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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8화 (8/203)

008. 방향성.

“그 정도로 병원 급식이 복마전이야?”

“아마, 병원장 친인척 꽂는 건 기본에 백마진에 리베이트에 안 나가는 게 없을 거다. 너네가 대기업이라 조금 다르긴 하겠지만, 일을 따내도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도 있어.”

“와 겁 윽시로 주네.”

“겁은 무슨 그리고, 너도 병원 밥 먹어 봤잖아.”

동규의 말에 먹었던 병원 밥을 떠올려 보니 긍정적인 기억이 없었다.

학교 동문 할인에 동규 빽을 써서 입원했던 VIP 병실은 조금 나았지만, 그 외의 병실에서 먹었던 음식들은 기억조차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환자들 몸이 안 좋은데, 입맛이 있겠냐? 몸은 불편하고 입맛도 없고, 그러니 음식에 대한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어. 잔반도 엄청나게 나와서 근무자들 스트레스 엄청 받을 거다.”

“의사면 좀 긍정적으로 이야기해 주면 안 되냐? 군에서 잔반 많다고 얼차려 받았던 PTSD 오려고 한다.”

“리얼한 걸 알려주는 거지. 나중에 갈 때 병동 올라가서 식판 내놓는 캐리어 한번 살펴봐라. 제대로 밥 먹은 사람이 몇 명인지. 아무튼 병원 단체 급식은 난 비추다. 영업해서 따도 수익도 얼마 없을 거야.”

“그래도 한번 쑤셔는 봐야지.”

“새끼. 그럼 병원 영업 한번 체험이나 해봐라. 우리 쪽 제약 영업 오는 친구 중에 고등학교 동기가 있더라고. 이종민이라고 우일 제약 차장인데 연락해서 한번 물어봐. 여기 명함. 내가 미리 연락해 둘게.”

“오케이. 그런데. 정진이는 변호사 되는 거 완전히 접었데? 듣기로는 시민단체에 들어갔다고 하던데. 넌 좀 아냐?”

“나도 잘 몰라 무슨 청소년 관련 시민단체라고 하던데.”

“청소년?”

“그래. 나도 깊게 물어보진 않았어. 네가 한번 가서 물어봐봐.”

동규 외에도 대학 생활 동안 응원단으로 같이 붙어 다닌 박정진이란 친구가 있었는데, 셋 다 부산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잘 뭉쳤었다.

당시 응원단에는 부산 사람이 우리 세 명밖에 없어서 나와 법대인 정진이 그리고 의대생인 동규를 묶어서 부산 쓰리(three)라고 불렸었다.

그게 사투리처럼 변화해서 ‘쓰리’가 세 명을 뜻하는 ‘서이’가 되었고, 자연스레 ‘부산 서이’가 우리들의 별명이 되었었다.

졸업 후 취업한 나와는 다르게 법대생인 정진이는 사법시험에 집중했었는데, 거기에 들인 노력이나 세월이 만만치 않았다.

헌데, 그런 노력을 다 접고 시민단체에 들어갔다고 하니 그 녀석도 나만큼이나 정신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알았어. 내일 내가 정진이 만나서 한번 물어볼게.”

“그래. 해운대 쪽에 있다고 하니깐 너네 회사에서 가까울 거야. 만나서 제대로 뭐 하는지나 물어봐라. 괜히 정치 쪽 가려고 하는 거 같기도 하고.”

“설마 정치 쪽이겠냐? 일단 내일 물어볼게.”

“그리고, 부산 내려왔으니깐 술이나 한잔해야 하는데, 어머니도 뵐 겸 너희 집에서 한잔할까?”

“그럼 난 좋지. 내일 정진이 만나서 한번 시간 맞춰볼게. 어머니도 너희 둘 보면 좋아하실 거야.”

정진이와 헤어지고 나오는 길에 그의 말마따나 병동 복도에 놓여 있는 식판 이동차를 살펴봤다.

사람들이 얼마나 밥을 먹었고, 어떤 반찬이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그리고, 동규의 말마따나 제대로 밥을 먹은 사람은 채 반도 되지 않았고, 대부분이 그대로 남기거나 아예 손도 안 댄 사람도 있었다.

어찌 보면 입원비에 식사비가 다 포함되어 있으니 이렇게 안 먹는 것이 업체 입장에서는 이득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밥을 맛있게 먹어줘야 즐거운 조리원의 입장에서는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이거 뭔가 이상한데, 뭘 잊고 왔나.”

출근하는데, 뭔가 허전했다.

뭔가 빠트린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허전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출근 엘리베이터에서 김독수 전무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지하철이 아닌 자차 출근이다 보니 시간이 좀 달라져서 마주치지 않게 된 것이었다.

뭔가 아쉬워서 내일은 출근 시간을 맞춰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김독수 전무 입장에서는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침 체조와 조례를 끝내니 이수길 차장이 나를 불렀다.

“그렇지 않아도 차장님께 보여 드릴 게 있습니다.”

어제 집에 가 정리했던 영업기획서를 보여주는데, 옆에 있던 허문도 팀장도 슬그머니 와서 앉았다.

“어디 서울 엘리트가 뭘 생각해 냈는지 한번 볼까. 병원이야?”

허문도 팀장은 또 특유의 행동인 턱을 이리저리 휘젓기 시작했다.

애매한 상황일 때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버릇인 것 같았다.

“접근 방법 좋네. 우선 학교나 관공서, 기업체를 빼고 다른 파트를 찾아냈다는 거는 좋아. 헌데, 부산에서 닳고 닳은 우리 영업팀이 단체 급식하는 병원을 왜 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수지 타산이 안 맞거나 다른 문제가 있기에 제외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맞아. 겉으로 보기에 병원 위탁 급식은 규모가 엄청나게 커 보여. 왜냐면 하루 3끼를 다 먹기도 하고, 3끼 모두가 같은 수량이니깐.”

허문도 팀장의 말에 건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3교대를 하며 24시간 돌아가는 기업체라 하더라도 조식이나 석식은 인원수가 중식에 비해 작아질 수밖에 없는데, 병원은 그런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배식 인원이 같다는 것은 위탁 업체 입장에서는 아주 큰 매력이었다.

“하지만 왜 우리나 CT그룹의 푸드 사업팀이 안 들어갔을까?”

“백마진 같은 리베이트 때문입니까?”

“그것도 있는데, 그것보다는 병원은 조리 인력이 2배 이상 들어가. 같은 음식을 하더라도 조리를 두 번 혹은 3번을 해야 해.”

“아, 일반식에 환자식을 따로 해야 하기에 타산이 안 맞다는 거군요.”

“그래. 보통 병원을 잡게 되면 직원들이 먹는 일반식을 기본으로 해야 하고, 환자들을 위한 환자식을 따로 해야 해. 문제는 환자식도 중환자용 미음이나 당뇨 환자용, 어린이를 위한 유·아동 식단까지 다 해야 한다는 거지.”

“아...”

단순히 일반식과 환자식을 생각했는데, 환자에 따라 환자식의 종류가 너무 많았다.

“병원이 겉으로 보기에는 하루 3끼 모두 단위가 크기에 돈이 될 것 같지만, 오히려 환자에 따라 조리를 별도로 해야 하는 게 많기에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그래서 영업 자체를 들어가지 않는 거야.”

“그럼, 지금 병원들은 어떻게 운영하는 겁니까?”

“대부분이 소규모의 위탁 업체들이 들어가 있지. 다른 업종이나 다른 곳에 신경 쓰지 않고, 그 병원에만 올인해서 하는 거야. 물론, 병원장의 친인척이 대표인 경우가 많고. 그러니 우리 같은 전문 업체들은 병원 일을 따려고 하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겠지?”

“흠. 그럼 접어야겠군요.”

나름 준비했던 기획서를 그대로 접어버렸다.

“그렇다고 너무 우울해하진 말고, 이쪽으로 생각한 것까진 좋았어. 본래 이쪽 계통도 아니니깐 몰랐던 게 당연한 거고. 계속 들이받아 봐. 그게 영업이니깐.”

허문도 팀장은 커피나 마셔야겠다고 가버렸고, 이수길 차장은 허문도 팀장이 이미 말을 다 했기에 더 할 말도 없었다.

“머리 더 굴려봐. 고대 출신이니깐 기대하고 있다고.”

서울대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출신 학교로 기대한다는 저 말이 은근히 부담을 주고 있었다.

***

“바른 청년 갱생 협회? 뜬금없이 무슨 시민단체 활동이냐?”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어.”

2년 만에 만난 정진이는 해운대의 협회 사무실에서 보았는데, 이제까지 사법시험 준비를 하던 덕후스런 모습이 아니었다.

검은 뿔테의 안경은 그대로였지만, 깔끔하게 자른 머리는 왁스를 발라 3:7 가르마를 타고 있었고, 비싸 보이는 깔끔한 딥다크 블루의 정장을 위아래 맞춰 입고 있었다.

구두도 오늘 닦았는지 광이 났다.

흰 와이셔츠에 검붉은색의 넥타이를 했고, 은색의 넥타이핀과 손목의 커프스 버튼까지도 맞춘 듯이 빛을 내고 있었다.

모습만 보면 법조인의 느낌이 제대로 나오는 고급스러운 옷차림이었다.

“야 옷차림만 보면 시민단체 활동이 아니라, 펀드 매니저나 정치 입문하는 초선 국회의원 같은데. 너 정치 하려는 건 아니지?”

“하하하. 절대 그런 거 아냐 인마. 진짜 비행 청소년들 상담해주고 애들 갱생 도와주는 그런 일 하고 있어.”

“그런 일 하는데 옷이랑 차림새가 너무 깔끔하고 좋잖아. 뭔가 영화 변호인에 나오는 그런 변호사들처럼 그냥 깔끔해야 하는 거 아냐? 지금 옷은 너무 부티가 나잖냐. 막 사짜 냄새도 나려고 한다 야.”

“이게 어쩔 수가 없어. 법원에서는 옷을 잘 차려입어야 해서리.”

“웃기네. 옷차림 보고 법이 차별 대우하냐?”

“뭐, 그것도 없잖아 있지만. 내가 만나고 상담하는 애들은 눈치가 빠르거든.”

“돈 많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치?”

“아니, 자기들이 막 대해도 되는 사람인지 아니면 고개를 숙여야 하는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눈치. 애들은 상대의 옷차림과 행동을 보고 그런 판단을 해버리거든. 그래서 일부러 비싸고, 있어 보이게 입고 다녀.”

정진이의 말을 듣고 보니 맞는 것 같았다.

비행 청소년으로 법원까지 간 애들이라면 사람에 대한 존경보다는 이 사람이 자신 보다 잘나가는지, 못 나가는지를 보고 판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 잘 입어야 한다라. 직관적인 약육강식이네. 힘든 일 하고 있구만. 뭐, 예전보다 옷은 잘 입고 다니니깐 좋긴 하다야. 근데 아버지는 반대 안 하셔?”

정진이네 집은 청과물 도매를 시장에서 했는데,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건물을 몇 채 가지고 있어서 정진이의 사법시험 뒷바라지를 할 정도는 되었었다.

“동생이 변호사가 되었어. 그래서 이제 내 마음대로 하라고 하시더라.”

“아, 성욱이가 사시에 걸렸어?”

“그래 나완 다르게 동차 합격해 버리더라고.”

“이야. 1, 2차를 한 번에 붙다니 난놈이네.”

“그래서 나도 나 하고 싶은 일하고 살기로 했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면 좋지. 그래도...”

그래도 이때까지 해온 게 아깝잖냐고 이야길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아마도, 가장 아까워하고 분해할 사람이 정진이 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참. 어제 사하구에 갈 일이 있어서 동규 병원에 들렀는데, 날 잡아서 우리 집에서 한잔하자고 하더라. 넌 시간 언제 되냐?”

“집에서 먹자고?”

“그래. 어머니가 너희 둘 보면 좋아하실 것 같거든.”

“그렇네. 안 뵌 지도 오래되었고, 그럼 주말쯤에 시간을 만들어 볼게.”

“어키. 근데 진짜 네가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이야. 뭔가 새롭다야.”

“사람 사는 게 바뀌는 거지. 그래 넌 부산 생활 어떠냐?”

“서울보단 좋은 거 같다. 서울에는 필요 없는 중고차도 하나 샀고. 하단에 있는 동규랑 해운대에 있는 너 만나러 다니려면 차는 있어야 하겠더라고. 근데 어떻게 시민단체가 해운대에 사무실이 다 있냐? 이게 돈이 되는 일이야?”

“돈이 되긴 무슨. 이 사무실도 다 시에서 빌려주는 거야. 근데 너 점심은 먹었냐? 밥 먹으러 가자. 내가 사줄게.”

그렇게 밥을 사준다는 정진이를 따라 졸래졸래 건물을 나서는데, 뭔가 이상했다.

점심시간이라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우루루 내린 그것까진 서울이랑 같았는데, 같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모든 사람이 줄지어 두 블록이나 떨어진 KNM 방송국 건물로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정진아 방송국 구내식당은 설마 아니겠지?”

“그 설마가 맞아. 이 근방에서는 여기가 제일 좋아. 다른 일반 음식점은 가격이 서울만큼 비싸거든.”

“부산이지만, 해운대는 서울이랑 비슷한 클라스다 이거구나.”

“근데, 가격만 서울이야. 맛은 또 더럽게 없어. 맛은 저기 강원도 인제나 원통쯤의 맛?”

“인제랑 원통이라고 하니 바로 와 닿네. 짬밥이든 시내 밥이든 헬이었지.”

“그래서 이 근방 비즈니스 빌딩에 있는 사람들은 다 KNM 타워로 와서 밥을 먹어.”

정진이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니 주위 빌딩에서 사원증을 단 수십 명의 사람이 방송국 건물로 줄지어 오고 있었다.

“오호! 그래. 이거네.”

*

[작가의 말]

사실 해운대 KNM 타워는 2012년에 완공되어 방송국이 입주했습니다.

2009년에는 그냥 허허벌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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