한다. 홀로 변기 앞에 섰을 때는 거부반응을 보이던 요도는 이제 느슨해져서 쫄쫄 오줌을 쏘아냈다. 뒤에 선 서진우가 다정하게 속삭인다.

“봐, 나오잖아.”

“흐윽, 나, 이제 혼자, 화장실도 못 가나 봐…… 어떡해, 진우야?”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응? 울지 마, 형.”

오줌 줄기가 잦아든 자지를 털어 낸 서진우가 티슈를 뽑아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해 준다. 그러면서도 이상한 거 아니라는 별 위로가 되어 주지 못할 말도 해 주었다. 세상에서 격리된 지 겨우 몇 달이었다. 정서원은 그게 정상이 아니란 걸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괜찮다는 말과 포근하게 감싸 주는 페로몬에 세뇌라도 된 것처럼 안정을 느끼고 있었다.

울음기가 잦아든 그는 서진우가 제 자지를 속옷에 넣어 주고 바지를 올려 주는 과정을 훌쩍이며 바라봤다. 요의가 해결되고 긴장이 풀리고 나자 그제야 괜히 서진우를 귀찮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서원이 작은 목소리로 우물거린다.

“미안…… 나 귀찮지, 진우야.”

“아니야. 뭐가 귀찮아. 응? 너무 예뻐, 우리 형.”

“나, 계속 귀찮게만 하고, 성가시게만 해서…….”

“괜찮아, 오줌 좀 혼자 못 싸는 게 뭐가 대수야. 응?”

서진우는 역시 별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을 해 주며 또다시 눈물을 글썽거리는 정서원을 달랬다. 적당히 내어 주는 말과 극진한 위로 속에 정서원은 점차 안정을 찾아 갔다.

* * *

“오랜만이에요. 아, 우리 서원 씨 보고 싶어서 혼났네.”

며칠 뒤 이상현이 찾아왔다. 아침부터 병원에 다녀오느라 기진맥진하여 누워 있던 정서원이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곧장 서진우의 눈치를 봤으나, 곁에 서 있는 그에게서는 달리 화가 나거나 짜증 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주먹질까지 할 정도로 다투더니 그새 화해를 했나? 둘 사이에 무슨 얘기가 오고 간 것 같긴 한데 외출이라고는 서진우를 동반한 정기검진과 짧은 산책이 전부인 정서원으로서는 알아낼 재간이 없었다.

어물쩍 서진우의 뒤에 서 있는 정서원에게 이상현이 쇼핑백 하나를 건넨다. 언젠가 이상현과 함께 갔던 호텔 베이커리 로고가 그려진 쇼핑백이었다.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는 정서원을 향해 이상현이 웃어 보인다.

“어제 아랫집에 이사 왔거든요. 진우랑 정말 동서지간 된 기념으로 사 왔어요.”

“아…….”

이웃 지간 아닌가? 정서원은 아무 말 없이 쇼핑백을 받아 들었다. 받아 든 쇼핑백 안에서 달콤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오늘 아침만 해도 헛구역질이 나 몇 입 못 먹은 잉어찜을 물렸는데, 그 까탈이 믿기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군침이 돌았다. 지금껏 달콤한 게 당긴 적 없던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임신을 했더니 사이클이 뒤죽박죽이 된 모양이다.

이상현은 자신을 두고 쇼핑백만 들여다보는 그를 자연스럽게 끌어안았다. 진득한 눈길이 화색이 도는 얼굴을 훑었지만 모처럼 식욕에 사로잡힌 정서원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눈도 못 떼네. 그렇게 좋아요?”

“네, 잘 먹을게요.”

그는 목덜미를 만지는 손을 무시하고는 포장된 상자를 꺼냈다. 유독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 같더라니 사과타르트에서 났나 보다. 더 꺼내 보자 그 밑에 에끌레어와 상테르도 있었다. 원래 식욕이 많은 편이 아닌 데다 근래에는 입덧 때문에 이토록 열렬한 식탐을 느껴 본 적이 없었는데, 달콤한 냄새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문득 그는 당신 페로몬이 어쩌고 하며 당장 따먹고 싶다는 음담패설을 하던 이상현을 떠올렸다. 알파한테는 오메가 페로몬이 이런 식으로 느껴지나? 그렇다면 그 저속한 표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이거 맛있겠다. 그치, 진우야.”

“이런 거 먹고 싶었으면 말을 하지. 오는 길에 사 왔을 텐데.”

서진우를 향해 실없이 웃는 그를 이상현이 당연한 것처럼 어루만진다. 어차피 매번 만날 때마다 지분거리는 사람이었다. 정서원은 일절 신경 쓰지 않고 타르트가 제일 맛있을 것 같다며 실실거렸다. 이상현의 손길을 내심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서진우는 제게로 시선이 향하자 시치미를 뚝 떼며 마주 웃었다. 우리 형 신났네, 다정한 목소리에 정서원이 멋쩍게 눈을 내리깔았다. 

둘 사이에 애틋한 기류가 오가니 이상현은 슬쩍 짜증이 올랐다. 서진우에게 제대로 혼이 나고 정이라도 뚝 떨어지길 바라며 보내 줬건만 아주 잘 길이 든 애완견 한 마리가 돌아왔다. 그때 그냥 납치나 할 걸 그랬나. 서진우만을 향한 옆얼굴을 지켜보는 눈빛이 절절 끓는다. 

“아침 제대로 못 먹어서 배고플 텐데 지금 먹을래, 형?”

“그래도 돼?”

“그럼. 우유랑 먹을래?”

그러나 이상현으로서는 오랜만에 만나는 제 오메가였다. 그리운 체취를 음미하고 어루만지는 것만으로도 바쁘다. 구멍이 막힌 귓불을 매만지던 손이 목덜미를 건드리다 끌어안은 어깨에서부터 팔뚝, 갈빗대, 허리까지 자연스럽게 흘러든다. 페로몬을 묻히듯 정성스럽고도 진득한 손길이었다. 정서원은 이상현이 갈빗대를 만질 때부터 몸을 긴장시키더니 이내 엉덩이를 움켜잡히자 몸까지 파득거렸다. “앗.” 한참 돌아보지 않던 시선이 그제야 이상현을 향했다. 

“서원 씨 왜 이리 말랐어요, 나 속상하게. 잘 먹는 거 맞아요? 입덧이 많이 심하나?”

“아으응, 잠깐만요. 상현 씨…….”

“봐요. 당신 엉덩이도 살이 빠져서 잡히는 게 없네. 예전 같으면 내 손에 꽉 찼다고.”

“앗, 아, 잠깐. 그렇게 만지지…….”

예전과 비교해 손에 얼마나 뿌듯하게 차오르는지 비교라도 하는 모양인지, 주무르는 손길이 몹시 끈덕졌다. 이상현은 아주 걱정스러운 척하고 있었지만 그래 봤자 섹스하기 전의 전희로 주무르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엉큼함이었다. 손아귀에 엉덩이가 뭉개질 때마다 이상야릇한 기분이 올랐다. 정서원은 더 난처해지기 전에 이상현을 밀어냈다. 그는 순순히 물러나 주면서도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듯 산뜻하게 웃어 주었다.

“안 할게요. 맛만 본 거예요. 맛만.”

“…….”

실컷 주물러 놓고 뭘 맛만 봤다는 건지. 반발심이 약간 샘솟았으나 곧 서진우를 의식한 입은 얌전히 다물렸다. 정서원이 딱히 나서서 무얼 할 필요도 없었다. 서진우가 이상현에게 다가가더니 어깨를 툭 건드리며 잠깐 나가서 보자는 말을 한다. 둘 다 표정만은 부드러운데, 정서원은 어째 걱정이 되어 서진우를 붙잡았다. 

“왜?”

“싸우는 건 아니지……?”

“아니야, 싸우긴 왜 싸워. 이 새끼랑 잠깐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그래요, 서원 씨. 이 새끼랑 내가 왜 싸워요. 급이 다른데.”

안 싸우겠다는 사람들이 하는 말치고는 조금 과격하다. 그리고 이미 치고받고 싸운 전적이 있는 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해사하게 웃으며 뺨을 쓸어 주는 서진우는 손찌검은커녕 모진 말 한마디도 못 할 것처럼 예쁘기만 해서 정서원은 약간 맘이 놓였다. 

“금방 올게. 앉아서 기다려.”

“으응.”

순하게 대답한 정서원에게 짧게 입을 맞춘 서진우가 이상현을 이끌고 현관을 나선다. 정서원은 머뭇거리다가 소파로 돌아갔다. 금방 온다던 서진우가 혼자 돌아온 것은 꽤 시간이 흐른 후였다. 그는 정서원에게로 다가오며 산뜻하게 웃었다. 

“어…….”

“미안, 얘기가 좀 길어졌네. 배 많이 고프지?”

“아아니, 괜찮아…….”

“뭐 먹고 싶어? 잘라 줄게.”

“그럼 타르트…….”

이상현은 어디 갔냐는 말을 꺼낼 새도 없었다. 질문을 쏟아 내던 서진우는 테이블에 놓인 상자를 들고 부엌으로 향하더니 오래지 않아 돌아왔다. 쟁반에 먹음직스럽게 잘린 타르트와 포크, 우유가 놓여 있다. 걱정스러움에 잠깐 잊혔던 식욕이 다시 돋았다. 넋을 잃고 바라보는 정서원을 서진우가 웃으며 부른다.

“이리 와.” 

하도 애 취급을 당했더니 이제는 무릎에 올라앉는 것도 당연해졌다. 정서원은 서진우가 두드린 무릎 위에 올라앉으며 그의 어깨에다 팔을 둘렀다. 시선은 여전히 타르트에 꽂혀 있다. 배 많이 고팠나 보네, 미안해. 다정히 속삭인 서진우가 타르트를 한입 크기로 잘라 하나씩 먹여 주기 시작한다.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는 달콤함에 정서원은 금세 이상현을 잊었다. 심한 입덧으로 끼니를 거의 거르다시피 하는 정서원이 모처럼 아주 잘 먹자 서진우도 기분이 좋아진 것 같다. 그가 입술에 묻은 부스러기를 닦아 주며 자상히 웃는다.

“맛있어?”

“으응, 근데, 왜 안 먹어? 맛있는데…….”

“난 형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달콤함이 듬뿍 밴 말이었으나 이미 숱하게 들어오느라 익숙해진 정서원에게는 그리 와닿지 않는 말이기도 했다. 그저 그를 먹이느라 정작 자신은 먹지 못하는 서진우에게 미안함만 더해질 뿐이었다. 정말 맛있는데, 진우도 좋아할 것 같은데…….

다음에 내밀어진 타르트를 정서원이 입술로 조심스럽게 문다. 먹여 주려는 의도였는데 직접 해 보려니 꽤 어렵다. 흠뻑 발린 꿀이 괜한 데 스치지 않도록 주의하며 고개를 기울여 봤지만 잘 되지 않는다. 몸을 좀 더 기울이면서 고개를 틀자 간신히 서진우의 입술에 닿았다. 엄지만 한 거리를 두고 연한 숨결이 스쳤다. 타르트를 물고 있느라 말을 하지 못하는 정서원이 속눈썹을 들어 서진우를 바라본다.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닌데, 이렇게 보니 키스라도 하는 것 같아 공연히 웃음이 샜다. 

반지르르 윤이 나는 타르트 조각을 문 채 눈웃음을 짓는 그를 서진우가 말없이 지켜본다. 침묵이 길어지자 정서원은 어리둥절해졌다.

‘왜 안 먹지?’

진우도 타르트 좋아하지 않았나…… 더 물고 있다가는 떨어뜨릴 것 같아 결국 타르트는 그의 입술로 다시 삼켜졌다. 이렇게 맛있는데 먹질 않으니 참 안타깝다. 정서원은 크지 않은 타르트 조각을 열심히 우물거리며 먹고는 입술에 묻은 부스러기까지 혀로 핥았다. 내내 조용하던 서진우에게서 겨우 한숨이 샜다. 문득 허리에 감긴 팔에 힘이 주어지더니, 놀랄 새도 없이 품으로 더욱 깊숙이 끌어당겨졌다. 한숨 따위는 진작 삼켜졌고 뒤이어 입술까지 삼켜졌다.

“진, 우야. 으응…….” 

끈적끈적 꿀이 묻은 입술에 질척한 혀가 닿았다. 먹음직스러운 타르트를 물려 줘도 먹질 않더니 이제는 입술이 디저트라도 되는 것처럼 집요하게 핥고, 입술로 물어댄다. 정서원은 딱히 저항하지 않으면서도 잠깐만, 왜 그래, 같은 말을 해 가며 감긴 눈두덩을 떨었다. 입술을 물리는 동안 한 번도 떨어지지 않는 눈빛이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잡아먹히기라도 할 것 같아서 오싹한 전율이 돋았다.

“입. 벌려야지, 형.”

“으응, 응…….”

그간 섹스를 안 했다고는 하나 키스를 안 한 건 아니다. 임신을 한 뒤로 몹시 다정해진 서진우는 키스마저 부드러웠는데 이번엔 담긴 의도가 사뭇 달랐다. “형.” 우물쭈물하던 정서원은 들끓는 눈길에 곧장 속눈썹을 내리깔며 유순히 입을 벌렸다. 바로 혀가 섞였다. 서진우는 머뭇거리는 입 안으로 기어들면서 그간 참던 욕구를 그대로 터뜨렸다. 달아날 길이 없는 정서원으로서는 다소 거친 입맞춤에도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었다. 

맞물린 입술 사이로 응응 앓는 소리가 흐른다. 성적 의도가 가득한 입맞춤에 몸이 착실히 달아오르고 있었다. 서진우가 간질간질한 곳곳을 건드릴 때마다 아랫배가 콕콕 조이는 듯 야릇한 쾌감도 일어난다. 정서원은 서진우에게 갇힌 몸을 움찔움찔 떨어댔다. 가지런히 모인 다리가 어쩔 줄 모르고 꼬이기 시작한다. 그 다리에 커다란 손이 닿았다. 넉넉한 반바지는 슬쩍 걷어 올렸을 뿐인데도 맨다리를 훤히 드러내 보였다. 서진우는 입맞춤을 계속 이어 가면서도 민감한 속살을 주무르고 쓸어 주었다. 민감한 속살을 건드리는 느낌이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흘러드는 페로몬은 성감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려는 것처럼 진하고도 짜릿했다. 당장 옷을 벗고 뒹굴고 싶은 욕망이 치솟았다.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정서원이 흐무러진 신음을 토해 냈다.

“으아앙, 아, 응…… 진우야아. 으응, 응.”

“이런 짓은 누구한테 배워 왔어. 누구 보여 주려고. 어?”

“아, 아앙, 미안해애…… 잘못했어, 으응, 진우야아.”

서진우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그저 더 만져 주었으면 하는 바람에 무작정 사과부터 나왔다. 어깨를 꼭 끌어안은 채로 스스로 다리를 벌리는 그는 서진우가 더 만지기 쉽게끔 유도하고 있었다. 허벅지 말고, 더 안쪽, 더 깊은 데를 만져 주면 싶었다. 살짝 부은 입술을 벌리며 자신을 애타게 바라보는 그를 서진우가 한참이나 노려본다. 그 얼굴에 언뜻 격분과 같은 감정이 스쳤다. 

“씨발, 돌겠네.”

나직하게 잠긴 목소리는 여과 없는 흥분을 드러내고 있었으나, 반면 짜증도 섞여 있었다. 정서원은 눈물까지 떠오른 얼굴로 서진우를 애타게 바라보았다. 왜 당장 벗기고 만져 주지 않는지 초조했다. 축축이 젖은 다리 사이가 너무 미끈거려서 빨리, 꼼꼼히 닦아 주면 좋겠는데…… 두툼한 혀나, 단단한 손이나, 뜨거운 자지 따위로. 

서진우는 조르는 얼굴을 바라보다 한숨을 짓씹더니 허벅지 안쪽을 건드리던 손을 떼어 냈다. 정서원이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지만 서진우는 시선을 마주하지 않고 올라간 바지나 정돈해 줄 뿐이었다. 진우야아…… 보채는 목소리에 울먹거림이 섞인다. 서진우는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딴 얘기를 꺼냈다.

“미안, 형 많이 놀랐겠다.”

“나, 나 안 놀랐어. 전혀 안 그랬어. 진우야…….”

“타르트 더 먹을까? 아직 많이 남았네.”

“싫어, 진우야아…… 나, 흑, 싫어. 다른 거 먹고 싶어…….”

“타르트는 이제 질렸어? 롤케이크도 있던데 그거 가져다줄까?”

무얼 말하는지 알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는 모습에 서러움이 북받친다. 왜, 왜? 왜 안 해 줘…… 몸이 한껏 달은 정서원이 결국 눈물을 흘리자 서진우가 몹시 미안해하며 달래 주기 시작한다. 젖은 눈꺼풀을 쓸어 주고 미안해, 많이 놀랐어? 안 그럴게, 응? 다정다감히 속삭이는 그는 아주 다정했지만 그렇다고 서러운 게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흑, 흐으…… 진우야, 왜, 갑자기…….”

“울지 마, 응? 내가 잘못했어, 형.”

“흐앙앙…… 진짜 싫어, 너무 미워, 나빴어, 이럴 거면 왜 만졌어…….”

모질게 매도해도 싫다는 말, 밉다는 말 한 번 한 적 없는 순한 정서원이 이번에는 억울함을 잔뜩 토로한다. 그럴수록 서진우는 난처해하며 그를 달랬다. 눈물을 닦는 손길은 아주 다정했지만 정서원은 도리질까지 쳐 가며 투정을 부렸다. “싫어, 만지지 마, 흐아앙…….” 서러워하기에 손을 떼었더니 이번에는 “미안해애, 잘못했어, 나 달래 줘, 진우야아…….” 더 서럽게 울어 젖힌다. 결국 서진우는 정서원을 품으로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사실 정서원도 서진우가 왜 갑자기 손을 뗐는지는 어렴풋이 짐작 가는 바가 있긴 했다. 최근에 의사로부터 그는 몸이 안 좋아 더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원래도 임신이 달갑지 않았지만 오늘만큼 싫었던 적은 없었다. 너무 싫어서 짜증이 날 정도였다. 정서원은 자신을 폭 끌어안고 달래는 품에 안겨서 한참을 울었다. 

다 울고 난 후에는 모처럼 맛있게 먹던 타르트마저 역해져 한 입도 먹지 못하고 버려야 했다.

* * *

몇 주 후, 배 속 아이에게는 나란히 달이, 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혀 관심이 없는 정서원 대신 서진우 혼자 지은 이름이었다. 서진우는 태명을 붙인 뒤에는 더욱 다정해져서 시도 때도 없이 정서원을 끌어안고 애정을 속삭였다. 납작한 배에 대고 애들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아직 청각이 발달되지도 않았을 텐데, 정서원은 기뻐하는 서진우에게 막연한 부담을 느꼈다. 몸 관리를 잘해서 잘 낳아 주어야겠다는 그런 선량한 부담감은 아니었다.

‘저렇게 확신하는데 진우 애가 맞겠지?’

안심이 되다가도 이따금씩 떠오르는 이상현의 두루뭉술한 태도는 불안을 불려 놓았다. 그 와중에도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초기에는 유산이 되기 쉽다더니 그렇지도 않았다. 매주 꼬박꼬박 다니기 시작한 병원에서는 이제 심장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날 서진우는 정서원의 손을 붙잡고 기뻐했지만 정서원은 나날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배에 누구 씨인지도 모를 애가 들어앉아 있다는 게 초조하기만 했다. 애를 낳는 것도 무서웠다. 벌써 엄마가 되어서 젖먹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도 싫었다. 몽땅 다 싫었지만, 낳은 아이가 진우를 닮지 않았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 제일 힘겨웠다.

멀쩡히 애인을 두고도 다른 놈 씨나 받던 정서원은 결코 헤날 수 없는 번뇌였지만, 서진우는 딱히 고려해 본 적 없는 가짓수였다. 그는 다만 납작한 배가 몹시 귀엽다는 듯 오늘도 정서원을 무릎에다 앉혀 놓고 만져댔다.

“우리 애들 잘 자라고 있겠지, 형?”

“으응.”

“애들이 벌써 까다로워서 입덧도 심하게 하고. 임신하기 전보다 더 말랐어, 형.”

서진우는 손톱만 한 세포 두 덩어리를 늘 ‘우리 아이’라고 칭하며 예뻐했다. 씨를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골치이긴 했지만 씨를 알았어도 임신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을 정서원은 그게 참 생소했다. 화가 잔뜩 나 있던 진우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 하나에 이토록 다정해지는 것도 신기했다. 이상현이나 서진우나, 다들 제 새끼라며 기뻐하는데 홀로 역할극에 참여하지 못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입 심심하지 않아? 과일 깎아 줄까?”

“아냐, 나 배불러서…… 괜찮아, 진우야.”

“입맛이 없어도 자주 먹어 놓는 게 좋대. 공복이면 입덧이 더 심하다니까, 응?”

“으응…… 먹고 싶은 거 생기면 바로 말할게.”

서진우는 꼭 그래야 한다고 대꾸하면서 납작한 배를 어루만져댔다. 진작 샅까지 내려진 바지는 아직 태동조차 없는 배를 서진우에게 고스란히 내주고 있었다. 큰 손은 조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배 곳곳 안 닿는 곳 없이 맘껏 건드렸다. 정서원은 그럴 때마다 몸을 긴장시키며 숨을 죽였다. 몇 주간 강제로 수절 중인 몸이었다. 서진우는 결코 손을 대 주지 않았고 간간이 찾아오는 이상현도 마찬가지였다. 만나기만 하면 귓가나 목덜미처럼 드러난 살은 물론이고 가려진 속살까지 건드리던 이상현이 이제는 기껏해야 손이나 배만 만질 뿐이었다. 덕분에 몇 주간 풀어 주지 못한 몸은 성적인 의도 없는 터치에도 쉽게 달떠서 가라앉히는 것만도 고역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임신하면 먹고 싶은 게 많아진다는데, 형은 왜 입만 더 짧아지는지 모르겠어.”

“으응…….”

“제대로 먹질 못하니까 내가 너무 미안해. 요즘은 괜히 임신시켰나 후회돼, 형.”

“…….”

‘나도.’하고 속없이 대답할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대신 입에서 가느다란 숨소리가 샜다. 몸을 감싼 페로몬이 이제는 손길을 따라 속까지 스미는 것 같았다. 안정이 되는 한편 야릇한 초조감이 아랫배를 들쑤셨다. 서진우에게 폭 안긴 몸이 절로 꼬인다. 어차피 못할 거라면 흥분이라도 안 됐으면 좋겠는데. 참고 견디다가 가라앉을 때까지 난에 깔린 자갈이나 세는 고난을 또 겪고 싶진 않았다.

정서원은 여지없이 달뜨기 시작한 몸 때문에 속이 상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리를 꼭 모으고 숨을 죽였지만 그렇다고 서진우의 손을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쩍 말수가 적어진 그를 쓰다듬는 손길이 더욱 부드러워진다. 살살 어르는 손끝이 슬쩍슬쩍 샅을 스칠 때마다 정서원은 바싹 몸을 움츠렸다. 참고 싶었는데, 결국 다물린 입에서 소리가 샜다.

“으응…….”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형?”

“아니, 아니야…….”

정서원은 손길마다 새는 숨을 참으려 안간힘을 썼다. 눈치 없는 몸이 벌써 젖어들어 아래를 세우고 있다. 눈앞이 몽롱해졌다. 하고 싶어, 아래 만져 줘, 자지 넣어 줘, 깊게 박고 쑤셔 줘…… 그 말이 얼마나 맴도는지 섣불리 입을 열기조차 어렵다. 임신 사실을 알기 전에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걸레 같은 구멍이라 매도를 당했었는데,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에 참지 못하고 조른다면 또 어떤 말이 돌아올지 모르겠다.

그러나 서진우가 잡은 몸을 놔주지 않는다. 아랫배를 건드리는 손길이 점점 노골적으로 변하는데 제 몸에서 터지는 페로몬 하나 눈치채지 못하는 정서원은 아직도 들키지 않겠다며 애를 쓴다. 몸을 배배 꼴 때마다 푹 젖은 안쪽이 미끈거렸다. 정서원이 참지 못하고 샅에 닿으려던 손끝을 부여잡는다.

“진우야, 나 그만…….”

머뭇머뭇 말을 잇는데 다행히도 때마침 벨이 울렸다. 그가 눈에 띄게 안도하며 서진우를 바라본다.

“누구 왔나 봐, 진우야.”

“그러게. 눈치 없는 새끼가 왔네.”

아, 이상현이 오기로 했었나? 정서원은 곧장 서진우의 무릎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허리를 감싼 팔에서 힘이 빠지지 않았다. 응답이 없자 벨이 또다시 한 번 울렸다. 괜히 초조해졌다.

“진우야, 사람 왔는데…….”

“응, 그런데?”

“나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저러다 가겠지. 신경 쓰지 마.”

머뭇거리는 몸을 품으로 끌어당긴 서진우가 목덜미에 고개를 묻는다. 그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민감한 살결로 느껴졌다.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숨을 죽인 정서원이 허리를 감싼 팔을 붙잡고 낑낑거린다. 상황을 면피하고 싶은 맘에 아무 말이나 토해졌다.

“진우야, 나, 나 화장실…… 가고 싶어.”

“쉬 마려워?”

“아, 아니, 나…… 흐으, 진우야아.”

“응?”

그는 안절부절못하는데 서진우는 여유롭게 배꼽 근처나 문지르고 있다. 아랫배가 움찔거렸고 아래에서는 물이 찔끔찔끔 새었다. 젖으면 어떡하지? 진우 허벅지에 묻으면 어떡하지? 초조함에 눈물까지 고인다. 아무리 다리를 오므려도 일어서는 아래와 푹 젖어드는 뒤를 감출 수가 없었다. 진우가 안다면 정말 경멸할 텐데, 이제 애 엄마면서 잘 참지도 못하고 금방 질질 싼다며 혼이 날 게 뻔했다. 울먹울먹 울음이 차올랐다.

그때 ‘쾅!’하고 현관문이 거세게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잖아도 조마조마하던 정서원이 화들짝 놀라 서진우를 바라본다. 서진우는 못내 짜증스러운 얼굴로 그를 달랬다.

“지, 진우야…….”

“내가 나가 볼 테니까 기다려.”

“응, 응.”

곧장 일어난 정서원이 서진우가 나가기를 기다린다. 늘 손이든 팔이든 매달려서 나도 따라가면 안 되냐고 묻던 그가 얌전히 기다리는 게 얼마나 속 보이는지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서진우는 빙긋 웃더니 뺨을 가볍게 꼬집었다. 확 잡아먹을 수도 없고. 오싹한 소리를 달콤하게 속삭인 서진우가 곧 오겠다며 현관으로 향한다. 정서원은 그 뒷모습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다가 달아났다. 

그 잠깐 사이 엉덩이에서 물이 흘렀다. 가장 멀리 떨어진 침실로 들어온 그는 곧장 욕실로 들어서며 바지부터 내리고 봤다. 투명한 액체가 속옷에 묻어 가느다랗게 늘어졌다가 끊어진다. 발정한 냄새도 물씬 풍겼다. 진우는 몰랐으면 했는데, 이렇게 냄새를 풀풀 풍겨댔으니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얼굴이 화끈거리다 못해 눈물이 났다. 혼자 몸이 달아 어쩔 줄 몰라 하던 걸 모조리 들켰다고 생각하니 너무 창피스러웠다.

“흑, 짜증 나…….”

서둘러 티슈를 뽑아 다리 사이를 닦아 내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정서원은 훌쩍훌쩍 울어 가며 미끈거리는 액체를 열심히 닦고 꼿꼿한 자지를 붙잡아 선단을 닦았다. 고작 그 정도 접촉인데도 달은 몸에서 미약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왜 이런 거에도 느끼는 거야…… 서러운 눈물이 터진다. 식지 않는 발정열 때문에 앞에서도 뒤에서도 계속해서 찔끔 물이 새어 나왔다. 위아래로 쏟아지는 물이 처치 곤란이었다. 투명하고 끈적한 액체가 묻은 휴지가 하나둘 욕실 바닥에 떨어진다. 워낙 푹 젖은 탓에 쉽게 닦이지 않았다. 

“흐으, 흑, 어떡해.”

조금만 있다가 열이 식으면 나가려고 했더니 그마저도 뜻대로 안 된다. 정서원이 바지를 부여잡은 채로 대리석 바닥에 주저앉는다. 어중간하게 달은 몸은 조금만 만져 주면 해소될 것 같기도 하다. 진우가 올까 봐 망설여지긴 하지만 아직 찾으러 오지 않은 걸 보면 용건이 길어지는 게 아닐까? 젖은 두 눈이 발긋하게 달은 다리 사이에 꽂힌다. 사실 아까 진우가 만져 주던 짜릿한 감각이 아직도 아랫배를 근질거리고 있었다. 임신한 자신을 돌보느라 당분간 자택 근무로 전환한 서진우와 종일 함께하느라 자위도 못 해 봤다. 쌓일 대로 쌓인 욕구가 뜨거운 배 속을 간지럽힌다. 

“조금만…….”

조금만 하면 모르지 않을까? 우물쭈물하던 손이 결국에는 가랑이로 기어든다. 발딱거리는 자지를 무시하고 회음부 아래로 흘러든 손에 미끈미끈한 액체가 묻었다. 방금 닦아 냈는데도 또 이렇게…… 난, 진짜, 왜 이렇게 밝히지? 억울한 맘에 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정서원은 훌쩍훌쩍 울면서도 꿋꿋하게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커다란 자지도 능히 받던 구멍이 이젠 손가락 하나도 빠듯하게 받아 냈다. 그러나 서진우나 이상현이 만져 주는 그 느낌이 나지 않는다. 욕심은 많고 맘은 급한 정서원이 손가락 하나를 더 넣었다.

“아으응…….”

이미 축축하게 젖은 안은 무리 없이 손가락을 삼켰다. 밋밋한 이물감을 참으며 손가락을 꾸물거려 봤지만 전혀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다. 초조해서 애가 탔다. 서진우나 이상현이 만질 때는 손가락만 넣어도 눈앞에 별이 튀는 것 같았는데…… 그런데도 뭐가 들어오긴 들어왔다고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봇물 터지듯 왈칵 물이 새었다. 손짓을 따라 질척질척 야릇한 물소리가 퍼진다. 아무리 쑤셔도 해소되지 않는 열감이 답답했다. 애가 탄 그가 다른 손으로 발딱거리는 자지를 붙잡는다. 그제야 비로소 흐릿한 쾌감이 올랐다. 

“아, 으응, 응…….”

애타던 몸에 한 줄기나마 쾌감이 비추니 도저히 손을 멈출 수가 없다. 그는 욕조에 몸을 기댄 채로 열심히 손을 움직였다. 욕심 많은 양손을 움직일 때마다 앞뒤로 홍수가 터져 흐르는 물이 가랑이를 흠뻑 적셨다. 정말 진우 무릎 위에 조금이라도 더 앉아 있었다가는 허벅다리를 적셔 놓았을지도 모르겠다. 퍽 부끄러워 해야 마땅할 가정인데, 그는 오히려 엉덩이에 닿았던 단단한 허벅다리가 떠올라 배 안쪽이 화끈거렸다. 거기에 대고 비비면 기분이 아주 좋을 것 같았다. 상상만으로도 허리가 잘게 떨렸다.

“아, 흐앙, 응, 으앙앙.”

아무리 쑤셔도 멀어지기만 하는 쾌락을 좇느라 허리가 바싹 띄워졌다. 금세 앞뒤로 물을 흘려대는 것과는 별개로 도무지 쾌감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만지고 쑤셔도 어렴풋한 쾌감만 샘솟는 바람에 애간장이 타들어 갔다. 

왜 안 되지…… 억울해서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어차피 유산 위험이 있다며 안아 주질 않으니 혼자 풀어야만 했는데 도저히 되질 않았다. 모질게 매도당해도 좋으니 차라리 진우에게 도와 달라고 말할 걸 그랬다. 벌만 잘 견디면 아주 크고 단단한 걸로 속까지 진탕 뭉개 줄 테니 손가락으로 애만 태울 일도 없었을 텐데. 초조한 발끝이 욕조 바닥을 긁다가 무릎을 꼭 맞붙이며 겨우 얌전해진다. 꾹 감은 눈두덩이 떨렸다. 손장난만으로 몇 번이나 절정으로 밀어뜨려 주었던 이상현까지 그리워졌다.

“흐윽, 흐응응, 진우야아…… 아, 으응, 상현 씨이…….”

“응, 왜 찾아요?”

그런데 돌아오면 안 될 대답이 돌아왔다. 서럽게 울던 정서원이 뜨끈한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눈물이 핑글 맺히느라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눈만 깜빡거리는 그에게 누군가 손을 뻗어 눈가를 문질러 주었다. 그제야 제대로 앞이 보인다. 그의 앞에 이상현이 앉아 있었고 서진우는 문간에 기대서 있었다. 훌쩍훌쩍 울어 가며 자위에 몰두하느라 누가 곁에 오는지도 몰랐다. 정서원은 셔츠를 잡아끌어 축축한 아래를 가렸다. 자위를 들켜 창피한 맘과 또 혼이 날 거란 초조함에 울음기가 올랐다. 

“흑, 지, 진우야…… 미안, 조금만 하려고 했는데…… 흑, 흐윽.”

“뭐가 미안해요? 좋은 구경시켜 줬으면 된 거지. 맨 정신에 발정 나는 오메가를 어디서 또 보겠어요?”

“시, 싫어요…… 흐아앙, 하지 마요…….”

이상현이 손끝으로 아직 발딱거리는 자지를 건드려 가며 웃는다. 고작 툭툭 건드리는 장난이었는데도 물이 왈칵 터지며 감싸고 있던 셔츠를 적셔 놓았다. 자지를 가린 하얀 셔츠가 젖어들어 연분홍색 선단이 비쳤다. 솔직히 기분 좋았지만 이래서는 안 되는 게 맞았다. 정서원은 가랑이를 가리면서 서진우의 눈치를 먼저 살폈지만 어째선지, 그는 화가 났다기보다도 짜증이 난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상현은 정서원이 서진우의 눈치를 살피든 말든 손장난을 그만두지 않았다. 우아한 손이 선단이 비치는 셔츠를 짙게 문질렀다. 정서원이 크게 자지러진다.

“으아앙!”

“자위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길래 날 그렇게 애타게 찾았어요?”

“아으응, 아, 아, 안 돼에, 으응! 싫어어, 아앙, 아아아…….”

가볍게 건드리는 것 같은데 닿는 족족 눈앞에 별이 튀었다. 그토록 원하던 쾌감이었지만 마냥 즐기기에는 서진우의 분노가 무서웠다. 그가 이상현의 품에서 빠져나오려 바동거리느라 발치에 나뒹굴던 티슈들이 데굴데굴 굴러갔다. 정서원과 시선을 맞추고 있던 서진우는 무릎에 바지와 속옷을 건 채 바동거리는 다리를 보다, 애액으로 반질거리는 티슈를 보고는, 다시 정서원을 바라보았다. 고운 얼굴에 약간의 조소가 어린다. 정서원은 아주 모처럼 수치스러움을 느꼈고 동시에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그를 이상현이 손 하나로 살살 녹여 먹는다. 부끄러움도 잊힐 만큼 연신 터지는 짜릿함에 정서원은 앙앙 자지러지고 말았다.

“으아앙! 흐앙, 아, 상현 씨, 나아…… 앙, 으응.”

“이렇게 힘들어할 거였으면 도와 달라고 하지, 형. 나한테는 말도 못 하면서 이상현한테는 얌전히 가랑이 벌려 주는 거야?”

“힉, 아니이, 아냐, 흐응. 아…… 진우야아…… 응, 으응!”

“아니에요? 내 손에다 비비느라 허리 흔드는 건 알고 그래요, 서원 씨? 나 지금 손 안 움직이잖아.”

“아응응, 아니야, 아니에요…… 으앙, 상현 씨이…….”

서진우를 바라보던 시선이 그제야 제 가랑이에 꽂혔다. 멈춘 손에다 자지를 비비느라 하느작거리던 허리가 눈에 들어왔다. 부끄러워 눈물이 핑 돌고 얼굴이 홧홧해지는데 허리는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너무 좋았다. 몇 주간 모르고 지냈던 쾌감이 커다랗게 몸집을 불려 묵직하게 아랫배를 건드렸다. 당장 황홀한 절정에 이를 것만 같아 허리 놀림이 더욱 바빠졌다.

“싫어어, 앙! 으응, 아…… 기분 좋아, 미안해애, 미안해요…… 으응, 응응……!”

“뭐가 미안해요? 내 손 멋대로 써서 그러는 거야, 진우 두고 내 손에다 자위하느라 미안해서 그러는 거야?”

“싫어, 싫어어…… 하지 마요, 흑, 흐아앙. 으응, 좋아아…….”

이상현은 조롱 몇 마디 하는 것 외에는 가만있었지만 정서원은 아주 서러워 못 견디는 것처럼 흐느꼈다. 허리는 계속해서 유연하게 그네를 탔다. 아, 조금만 더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아니, 이거 말고 더 기분 좋은 것도 있는데…… 입술을 벌린 채 할딱대던 그가 결국에는 이상현의 손을 붙잡고 더 짙게 문질러대기 시작한다. 한결 더 강해진 쾌감에 벌어진 입에서 신음이 마구 터졌다. 그토록 바라던 절정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외줄을 타듯 아슬아슬한 쾌감을 계속 느끼고 싶은 맘이 든다. 오랜만에 느끼는 절정을 고작 앞으로만 느끼고 싶지 않은 맘도 들었다. 

정서원이 갈증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든다. 눈물에 푹 젖은 눈이 이상현을 애타게 바라봤다가 문간에 서 있기만 하는 서진우를 향한다. 정서원에게 얌전히 손을 내주고 있던 이상현이 자상하게 웃더니 다소 아플 정도로 자지를 세게 쥐었다. 정서원은 그대로 절정에 떨어졌다.

“아, 아아아……!”

아찔하게 내달리는 쾌감에 세워 놓은 다리가 달달 떨린다. 아주 오랜만에 다다른 절정은 진한 정액을 오래도록 토해 내며 전신이 떨리게 만들었다. 티셔츠를 흠뻑 적신 정액이 기둥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 느낌마저 황홀했다. 둘에게 자위를 들킨 건 너무 창피했지만 이렇게 기분이 좋아졌으니 차라리 잘된 일 같았다. 

쾌락에 한껏 흐무러진 몽롱한 얼굴로 숨을 헐떡이는 정서원에게로 서진우가 다가선다. 그는 나른하게 늘어진 몸을 가볍게 안아 들었다.

“찬 데 계속 앉아 있으면 안 좋아, 형. 다음부터는 소파나 침대에 앉아서 해.”

“흐응, 응…… 미안해애, 진우야…….”

기운이 다 빠진 손이 서진우의 어깨로 감겨들었다. 정서원은 그대로 서진우에게 안긴 채 침대로 옮겨졌다. 고작 침대에 내려앉았을 뿐인데 등줄기에 기대감이 흐르며 아랫배가 조여들었다. 

정서원이 서진우와 이상현을 바라보며 다리 끝을 꾸물거린다. 꼭 붙은 무릎은 당장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맥이 없었다. 이상현의 손짓 몇 번에 혼자서는 결코 이를 수 없던 절정으로 떨어진 그는 자꾸 ‘이다음’이 기대가 되었다.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은 계속 드는데, 속없는 다리는 자꾸만 벌어지려 들었다. 혼자서는 결코 그 짜릿함을 맛볼 수 없기에 더 애가 탔다. 입을 벌리는 순간 제발 박아 달라고 애원이라도 할 것 같아 깨문 입술을 놓을 수도 없었다. 안 되는데, 안 되는데…… 말문이 막힌 대신 젖은 눈만 애절해진다. 서진우가 혀를 차듯 웃는다.

“우리 형 정말 어떡하지. 한눈팔 때마다 할 수 있는 저지레는 다 해 놓네.”

“미안, 해애…….”

“괜찮아요, 서원 씨. 밝히는 게 서원 씨 잘못은 아니잖아요. 응?”

“흑…… 흐으…….”

서진우는 입술을 우물거리는 정서원에게로 몸을 기울이며 맞붙은 무릎에 손을 올렸다. 다리는 저항 없이 벌어졌다. 활짝 열린 다리 안쪽으로 축축해진 가랑이가 드러났다. 가장 은밀한 부분을 내보이는 것만으로 짜릿한 쾌감이 아랫배를 치댔다. 움찔거리는 작은 구멍에서 투명한 물이 흘러내린다. 정서원은 다리를 오므리려 했으나 내내 다정하던 진우가 이번에는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절절 끓는 눈빛으로 가랑이를 노려보는 터에 안쪽이 꼭 움츠러들어 물이 왈칵 터졌다. 저 눈에 젖은 구멍이 고스란히 보일 걸 생각하니 이상야릇한 감정이 고조되었다. 

“흐으응, 진우야아…….”

“왜 그렇게 보채. 뭐 해 달라고. 응?”

“진우야아, 나, 그냥…… 아래에…….”

“아래? 형이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는데.”

“……마, 만져 줘…….”

정서원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더듬더듬 욕망을 털어놓는다. 빨갛게 물든 얼굴은 수치심보다 흥분이 더 짙어 보였다. 벌써 기대감에 움찔대는 아래를 보니 당장 뿌리까지 처박고 문지르고 싶은 욕구가 들끓었다. 조금 건드렸다고 스스로 맛있게 익을 줄도 아는 게 얼마나 기특한지, 다만 기껏 달궈 놓은 몸을 예고도 없이 찾아온 이상현과 공유해야 하는 사실에 짜증이 치밀 뿐이다. 

“아, 아파아…….” 

“아팠어? 미안해.”

서진우는 무심코 힘이 들어갔던 손을 풀어 주면서 다정히 웃어 주었다. 정서원이 멋모르고 우물우물 따라 웃는다. 표정이며 몸짓이며 하나하나 전부 그를 꾀어내려 드는 것 같았다. 전부 야하게만 보였다. 아랫도리에 묵직하게 피가 쏠려서, 울든 말든 당장 처박고 싶은 욕구가 그를 충동질했다. 그러나 오래도록 참았다고는 해도 정서원과 달리 서진우는 인내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지 대신 손가락을 하나둘 부드럽게 쑤셔 넣었다. 손가락 한두 개가 뭐가 그리 좋은지 내벽이 움찔대며 마구 조여 먹기 시작한다. 손을 움직이지 않는데도 스스로 구멍을 우물거리느라 찌걱거리는 소리마저 들렸다. 

으아앙…… 이제 굳이 붙잡지 않아도 스스로 다리를 활짝 벌리고 있는 정서원이 기분 좋게 울었다. 이상현이 그 고개를 틀어쥐더니 제게로 돌린다. 

“아까 내 손에 대고 자위한 걸로는 부족했어요? 진우한테는 다리 활짝 벌려 가면서 꼬시네?”

“아응, 그게에…… 흑, 아, 아아, 응……!”

몽롱하게 달아오른 정서원이 순종적인 낯으로 이상현을 바라본다. 무르익은 페로몬은 새끼를 밴 상태에서도 알파를 꾀어내려 들었다. 폐부에 스미는 것만으로 아랫도리가 뜨거워진다. 이상현은 흐르는 숨결 한 점까지 모조리 빨아들일 것처럼 입을 맞췄다. 안 돼요…… 식상한 만류를 한 입이 통째로 잡아먹혔다. 손에다 대고 자지는 비빌 수 있으면서 키스는 안 된다는 건 무슨 기준인지, 서진우의 앞이라고 내숭을 떠는 모습이 앙큼하기 짝이 없었다. 이상현은 시시한 질투에 시달리는 자신이 우스워 더 깊숙이, 농염하게 혀를 섞었다. 고개가 꺾인 채로 키스하는 정서원에게서 흐무러진 신음이 흘러나왔다.

“웅, 으응……!”

“우리 형 기분 좋아 보이네. 형 보지에서 홍수 났잖아.”

“으으응……! 응, 으응응.”

질척질척 소리가 나는데 혀를 섞느라 나는 소리인지 아래에서 나는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정서원은 제게로 쏟아지는 야릇한 쾌감에 마냥 허물어져서는 달뜬 숨을 헐떡였다. 한동안 페로몬도 잘 내주지 않던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체취가 쾌감을 더욱 불려 놓는 것 같았다. 아랫배가 움찔거리느라 세워 놓은 다리까지 떨렸다. 

눈을 감고 키스에 빠져들었던 정서원과 달리 내내 시선 한 번 뗀 적 없던 이상현이 입술을 떼고는 고개를 틀어잡는다. 억지로 맞춰진 시선은 몽롱하게 흐려졌다가 겨우 초점이 잡혔다. 

“기분 좋아요?”

“네에, 네…… 좋아요, 흑, 왜, 왜 안 해줬어요……?”

“안 해 줘서 서러웠어요? 귀엽기는.”

부은 입술을 손끝이 살살 건드린다. 정서원은 습관적으로 혀를 내밀어 이상현의 손가락을 핥았다. 입술이 보기 좋게 모이며 손끝을 쪽쪽 빨아 먹기 시작했다. 핥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개까지 움직여 구강성교 흉내를 내는 그를 바라보는 눈에 음심이 이글거린다. 뭐든 빠는 걸 좋아하는 입이니 자지를 물려 주고 목구멍까지 처박고 싶었다. 머리채를 휘어잡아 쑤셔 주면 눈물을 펑펑 흘려대며 좋아할 텐데, 손가락이나 빠는 처지가 퍽 안쓰러워졌다. 

그러나 서진우는 제게 부리던 애교를 다른 놈에게 부리는 걸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그가 허벅지를 꽉 움켜쥐며 가장 연한 속살을 짓누른다. 살짝 손톱까지 세워진 터라 통증과 쾌감이 동시에 터졌다. 정서원은 손가락을 빠는 것도 잊고 으앙 자지러지고 말았다.

“으앙! 아, 아아앙, 진우야아…… 아파, 흑……!”

“입이든 보지든 쑤실 것만 있으면 빨고 보는 습관 좀 고쳐. 그러다 아무 놈이나 붙잡고 다리 벌리겠어. 응?”

“아냐, 아냐아…… 나 안 그래, 아! 진우야, 으앙, 아아아!”

아래를 들쑤시는 손이 더욱 거세졌다. 물이 얼마나 흘렀는지 서진우가 손을 움직여 줄 때마다 물에 흠뻑 젖은 살갗을 치대는 소리가 났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민망함을 느낄 새도 없었다. 정서원은 서진우를 바라보려고 했지만 이상현이 고개를 틀어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앞뒤로 쏟아지는 페로몬에 정신만 아득해졌다. 버거운 쾌락이 짜릿짜릿하게 번져 갔다. 만지지도 않은 젖꼭지가 봉긋 세워지고 간질거려서 몸이 배배 꼬였다. 그러다 이상현의 팔뚝에 민감한 선단이 스쳤다. 순간 오르는 짜릿함에 가슴이 바싹 내밀어졌다. 이상현이 기가 찬 듯 웃는다.

“아까는 내 손에 대고 자지 비비더니 이젠 가슴도 비벼요? 우리 서원 씨 어떡하지, 정말.”

“하으, 앙, 가슴이, 간질, 간질거려서…… 으응, 아, 아아아!”

어느 한곳에 정신을 팔 수 없을 만큼 곳곳에서 쾌감이 터진다. 정서원은 서진우가 아래를 쑤셔 주는 손길에 고개를 젖히며 길게 흐느꼈다. 조여든 발끝이 애타게 시트를 긁어댔다. 

“아아앙, 아! 진우야아, 흑, 아, 기분 좋아아, 거기, 거기… 앙!”

“혼자서 여길 못 만져서 내 이름 불러 가면서 울었어?”

“으응, 응, 안 닿아서…… 진우가, 해 준 것처럼 만졌는데, 하나도 안 좋아서어…… 으아앙! 아, 으응!”

“응석받이 다 됐네, 서원 씨. 자위도 혼자 못해서 우리가 도와줘야 돼요?”

“흐앙앙…… 잘못했어요, 귀찮게 해서 죄송해요…… 아아앙! 아, 응!”

옷자락에 정액이 묻은 셔츠 하나만 입고 있는 정서원이 앓는 소리를 내 가며 흐느낀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가슴이 간질거리는지 이제는 비비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가슴을 만져대고 있다. 다리는 활짝 벌린 채 젖꼭지를 더듬거리는 모습은 퍽 가관이었다. 쾌락으로 흐릿해진 그의 귓가에 누구 것인지도 모를 웃음소리가 흘러들었다. 수치심도 없었다. 그냥, 더는 놀리지 말고 이 열감을 빨리 해소시켜 주었으면 싶었다.

“흐아앙…… 흑, 상현 씨이 저 가슴, 이상해요…… 흑, 아앙, 아!”

“왜요, 이것도 하나도 안 좋아요? 내가 만져 줄까?”

“네, 네에, 만져 주세요, 기분 좋게 해 주세요…… 아, 아아……!”

요즘 부쩍 뻐근하던 가슴에 성감이 차오르니 간질거리고 욱신거려 미칠 지경이었다. 어설프게 가슴을 만지작거리던 손이 이상현에게 붙잡혀 떨어졌다. 그는 곧장 셔츠를 걷어 올리더니 정액이 묻은 끝자락을 벌어진 입술에다 쑤셔 넣었다. 서진우의 손길에 기분 좋게 신음하던 정서원이 울먹거리며 이상현을 바라본다. 

“만져 달라면서요. 기분 좋게 해 줄 테니까 잘 물고 있어요.”

“으응……!”

“맛없어요? 원래 그래, 정액 맛있다고 빨아 먹는 당신이 이상한 거예요.”

앙다문 입술에 셔츠가 물려지니 하얗고 발긋한 속살이 드러난다. 이상현은 그를 제 품에 기대게 하며 봉긋 솟은 꼭지를 느긋하게 만져 주었다. 내내 애타기만 하던 온몸에 짜릿한 해소감이 내달렸다. 가슴이 바싹 세워지고 질척질척한 쾌감이 달리는 허리는 잘게 떨렸다. 위아래로 너무나 황홀해서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 같았다.

“아으응, 응, 응으……!”

정서원은 얼마 못 가 사정으로 다다른 절정과는 비교가 안 되는 가파른 절정에 떨어졌다. 눈물이 줄줄 흐르고 온몸이 달달 떨렸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서진우는 아래를 쑤시던 손을 그에게로 내보이며 웃었다. 하얀 손바닥에 투명한 웅덩이가 고여 있다. 몽롱한 중에도 창피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거 보여? 난 형이 오줌이라도 싼 줄 알았어.”

“흑, 진우 손, 더럽게 해서, 미안해애…….”

“혼내는 거 아니야, 형. 예뻐서 그래. 응?”

설득력이라고는 하나 없는 위로였지만 정서원은 훌쩍훌쩍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운이 겨우 가라앉고 나니 이제 더 하고 싶은 게 생긴다. 눈물에 푹 젖은 눈동자가 제 앞에 앉은 서진우의 가랑이에 꽂혔다. 그는 몹시 맛있는 거라도 보는 듯 시선 한 번 떼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어댔다. 그 시선을 뻔히 알 텐데 서진우는 아무 말도 해 주지 않는다. 울먹거리는 눈이 결국엔 이상현을 향했다. 정서원은 서러움이라도 토로하듯 흐느꼈다.

“왜 그래요, 서원 씨. 더 하고 싶어?”

“……넣, 으면, 안 되는 거예요? 넣고 싶은데, 넣어 주면 안 돼요?”

“그럼 진우한테 허락받아 볼래요? ‘상현 씨가 서원이 보지에 박는 거 허락해 달라’고 졸라 봐요. 저 새끼 당신 말이라면 껌뻑 죽잖아.”

“흑…….”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보아하니 결코 허락해 줄 것 같지 않았다. 앞섶이 부푼 게 보이는데, 손에 가득 차는 걸 붙잡고 얼굴에 비비고 입술로 물고…… 저기 고인 페로몬은 또 얼마나 짙을지, 가장 깊숙한 곳까지 받아들이고 싶었다. 상상만 해도 좋아서 아랫배가 근질거린다. 그러나 도저히 맨 정신으로 조를 수가 없었다. 

“하고 싶어? 못 참겠어, 형?”

“아니, 아니…… 괜찮아, 참을 수 있어…….”

잘못 대답했다가 또 무서운 말을 들을까 무섭다. 정서원은 떨리는 입술을 꾹 깨물고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제는 아까처럼 정말 못 견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자 이상현이 퍽 기특하다는 듯 젖은 얼굴을 쓸어 주며 입을 맞춘다. “참을 줄도 알고 이제 다 컸네, 서원 씨.” 안 그래도 서러운데, 조롱하는 말에 괜히 눈물이 차올랐다. 이상현은 말투에 어린 웃음기를 조금도 감추지 않으면서 다정한 척 위로를 건넸다.

“아…… 울어요? 다음에 서원 씨 좋아하는 사과타르트 사다 줄 테니까 울지 마요. 그거 잘 먹었다며.”

“흑, 흐으. 됐어요, 싫어요, 애도 아닌데…….”

“왜 괜히 울리고 그래. 형, 괜찮아. 응? 잘 참았잖아. 너무 착해, 우리 형.”

“흐윽, 흑…… 흐아앙…….”

진우한테까지 애 취급당하는 게 서럽다. 정서원은 모처럼 오랫동안 참은 욕구를 해소했으면서도 아주 서럽고 슬퍼서 한참을 울었다. 푹 젖은 아래와 봉긋 솟은 가슴 따위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펑펑 우는 모습은 안쓰럽기보다는 눈요깃감에 가까웠다. 덕분에 또 진정성 없는 위로만 쏟아져서 그는 한동안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 * *

‘앞으로는 나한테 말해. 응? 미련하게 참지 말고.’

서진우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닦아 주며 달래 주었지만 순순히 따르기에는 부끄러운 감이 있는 말이었다. 실컷 놀린 후에 나온 말이라 괜스레 골이 나기도 했다. ‘서진우가 싫으면 나한테 부탁해도 돼요.’ 설운 딸꾹질만 하는 그에게 이상현은 다정하게 속삭이며 서진우가 기껏 내려놓은 셔츠를 걷고 배를 만져댔었다. 서진우의 심기를 건드릴까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말다툼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마주칠 때마다 신경전을 펼치던 둘에게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평화였다. 

그날 추태를 부린 이후로 정서원은 한동안 얌전하게 지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갖고 놀지만 않는다면 그럭저럭 조신한 흉내를 낼 수도 있었다. 그래 봤자 몇 달간 이상현이 공들이고 서진우가 길들였던 몸은 모처럼 개심하려는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아…… 어떡하지?’

서진우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던 정서원은 아직 캄캄한 밤중에 눈을 떴다. 소변이 마려웠다. 다리가 배배 꼬이고 아랫배가 묵직했다. 오줌보를 꽉 조이는 조급함에 성기마저 얼얼할 지경이다. 감금당해 있던 동안은 잠을 잘 때도 묶여 있는 신세였던지라 모진 말을 들을 걸 감수하고 서진우를 깨우거나 침대 아래 배변 패드를 이용해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둘 다 선택지에 없다.

‘혼자서 못, 싸는데…….’

요즘 아기집이 커지면서 오줌이 자주 마렵기는 했지만 밤중에 깬 적은 없었다. 매일 밤마다 잠들기 전에 꼬박꼬박 오줌을 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진우 덕분이었다. 그런데 밤중에 갑자기 이러니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모르겠다. 한계까지 차오른 요의 때문에 초조하기까지 하다. 눈 꾹 감고 진우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다가도 곤히 잠든 얼굴을 보니 감히 깨울 수가 없었다. 지금은 그때처럼 묶여 있는 처지도 아닌데, 세 살배기 애처럼 화장실을 같이 가 달라 부탁하는 것도 민망스러웠다. 서진우의 품에서 한참 꼼지락거리던 그가 결국 조심조심 침대에서 빠져나온다. 더 미적거리다가는 또 이불보에 실례를 할 것 같았다. 서진우의 말을 무시하고 두 번째로 실수를 저지른 날, 배변 훈련을 다시 해야겠다며 요도에다 기다란 막대가 꽂혔던 충격이 아직도 생생했다.

서원이 나름대로 몰래 빠져나왔지만 서진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설핏 잠에서 깨었다. 캥거루 새끼라도 되는 것처럼 늘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던 정서원이 없었다. 더듬거려도 무엇 하나 잡히지 않는 빈자리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다. 어른거리던 잠기운이 단번에 달아났다. 서진우는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머리맡 간접 조명만 흘러야 할 방에 욕실에서 새어 나온 불빛이 유독 환했다. 한숨이 절로 샌다.

“벌써 애 하나 키우는 기분이네.”

침대에서 일어난 서진우가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물을 틀어 놓았는지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가 난다. 욕실 앞에 선 그는 문을 두드리려다 이내 관두고 조용히 문을 열었다. 상의 한 장만 걸친 정서원이 물을 틀어 놓은 욕조에 주저앉아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가지런히 개어진 바지와 속옷은 욕조 맡에 놓여 있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 가며 성기를 붙잡는 정서원은 서진우가 온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흑…… 난, 왜, 혼자 오줌도 못, 싸고…….”

딴딴해진 성기를 붙잡은 채 한 번 싸 보겠다고 낑낑거리는 모습이 퍽 안타깝다. 나름대로 형 노릇을 하던 정서원이 이제는 어른스러운 척도 못하는 처지가 된 것도 퍽 애틋했다. 자라 오기를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 온 탓인지 외부 자극에 몹시 취약한 그를 보고 있자면 기묘한 의무감마저 든다. 서진우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유약한 정서원을 애정 어린 눈길로 한참 지켜보았다. 

똑똑, 이미 열린 문을 두드리자 발을 동동 구르던 정서원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든다. 흠뻑 젖은 눈에 또 그렁그렁 눈물방울이 맺힌다. 우습게도 몹시 안도한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야. 자다 말고 나와선.”

“흑, 흐으. 진우야, 나…….”

“야밤에 샤워라도 하고 싶었어?”

수돗물을 잠그고 보니 욕조에 찬 기운이 가득하다. 가뜩이나 몸도 안 좋은데 찬물에 몸을 담그는 건 무슨 짓인지. 혼을 내야 하는데 양팔을 뻗어 안아 달라고 조르는 모습을 보자니 그럴 맘이 들지 않는다. 서진우는 마른 몸을 가뿐히 안아 들어 찬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진우야, 흑, 미안해…… 이제는 습관처럼 굳어진 무의미한 사과가 서진우의 품으로 쏟아진다. 진짜 미안해하는 경우보다는 괜찮다며 달래 주는 서진우에게 위안을 받으려는 의도가 짙은 말이기도 했다. 서진우는 정서원이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

“우리 형이 뭐가 서러워서 이렇게 울까. 응?”

“흐윽, 흑. 흐앙…… 진우야.”

달래 주는 말이 다정할수록 딸꾹질과 함께 흐느낌이 커진다. 이 순간만큼은 요의도 잊고 안겨드는 그를 서진우가 몹시 다정히 안아 준다. 푹 수그린 고개에다 뽀뽀해 주며 느긋하게 등을 쓸어 주다 보면 어느덧 서러운 흐느낌이 잦아들기 시작한다. 옷이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래 주던 서진우가 제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 정서원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러자 소심한 손이 곧장 옷자락을 붙들었다. 

“다 젖었잖아. 닦아야지, 형.”

“응, 응…….”

서진우가 목욕 타월을 한 장 꺼내와 축축한 하체를 꼼꼼히 닦아 주기 시작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정서원은 서진우의 옷자락을 소심하게 그러쥐고 있었다. 불편할 법도 한데 서진우는 내색하지 않고 성가신 작업을 이어 나갔다.

“찬물에 오래 있으면 못써. 저번에 상담 받으면서 다 들었잖아.”

“흑, 으응. 미안…….”

“나쁜 짓 해 놓고 사과만 잘하면 그만이야, 형은?”

“아, 아니…… 잘, 못했어…… 안 그럴게.”

폭삭 기가 죽은 꼴을 보자니 더 다그칠 생각도 안 든다. 서진우는 우물쭈물하는 몸을 끌어안고 토닥여 주었다. 

“왜 안 자고 나와 있었어. 걱정했잖아.”

“갑자기, 화장실 가고 싶어져서…… 근데, 흑, 안 나와서…….”

“나 깨우지. 응? 형 혼자서는 쉬 못 하잖아.”

“자는데, 귀찮잖아…… 진우야.”

“하나도 안 귀찮으니까 그런 말 하지 마.”

도저히 독립된 인격체를 대하는 태도라 볼 수 없었으나 다정하게 눈을 맞추고, 머리카락을 넘겨 주며, 동그란 이마에다 쪽쪽 입을 맞춰 주는 애정에 정서원은 매번 깜빡 넘어갔다. 이젠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일이기도 했다. 울음기와는 다른 홍조를 띄운 정서원이 고개를 들어 다른 곳에다 키스를 해 달라고 조른다. 서진우는 그 애원을 너그럽게 들어주었다. 온순한 입술에다 조심스레 입을 겹치던 그가 이마를 살짝 맞대며 다시 묻는다.

“그래서, 쉬야 잘했어?”

“아니, 아니…… 안 나와서 못했어.”

“그럼 내가 도와줘야겠네. 그렇게 해 줘?”

“응응…… 도와줘, 못 싸겠어, 진우야…….”

임신한 후로는 무엇이든 다정히 들어주던 서진우는 이번에도 역시 거절하지 않고 정서원을 변기 앞으로 이끌었다. 정서원은 이제 스스로 성기를 붙잡는 시늉도 않았다. 대신 서진우가 커다란 손으로 붙잡아 방향을 잡아주었다. “많이 마려웠어?” 작게 훌쩍거리던 정서원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앞으로는 참지 마. 배 아프잖아. 응?”

“으응…….”

“착하네. 자, 쉬하자. 쉬.”

그 목소리에 영영 닫혀 있을 것만 같던 요도가 열리며 오줌 줄기가 쫄쫄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품에 얌전히 안겨 있는 정서원에게서 신음 같은 한숨이 새었다. 아주 황홀한 해방감이라도 느끼는지 움찔움찔 몸이 떨리기도 했다. 서진우는 발긋한 귓가에다 입을 맞춰 주며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많이 나온다, 그치.”

“하, 하지 마…….”

“부끄러워?”

“……응.”

“알았어, 안 할게.”

다소 놀리듯 웃은 그가 오줌 줄기가 멎은 성기를 붙잡고 티슈로 정성껏 닦아 준다. 정서원은 이미 다 내보였음에도 뭐가 부끄러운지 바로 변기 물을 내리며 눈치를 보았다. 서진우는 그 수줍음을 귀엽게 여겨 못 본 척해 주었다. 

손을 닦는 동안에도 떨어지려 하지 않던 정서원을 서진우가 부드럽게 안아 준다. 예전에 비해 더 마른 몸이다. 그런 주제에 가슴에 맞닿는 살결은 더 부드러워지고 봉긋해졌다. 벌써 엄마가 될 준비를 하는 정서원이 퍽 기특했다. 품에다 고개를 폭 묻어 가마만 간신히 보이는 그를 끌어안고 내키는 대로 쪽쪽거리던 서진우가 허리를 숙여 눈을 맞춘다.

“앞으론 괜히 참지 말고 나 깨워야 돼. 알았지?”

“응, 알았어…….”

“말만 잘하지. 또.”

“아냐, 아냐…… 꼭 깨울게. 진우야.”

결연함마저 보이는 대답이었으나 그래 봤자 별 신뢰성은 없었다. 눈꼬리를 접어 웃은 서진우가 마지못해 져 준다는 듯 한마디를 덧붙인다.

“정 안 되겠으면 기저귀 차자. 그럼 형도 안 참아도 되고, 나도 안심되고, 좋네.”

“……으, 응.”

“아니면 예전처럼 배변 패드 깔아 줄까?”

“아니! 아니야…… 다음에는 꼭 깨울게. 고집 안 부릴게.”

다급하게 대답한 정서원이 소심하게 손을 뻗어 서진우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품으로 파고들며 “말 잘 들을 테니까 화내지 마…….” 우물쭈물 애원을 늘어놓는 그를 서진우가 가뿐히 안아 든다. 속옷과 하의는 그대로 바닥에 방치한 채 정서원을 침대로 옮긴 서진우는 조심스레 이불을 덮어 주었다. 애를 재우듯 배를 도닥거리는 서진우를 정서원이 가물거리는 눈으로 바라본다. 

“미안, 나 때문에 깬 거지…….”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얼른 자. 졸리잖아.”

“응…….”

내내 아랫배를 괴롭히던 불편한 속박감에서 해방된 몸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모처럼 아무것도 입지 않은 맨살에 닿는 이불의 감촉도 포근하기만 했다. 팔베개를 해 주며 잘 자라고 보듬어 주는 서진우도 좋았다. 정서원은 몸을 휘감는 나른함을 좀 더 취하고 싶었지만, 임신을 하며 더 약해진 탓에 금세 잠이 들고 말았다.

* * *

밤중에 한 번 일어나 잠을 설친 탓인지 정서원은 아침 늦게까지 눈을 뜨지 못했다. 매일 많든 적든 눈물 한 번씩은 꼭 흘려 속을 썩이는 주제에 자는 얼굴만큼은 참 순하다. 예전보다 더 쉽게 힘들어하고 우는 것은 그간의 교육과 우울증의 산물 같았다. 원래도 그리 단단한 기질은 아닌 그가 무사히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새삼스러운 걱정이 들었다.

커튼 사이로 빛줄기가 새어 든다. 서진우는 손으로 그늘막을 만들어 주며 세상모르고 잠든 얼굴에다 멋대로 입을 맞춰댔다. 입술을 맞댄 채 입 속까지 파고들었으나 그래도 정서원은 깨지 않았다. 서진우는 한참을 더 부적절한 욕망을 채우다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 같아서는 부둥켜안고 한낮까지 보내고 싶었지만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라 미적거릴 수가 없었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밀린 일을 보던 서진우는 서재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 정서원이 졸음이 덜 가신 얼굴로 서 있다. 눈을 뜨자마자 찾아왔는지 한밤중에 벗어 놓은 차림 그대로였다. 가랑이를 덮은 셔츠 아래로 말랑한 허벅다리와 아직 영글지 않은 성기가 빼꼼 엿보인다. 조금만 문질러 주면 금세 빨갛게 여물어서는 찔끔찔끔 물을 토해 내는 물건이었다. 빈말로도 싫다는 말을 못하는 정서원은 유연한 다리나 한껏 끌어안은 채 더 만져 달라 조르기나 하리라.

진부한 과거 회상은 아니었다. 당장 엎어뜨리고 나긋나긋한 속살로 파고들고 싶었다. 자는 얼굴을 반찬 삼는 것도 지겨웠다. 시커먼 욕심을 눈웃음으로 감춘 서진우가 정서원에게 다가서며 어깨를 감싸 안는다. 그는 한 손에 잡히는 어깨를 아프지 않게 틀어잡았다.

“일어났어? 배고프지, 이모님이 형 좋아하는 미역국 해 놓으셨어.”

“으응, 맛있겠다. 진우는, 밥 먹었어?”

“형 기다렸지. 밥 먹으러 갈까? 아님 쉬야 하고 싶어?”

“……아아니. 그냥, 밥부터…….”

“우리 형 배 많이 고팠나 보네.”

식욕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서진우는 아주 기특해하며 얼굴 곳곳에 뽀뽀를 해댔다. 그러더니 정서원을 안아 들어 부엌으로 향한다. “내가 걸을 수 있는데…….” 소심한 항변은 맨 엉덩이를 토닥거리는 손길에 다물렸다. 그제야 바지를 깜빡한 걸 깨달은 탓이다. 새삼 부끄럽다기보다는 허전함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나체 생활에 익숙해진 사실이 다소 충격이었다.

얌전해진 그를 식탁 의자에 앉혀 놓은 서진우는 고용인이 만든 갈비찜과 미역국, 식찬 몇 가지를 정서원의 앞에다 늘어놓았다. 당연하게도 그중에 수저는 없었다. 대신 살코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발라 입에 넣어 주며 우물거리는 얼굴만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다.

“맛있어?”

“응, 맛있어.”

오랜만에 식욕을 보이니 먹여 주는 손길이 바빠진다. 무나물도 한 입, 호박전도 한 입 먹이자 모처럼 잘 받아먹는다. 그렇게 마냥 잘 먹을 것만 같더니만 미역국은 입에 대자마자 역하다며 도리질을 쳤다. 얼마 전에는 드물게 잘 먹던 메뉴였다. 서진우는 곧장 국그릇을 치웠으나 한 번 입덧이 오르고 나니 속이 역한지 정서원은 다시 식욕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그대로 식사를 끝내고 후식으로 과일을 깎아 준 게 아침의 전부였다.

정서원은 오렌지와 키위가 담긴 그릇을 받고도 뒷정리를 하는 서진우만 따라다녔다. 자기 때문에 제대로 식사를 못한 그에게 미안한 모양이었다. 뒤꽁무니에 따라붙는 몸짓이 귀여워 알고도 모른 척하던 서진우가 결국에는 한마디를 한다.

“앉아 있어. 오래 서 있으면 힘들잖아.”

“그 정도는 아닌데…….”

“내가 걱정돼서 그래.”

그를 소파에 앉혀 놓은 서진우가 다시 자리를 비운다. 정서원은 마지못해 책을 펼쳐 들었으나 식사 때마다 유난을 떠는 스스로가 답답하여 한 줄도 읽히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우가 자신을 귀찮아할 것 같았다. 먹을 때마다 이 모양이니 귀찮아하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관심 없는 활자를 멀거니 바라보는 그에게로 정리를 끝마친 서진우가 다가온다. 

“아직도 속이 안 좋아? 힘들면 검진 다음 주로 미룰까?”

“아냐. 나 괜찮아, 진우야.”

“힘들면 말해. 응? 맨날 참지만 말고.”

“…….”

정서원이 시무룩하게 입을 다물자 영양제를 챙겨 주던 서진우가 걱정스러운 듯 이마를 쓸어 준다.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고운 손가락에 걸려 흐트러진다. 서진우는 꼭 위로해 주는 것처럼 동그란 이마에다 키스했다.

“식욕이 안 돌아와서 걱정이네. 임신하면 먹고 싶은 게 많아진다는데 형은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미안…… 나, 왜 이러지…….”

“형이 왜 미안해. 우리 애가 까다로워서 그런 거지. 사과하지 마.”

“그치만, 임신해도 잘 지내는 사람도 많은데, 나만…….”

정서원 역시 입덧도 없고 불편한 곳도 없어 임신 전과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낸다는 사람들이 몹시 부러웠다. 입덧이 심한 그는 끼니때 많이 먹지 못해 틈틈이 자주 먹어야 하는 데다, 툭하면 속이 불편했고, 요즘은 가슴이 나오면서 쑤시고 아팠다. 갑자기 눈물이 나는 경우도 많아졌다. 하나같이 서진우를 성가시게 만드는 단점뿐이었다. 열거할수록 불안이 치민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진우가 저를 귀찮아할 것 같았다.

떨리는 입술을 꾹 앙다무느라 뺨이 도톰하게 불렀다. 울기 직전에나 보이는 표정이었다. 서진우는 책만 꼭 붙들고 있는 손을 부드럽게 감쌌다.

“왜 또, 응? 뭐가 속상해서 그래.”

“아니, 아니…… 나 괜찮아. 정말 괜찮은데.”

말을 이어 나가는데 갑작스레 눈물이 돌았다. 감출 새도 없이 울음기가 목소리에 진득하게 묻어 나왔다. 진우가 귀찮아할 텐데. 정서원은 급히 입을 다물고는 흐르는 눈물을 참으려 안간힘을 썼다. 얼굴을 가리고 싶었지만 서진우가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울지 마. 형이 이렇게 울면 내가 속상하잖아.” 

물러나려는 그를 끌어안은 서진우가 나긋나긋 다독여 주기 시작한다. 웅크린 등을 쓸어 줄 때마다 훌쩍훌쩍 서러운 흐느낌이 서진우의 품으로 떨어졌다. 정서원은 따뜻한 품에 안긴 채 어떻게든 눈물을 참으려고 애를 썼다. 숨을 참아 보기도 하고 다른 일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서진우가 너무 다정하여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성가시게 만들긴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매번 성가시게 만드는 스스로가 한심하기만 했다. 그런데도 질리지 않고 달래 주는 서진우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동시에 언제 질릴지 걱정하느라 숨이 턱턱 막혔다. 

정서원은 끝없는 구렁을 파헤치다 한참 뒤에나 눈물을 그쳤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이 간간이 딸꾹질을 터뜨리느라 작게 흔들렸다. 저항이 멎은 고개를 올려 눈물을 닦아 주는 서진우에게서 다정함이 흘러넘친다. 여전히 부드러운 표정이라 안심이 되는 한편,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겨우 울음을 그친 것 같던 정서원이 또 딸꾹질을 터뜨린다. 그에게서 투정 같은 불안이 흘러나왔다.

“나, 울기만 하고……. 화장실도, 혼자, 못 가고, 밥도, 혼자, 흑, 못 먹고……. 나 귀찮지, 성가시지, 질, 리지…….”

흐르는 눈물을 닦아 준 서진우가 눈을 맞추고 속삭인다.

“하나도 안 귀찮아. 맨날 봐도 예뻐.”

“진, 짜? 나 하나도, 안, 안 귀찮아?”

“응. 진짜.”

유리알처럼 예쁜 눈동자가 지긋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다정할수록 더 간절해져 불안을 그저 삼켜 낼 수가 없었다. 어차피 지금 서진우가 다정한 건 배 속의 애 때문이다. 온전한 그의 몫이 아니었다. 큰 손에 붙잡힌 얼굴이 애처럼 펑펑 울어대기 시작한다. 

“거짓말, 흑! 귀찮, 으면서, 애, 아니었음, 나, 나 버렸을, 거잖아…….”

“형 버린다고 누가 그래.”

“몰라, 싫어어…… 흑, 흐앙. 나 버리지 마…… 애 잘, 낳을게에…….”

“안 버린다니까. 응?”

서진우는 정성껏 눈물을 닦아 주며 하잘것없는 칭얼거림에도 대답을 달아 주었다. 원래 눈물이 많긴 했지만 임신을 하고 나서 더 많아졌다. 이러다 탈수 증세라도 나타나면 어쩌나 걱정이 될 지경이다. 훌쩍이는 얼굴을 붙잡고 울음기 잔뜩 묻은 곳곳에다 입을 맞추자 정서원이 눈을 내리감고 얌전히 기댄다. 한참 운 얼굴이 뜨거웠다.

“그만 울어. 이러다 예쁜 얼굴 다 붓겠네.”

“흑, 흐으……. 미안, 해애…….”

“사과도 그만하고. 자꾸 그러면 화낼 거야.”

“미…… 으으응. 알았어…….”

옷자락이 약간 묵직해져서 보니 정서원이 소심하게 그러쥐고 있다. 내버려 두자 허리까지 감싸 안으며 품으로 파고들었다. 서진우는 제 품에서 할딱거리는 몸을 천천히 쓸어 주었다.

“검진 다녀오고 나서 오랜만에 데이트할까?”

정서원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완전히 울음이 멎지 않은 몸은 딸꾹질을 할 때마다 움찔움찔 작게 튀었다. 그에게로 푹 매달려 있느라 소파 옆으로 맨다리가 길게 뻗어 있다. 서진우는 엉덩이까지 걷힌 셔츠를 내려 주고는 부둥켜안은 고개에다 입을 맞췄다. 부디 햇볕을 쬐고 기운을 좀 차리면 좋겠다.

* * *

예약 시간이 다가온다. 손수 옷을 골라 입힌 서진우는 정서원을 거울 앞에 세워 놓고 ‘여기에 하네스도 매면 예쁘겠다.’면서 썩 건전하지 못한 욕심을 밀어처럼 속삭였다. 첫 검진 때 말도 없이 사라졌던 정서원은 어색하게 따라 웃기만 했다. 아마 어느 날 갑자기 가슴 줄을 매자며 들고 와도 그는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발은 안 불편해?”

“응, 괜찮아.”

이제 막 안정기에 접어드는 단계에 처음 하는 검진이다. 얼마 전에는 유산방지주사까지 맞혔던 터라 걱정이 앞섰다. 초기에는 흔히 맞는다지만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니 안심이 되지 않는다. 신발까지 신겨 준 뒤 현관을 나서자 벽에 기대어 있던 이상현이 보였다. 그는 서진우를 자연스레 무시하고 정서원의 앞으로 다가왔다. 

“몸은 어때요. 괜찮아요?”

“그냥, 괜찮아요…….”

빙글빙글 웃는 낯이 정서원을 삭 훑는다. 그가 이럴 때마다 정서원은 옷을 입고 있어도 발가벗은 기분이 들었다. 서진우의 뒤로 슬쩍 숨자 잡힌 손에 약간 힘이 주어졌다.

“웬일이야?”

“서원 씨 검진 날이잖아. 당연히 같이 가야지.”

“당연히?”

“한 번도 같이 못 가 줬는데 서원 씨가 얼마나 서운했겠어.”

안 그래요, 서원 씨? 이상현이 예쁘게 눈웃음을 지었다. 그 눈웃음이 서진우를 닮았다는 팔자 좋은 생각이나 하고 있던 정서원은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멀거니 있는 그를 서진우가 품에다 숨긴다. 이상현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근데, 울었어요? 눈이 빨가네.”

“아, 아뇨…….”

“아니긴. 뻔한 거짓말을 왜 해요?”

“알면 네가 뭘 어쩌게.”

“너 좋다고 따라갔는데 힘들어하니까 맘이 아파서 그렇지, 진우야.”

온찜질과 냉찜질을 차례로 받아 붓지는 않았으나 서진우가 없는 동안 실컷 울려 왔던 이상현이 운 얼굴 하나 구분하지 못할 리 없었다. 이상현은 발그스름한 눈가를 문질러 주며 “힘들면 그냥 나한테 오라니까요.”하고 시답잖은 위로를 건넸다. 그 손을 서진우가 쳐낸다. 가둔 팔에 힘이 들어갔다. 기만당한 흉내를 내는 남자와 기만당한 남자 사이에 오랜만에 사늘한 기류가 흘렀다. 정서원은 서진우의 품에서 초조하게 시선을 굴렸다. 

“울 정도로 괴롭히면 앞으로는 아래층으로 와요. 위로해 줄게.”

“아뇨, 아뇨…… 진우 안 그래요. 안 괴롭혀요.”

“위로는 무슨. 헛짓거리 하려는 수작이니까 귀담아듣지 마.”

“순수한 걱정을 그렇게 매도하면 나 상처받아, 진우야.”

분위기가 냉랭할수록 저지른 죄가 있는 정서원만 초조해진다. 매를 앞둔 어린애처럼 도망가고 싶은 맘이 간절해졌다. 쩔쩔매며 두 사람을 바라보던 그가 머뭇머뭇 아랫배에 손을 얹었다. 굳이 아픈 체를 하지 않아도 시선이 쏠렸다. 

“왜 그래요? 배 아파요?”

“속 쓰려? 취소하고 그냥 집에 있을까?”

“안, 싸우면, 안 돼요……? 저, 애가, 노, 놀라는데…….”

서진우와 이상현이 나란히 입을 다물었다. 나름대로 영악한 짓을 해 보았던 정서원은 불안하게 시선을 굴리다가 결국 내리깔았다. 별안간 이상현이 웃음을 터뜨렸고 서진우에게서는 한숨이 샜다.

“애가 놀랐어? 응? 그랬어?”

“으, 응…….”

“미치겠네, 진짜.”

서진우는 얼굴을 감싸더니 볼이 눌리며 벌어진 입술에다 몇 번이나 입을 맞췄다. 얼떨떨했지만 눈매를 곱게 접은 채 웃는 서진우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 보여서 얌전히 얼굴을 내주었다. 그 뒤로 이상현이 바싹 다가왔다. 다툴 때를 빼고는 서진우 근처에도 붙지 않는 사람이 정서원을 사이에 끼고는 아주 가까이에 다가붙는다. 아랫배에 올라앉은 손등으로 그의 손이 겹쳐졌다. 아, 이걸 서진우만 끼고 산다니 아까워 죽겠네…… 귓바퀴에 숨결이 흘렀다. 밀착된 하반신에 결코 벨트는 아닐 묵직한 무언가가 닿았다. 움찔하며 서진우에게 매달리자 귓바퀴를 느긋하게 훑은 혀가 구멍까지 파고든다. 솜털이 곤두섰다. 검진은 됐으니 기분 좋은 거나 하러 가자는 소리가 나올 것 같아 당장 고개를 털었다. 

“병원, 병원 가요. 응?”

임신과 관련된 모든 것에 단 한 번도 적극적이지 않았던 정서원이 보인 최초의 절박함이었다.

병원까지는 이상현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뒷좌석에 둘을 태운 이상현이 ‘기사 노릇은 서원 씨한테만 해 준다고 했는데.’라고 말하며 눈가를 찡그리며 웃었다. 무슨 소리인지 곰곰이 짚어 보던 정서원은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어 속이 거북해졌다. 언젠가 둘이 몹쓸 짓을 하고 있을 때 서진우에게 전화가 온 적이 있었는데, 그 후에 이상현이 그를 달래 주느라 했던 말 중 하나였다. 서진우와 함께 있을 때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 * *

“상현이 너는 왜 왔어?”

“서원 씨랑 좀 긴밀한 관계라. 아, 물론 우리 진우도.”

능청을 떤 이상현은 외부인은 나가 보라는 말마저 웃어넘겼다. 결국 정서원에게 마지못한 허락을 받아낸 그는 채혈 검사를 끝내고 초음파 검사를 할 때까지 곁에 있었다. 이제는 환복할 필요 없이 바지를 조금 내리고 셔츠를 걷는 것만으로 검사가 가능했다. 이상현은 어두운 진료실에서 배를 홀랑 내놓고 검사를 받는 정서원을 묘한 열기를 띤 눈으로 한참 바라보았다. 

지루한 검사와 상담을 끝마친 후 다시 차에 올랐다. 이제 슬슬 안정기에 접어들어 안심해도 될 것 같다는 말이 나온 터라 서진우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초음파 사진 몇 장을 정서원에게 보여 주며 웃었다.

“이제 눈이랑 코도 보이네. 둘 다 예뻐.”

“…….”

그리고 정서원은 약간 충격을 받았다. 지점토를 뭉개 놓은 것 같은데 예쁘다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진우의 심미안은 이런 것일까? 입만 열면 예쁘다는 말을 늘어놓던 그의 눈에 자신이 이렇게 보였던 것이라 생각하니 당황스러웠다. 정서원은 오늘 밤 서진우가 태교 일기에 붙여 놓을 사진을 보며 말을 고르다가 “응.” 무난한 대답을 내놓았다.

차는 인근 백화점 주차장에 세워졌다. 그동안 아기 용품 하나 사 오지 않더라니 안정되었다는 말에 새삼 아빠 놀이가 하고 싶어졌나 보다. 결국 양쪽에 알파 하나씩 끼고 유아 용품점에 들어서자 괜히 시선이 쏠리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아빠로 의심되는 알파가 둘이라는 생각도 않을 텐데, 정서원은 혼자 찔려서 저보다 덩치가 큰 둘 사이에 숨었다. 

“이거 예쁘다, 형. 애기들 발이 이렇게 작은가 봐.”

“응.”

“애착 인형이란 게 있대요. 미리 사 놓으면 좋겠죠?”

“네.”

솔직히 관심 없었다. 그냥 빨리 돌아가고 싶어 무조건 긍정만 하자 카트에 물건이 잔뜩 쌓였다. 신발, 옷, 모자, 애착 인형, 공갈젖꼭지, 아이용 수저…… 손에 닿는 건 다 담는 것 같다. 애가 나오는 건 앞으로 몇 달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설레발이 심했다. 정서원은 거대 토끼 인형의 발바닥이나 만지작거리며 전혀 동조할 수 없는 둘의 기대에서 한 발짝 물러났다. 각자 꿈꾸는 미래가 다른지 서진우는 유모차 앞에 서 있고 이상현은 카시트 앞에 서 있다. 이 애는 서진우가 고른 유모차에 앉게 될까, 이상현이 고른 카시트에 앉게 될까. 왠지 초조해졌다. 입술만 말아 물고 있는데 문득 누군가 옆으로 다가붙는다. 고개를 들자 웬 남자가 그를 향해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뇨, 괜찮아요.”

“아까부터 봤는데, 불편해 보이셔서요. 혹시 곤란한 상황인가요?”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서원은 달갑지 않은 호의가 불편하여 묵묵히 고개만 저었다. 그러자 남자가 명함을 건네주었다. 

“……?”

“혹시 곤란한 상황이면 연락하세요. 도와드릴게요.”

“아뇨, 이럴 필요는…….”

“사적인 관심도 있어서요. 맘에 안 드시면 버리셔도 됩니다.”

“…….”

이걸 안 받으면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 같다. 정서원은 머뭇거리다가 명함을 받았다.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명함에는 이름부터 연락처, 회사 직함까지 적혀 있었지만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디자인 문제라기보다는 보는 사람의 문제였다. 기울일 때마다 음각된 금박이 번쩍거리는 거나 구경하던 정서원은 문득 어깨에 팔이 둘러지는 걸 느꼈다. 팔목에도 손이 감겼다. 언제 온 건지 서진우와 이상현이 양옆에 서 있었다. 

“무슨 볼일입니까? 남의 애인한테.”

“꼭, 연락하셨으면 좋겠네요.”

남자는 사납게 묻는 말에 눈길도 주지 않고 오로지 정서원에게만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남겨진 그만 난감하게 됐다. 서진우와 이상현은 웃고 있었지만 못내 사나운 기운이 어른거렸다. 눈치가 없어 서진우를 여러 번 화나게 만들고, 돈 많은 연상 애인 노릇을 한답시고 너그럽게 굴던 이상현에게도 숱한 ‘벌’을 받았던지라 모를 수가 없었다. 정서원은 지루하던 것도 잊고 금세 의기소침해졌다.

“정말, 한눈을 팔 수가 없네. 우리 형은.”

“미, 미안…….”

“저 새끼랑 무슨 얘기했어요?”

“별말 안 했는데…….”

“그러니까. 별말, 뭐.”

정말 별말이 아니라 간추리기도 어려운데 자꾸 대답을 재촉한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복숭아 플랫치노 맞으시죠? 4900원입니다. 음료 안내는 진동벨로 해 드릴게요.’정도의 대화였다. 지극히 평범하여 특징을 꼽을 수 없는 대화란 뜻이다. 금박이 유독 예쁘던 명함을 뺏긴 정서원은 허전한 손을 차가운 귀를 만지는 걸로 달랬다. 

“그냥, 내가 안색이 안 좋았나 봐…….”

“아. 도와주겠대?”

“으응. 근데 싫다고 했어…….”

“또.”

“또? 또…….”

머릿속이 까마득해졌다. 애초에 남자의 말에 집중하지 않았기에 떠오르는 말도 없었다. 정서원은 대신, 서진우가 여러 번 입에 담았던 당부를 따라 했다.

“그런데, 이런 거 사이비라며. 어차피 연락 안 할 거였어.”

“정말?”

“응, 응. 정말로.”

그제야 서진우가 해사하게 웃는다. 명함을 보고 있던 이상현이 ‘음흉한 새끼.’라며 혀를 찼지만 누구를 향한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뜻밖의 사건으로 쇼핑은 생각보다 훨씬 일찍 끝났다. 그래도 이미 담아 놓은 상품이 많아 결제는 한참 걸렸고 짐은 트렁크를 가득 채웠다. 애가 생긴 게 널따란 트렁크를 가득 채울 만큼 좋은 걸까. 정서원은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가 얹힌 것처럼 뻐근하고 불편하여 집으로 향하는 내내 서진우의 어깨에 기댄 채 눈을 뜨지 않았다.

“많이 피곤해? 오늘 밖에 너무 오래 있었나?”

“으응, 그냥 좀…… 졸려서.”

“미안해요. 힘든 것도 모르고 끌고 다녔네.”

“아녜요.”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정서원은 소파에 누웠다. 외출을 했으니 옷을 갈아입고 씻어야 하는데 좀처럼 기운이 나지 않았다. 나른하여 눈꺼풀만 감긴다. 서진우는 졸린 눈을 깜빡거리는 정서원을 대신하여 물수건으로 얼굴과 손을 닦아 주었다. 옷 갈아입을까? 묻는 말에 대답을 한 것 같긴 한데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 뜰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뜨니 장소가 바뀌어 있었다. 침실이었다. 

“진우야.”

잠에 취한 목소리가 나왔다. 간접 조명 하나만 은은하게 빛나는 방에는 서진우가 없었다. 그렇게 쇼핑을 했으니 정리하는 데에 시간이 걸릴 만도 했다. 정서원은 서진우가 둥지 짓는 새처럼 이 넓은 펜트하우스 빈방에다 아기 방을 만들고 있는 걸 알았다. 유산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로는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포근한 이불 속에서 꾸물거리던 그가 몸을 일으킨다. 동시에 침실 문이 열렸다. “진우야?” 고개를 돌렸으나 전혀 뜻밖의 인물이었다.

* * *

“서원 씨, 이만 가 볼게요. 다음에 또 봐요.”

“아, 네…….”

“잘 다녀오라는 인사도 안 해 줘요? 매정하게.”

“네 집도 아닌데 다녀오란 인사를 왜 해? 대가리는 장식이야?”

“진우야, 너한테 한 말 아니니 닥치고 좀 빠져.”

분위기가 또 안 좋아지자 정서원만 불안해진다. “잘 다녀오세요.” 그는 곧장 무뚝뚝하던 입으로 바라던 대로 살가운 인사를 해 주었다. 그리고 곧장 뒷머리를 붙잡혀 입술을 빼앗겼다. 키스는 서진우가 만류할 기회도 주지 않고 짧게 끝이 났다. 이상현은 벙한 얼굴을 보며 싱그럽게 웃었다.

“아, 결혼한 것 같고 좋네. 그래요. 다녀올게요.”

그러고는 두려운 후환을 남겨 놓고는 매정히 떠나 버렸다. 정서원은 서진우의 눈치를 살폈으나 그는 정서원을 탓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더러운 것이 묻은 듯 입술을 꼼꼼히 닦아 주는 손길은 집요한 주제에 말이다.

“다음부터는 저런 변태 새끼가 동의 없이 만지면 싫어, 안 돼, 하지 마, 확실하게 말해야 돼. 응?”

“응, 응.”

“아니다. 저런 새끼는 그런 말하면 더 흥분하니까 거시기를 까 버려. 고자 만들어도 돼. 내가 합의금 물 거니까.”

“……으, 응…….”

다정하게 웃어 준 서진우는 마지막으로 깨끗이 닦아 놓은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갰다. 입술만 부딪혔던 조금 전과는 달리 입을 벌리고 축축한 속살까지 핥아대는 키스였다. 기분 좋았다. 이미 서진우가 허리를 숙여 높이를 맞춰 주고 있음에도 정서원은 까치발을 들며 어깨에 깊숙이 매달렸다. 쪽쪽거리는 소리와 간간히 들리는 숨소리가 공복을 더욱 자극했다. 점점 자제할 자신이 떨어져 가는 서진우가 정서원을 먼저 밀어냈다. 정서원은 더는 고개를 숙여 주지 않는 그에게 매달린 채 까치발을 들고 낑낑거렸다. 서진우는 겨우 제 턱에나 닿는 입술을 관망했다. 울상이 퍽 억울해 보였다.

“진우야아.”

“이제 씻자. 아까 다녀와서 못 씻었잖아, 형.”

“진짜, 치사해…….”

“응, 나 치사해.”

그는 삐친 정서원을 이끌고 욕실로 향했다. 옷을 벗겨 주는 동안에도 정서원은 틈틈이 서진우의 입술을 노렸다. 오늘따라 유독 치대는 게 심하다. 몇 달 전만 해도 덤덤하니 큰 반응이 없던 정서원이 이렇게 변화한 것이 새삼 신기하다. 크게 혼쭐이 낸 뒤로는 버려질까 두려운지 먼저 치대고 안겨드는 일도 많아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일이다. 

“가만있어야지. 아님 형이 벗을래?”

“아니……. 진우가 벗겨 줘.”

그제야 얌전해진 정서원을 알몸으로 만들어 놓자 예전에 비해 더 부드러워진 속살이 드러났다. 오랜 감금 생활 때문에 근육이 다 빠진 몸은 나긋나긋하기까지 했다. 정서원이 싫어하든 말든 아이는 이 보드라운 배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주먹만 한 크기라 아직 허리는 가느다란데, 가슴은 벌써 부풀기 시작하여 둥그런 곡선을 그려냈다. 이젠 옷을 입혀도 젖무덤이 살짝 드러날 정도였다. 정서원은 그게 부끄러운지 늘 자그만 가슴 위에다 손을 얹고 다녔다. 그래 봤자 환복을 도와주고 목욕을 도와줄 때마다 훤히 내보일 수밖에 없는 부위였다. 일부러 빤히 쳐다보고 있을 때면 정서원은 귀까지 빨개져서는 양팔로 가슴을 가리곤 했다. 

“으응…….”

“보지 마?”

“……응.”

“왜, 예쁜데.”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서진우는 장난이라며 웃어 주고는 제 옷을 벗기 시작했다. 티셔츠를 벗어 바구니에 넣은 뒤 바지를 벗으려고 보니 열렬한 시선이 느껴진다. 

“형이 벗기고 싶어?”

“응? 아, 아니. 아니야. 그냥…….”

“그냥 그렇게 본 거야?”

“…….”

얼굴이 새빨개졌다. 조금 짓궂은 맘이 들어 가슴께를 가리던 손을 잡아다 천천히 이끌었다. 서진우는 친절하게 그의 손가락을 속옷 밴드 안으로 넣어 주기까지 했다. 

“지, 진우야.” 

정서원이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를 바라본다. 손가락 마디 하나만 바지 안에 끼워 놓고 발을 동동 굴리는 모습이 퍽 애처로웠다. 하도 시중을 들어줬더니 이제는 옷을 벗기는 법도 까맣게 잊은 모양이었다. 

“그대로 손가락에 힘주고 내리기만 하면 돼.”

“아, 으응……!”

부드럽게 웃어 주며 허리를 끌어안자 사타구니끼리 맞닿았다. 정서원이 작게 헐떡였다. 쩔쩔매던 게 언제였냐는 듯 소심하게나마 힘을 주어 바지를 내리는 손가락이 달달 떨리고 있다. 배꼽 아래에 걸려 있던 바지와 속옷이 내려가면서 음모가 드러난다. 하아, 정서원에게서 뜨거운 숨이 샜다. 소심한 손가락은 더욱 대담해져 더 밑으로, 밑으로 내려갔다. 점차 모습을 드러내는 속살에 정서원은 눈을 떼지 못했다. 넋을 놓고 바라보는 눈동자 위로 반들거리는 이채가 돌았다. 긴장감에 입이 마르는지 그는 연신 입술을 축이며 맞닿은 사타구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진우가 피식 웃었다.

“어느 세월에 벗기려고.”

“미, 안……. 너무, 떨려서…….”

“우리 형 아다 다 됐네?”

“…….”

결국 목덜미까지 빨개졌다. 서진우는 뜨끈한 목덜미에다 입을 맞춘 채로 정서원의 손에 제 손을 겹쳤다. 앞으로는 이렇게 벗기는 거야, 어? 속삭이며 탈의를 돕는 서진우에게 정서원은 그저 고개만 열심히 끄덕거렸다. 발딱 선 정서원의 자지가 서진우의 허벅다리를 건드려대고 있다. 실수인 척 허벅다리로 살짝 누르자 정서원에게서 다디단 한숨이 터졌다. 덕분에 내리깐 속눈썹은 욕실로 들어설 때까지 들리지 않았다. 

서진우는 찜질 한 번 안 했는데 새빨개진 정서원을 데리고 욕실 안으로 들어섰다. 미리 욕조에 채워 놓은 물이 적당히 식어 있다. 미지근한 목욕물에 앉혀 놓자 밋밋한 가슴골까지 물이 들어차는 게 보인다. 지금 보니 뽀얗고 부드러운 가슴에 연한 분홍빛이던 젖꼭지만 색이 조금 진해져 있었다. 누가 빨아 주기라도 한 것처럼.

“왜, 왜?”

좁지도 않은데 계속해서 달라붙던 정서원이 슬그머니 눈치를 살핀다. 기댔던 몸을 일으키며 가슴을 가리는 손짓을 보아하니 감추는 일이 있기는 했나 보다. 서진우는 멀어지려는 몸을 끌어당겨 품에다 가뒀다. 어깨에다 턱을 대고 아랫배를 쓰다듬어 주자 긴장한 몸이 빳빳하게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가슴, 누가 만져 줬어?”

“……상현 씨가…….”

“하. 언제, 응?”

“아까, 자고 있는데…… 들, 어와서…….”

“정말 잠깐 한눈도 못 팔겠네.”

그래서 발정이 나 유독 치댔던 모양이었다. 서진우는 궁금증을 해결했지만 전혀 유쾌하지 못했다. 그가 통통하게 부은 젖꼭지를 손끝으로 퉁기며 묻는다.

“형이 빨아 달라고 졸랐어? 어차피 애새끼 낳으면 젖 물릴 거니까, 연습해 보자고 꼬시기라도 했어? 으응?”

“아응! 아, 아니……. 아냐아. 앙.”

작은 가슴은 큰 손을 양껏 채워 주지 못하고 빈 공간이 남아돌게 만들었다. 어째 창피스러워서 정서원은 눈을 꾹 감았다.

“그게 아니라아, 나, 가슴, 아프다고 하니까.”

“응, 아프다고 하니까.”

“상현 씨가, 앗! 마사지, 해 주면 낫는대서어……. 흐, 아아!”

“아, 젖꼭지 빨아 주는 게 마사지야? 그랬구나?”

“아으응, 아니, 아냐……. 우응, 진우야아.”

젖꼭지를 툭툭 튕기는 손끝에 말랑한 가슴이 작게 찰랑거렸다. 뾰족하게 세워진 끝에서부터 찌릿찌릿한 전율이 스쳤다. 동시에 약간의 통증도 밀려들었다. 정서원이 도리질을 쳐 가며 끙끙 흐느꼈다.

“으응, 나는 싫다고, 했는데에……. 흑, 아! 진우야 아파아…….”

“마사지 받았는데 왜 아프지? 응? 왜 그럴까.”

“앙. 미안, 미안해애. 흐응, 앞으로 안 그럴게요……. 아, 앙.”

건드릴 때마다 정서원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할딱거린다. 발끝까지 동동 굴러가며 흐느끼는 통에 찰랑찰랑하는 물소리가 연신 이어졌다. 아파아, 미안해, 아파, 진우야아…… 아프다면서 어미마다 애교가 듬뿍 섞여 있다. 글자로 형상화한다면 하트라도 붙어 있을 기세다. 서진우는 그게 약간 화나고 조금은 귀여워서 손을 멈춰 주었다. 그러자 정서원이 꾹 감았던 눈을 떠 서진우를 바라본다. 눈망울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서진우는 제 품에 폭 기댄 채 저만 바라보는 눈빛이 맘에 들어서 너그럽게 물었다.

“아래는 어땠어.”

“아, 아래……?”

“형 가랑이 사이 말야. 물 질질 흘리는 데.”

애절하던 얼굴이 또다시 울상이 되었다. 

“아, 안 했어…….”

“정말? 내가 형 믿어도 돼?”

“……사실, 손가락만…….”

씨발. 그러니까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그새 또 몰래 다리를 벌려 가며 앙앙댔다 이거다. 간신히 욕설을 삼킨 서진우는 곧장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정서원이 놀라서 서진우를 바라봤다가 바로 팔목을 붙잡혀서 일으켜졌다. 와중에 부드러운 힘 조절이었다.

“지, 진우야아. 잘못했어.”

“눈치는 좆도 없으면서, 나 화난 건 알겠어?”

“잘못, 했어어……. 흑. 근데, 끝까지, 안, 안 갔…….”

목욕 타월로 돌돌 말아 주던 서진우가 다짜고짜 입술을 맞댔다. 조금 전에도 키스를 나눴지만 그때보다 더 거칠고 깊어진 키스였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다행히 서진우는 정서원의 숨이 넘어가기 전에 놓아주었다.

“입, 다물고 얌전히 있어.”

“……흑!”

이글거리는 눈빛에 잔뜩 겁에 질린 정서원이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딸꾹질 소리 하나 안 새게 하려는 노력 같았지만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고 있다. 결국 맘이 약해진 건 서진우였다. 그는 커다란 목욕 타월을 어깨에 둘러 주고는 그 끝으로 눈물도 훔쳐 주었다. 젖은 눈두덩에다 입을 맞추며 그가 속삭인다.

“화난 거 아니야. 울지 마. 응?”

“흑, 흐앙. 아아앙…….”

“아……. 미치겠네.”

정서원은 아무래도 매일같이 무방비한 그를 두고 서진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알면, 애새끼라도 떨어질까 무던히 참는 걸 안다면 그새 이상현과 즐길 순 없었다. 깊게 잠든 정서원의 다리를 벌려 놓고 그 가랑이만 보며 딸을 친 게 몇 번인지, 씨발. 이미 몇 년 전에 졸업한 짓을 이제 와서 하는 지극정성을 정서원은 반드시 알아야만 했다.

펑펑 우는 정서원을 안아 든 서진우가 침실로 걸음을 옮긴다. “진우야아, 흑, 무서워, 잘못했어…….” 어떤 식으로 혼이 나는지 깊이 체득했던 정서원이 무섭다며 발을 동동 구른다. 목 놓아 우는 소리가 한층 커졌다. 애초에 정말 무서우면 이렇게 울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서진우가 어느 정도 화가 풀린 걸 알고 제 응석을 받아줄 걸 아니까 이리 영악하게 징징거리는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씹어 먹고 싶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화난 거 아니야. 나 화 다 풀렸어, 응?”

“흑, 흐으. 진, 짜……?”

“응, 진짜. 형이, 또 참느라 힘들어하니까, 도와주려고 그래.”

“으으응……. 흑, 무, 무서웠, 어어.”

“응, 그랬어. 진우가 형 무섭게 했어?”

“응, 응응…….”

응석을 부리며 고개를 끄덕이던 정서원이 문득 몸을 움찔한다. 급한 대로 침대에 앉아 제 무릎 위에 정서원을 놓고 달래 주던 서진우가 둘둘 말아놓은 타월을 헤치고 속살을 만지기 시작한 것이다. 펑펑 우는 중에도 식지 않았던 자지가 서진우의 커다란 손에 잡혔다. 정서원은 그것만으로도 등줄기에 오싹한 전율이 흐르는 걸 느꼈다.

“아응! 히이잉. 진우야아…….”

“왜.”

“갑자기, 왜, 왜에…….”

“자지 만져 주는 건 싫어?”

갑자기 붙잡았던 만큼, 또 갑작스레 손을 놓는다. 정서원은 쾌락이 끊기자 아쉬움에 몸을 떨었다. 그 나신을 서진우가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갓 씻어 보송한 몸이 손바닥에 착착 감겼다. 어디든 붙잡고 처박고 싶을 만큼 감도가 좋았다. 서진우는 저와 같은 향기가 나는 정서원의 몸을 며칠은 굶은 사람처럼 만져댔다. 실제로도 그게 맞았다. 며칠이 아니라 몇 달로 접어들고 있을 뿐이다.

“나, 나 안, 해도 되, 는데…… 으응, 아.”

“안 해도 되는데 왜, 이상현이랑은 그랬어?”

“마사지, 해 준다고…… 흑, 속, 아서……. 히잉, 앙!”

“그러니까 아무나 믿지 말랬지, 내가.”

“흐아앙……! 자, 잘못했어요…….”

가슴이 아파서어, 뭉치고 뻐근해서, 상현 씨가 가슴, 잘, 만지니까…… 더듬더듬 나오는 말은 두서도 없는 데다 절제도 없었다. 뭐가 서진우를 화나게 하는 말인지 분간도 못하고 줄줄 내뱉는 입에는 아까의 키스로 촉촉한 타액이 묻어 있다. 서진우는 거기다 제 자지를 처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정서원은 몹시 귀여웠지만 그만큼 그를 빡치게도 만들었다. 차라리 자지나 물리는 게 나은 마이너스 입이었다.

“오늘도, 응? 잠깐 눈 좀 뗐다고 이상한 새끼한테 번호나 받고.”

“흑, 그건, 그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걸어서어, 흐앙. 앙.”

“그래서. 그 사람도 입만 잘 털었으면 멍청하게 따라갔을 거 아냐. 어?”

“아냐, 아냐아. 흑, 진우야, 나 안 그래요…… 응! 으응.”

안 해도 된다더니 만지는 대로 반응하느라 온몸에 발긋한 홍조가 돌고 있다. 흰 피부에 혈색이 도니 잘 익은 복숭아 같다. 정말 안 그래, 그런 사람 안 따라가는데, 진짠데…… 서진우는 이어지는 소심한 항변을 무시하고 빨개진 귓불을 입술로 물었다. “아!”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던 항변보다 짧은 신음이 더 확실히 박힌다. 서진우가 정서원의 아랫배를 부드럽게 끌어안으며 목덜미로 입술을 옮겼다. 손끝을 꾸물거리던 정서원이 바들바들 몸을 떠는 게 보였다. 정서원에게서 가느다란 신음이 새었다.

“흐으응, 응……! 아, 진우야아.”

“봐. 좀만 만졌다고 이렇게 앙앙대는데, 뭐가 괜찮아. 어?”

“흐앙! 아, 아아아……!”

입술을 열어 가느다란 목선에다 혀를 기어 올리자 정서원이 고개를 모로 흘리며 헐떡인다. 벌어진 타월 사이로 봉긋 솟은 젖꼭지가 엿보였다. 고작 젖가슴 하나에 이토록 설레다니, 씨발, 자위만 몇 주를 했더니 정말 사춘기 애새끼라도 된 것 같다. 서진우는 예전보다 부푼 젖가슴을 참지 않고 양손으로 주물렀다. 엄마가 될 준비를 하는 몸은 예전보다 부드럽고 나긋나긋해졌다. 그래 봤자 큰 손을 양껏 채우지 못하는 크기다. 정서원이 어깨를 웅크리며 서럽게 칭얼거린다. 

“히이잉, 싫어……. 진우야아.”

흘러내린 타월이 어깨 한쪽을 죄다 노출시키고 있다. 서진우는 아랫배가 뜨거워지는 걸 참으며 손끝을 세워 딱딱한 젖꼭지를 문질렀다. “으으앙……!” 정서원이 서진우의 팔뚝을 붙잡은 채 길게 흐느끼는 소리가 난다. 저항이라고 하는 게 죄다 무력하기 짝이 없어 당장 손쉽게 따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정서원과 달리 아주 정상적인 탓에 이성과 상식이 살아 있는 서진우는 그리하지 않았다.

“가슴은 또 빨아 달라고 세운 거야?”

“아냐아, 진우가, 힉, 만져서…….”

“형이 밝히는 걸 이젠 내 탓을 하네. 어?”

“미, 미안해애. 아, 응응!”

울먹이는 목소리에 점차 달콤한 숨이 섞이고 있다. 싫다며 꼭 모으고 있던 허벅지는 금세 느슨해져서는 하얀 속살을 내보였다. 더 만져 달라고 조르듯 통통한 허벅지 가장 안쪽이 오므라졌다 풀어지길 반복했다. 살결이 부드럽고 탄력이 있는 허벅지로 허리를 애타게 감싸 안던 촉감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당장 침대에 자빠뜨려서 뜨겁고 비좁은 안에 자지를 처박고 싶었다. 끝까지 처박을 때마다 할딱할딱 숨 넘어갈듯 우는 몸을 붙잡고 무작정 욕구를 채우고 싶었다. 이미 자지는 한계까지 부풀어 있었다. 당장, 처박아도 될 만큼.

“하아……. 임신만 아니었어도, 진짜.”

“으으응, 아! 흑, 진우야아.”

서진우는 정서원의 골반을 아프지 않게 붙잡고, 그의 사타구니에 닿는 말캉한 엉덩이에다 얕게 허릿짓을 했다. 타올이 밀려 올라가며 부드러운 엉덩이 골이 노출된다. “아응응, 아, 싫어어.” 정서원이 더듬더듬 도망가려다 앞으로 무너지려던 걸 서진우가 붙잡아 세웠다. 정서원은 침대 근처 탁상에 몸을 지탱한 채 바들바들 떨리는 허리를 서진우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엉덩이로 올라갔던 타월은 서진우의 손에 의해 허리까지 걷어졌다. 그러다 이내 그마저도 성가신지 걷어 내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훤히 드러난 하얀 엉덩이에 예쁜 색을 띤 큼직한 자지가 짙게 문질러지기 시작한다. 하얀 엉덩이가 쾌락을 못 이기고 달달 떨렸다.

“왜 싫어, 형.”

“흐아앙, 흐앙……!”

“박지도 않았는데 울지만 말고. 말을 해야 알지, 형.”

“그게, 나, 으응, 진우가 만질 때마다, 아, 앙, 하고오, 싶, 어져서어.”

“응, 그런데.”

한 손으로 정서원의 허리를 붙든 서진우가 다른 손으로는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꽉 붙잡아 벌린다. 엉덩이 골이 벌어지며 분홍색 구멍이 찔끔찔끔 물을 토해 내는 게 적나라하게 보였다. 얼마나 애가 타는지 따로 건들지도 않았는데 우물거리느라 바쁘다. 자지를 붙잡고 바로 조금만 겨냥하면 그 뜨거운 구멍으로 파고들 수 있는데, 서진우는 엉덩이 골 사이에나 자지를 끼워 넣고 살살 움직였다. 이미 축축하게 젖은 엉덩이 골은 서진우의 커다란 자지로 문질러질 때마다 찌걱찌걱 이상야릇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아아앙! 아, 으앙, 앙…….”

정서원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자지러진다. 쾌락에 달달 떨기나 하느라 제대로 서지 못하는 몸을 서진우가 단단하게 붙잡았다.

“말을, 해야 안다고 했지. 형.”

“으응, 앙, 미, 안해애. 나, 진우, 자지이, 빨고 싶, 구, 넣구 싶은, 데에, 못, 못 하니까… 아! 으응응!”

“아, 내가 자지 안 줘서 삐친 거야?”

“응, 응응, 미안해애……! 으앙, 흑, 밝히기기만 해서어, 앙, 으응!”

정서원은 그렇게 울어 가며 스스로 엉덩이를 움직여댔다. 앙앙거리면서 허리를 흔들 때마다 핏대 매섭게 선 자지가 하얀 엉덩이에 비벼졌다. 하는 짓마다 가관이다. 서진우가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욕심 많은 정서원은 빨갛게 열이 오른 자지를 알아서 문질렀다. “흐응, 아, 진우야아. 아, 아아.” 허리를 흔들 때마다 나오는 소리는 이미 삽입이라도 한 것처럼 달떠 있었다. 한껏 무르익어 더 달궈 놓을 필요가 없었다. 순간 눈이 돌아갈 뻔했으나, 서진우는 간신히 참고는 난잡한 허리를 꽉 붙잡았다. 낮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토해졌다.

“정서원, 뭐해.”

“흑! 으응, 응, 미안해애. 근데에, 좋아서, 나 자꾸 허리가…….”

“씨발. 이거 넣고 싶어? 좆으로 박히고 싶어서 그래?”

“응응, 넣고 싶어어, 진우, 자지로, 박히고 싶어, 히잉……. 진우야아.”

서진우가 얕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서원이 허리를 바싹 세운 채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길게 팬 등골에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방울 하나가 엉덩이뼈까지 흘러서 고인다.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흐르고, 다시 새로 고이는데, 이제는 그게 좆에서 흐른 물인지 머리카락에서 흐른 물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를 향해 활짝 열린 몸에 실수라도 파고들지 않기 위해 흐릿해지는 이성을 간신히 붙잡을 뿐이다. 

헐떡이는 그를 정서원이 뒤를 더듬거리며 붙잡는다. 서진우는 정서원의 나약한 몸을 지탱해 주면서 그를 붙잡는 손도 너그럽게 봐주었다. 다그칠 것도 없이 이미 펑펑 울고 있기도 했다.

“으앙, 아……! 진우야아, 흑, 진우야아.”

“보채지 마, 어?”

정서원이 화를 내는 서진우의 팔을 이끌어 제 아랫배를 감싸게 한다. 그러고는 살짝 뒤를 돌아 한껏 울상이 된 채 서진우에게 졸랐다.

“달이, 별이가, 아빠, 만나고 싶대요……. 응? 그러니까, 아빠 자지로, 달이랑, 별이…… 아! 으으앙!”

잔망스러운 애원을 이어 가던 정서원이 이윽고 크게 자지러진다. 원하던 대로 뒤를 꿰뚫린 건 아니었다. 서진우는 정서원의 발딱 선 자지를 강하게 붙잡고 위아래로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정서원을 내려다보는 얼굴에 못내 감춘 욕망이 절절 끓었다. 

“으앙, 아! 진우야아, 싫어어, 진우 자지로 가고 싶어, 제발, 흑, 나 박아 줘, 응? 으응, 제바알.”

“아, 미치겠네, 씨발!”

“앙! 히잉, 애기들이, 아빠, 보고 싶다고, 하는데에, 앙! 아아, 안에 넣어 주세요, 아기집까지 박아 주세요…!”

역시 자지나 물려 놓는 게 나을 뻔한 입이었다. 몇 주간의 노력을 단 몇 마디로 무너뜨리려 하지 않는가. 서진우는 엉덩이에다 문지를 때마다 언뜻언뜻 미끄러지는 자지를 구멍에 처박지 않기 위해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했다. 아빠 보고 싶대요, 아빠 자지 주세요, 배 속에 우리 애기들 달래 주세요…… 지치지도 않고 잔망을 떨어대는 입을 닥치게 하기 위해 서진우는 정서원의 자지를 공들여 애무했다. 이토록 얼른 느끼게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만지는 건 첫 경험 이후 처음이었다. 

“으앙, 으앙……! 싫어, 이걸로 가기 싫어, 흑, 아앙!”

“좀, 얌전히 좀, 있어! 어?”

“흐아앙, 진우 미워어, 왜, 안 넣어 줘, 달이가, 별이가아, 아빠, 만나고 싶다구…… 앙! 으아앙!”

아무리 도리질을 치고 스스로 허리를 움직여 가며 자지를 삼키려 해 봤자 절정은 다가오고 있었다. 정서원은 겨우 세웠던 허리를 탁상에 무너뜨리고는 서진우의 팔 힘 하나에 의존한 채 엉덩이를 바싹 세웠다. 싫어, 싫어, 이걸로 가기 싫어…… 서진우의 손바닥은 황홀하리만치 기분 좋았다. 눈앞이 잠깐 새하얘질 정도로 짜릿했다. 그렇지만, 이것보다 더 기분 좋은 게 있는데. 그거 넣으면 더 기분 좋은데. 정서원은 억지로 밀려나기 시작한 절정이 서러워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렸다. 허리를 뒤틀거나 사정을 참는 일 따위 더는 불가능했다.

“윽……!”

“아, 으아앙……!”

결국 정서원은 제 등에 쏟아지는 미적지근한 액체를 느끼며 서진우의 손바닥에다 진하게 사정을 하고 만다. 탁상에 엎어진 상체부터 간신히 바닥을 딛고 선 기다란 다리까지 바들바들 떨려댔다. 오래도록 참았던 만큼 기나긴 오르가즘이 전신을 내달렸다. 등 뒤로 정액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진다. 그 위에 서진우의 뜨거운 숨이 토해지는 것도 함께 느껴졌다. 여운에 시달리던 정서원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흐앙, 흐아앙……. 싫다구, 했잖아아. 어차피, 안, 안 해줄, 거면서, 싫어, 흑, 미워, 진짜 싫어어.”

“미안해. 형이 너무 예뻐서, 응? 내가 욕심 부렸어. 이제 안 그럴게.”

“싫어, 흑, 으앙…… 나, 나 진짜, 잘 참고 있었는데에, 흑, 어떡해애, 으앙앙…….”

서진우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발언까지 받아 주며 우는 그를 정성껏 보듬었다. 흐르는 정액을 닦아 주고 침대에 눕힌 서진우가 훌쩍훌쩍 우는 몸 곳곳에다 입을 맞춰 가면서 미끈한 가랑이를 문질러 닦는다. 진하게 풍기는 제 오메가의 페로몬이 식욕을 돋웠으나 입으로 빨아먹는다면 또 정서원을 울리고 말 것이 뻔했다.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미끈한 액체로 수건을 다 적신 서진우는 아직 울음기가 남은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미안해, 내가 잘 참고 있는 형 괴롭혀서.”

“흑, 흐으응. 응…….”

“힘들지? 이제 코 자자. 내가 토닥토닥해 줄게. 달이랑 별이한테도.”

“응, 응…….”

침대에 누우며 팔을 베게 해 주자 정서원이 냉큼 품으로 파고들었다. 피곤하긴 피곤했는지 금세 색색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어대며 서진우의 인내심을 바닥까지 긁어 내 재활용하게 만든 정서원은 세상모르고 편안히 잠들어 있다. 꾹 내리감긴 속눈썹에 아직 걸려 있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 낸 그가 작게 한숨을 내쉰다.

“씨발, 진짜, 안정기만 되면…….”

서진우는 꽤 거친 말을 쓰면서도 못내 다정하게 잠든 이에게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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