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야구의 신 02
“킴, 그래도 되겠어?”
김민에게 묻는 이는 록튼이었다.
“프로 스포츠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면 되는 게 아니야. 과정도 꽤 중요하다고.”
“그래도 이건 좀…….”
록튼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월드시리즈 1차전 시작까지 앞으로 30분.
두 사람은 불펜에서 1차 워밍업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록튼, 사람들이 왜 메이저리그를 본다고 생각해?”
“최고의 선수들이 최고의 플레이를 펼치니까.”
김민이 말했다.
“최고의 선수들이 최고의 플레이 대신, 이길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는다면?”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메이저리그를 보지 않게 될 거야.”
김민의 질문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첫 번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것, 두 번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가 불호라면, 두 번째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
딸깍.
불펜 문이 열리자 블렛소 투수 코치가 안으로 들어섰다.
“킴, 오늘은 어때?”
“괜찮습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는 김민의 손끝이 걱정되었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말해. 부르스가 시작부터 대기할 테니까.”
록튼이 깜짝 놀라 물었다.
“1회부터 대기입니까?”
“킴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바로 투입이야.”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르스가 불펜 안으로 들어섰다.
“다들 있군요.”
“부르스, 왔나?”
부르스가 스트레칭을 준비하며 말했다.
“킴, 본즈는 거르는 게 좋아.”
록튼이 고개를 김민에게 돌리며 말했다.
“들었지? 부르스도 거르는 게 좋다고 생각하잖아.”
블렛소 투수 코치는 록튼의 말을 듣곤 표정을 굳혔다.
“킴, 설마 본즈와 정면 대결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탬파베이 코칭 스탭은 내부 회의에서 배리 본즈를 거르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1차전 선발 투수인 김민은 어제저녁 블렛소 코치로부터 이러한 내용을 통보받았다.
“일단은 맞서보기로 했습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는 에이스를 윽박지르기보다는 그 이유를 물었다.
“벤치의 지시를 어기면서까지 본즈와 대결할 이유가 있는 건가?”
“코치, 팬들이 왜 야구장을 찾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응원하는 팀의 승리를 보기 위해서지.”
블렛소 투수 코치의 대답은 록튼과 조금 달랐다.
김민이 재차 물었다.
“다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음, 굳이 말하자면 최고의 선수들이 펼치는 최고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서지. 하지만 킴, 배리 본즈는 평범한 선수가 아니야. 녀석이 금지된 무엇을 사용한다는 소문이 있어…….”
김민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것을 사용하는 이는 본즈만이 아닐 겁니다.”
그의 한마디에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록튼은 물론 불펜 투수들까지 귀를 쫑긋 세웠다.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잖아. 코르크 배트, 임페타민…… 사무국 차원에서 금지되기 전까지 모두가 사용했던 반칙들이지.”
김민은 냉소적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다면 더더욱 본즈와 맞서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혹시 에이스의 자존심 때문인가?”
김민이 대답했다.
“에이스로서 자존심도 분명 이유 중 하나입니다. 4번 타자를 피하는 에이스는 에이스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팬들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팬들?”
“오늘 신문 보셨습니까?”
“…….”
블렛소 투수 코치는 침묵했다.
“이번 월드시리즈를 창과 방패의 대결이라고 하더군요. 창은 본즈, 방패는 절 뜻하죠. TV 앞에 모인 팬들과 교통 체증을 뚫고 트로피카나 필드에 들어선 팬들에게 도망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진 않습니다. 그들은 제가 볼넷을 내주는 것을 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니까요.”
블렛소 투수 코치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킴! 팬들이 원한다고 정면 승부를 선택하다니, 우린 WWE가 아니라 월드시리즈를 치르고 있는 거라고! 팬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아.”
그는 월드시리즈는 쇼가 아니며, 잘 짜인 전략과 전술만이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단 한 번 우승으로 만족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 최고의 팀에서 뛰고 있는 최고의 선수로 인정을 받고 싶습니다. 이건 팬들이 인정해 줘야 가능한 것이죠.”
김민이 잠시 말을 쉬었다가 이었다.
“순진한 발상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프로 스포츠는 팬들이 있어야 존재하는 것이기에 선수들은 팬들을 위한 플레이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상대는 배리 본즈야.”
“블렛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를 상대할 방법을 어느 정도는 생각해 두었습니다.”
블렛소 코치는 방법이 있다는 말에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킴의 생각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가 빠져나가자 부르스가 몸을 풀기 시작했다.
“킴, 오늘은 조금 뜨겁군.”
김민이 다시 마운드에 오르며 부르스의 말을 받았다.
“그럴 리가요?”
“평소라면 순순히 블렛소 코치의 말을 들었을 텐데…….”
“전 생각보다 자주 블렛소 코치의 말을 어긴답니다.”
김민은 교체 타이밍과 로테이션을 두고 블렛소 투수 코치와 언쟁을 벌이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본즈를 상대할 방법이 정말 있는 건가?”
김민이 공을 던지며 말했다.
“앞에 주자를 두지 않는 겁니다.”
“홈런을 맞아도 솔로 홈런을 맞겠다는 생각이군.”
록튼이 던진 공이 김민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팡!
“하나 정도는 맞아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요?”
부르스가 미간을 좁혔다.
“하나 정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2, 3개를 맞게 될걸?”
김민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홈런을 맞지 않으려고 도망치는 것보다는 솔로 홈런 3개를 맞는 게 나을 겁니다.”
팡! 팡!
두 사람이 던진 공이 포수 미트를 강타했다.
“나이스 볼!”
록튼과 불펜 포수 라몬이 동시에 목소리를 높였다.
* * *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처음 열리는 월드시리즈.
관중석은 이미 만원이었다.
“세인트 피터츠버그의 교통 체증도 월드시리즈를 이기진 못했군요.”
“밤을 샌 사람이 수천 명이야.”
“밤샘은 마이애미라서 가능한 거죠. 늦가을에도 따뜻한 날씨거든요.”
기자들은 빽빽하게 들어선 관중들을 보곤 혀를 내둘렀다.
“트로피카나 필드가 매진될 줄이야.”
“챔피언십 시리즈 때도 매진이었다고.”
국가 제창이 끝난 뒤, 시구와 시타가 이어졌다.
“킴이 어떤 피칭을 보여 줄지 기대가 되는군.”
“난 킴과 배리 본즈의 대결이 가장 보고 싶어.”
“킴이 이기겠죠?”
“물론이지.”
김민은 탬파베이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지터와 포사다도 이날만큼은 TV 앞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지터, 오늘은 데이트가 없는 건가?”
지터가 TV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데이트 상대는 저기 있거든.”
포사다가 간식을 준비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킴이 들으면 소름이 돋겠군.”
“왜?”
“뉴욕 최고의 난봉꾼이 그를 노리고 있으니까.”
지터는 포사다의 말에 혀를 찼다.
“쳇, 난 그가 아닌 그의 야구를 사랑할 뿐이야.”
식전 행사가 모두 끝나자 주심이 목소리를 높였다.
“플레이볼!”
경기 시작 사인.
김민은 배터 박스에 선 타자를 살폈다.
‘우타 중견수 맥기, 이번 시즌 성적은 타율 0.277, 홈런 3개, 39타점, 24도루.’
맥기는 양키스 리드 오프(1번 타자)였던 지터는 물론 탬파베이 리드 오프인 브라이튼보다도 떨어지는 선수였다.
‘맥기가 1루에 나갈 확률은 지터나 브라이튼보다 떨어진다. 하지만 홈에 도착할 확률은 지터나 브라이튼보다 낮다고 할 수 없다.’
맥기 뒤에는 최고의 타자인 배리 본즈가 버티고 있었다.
‘맥기가 나간다는 것은 기회가 본즈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절대 내보내선 안 돼.’
김민은 맥기를 제압하는 것이 오늘 경기의 키포인트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 바깥쪽 패스트볼.
전형적인 사인.
록튼은 고개를 끄덕이곤 배트를 들었다.
‘힘차게 하나 꽂으라고.’
슉!
빠른 공이 포수 미트를 향해 날았다.
파앙!
“스트라이크!”
맥기는 포수 미트에 꽂힌 공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코너에 정확히 들어갔군. 소문대로 좋은 제구력이야.’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3마일(150km).
메이저리그 선발로서 부족함 없는 구속이었다.
“킴이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았습니다!”
“맥기는 하나 기다렸군요.”
오늘 해설은 ESPN의 유명한 듀오, 듄과 콘이었다.
“평소 자주 만나지 못하는 투수이기 때문이겠죠?”
“아마 그럴 겁니다.”
배리 본즈는 아직 더그아웃에 있었다. 그는 초구만 보고도 투수의 컨디션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힘을 빼고 가볍게 던지고 있어. 좋은 컨디션이군.”
김민은 바깥쪽에 이어 안쪽을 공략했다.
파앙!
“스트라이크!”
이번에도 맥기는 배트를 내지 않았다.
‘벤치 사인이 기다리라는 것이었으니까.’
피올라 감독은 연속 스트라이크를 보곤 혀를 찼다.
“마커, 하우저의 말을 들었다가 망신을 당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
“전력분석팀에서 헛소리를 하진 않았을 겁니다.”
마커 수석 코치는 두 번의 시프트 움직임을 보곤 재빨리 사인을 바꾸었다.
- 기다려라.
맥기는 코치로부터 사인을 받곤 배트 박스를 세웠다.
‘볼이란 말이군. 카운트 0-2, 브레이킹볼 타이밍이긴 하지.’
샌프란시스코 전력분석팀 하우저는 투구가 아닌 시프트를 분석해 김민의 볼 배합을 읽고자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 우타자를 상대로 1루 쪽 시프트를 쓸 경우, 바깥쪽 공이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여기까지는 모든 팀이 알고 있는 내용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시프트의 방향을 바꾼 뒤 다음 공의 스트라이크와 볼 확률을 체크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시프트를 좌우로 완벽히 변경한 뒤에는 67%의 확률로 볼이 들어왔다.
67%의 확률.
3개 중 2개.
김민이 볼을 많이 던지지 않는 투수라는 것을 가정하면 이것은 꽤 높은 확률이었다.
‘이번에는 볼이다.’
슉!
빠른 공이 바깥쪽을 향했다.
맥기는 이 공을 칠 생각이 없었다.
‘스트라이크존에서 떨어지는 스플리터인가? 그런 공에는 속지 않아.’
그는 김민이 날카로운 스플리터를 던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떨어져라!’
맥기가 속으로 외친 순간 김민의 패스트볼이 앞으로 뻗었다.
파앙!
바깥쪽 코너를 정확히 찌르는 패스트볼.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선두 타자 맥기는 배트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킴! 맥기를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맥기는 브레이킹볼을 노리고 있었던 것일까요? 패스트볼 3개에 맥없이 물러납니다.”
김민이 던진 세 번째 공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첫 번째는 상대가 노리는 공이 브레이킹볼인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배트가 끝까지 움직이지 않았어. 그렇다면 커브처럼 느린 공을 노리고 있었던 건가?’
투 스트라이크 노 볼.
패스트볼이 아니라 스플리터나 커터를 노리고 있었다고 해도 당연히 배트가 나와야 했다.
하지만 맥기는 배트를 내지 않고 삼진으로 물러나는 것을 선택했다.
이는 자신이 원하는 공과 전혀 다른 공이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김민이 패스트볼을 던진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좌우 로케이션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맥기가 배트를 세운 채 삼진을 당함으로써 김민은 그의 대처 능력을 확인할 수 없었다.
‘다음 타석에서 확인할 수밖에.’
피올라 감독은 맥기의 삼진에 안전핀이 살짝 풀렸다.
“마커, 이래도 녀석을 믿으라는 말인가?”
“…….”
“난 말이야. 통계로 야구 하려는 녀석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왜 그런지 알아?”
마커 수석 코치가 대답했다.
“숫자는 해석하기 나름이다란 말씀을…….”
“그래, 바로 그거야. 숫자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단 말이지. 배트 스피드가 느려 삼진당한 것을 두고 적당한 이유를 붙여서 멋대로 해석하는 거야. 저 타자는 코너로 들어가는 공에 약하다. 저 타자는 커터에 약하다. 놈은 그냥 배트 스피드가 느릴 뿐이라고.”
맥기 다음 타자는 2번 타자 해리스였다.
해리스는 월드시리즈 타선에 어울리지 않는 0.251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김민은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해리스, 타율만 보면 레귤러인 것이 이상한 선수. 하지만 그의 번트 능력은 메이저리그 제일이다. 기습 번트 정도는 조심할 필요가 있어.’
해리스와 그의 번트가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주자가 나가 있을 때였다.
이처럼 주자가 없는 상황이라면, 해리스는 장점이 없는 타자였다.
록튼은 미트를 앞으로 내밀며 생각했다.
‘킴, 그래도 일단 타율이 0.250은 넘었어. 기본은 할 줄 아는 타자라고 생각하는 게 좋아.’
김민은 시즌 타율 외에도 한 가지 기록을 더 알고 있었다.
지난해 월드시리즈에서 해리스의 타율은 0.272 시즌 타율보다 훨씬 좋았다.
‘초구 기습 번트 정도는 대비해야겠지.’
3루수 스나이더는 이미 앞으로 뛰어들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킴의 투구와 동시에 스타트다.’
김민은 호흡을 조절한 뒤 바깥쪽으로 강하게 공을 뿌렸다.
슉!
‘빠른 공인가?’
해리스는 초구를 치지 말고 기다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나 보도록 하지.’
팡!
미트에 들어온 공은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을 아슬아슬하게 찌르는 커터였다.
‘볼인가?’
해리스가 고개를 돌린 순간 주심이 목소리를 높였다.
“스트라이크!”
김민의 커터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은 것은 록튼의 프레이밍이 컸다.
이반 감독은 프레이밍이 록튼의 무기 중 하나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주심이 도와주는군.”
“홈경기니까요. 적어도 이상한 판정은 나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록튼의 프레이밍이 좋았습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는 본즈가 등장할 때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킴과 본즈, 하지만 오늘 경기의 키포인트는 두 사람의 대결이 아니다.’
김민과 배리 본즈의 대결은 메이저리그 팬들의 이목을 끄는 핫이슈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결로 경기 결과가 가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라이브의 슬라이더를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 그것이 바로 오늘의 키 포인트다.’
라이브와 탬파베이 타선은 오늘이 첫 만남이었다. 그는 첫 단추를 잘못 끼면 시리즈 내내 라이브에게 눌릴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지난 이틀간 슬라이더에 대비한 훈련을 해왔다. 라이브의 슬라이더를 쳐 내지 못할 리 없다.’
딱!
해리스의 배트에 맞은 공이 그대로 유격수 브라이튼의 글러브에 걸려들었다.
“유격수 브라이튼! 빠르게 공을 처리합니다.”
투 아웃.
김민은 공을 받은 뒤 모자를 고쳐 썼다.
‘한 명만 더 잡으면 본즈 앞에 주자를 지울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타자는 그리 쉽지 않았다.
3번 타자 하울러.
시즌 타율은 0.299, 홈런은 28개, 타점은 101타점.
그는 3할과 30홈런 그리고 100타점을 함께 기록할 수 있는 강타자였다.
록튼은 하울러를 이렇게 평가했다.
“하울러는 윌리엄과 아울, 두 사람 사이에 위치한 타자야.”
아울보다는 뛰어나고 윌리엄보다는 떨어진다.
그러나 김민의 생각은 달랐다.
‘하울러는 좋은 타자지만, 아울보다 나은 선수는 아니다.’
아울이 팀 메이트라서 높게 평가한 것이 아니었다.
김민이 하울러를 아울보다 낮게 평가한 것은 그의 뒤에 배리 본즈라는 타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강의 타자를 뒤에 두고 있는 이상, 우산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어. 뭐, 이건 어디까지나 절대적인 기량을 평가하는 말이고, 본즈가 뒤에 있다면 록튼의 말대로 윌리엄과 아울 사이의 기량을 가진 타자라고 보는 게 좋을 거야.’
그는 일단 하울러의 배트 스피드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TV로 보는 것과 실전은 그 느낌이 다르니까.’
슉!
빠른 공이 바깥쪽 코너로 향했다.
하울러는 그 공에 바로 배트를 냈다.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오는 공을 그냥 보낼 수는 없지.’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뒤로 흘렀다.
“파울!”
김민은 록튼에게 새 공을 받으며 생각했다.
‘95마일(153km)에 배트가 살짝 밀렸어. 같은 공이 다시 들어가면 놓치지 않겠지. 예상대로 배트 스피드는 좋은 편이군.’
그는 그립을 바꾼 뒤 한가운데를 공략했다.
휙!
무지개처럼 큰 호.
하울러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뭐지?’
멈칫하는 순간, 공이 미트에 들어왔다.
팡!
“스트라이크!”
하울러는 판정과 동시에 주심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게 어떻게 스트라이크입니까?”
주심이 눈을 부릅뜨면서 말했다.
“아래로 떨어지면서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어.”
김민은 이퓨즈를 80% 이상 스트라이크존에 넣을 수 있었다.
이번 공도 정확히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다.
그러나 하울러는 스트라이크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홈콜도 정도가 있는 겁니다.”
“하울러, 퇴장당하고 싶나?”
“…….”
주심의 한마디에 하울러가 뒤로 물러섰다.
“알겠습니다. 스트라이크라고 하죠.”
그가 물러서자 주심이 낮게 말했다.
“월드시리즈 1차전이야. 1회 초부터 퇴장당하는 타자가 나오면 곤란해.”
하울러는 미간을 좁히면서 고개를 김민에게 돌렸다.
‘킴, 장난도 정도껏 하라고.’
그는 여전히 김민의 이퓨즈를 볼이라고 생각했다.
대기 타석에 선 배리 본즈는 김민의 이퓨즈가 정확히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킴, 재미있는 공을 익혔군. 하지만 저 공이 내게 통하느냐 하면…… 그건 아니야.’
그는 자신에게 이퓨즈를 던졌다면 펜스까지 굴러가는 2루타를 때려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저 공을 홈런으로 만드는 건 꽤 힘들겠군.’
배리 본즈는 홈런을 막는다는 것 하나만 생각하면 나쁜 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킴이 다시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카운트 0-2.
김민은 승부를 오래 끌지 않았다.
‘대기 타석에 본즈가 오래 있는 것도 좋지 않아.’
슉!
이퓨즈를 보았기 때문일까?
이번 공은 초구보다 더 빨라 보였다.
‘빠, 빨라!’
하울러가 배트를 냈지만, 공은 그의 배트를 스치고 미트에 꽂혔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삼진.
하울러는 배터 박스에서 빠져나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공은 장난 같았지만, 마지막 공은 진짜였다.’
배리 본즈는 좋은 것을 보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하울러에게 던진 마지막 공, 제법 떠올랐어.”
그는 김민의 라이징 패스트볼을 상대한 경험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