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2화 (2/203)

002. 당첨금 수령.

[띵동!]

“누...누구세요?”

건호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 나왔고, 손은 덜덜 떨면서 로또 복권을 지갑에 욱여넣고 있었다.

‘아, 아냐 지갑에 복권을 그냥 넣는 건 위험해.’

혹시라도 내가 로또에 걸린 것을 알고 강도들이 온 것이라면 지갑이 가장 위험한 보관장소였다.

로또에 걸리고, 갑자기 벨이 울리다 보니 심장이 벌렁거리고, 온갖 망상이 다 떠올랐다.

몇십억 당첨 로또라면 빡빡이 히트맨을 보낼 것 같다는 생각에 닭살이 돋았다.

“주문하신 음식 놔두고 갑니다!”

“뭐? 아!”

순간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그제야 이삿날에는 짜장면이라며 배달시켰던 음식이 생각났다.

“우하하하하.”

건호는 미친 듯이 웃었다.

단순한 음식 배달인데, 이걸 히트맨이니 강도니 하면서 망상을 펼쳤다는 생각에 배가 아플 정도로 웃음이 나왔다.

뛰던 마음을 추스르고, 현관으로 가는데, 현관 옆에 놔두었던 골프 클럽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몰라 아이언을 하나 꺼내 들었다.

통 몰리브 덴 강으로 만들었다는 차가운 녀석을 손에 쥐자 뭔가 안정감이 생겼다.

문을 빼꼼히 열어 복도를 살피니 아무도 없었고, 짜장면만 불어 터지고 있었다.

얼른 음식을 집안으로 집어넣고는 잠글 수 있는 열쇠란 열쇠는 모두 다 잠갔다.

그러고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문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었다.

물론,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어쩌다 인간 임건호가 이리 소심해졌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찌질한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이 들었다.

마음이 가라앉으니 맛있는 짜장 냄새가 풍겨왔다.

음식을 식탁에 옮기면서도 ‘와! 진짜 그 타이밍에 벨이 울리냐. 지릴 뻔했네.’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짜장면과 탕수육의 비닐을 벗기면서도 웃음이 났고, 그런 중간중간에도 옆에 놔둔 로또 용지가 눈에 계속 보여 웃음이 났다.

“우리나라에서 빡빡이 히트맨이라니 미친...크흐흑.”

짜장을 먹으면서도 웃음이 계속 나왔고, 로또 용지와 네이버 검색창의 번호를 다시 확인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입이 씰룩거리면서 웃음이 계속 나왔다.

마치 웃음 병에 걸린 것 같았다.

“당첨금액은 바로 나오지 않는 건가.”

전산상의 집계가 아직 안 된 건지 몇 명의 1등이 나왔고 얼마의 상금을 받게 되는지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다.

막 1등이 30명 넘게 나와서 10억도 못 받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었지만, 뭐 5억만 되어도 좋을 것 같았다.

“나, 나왔다! 뭐? 74억? 이번 회차에 3명밖에 없다고?”

인터넷에서는 오랜만에 나온 고배당이라고 난리였다.

얼마 후, 당첨 지역도 공개가 되었는데, 분명 내가 샀던 아파트 상가의 슈퍼도 있었다.

몇 번이고 재확인을 해도 내가 1등이 맞았다.

탕수육을 씹으면서 볼펜을 찾아 복권용지 뒤에 이름과 주민등록증 번호를 커다랗게 썼다.

이래야 분실되어도 내가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자, 잠시만, 지금 이런 걸 먹어도 되겠어?”

네이버 검색창에 나와 있는 당첨금 숫자 7,432,492,110원을 보고 있으니 지금 11,000원짜리 짜장 탕수육 세트를 먹어야 하는 거야? 하는 거만한 생각이 들었다.

유명한 중화요리 집에 가서 가격은 보지도 않고 요리를 시켜 먹고 싶었고, 내일 아침은 한우 1등급 투 뿔 꽃등심을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회사 차가 있어서 개인차를 굴리지 않았는데, 이젠 폼나는 스포츠카도 질러서 타보고 싶었다.

“그래. 해운대 백사장 앞 도로에 붉은색 페라리! 캬! 직이네! 차는 내일 사고 일단 중화요리 집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요리집이...”

순간 어머니를 떠올리자 눈앞에 어른거리며 돈 쓸 생각만 하게 했던 74억이란 숫자가 사라졌다.

맛있는 걸 먹을 때 같이 먹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떠오르자 흥청망청 돈을 쓰며 깔롱짓하겠다는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

치매로 아이가 되어 버린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돌보겠다는 여동생을 생각하자, 돈 쓰는 재미를 좇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냉정하게 뒤돌아 가버린 지선이도 떠올랐다.

한우 투뿔을 먹고 페라리를 굴리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철없는 생각인지 바로 깨달았다.

“우선 어머니 간병인부터 구하자.”

내가 퇴근하면 어머니를 모시고, 밤 근무인 동생이 낮에 어머니를 보기로 했지만, 힘든 일이었다.

전문 간병인을 구하고, 오래된 17평 빌라에 살고 있는 동생의 집부터 구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의 유명한 치매 전문 의사들에게 어머니를 진찰받게 해드리고 싶었다.

보험적용이 되지 않아 망설였던 비싼 치매 치료제도 마음껏 다 써보고 싶었다.

이런 마음을 먹고 나니 그제야 74억 원이 달리 보였다.

흥청망청이 아닌, 필요할 때 적절하게 써야 하는 돈이었다.

하지만, 망설이게 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당첨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느냐 알리지 않느냐 하는 문제였다.

아이가 되실 때 어머니는 온갖 이야기를 온종일 하셨다.

멀쩡하실 때 이야기를 드린다고 해도 그렇게 아이가 되셨을 때 이야기를 해버리면 낭패였다.

치매 할머니가 상상의 이야기를 한다고 다들 여길 수도 있지만, 그걸 새겨듣는 사람도 분명 있을 수 있었다.

어머니에겐 비밀로 해야 했다.

그리고, 동생에게도 비밀로 하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았다.

괜히 큰돈이 생겼다고 말하면 지금과는 다른 동생으로 변할지도 몰랐다.

혼자서 비밀로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그러니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목돈을 써야 할 때는 집을 팔고 남은 돈이라고 핑계를 대면 될 것 같았다.

***

“와 오빠 인테리어도 새로 다 한 거야?”

“그래. 구축이다 보니 인테리어 해야겠더라. 어머니가 큰방 쓰세요. 친구분들 오실 때나 건희가 자고 가더라도 큰방이 편해요.”

“그럴까? 이불도 새것이고 좋구나. 가장 마음에 드는 건 5층인 거. 경기도에서 22층은 진짜 너무 높아서 적응이 안 되더라.”

“그렇죠. 저도 운동 삼아 계단으로 올라오고 하려구요.”

“그래그래. 나도 그렇게 한번 해봐야겠다.”

어머니는 새집에 이사 온 것을 마음에 들어 하셨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치매 환자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물론, 간혹가다 병이 올라와 아이가 되면 힘들었지만, 그때가 아니라면 내 기억 속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건희야. 간병인 아주머님을 전일로 봐주시는 분으로 구하자. 그러면 네가 야간 근무 고정 안 해도 되잖아.”

“그렇게 되면 나도 편하긴 한데, 그러면 돈 많이 줘야 할 건데.”

“괜찮으니까 한번 알아봐 주라.”

“오케이 호텔 웨이트리스(Waitress) 아주머니 중에 일 그만두신 분들 많고 간병인 하시는 분들도 많으니까 한번 알아볼게.”

호텔에서 일하는 동생이다 보니 아주머니 인력풀이 넓은 게 또 좋았다.

***

“오늘부터 바로 출근하는 거야?”

새벽 6시에 나서는 오빠의 부산스러움에 동생이 일어나 나왔다.

“계란이라도 구워줄까?”

“아니, 괜찮아. 그리고, 출근은 다음 주부터인데, 서울에서 끝내지 못한 게 있어서 서울 가야 해. 저녁까지는 올게.”

“그래. 나 6시에 나가야 하니깐 빨리 다녀와.”

다시 자러 들어가는 동생과 주무시는 어머니를 보고는 부산역으로 움직였다.

로또 상금을 받으러 간다는 들뜬 마음보다는 자다가도 나와서 계란밥이라도 해줄까 물어보는 동생이 있다는 것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동생에게 보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 나를 기쁘게 했다.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지 않고, 부산역으로 움직였다.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 빠를 테지만, 괜히 비행기를 탔다가 추락하면 생존 확률은 0%였다.

KTX는 사고가 나도 생존율이 못해도 절반은 되니깐 기차로 결정했다.

정말 군대 말년처럼 떨어지는 낙엽이라도 조심해야 했다.

그래도 로또를 찾으러 가는 것이라 KTX 특석을 끊었다.

‘이 정도 소비는 좀 해도 되잖아.’

좌석 입구에 놓여 있는 견과류와 쿠키 봉지를 챙겼고, 물도 한 통 챙겨서는 좌석에 앉았다.

아침 겸해서 쿠키를 먹고는 잠을 좀 자려고 했지만, 서울까지 올라가는 시간 내내 잠이 오지 않았다.

KTX에 도둑이 없다는 걸 알지만, 혹시라도 잠이 들었을 때 지갑을 잃어버릴까 싶어 잠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서울역에 도착해서는 그냥 걷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나오는 지방 사람들을 위한 당첨금 수령법을 보면 서울역에 도착한 이후 택시를 탈 때 농협 중앙회 본점으로 가자고 하지 말고 그 옆의 서대문구 경찰서로 가자고 말해야 한다는 글을 보고는 웃었었다.

지방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서울역에서 농협 중앙회 본점이 있는 서대문역까지는 10~15분 정도만 걸어가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시간도 오전 10시 30분이었으니 아침 일찍 당첨금을 찾으러 온 사람들도 다 갔을 시간이었다.

그렇게 단 며칠 떨어져 있었을 뿐인 서울의 공기와 인사를 하며 걸었다.

물론, 호주머니의 지갑을 꽉 쥔 채였다.

바로 앞에 농협 건물이 보이자 건물 뒤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 죠스바를 하나 사서 편의점 앞에서 먹기 시작했다.

야무지게 죠스바를 다 먹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청원경찰은 객장에 들어와 이정표를 찾는 나를 보곤 먼저 다가왔다.

그냥 면바지에 점퍼 차림의 나를 보곤 농협 본점에 업무차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본 것이었다.

“로또 당첨금을 찾으러 왔습니다.”

“이쪽입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청원경찰은 엘리베이터로 이끌었고 친절하게 3층 버튼까지 눌러줬다.

“당첨금 수령을 위해서 내방하셨는지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밑에서 뭔가 연락을 받은 것인지 여직원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저 고개를 끄덕여 의사를 표현했다.

“축하드립니다. 고객님. 대기실은 이쪽입니다.”

친절한 영업 미소를 띤 여직원의 안내로 자리에 앉자 확인을 위해 내 신분증과 로또 용지를 받아 갔다.

당첨금 후기를 보면 대기실에 막 서너 명이 대기를 하고 있다고 했는데, 당첨자가 적기도 했고 시간도 시간이었는지라 아무도 없었다.

여직원은 차와 다과를 내왔고, 여러 투자 상품의 팸플릿도 같이 테이블에 세팅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맛볼 새도 없이 확인되었다며 다른 직원이 안쪽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당첨금 수령 안내서이구요. 당첨금 수령을 위한 통장을 개설하시게 됩니다. 한번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사실 안내서를 줬지만, 그게 제대로 눈에 들어와 기억될 리가 없었다. 그저 후르륵 읽어보고 확인했다고 할 뿐이었다.

“계좌 비밀번호를 눌러주시고요. 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네 되었습니다.”

신분증을 복사하고 여러 서류를 처리하자 통장이 다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제야 직원은 자신의 명함과 여러 서류를 내밀었다.

그러곤, 농협의 투자 상품에 돈을 넣어 두는 것이 어떠한지 영업을 시작했다.

“쿨럭...쿨럭... 제가 몸이 좋지 않아서요.”

그제야 농협 직원은 당첨금을 수령하러 온 임건호를 쳐다봤다.

죠스바를 먹어 파랗게 어두워진 입술이 보였고, 서류를 들고 있는 팔의 소매 밖으로 나와 있는 병원 환자복이 보였다.

건호는 일부러 빌려 입고 밖으로 드러낸 어머니의 환자복 소매를 점퍼 소매 안으로 집어넣으며 웃어줬다.

“제가 시한부라서 투자보다는 좀 쓰면서 살고 싶어서요. 콜록, 콜록. 병원에 다시 가야 해서 이만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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