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28화 (28/203)

028. 라면이라면 말이지.

“네트워크 마케팅에 관심이 있는 거야? 총각이야? 혼자 왔어?”

“아, 그게 아니고요. 그냥 라면을 좋아해서 라면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냥 두 개 다 사겠습니다.”

“아니 라면만 사지 말고, 우리 사무실에 한번 나와봐. 젊은 처자들도 많다니깐.”

“람토미에는 젊은 사람이 많습니까?”

“당연하지, 담웨이는 오래되어서 고인물이 많지만, 우리 람토미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온다니깐. 그럼 이 라면은 초대 선물로 줄게!”

람토미의 아주머니는 라면을 그냥 주며 자기 명함과 소개 팸플릿을 줬는데, 덕분에 경쟁상대인 담웨이 아주머니도 라면을 팔지 않고 그냥 내게 줬다.

“총각 명함 있으면 줘봐 봐.”

연락처를 줘도 될까 잠시 고민했지만, 왠지 네트워크 마케팅 이쪽이 도움이 될 거 같단 생각에 명함을 두 분께 드렸다.

“아, 거산 랜드 다니시는구나. 우리 사무실에 거산 직원들 많이 나와. 토요일에 한번 와봐!”

“아, 네네.”

“진짜 제대로 영업에 대해서 배우고 싶고, 네트워크 마케팅에 관해서 공부하고 싶다면 우리 담웨이로 와요. 이제는 투잡이 기본인 시대라니깐.”

“네네. 주신 거 이거 다 읽어 보고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아주머니들의 수다에 순간 휘말렸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왔는데, 담웨이는 4개 들이 5500원, 람토미는 5개 들이 5500원으로 가격이 표시되어 있었다.

라면의 뒷면 성분표와 제작기업 정보를 보니 담웨이는 중견 식품 전문 업체인 공두기에서 위탁 생산이 되었고, 람토미는 햇살 식품이라는 곳에서 제조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중견 식품 업체인 공두기는 자체 라면 상품도 많았기에 어느 정도 신뢰가 되었지만, 이 햇살 식품이라는 곳은 처음 보는 곳이라 기대보다는 의심이 되었다.

일단 둘 다 끓여 먹어 봐야 될 것 같았다.

동생에게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라면을 들고 회사로 향했는데, 탕비실에 버너와 냄비 같은 게 구비되어 있는지 확실치 않았다.

가는 길에 마트에 들려 가스버너와 코펠 냄비를 구매하면서, 라면 코너에 들렸는데, PB상품으로 나와 있는 라면들이 의외로 많았다.

마트 2곳을 돌아다니며 일일이 PB(private brand 자체 브랜드)라면 뒤를 살펴보고 사진을 찍었다.

라면 업계 1위인 용심에서 생산된 게 2 제품, 2위인 공두기에서 나온 게 3 제품, 3위인 만양에서 나온 게 3 제품이었다.

그리고, 람토미의 라면을 생산한 햇살 식품에서 나온 게 2종류, 진미 기업, 만창 식품에서 나온 게 각각 1종류가 있었다.

라면을 잘 안 먹어서 몰랐는데, 알게 모르게 라면 PB제품이 많은 것 같았다.

PB제품 라면도 1봉지씩 다 구매를 해서 회사로 들어갔다.

“회의록 정리 다해서 파일로 보내뒀습니다.”

“아 고마워요.”

바로 라면을 끓이려다 이신애가 정리해서 보냈다는 회의록 파일부터 열어 봤다.

월별로 파일을 검색해서 혹시 과거에 라면과 관련된 항목이 있는지를 살펴봤다.

92년에 한 번 라면 출시를 추진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때는 버터 바른 오징어가 대박이 나는 바람에 거기에 집중한다고 추진을 중지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다 97년도에 다시 한번 더 추진을 했었다.

이때는 라면 이름까지 정해두고 예산까지 받아온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IMF로 인해 모든 게 중지가 되었었다.

이놈의 IMF가 여럿 물 먹인 것이었다.

그 이후로는 신규 제품 생산 보다는 초기 비용이 들지 않는 일본 안주류를 수입하는 방향이 되었기에 이후 라면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었다.

92년도와 97년도에 있었던 회의 자료와 관련 자료를 모두 출력해서 읽어봤다.

당시의 도표도 다 있었는데, 1963년 출시되었던 만양 식품의 라면은 1967년에는 1년에 천만 개를 팔았고, 1969년에는 천오백만 개를 팔았었다.

이때는 혼식(混食) 권장 때문에 판매율이 급등한 거라고 분석되어 있었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1년에 3천만 개를 팔았다고 하니 시장의 성장이나 규모가 계속 우상향이었다.

물론, 1989년 공업용 우지 파동으로 인해 라면 판매율이 30% 가량 떨어졌다고 되어 있었지만, 92년부터는 다시 또 우상향 성장이었다.

이때의 재 성장성을 보고 거산도 검토를 했던 것이었다.

그러다 97년 소고기 우지 파동이 누명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라면 판매율도 올랐으며, 우리 거산도 라면 제품을 출시 직전까지 진행했었다.

하지만, IMF로 모든 신규 사업은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IMF 때 라면 판매율은 더 올랐다.

이때 힘들더라도 투자를 해서 라면을 출시했었다면 거산의 상품 판매 관리부도 지금과 같지 않았을 터였다.

그리고 작년 2008년 기준으로 국민 1인당 68개의 라면을 먹고 있었다.

버터 바른 오징어처럼 술안주로 한 달에 한 마리 먹을까 말까가 아닌, 매주 1.3개씩 소비를 하는 것이었다.

1년 총 소비개수는 34억 개.

시장규모는 1조 8천억 원.

개당 평균 판매 가격은 530원.

아주 매력적인 수치였다.

이미 많은 업체들이 뛰어들어 있지만, 거산이 라면 시장에 뛰어든다면 손해는 보지 않을 터였다.

우선은 외식 사업부에서 운영하는 여러 외식 사업장에 들어가는 사리면 시장을 확보할 수 있었고, 구내식당에서 무료나 저렴하게 제공하고 있는 작은 컵라면의 수요도 만만치 않았다.

어느 정도 회사 내에서 소비할 수 있는 시장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런 회사 내 소비처도 있는데, 왜 라면 시장에 진출하지 않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회의록에 나와 있는 사업 예산금액을 보고는 왜 진출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고, 동의 할 수밖에 없었다.

92년도와 97년도에는 라면이든 뭐든 PB상품이라는 자체브랜드 제품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저 때에는 자기 이름을 달고 나가는 거라면 무조건 직접 생산해야 한다는 그런 관념이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OEM 생산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사람이 먹는 식품이라는 게 문제였다.

우지 파동을 한번 겪으면서 더 공장이나 식재료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 되었으니 당연히 자체 공장을 짓는 것으로 예산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마트 자체 PB제품을 용심이나 만양에서도 만들어 주는 시대가 된 것이었다.

아니, 다단계라 불리는 네트워크 마케팅 업체의 제품까지도 만들어 주며 매출 규모를 늘리려는 시대였다.

공장시설 없이 3대 메이저 라면 회사나 처음 들어보는 햇살식품이나 진미 기업, 만창 식품 같은 작은 회사에서 라면을 만들어 거산의 이름으로 팔면 되는 것이었다.

대충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500원짜리 라면을 1년에 100만 개만 팔아도 버터 바른 오징어의 매출 절반을 찍을 수 있었다.

1년에 34억 개가 소 되는데, 그중 천만 개만 잡아 와도 상품 판매 관리부는 묫자리 부서를 탈출할 수 있을 터였다.

우선 햇살 식품과 진미 기업, 만창 식품에 전화를 해서 최소 주문 수량에 대해 문의를 했다.

세 곳 모두 담합이라도 했는지 최소 생산 수량이 100만 개라고 했는데, 생산 원가는 재료에 따라 250원에서 350원 정도 한다고 했다.

100만 개를 단가 300원으로 잡으면 3억이었다.

물론, 여기에 생산 후 보관비라던지 유통비가 추가가 되겠지만, 일단 러프하게 계산을 했다.

내년 신제품 출시 예산으로 3억 이상만 이창모 부장이 당겨 온다면 거산의 이름을 단 라면 출시가 가능할 것 같았다.

오징어에 비해 매출을 제대로 올릴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았다는 생각에 담웨이나 람토미의 제품이라도 몇 개 사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단 PB상품 라면이 기존 라면과 맛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물을 올렸다.

***

“다들 알다시피 내년 사업 예산 신청할 때 다들 여유 있게 받으려고 1~20%씩 올려 신청하는 거 알 거예요.”

재무팀 팀장인 유도욱 팀장은 안마기로 어깨를 두들기며 회의실에 앉아있는 대리들에게 서류를 보게 했다.

“우선 작년과 동일한 항목으로 그대로 신청한 항목의 경우에는 경과보고서 첨부 확인해서 타당성 조사부터 하도록 하세요.”

“팀장님. 경과보고서에 포스트잇 붙은 건 어떻게 처리합니까?”

“그건 통과시켜 주는 겁니다. 임원 라인에서 챙겨 주라고 내려온 거라서 우리가 예산 자를 수 없어요. 그건 패스!”

유도욱 팀장은 이런 쪽지로 예산을 부탁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에 그 건은 건드려서 좋을 것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경과보고서에 진척이 없다면 20% 예산 줄이고, 경과보고서에 내년부터 좋아진다는 내용이 있다면 서류를 오른쪽으로 접으세요.”

그렇게 대리들이 표시를 한 자료는 과장, 차장들이 다시 한번 보고 결정을 하는 것이었다.

“작년과 다른 항목이거나 신규 항목으로 예산 증액을 요청한 부서가 있으면 그 항목서류는 왼쪽으로 접으세요.”

그렇게 예산 서류를 정리하는 한편 다른 쪽에서는 올해 각 부서에서 올린 매출과 순이익을 뽑아서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11월이었기에 3분기까지의 결과였지만, 이 결과가 내년 예산 배정의 기준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정리된 예산 신청서와 매출 보고서를 들고 차장들과 총무팀장이 마주 앉았다.

“서류 왼쪽으로 접혀있는 새 항목 예산 신청부터 심의합니다.”

가장 매출이 큰 의류 사업부의 신 항목 예산 신청부터 검토를 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포스트잇이 붙어 있지 않다면 철저하게 사업 타당성을 확인했고, 투자성 예산 보다는 소모성 예산을 먼저 배정해 주었다.

예산이 무한한 것이 아니기에 현상 유지 예산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었다.

사업에 대한 판단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각 사업부 담당자를 불러 심사를 하기도 했고, 그런 경우에는 부장들도 와서 사업예산을 위해 굽신거렸다.

그렇게 대부분의 부서가 끝이 나고 매출 규모가 가장 작은 상품 판매 관리부의 차례였다.

“왼쪽으로 접힌 신규 사업예산이 많은데요.”

“작년이랑 비교하면?”

“어디 보자, 에? 8배 증액 신청했습니다.”

“뭐? 8배?”

차장들에게 일을 맡기고 여유롭게 안마기로 어깨를 두들기던 유도욱 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8배이긴 한데, 다른 부서에 비하면 반 정도밖에 안 되긴 합니다.”

“올해 매출은 어떻지?”

“작년이랑 거의 비슷합니다. 사업 타당성 서류에 보면 10월 이후로 판매 증가와 유통 채널 확대가 되어 실 매출이 늘어났다고 서류는 붙어 있는데, 분기 별 자료가 아니라서 이걸로는 매출 증감 확인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디 보자.”

찬찬히 살펴본 유도욱 팀장은 작년까지 묫자리처럼 죽은 듯이 있던 부서에서 신규 사업을 하겠다고 예산 증액을 요구한 것이 이채롭기는 했다.

그리고, 단편적인 매출 리포트였지만, 실제 매출도 4% 이상 오른 거 같았다.

하지만, 미미했다.

“따로 포스트잇은 없고? 아, 이창모 부장이니깐. 이제 외파로 바꿨었나?”

“네. 설비 교체, 증가 건으로 2억 예산 신청한 것은 김독수 전무님 포스트잇이 붙어 있습니다.”

“그럼 그 건은 통과시키고, 그다음 구찌 큰 게 뭐야?”

“신상품 개발 건인데, 이건 상세 항목이 안 나와 있습니다.”

“뭐 다른 부서도 신규 사업예산은 비슷하게 허술해. 그건 얼마인데?”

“1억 8천입니다.”

“그건 5천으로 깎고, 4분기 매출 증감에 따라 내년 하반기에 추가 예산 가능하다고 처리해.”

“그리고 다음은...”

“아니 됐어. 이 매출에 이 정도 예산 챙겨 준 거만 해도 많이 해 준 거야. 작년 3배는 되겠구만.”

“그건 그렇습니다.”

“그럼, 소모성 예산은 작년과 같으면 통과시키고, 그 외는 다 짤라. 리먼 사태로 인해 회사가 긴축 비상 경영이라고 대충 박아넣어. 리먼 때문에 미국이 박살인데, 예산 안 준다고 뭐라고 할 거야.”

***

“네. 전무님. 전화 받았습니다. 네네. 아, 예산 결과 나왔다고요? 네.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늘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네. 들어 가십쇼.”

이창모 부장은 김독수 전무에게 전화를 받고는 기대에 찬 마음으로 인트라 넷에 들어갔다.

부서장 명의로 온 메일을 클릭해서 열어 보는데, 내년 사업예산 결과 통보서가 와 있었다.

첨부된 파일을 확인하니 이창모 부장은 기분 좋을 수밖에 없었다.

신청한 금액 그대로 나오는 것은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었다.

그저, 내년 신규 상품 개발 예산과 설비 교체 건으로 예산이 나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 2개가 가장 컸기에 기대를 했는데, 설비 교체 건은 전액이 나왔고, 신규 상품 건은 70% 넘게 깎였지만, 올해에 비한다면 3배가 넘는 금액이 나왔다.

파벌을 옮김으로써 이렇게 예산이 달라지자 이창모 부장은 더 빨리 파벌을 옮기지 않은 걸 후회할 정도였다.

이창모 부장은 이렇게 증액된 예산이 자랑스러워 바로 김한철 차장과 임건호 차장에게 파일을 토스했다.

김한철 차장은 작년과 달라진 예산에 기뻐했지만, 예산결과 통보서를 보는 건호는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라면에 넣을 예산으로는 턱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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