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시범 경기 04
“오도네바, 너답지 않아.”
동료의 한마디에 오도네바가 오른손을 들었다.
“공이 이렇게 떠서 들어왔다고, 그걸 무슨 수로 쳐.”
오도네바의 설명을 들은 동료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공이 떠서 들어오다니, 위로 변하기라도 했단 말이야?”
“원인은 나도 몰라. 타석에 들어가서 보면 알게 될 거야.”
김민의 패스트볼을 안타로 만들어 낸 오커가 배트를 정리하며 말했다.
“오도네바, 저 친구가 쓰리 쿼터로 던지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거 아니야? 난 칠 만하던데.”
“떴다니까.”
오도네바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두 사람 사이에 베테랑 우익수 슬레인이 끼어들었다.
“공이 떠오르는 것처럼 보인 건 아마 사실일 거야.”
오도네바는 슬레인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내가 절대로 잘못 본 게 아니야.”
그러자 오커가 슬레인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슬레인, 내가 때린 공과 오도네바가 본 공이 다른 건가?”
슬레인이 글러브를 챙기며 대답했다.
“두 공의 차이는 아마 회전수일 거야. 회전수가 많은 패스트볼은 직진성이 강해서 일반적인 패스트볼보다 더 늦게 떨어지지. 그게 타자 눈에는 떠오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군. 몇몇 친구들은 그 공을 라이징 패스트볼이라 부르기도 하지.”
오도네바가 자리에 앉으며 푸념했다. 그는 오늘 지명타자로 출장했기 때문에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었다.
“라이징 패스트볼…… 하필 왜 내 타석 때 그런 공이 날아온 거야. 아니, 왜 나한테 그런 걸 던진 거야! 오커 녀석에게 던졌다면 좋았을 것을.”
슬레인이 그라운드로 향하며 말했다.
“저 친구는 아마 그 공을 자유자재로 쓰는 게 아닐 거야.”
“그 말은…….”
“자네가 아주 운이 나빴다는 말이지.”
“젠장!”
그라운드로 나온 슬레인에게 제트가 다가와 물었다.
“아까 그 이야기 사실이야?”
제트는 떠오르는 패스트볼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내가 헛소리를 할까?”
“오케이. 질문을 바꿔서 물어보지. 슬레인은 떠오르는 공을 본 적 있어?”
슬레인이 외야로 뛰어가며 말했다.
“물론.”
제트가 그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누가 던졌어?”
슬레인이 오른손을 들며 대답했다.
“로켓맨.”
로켓맨 로저 클레멘스는 양키스의 슈퍼 에이스였다.
제트는 그 말에 목소리를 높였다.
“로켓맨은 만날 수가 없잖아.”
피츠버그와 뉴욕 양키스는 내셔널 리그와 아메리칸 리그 팀이 맞붙는 인터리그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는 사이였다.
“월드시리즈에서 보자고.”
슬레인의 한마디는 유쾌한 농담이었다. 그 이유는 피츠버그의 월드시리즈 진출 확률이 탬파베이와 함께 메이저리그 공동 꼴찌였기 때문이었다.
록튼이 김민에게 다가와 물었다.
“킴, 오늘 볼 배합이 평소하고 다르던데?”
김민은 수건으로 땀을 닦은 뒤 짧게 대답했다.
“상대가 몬스터니까.”
“피츠버그 타자들이 그렇게 강한 건가?”
록튼은 김민의 한마디를 괴물처럼 강하다는 말로 알아들었지만, 김민은 스테로이드를 돌려 말한 것이었다.
약물로 강해진 몬스터.
김민은 피츠버그 강타선이 재능과 노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팀은 피츠버그 선수들처럼 몸이 좋은 선수가 별로 없군.’
탬파베이 물타선은 심각한 수준으로 신시내티에서 이적한 그렉스를 제외하곤 20홈런을 넘긴 타자가 아무도 없었다.
대약물의 시대에 이 정도 물타선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론 탬파베이가 약물과 관련이 없는 청정 팀은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그렉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렉스는 세미 소사와 마크 맥과이어가 홈런 레이스를 펼치던 그해 50홈런을 때리면서 몬스터 시즌을 맞이했다.
그는 그 이듬해도 45개의 홈런을 때리면서 강타자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2회 초.
탬파베이 타선이 기회를 만들었다.
상대 실책과 도루를 묶어 노 아웃 주자 2루.
이반 감독이 타석을 주시하며 말했다.
“바이슨, 저 친구가 적시타를 때린다면 난 저 친구를 25인 로스터에 넣을지도 몰라.”
타석에 들어선 것은 유망주 패터슨이었다. 그는 40인 로스터에 들어 있는 선수로 트리플A에서 2년째 뛰고 있었다.
바이슨이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패터슨이 초구를 통타했다.
딱!
잘 맞은 타구가 2루수 옆을 통과했다.
“달려!”
3루 코치가 팔을 돌리자 주자가 그대로 돌진했다.
“송구가 온다!”
“홈에서 승부야!”
이윽고 공과 사람이 홈에서 격돌했다.
촤악!
슬라이딩과 포수의 터치가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세이프!”
주심의 외침에 포수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먼저 찍었다고요!”
그러나 주심은 고개를 내저었다.
“주자가 빨랐어.”
탬파베이의 선취득점.
더그아웃 분위기가 일시에 살아났다.
“나이스 배팅!”
“잘했다! 패터슨!”
바이슨은 패터슨의 적시타를 보곤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25인 로스터가 또 하나 사라지는 겁니까?”
이반 감독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저 친구, 귀가 아주 좋은 모양이야.”
패터슨의 적시타로 선취득점을 뽑았지만, 그 다음 타자가 삼진으로 물러나며 득점 기회가 사라지는 듯 했다.
한데 다음 타자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홈런을 때려냈다.
따악!
잘 맞은 타구가 그대로 좌측 펜스를 넘어갔다.
탁…….
멀리 플로리다에서 날아온 중계진은 투런 홈런에 목소리를 높였다.
“홈런! 홈런이 나왔습니다!”
“록튼이 일을 냈군요. 이제 유망주 딱지를 벗을 때도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홈런의 주인공은 수비형 포수로 알려진 록튼이었다.
탬파베이 더그아웃은 록튼의 홈런에 일제히 기립했다.
“록튼!”
“나이스 배팅!”
“제대로 맞았어!”
록튼은 다이아몬드를 돌면서도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내가 진짜로 홈런을 때린 건가?’
김민은 더그아웃 앞까지 나가 록튼의 홈런을 축하했다.
“록튼, 나이스 배팅! 정말 좋았어!”
록튼은 김민과 하이 파이브한 뒤 더그아웃으로 돌아가 동료들과 기쁨을 내누었다.
“네가 홈런을 때리는 날도 있구나!”
“이제 수비형이란 딱지는 떼는 건가?”
“어쨌든 잘했어 록튼!”
반면 홈런을 맞은 피츠버그 쪽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올해도 최악이군요.”
“투수진은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없군. 믿었던 투수마저 이렇게 무너지다니.”
기대를 걸었던 유망주의 부진에 피츠버그 코칭 스탭은 크게 실망한 모습이었다.
2회 말.
김민은 록튼의 홈런 덕분에 3점의 리드를 안고 마운드에 오를 수 있었다.
‘3점의 리드는 오랜만이군.’
그러나 5번부터 시작하는 타순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5번 켈리…… 이쪽도 근육이 상당하군.’
김민은 5번 타자 켈리를 상대로 커터, 스플리터, 체인지업을 섞어 던졌다.
“스윙 스트라이크!”
켈리는 김민의 다양한 구종에 제대로 타이밍을 맞출 수 없었다.
‘저 녀석…… 대체 몇 가지 구종을 던지는 거야?’
김민은 투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호흡을 조절했다.
“후…….”
투 스트라이크, 원 볼.
타자는 코너에 몰려 있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근육은 공을 언제든 담장 밖으로 넘겨 버릴 수 있었다.
‘조금 위험하지만, 여기서 승부다.’
김민이 손가락을 어깨에 가져가자 록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한 공이지만, 난 킴을 믿어.’
포수가 미트를 내밀자 투수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타자는 본능적으로 승부구가 올 것을 알았다.
‘온다!’
슉!
빠른 공이었다.
캘리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갔다.
‘낮은 코스, 그렇다면 커터는 아니야. 남은 건 스플리터와 패스트볼인가?’
그는 둘 중 스플리터에 포커스를 맞췄다.
탁!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공이 높이 떠올랐다.
‘큭, 패스트볼이었나.’
높이 떠오른 공은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중견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갔다.
“원 아웃!”
“침착하게 가자고!”
탬파베이 선수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서로를 격려했다.
“선취점 덕분에 분위기가 좋군요.”
“피츠버그라면 해 볼 수 있다는 뜻인가?”
기자들은 약점이 서로 다른 두 팀의 경기가 제법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탬파베이 중계진은 응원팀의 리드 덕분에 목소리가 밝았다.
“다음 타자는 슬레인입니다.”
“슬레인은 경험이 많은 타자죠. 킴, 슬레인만큼은 조심해야 할 겁니다.”
슬레인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슬림한 몸매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몬스터는 아니군.’
김민은 슬레인을 상대로 바깥쪽 패스트볼을 던졌다.
팡!
“스트라이크!”
슬레인은 공을 하나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91마일(146km) 정도인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데…… 오도네바가 말한 떠오르는 패스트볼은 우연이었나?’
그는 스플리터에 타이밍을 맞췄다.
‘기분 좋게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았으니, 이제 하나 정도 떨어뜨리겠지.’
그러나 김민이 던진 다음 공은 바깥쪽으로 하나 더 빠지는 패스트볼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철저한 바깥쪽 승부.
김민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볼 배합이 다시 등장했다.
슬레인은 헛스윙 이후 배트를 세웠다.
‘후…… 풋내기가 나하고 카운트 싸움을 해 보자는 건가?’
메이저리그 11년 차 베테랑이 자존심을 걸었다.
투 스트라이크 노 볼.
슬레인은 김민이 다시 한번 패스트볼을 던지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음 공이야말로 스플리터다.’
하지만 김민의 세 번째 공도 패스트볼이었다.
탁!
슬레인은 공을 간신히 커트해 낸 뒤 미간을 좁혔다.
‘조금이지만 떠올랐어. 구속도 더 빨라진 것 같고.’
그는 오도네바가 말한 떠오르는 공을 보곤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구속이 빨라지면 공이 떠오르는 건가? 쳇, 곤란한 타입이군.’
김민은 슬레인이 끈질기게 따라붙는 것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저리그에서 10년 이상 뛴 베테랑다운 배트 컨트롤이야. 이번 공으로 확실히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쉽군.’
그는 그립을 바꿔 쥐었다.
슉!
승부구가 포수 미트를 향해 날아갔다.
슬레인은 무릎을 굽히면서 배트를 눕혔다.
‘떨어지는 공은 이미 예상했다!’
그러나 그의 배트는 공을 스치지도 못한 채 헛돌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슬레인이 미간을 좁혔다.
‘분명 떨어졌는데.’
탬파베이 선수들은 김민의 삼진에 목소리를 높였다.
“나이스 피칭!”
“킴! KKKK!”
슬레인은 바로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대신 록튼에게 고개를 돌렸다.
“방금 공, 구종이 뭐였지?”
록튼이 미트에서 공을 빼며 대답했다.
“체인지업입니다.”
슬레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체인지업이라. 생각지도 못한 공에 당했군.’
스플리터와 체인지업은 비슷한 궤도를 그렸지만, 구속에 차이가 컸다.
스플리터를 노리고 배트를 휘둘렀다면 공이 들어오기 전 배트가 먼저 돌아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김민은 다음 타자를 유격수 땅볼로 마무리하곤 2회 말 수비를 마쳤다.
“5이닝 3실점이면 합격이라더니, 그 이상도 해낼 것 같군요.”
이반 감독은 바이슨 수석 코치의 말에 팔짱을 꼈다.
“아직 첫 번째 타석 아닌가? 두 번째 타석부터는 어떻게 될지 몰라.”
블렛소 투수 코치는 두 번째 타석이 돌아온다고 해도 김민의 공을 쉽게 쳐 내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킴은 어깨가 아니라 머리로 공을 던지는 투수다. 감독이나 수석 코치가 예상한 것을 예상하지 못할 리 없다. 두 번째 타석에선 전혀 다른 볼 배합을 들고나올 테지.’
그는 김민을 믿고 마운드를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