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 너 내가 키워준다!
“이름을 건 제품이 있으면 유명해지는 거야? 요리를 따로 만들고 안에도?”
“네. 형님. 작년부터 편의점에 ‘에드몬드 박’ 요리사의 이름이 붙은 도시락이 나왔는데, 출시되자마자 바로 도시락 판매 순위 1위를 했습니다.”
“에드몬드 박? 그게 누구지?”
“오빠 그 있잖아 인간극장에 나온 요리사. 한국인 최초로 두바이 7성 호텔의 총괄 요리사가 되었다고 성공한 한국인으로 나왔었잖아.”
“아, 본 거 같다. 기억난다.”
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 알 것도 같았다.
“인간극장에 나온 이후 편의점 도시락에 자기 이름을 걸고 해서 대박이 났습니다.”
에드몬드 박은 방송에서 소개되었고, 7성급 호텔 출신이라는 메리트가 있었기에 이름을 붙인 도시락 상품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 배우 이혜자 사진이 들어간 도시락도 있더만.”
“네 이모. 맞아요. 편의점 상품 중에서는 유명한 사람 이름이나 사진을 넣어서 만든 상품이 많아요.”
티비 광고나 마케팅 비용에 큰돈을 쓸 수 없으니 얼굴을 아는 유명인들의 사진을 이용한 광고 마케팅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반대로 뒤집어 보면, 이름을 건 음식이 있다는 것은 그 분야에서 유명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아무리 무명이라도, 이름을 건 상품이 있다면 ‘일반인인 우리는 모르지만, 그쪽에서는 엄청 유명한가 봐!’ 하는 일반인의 역 유명세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매제를 다시 보니, 후덕한 요리사 스타일이 아니라 호리호리하게 잘생긴 스타일이라서 미남 요리사로 마케팅이 가능할 것 같았다.
더구나, 대한민국의 대표 관광지인 해운대 호텔의 요리사라면 에드몬드 박 쉐프의 버즈 알 아랍에 비비긴 힘들어도, 겉으로 보이는 타이틀은 비슷할 터였다.
해운대 특급 호텔 요리사가 만든 라면!
그렇게 매제가 유명세를 얻어 요리사로 몸값이 오르면 동생에게도 이득이 되는 거였다.
3억을 써서 라면을 생산해 유통한다면 절반 정도는 회수될 수 있으니 1억 5천 정도로 매제를 유명 쉐프로 만들 수 있는 거였다.
회사와 내 개인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매제. 우리 일 하나 하자.”
***
도협이와 건희를 앉히고는 상견례 날짜와 예식 날짜를 잡았다.
예식은 둘이 다니고 있는 호텔에서 대관료를 70%나 할인해 준다고 했기에 뉴 클라우드 호텔로 잡았고, 신혼집이나 폐백 예단 같은 것도 서로 안 하기로 했다.
하자고 했으면 다 해 줄 수는 있었으나, 도협이네 집에서 둘째가 장남 먼저 가는 것이라 그런 부분을 생략해도 된다고 해줬다.
“그럼, 신혼여행 같은 건 둘이 알아서 하고, 혼인 신고서부터 먼저 접수하자.”
“왜? 보통은 신혼여행 다녀와서 접수하잖아.”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싸우고 헤어지는 경우도 있었기에 보통은 신혼여행 이후 신고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지만, 이 둘의 이름으로 할 일이 있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개인 사업자를 너희 둘 이름으로 내려고 그래. 그래서 먼저 혼인 신고부터 하려는 거고.”
“사업자? 그건 왜? 전에 법인이랑 또 다른 거야?”
“그래. 다른 거야. 이 개인 사업자는 도협이를 스타 쉐프로 만들어 주려고 세우는 회사야.”
“네? 그게 무슨...”
“어제, 이야기했잖아. 자기 이름이 붙은 음식이나 상품이 있으면 유명쉐프라고.”
“네. 그건 그런데, 그게 저와는 연관이...”
“아니, 연관이 있지. ‘해운대 특급호텔 요리사 최도협의 라면!’이라고 상품이 편의점이나 마트에 깔리게 되면 그거로 유명 쉐프가 가능하잖아.”
“헐. 형님 그러면 안 됩니다. 제 위로 얼마나 많은 선배들이 있는데요.”
“그럼, 그 선배들 이름으로 음식들이 다 나와야 너 이름으로 가능하냐? 그렇게 이름 붙일 만큼 유명한 쉐프는 뉴 클라우드에 없잖아. 안 그래?”
“그게 그렇지만, 그리 되면 호텔 그만두고 가게를 차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쪽이 기수 문화가 은근히 쎕니다.”
“이름 붙인 라면까지 출시가 되었으니깐 더 유명해져서 더 좋은 호텔로 가면 되는 거지.”
“그건 그렇긴 한데. 갑자기 왜 라면을 이야기하시는 ㄴ겁니까?”
“우리 회사에서 자체 라면을 만들 건데, 그냥 거산 라면이라고 하면 폼이 안 나잖아. 무슨 공돌이 라면도 아니고. ‘거산라면’ 이러면 사려다가도 안 산다고.”
“그건 인정합니다.”
“그런데, 라면에 ‘해운대 특급호텔 요리사 최도협의 레시피!’ 이렇게 문구를 박아 두면 있어 보이잖아.”
“그러고 보니, 오빠 회사서 운영하는 구내식당이 해운대 센텀에 있으니깐 거기서 라면을 팔면 자연스레 해운대에서는 금방 알려지겠네. 그리고, 여름에 해운대 백사장에서 컵라면도 많이 먹잖아.”
“맞네! 해운대 백사장!! 그걸 생각 못 했네.”
동생의 말마따나 여름 휴가철 해운대 백사장에는 수천 개의 파라솔이 펼쳐지고, 이동 상인들이 치킨이나 아이스크림은 물론이고, 컵라면도 뜨거운 물을 들고 다니며 팔았다.
“그럼, 아예 라면 이름을 해운대 라면으로 할까? 그럼 해운대에서 엄청 팔릴 거잖아.”
지명을 라면 이름으로 쓸 수 있는지 없는지가 문제였지만, 한여름 바캉스 뉴스에서는 해운대 백사장 방문객이 하루에 100만 명이 넘니 안 넘니 하는 것이 화제가 될 정도로 방문객이 많았다.
그중 10%에게만 해운대 라면을 팔 수 있어도 생산 물량은 다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해운대 백사장에서 팔리면 자연스레 도협 씨 이름도 알려지겠네.”
“하지만, 저는 이태리 요리가 전공입니다. 대량 생산 라면 스프나 면빨에 대해서는 잘 알지를 못하는데요.”
“뭐 배우고 하면 되지. 내일부터 라면 스프 만드는 거 연구해봐. 아, 그러고 보니깐 라면 공장에 연락 했을 때 보니깐 기본 제공해줄 수 있는 라면 면과 스프도 있다고 했어.”
라면 공장에서는 특별한 기호 없이 무난한 맛의 라면 레시피도 제공 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런 기본 제공 레시피에 도협이 너만의 양념을 추가하거나 빼서 자체적인 레시피를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일단 나랑 같이 공장에 가보자.”
도협은 머리가 복잡했다.
결혼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보다 라면 레시피가 더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건호는 해운대 백사장에서 잘 팔리는 걸 생각하자 이거 제대로 장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봉지면이나 만들어서 이름을 얻게 해 주자고 했던 것이 해운대 백사장 판매를 떠올리니 컵라면도 소컵과 대컵을 만들어도 물량 소화가 가능할 것 같았다.
“일단, 혼인 신고서 빨리 도장 찍어. 내일 바로 사업자도 만들고 할거니깐.”
도협은 뭔가 이상한 집안에 장가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
“네. 대리인 접수로 사업자 등록증 나왔습니다.”
구청에 가서 두 사람의 혼인 신고서도 접수했고, 세무서에서도 사업자 등록증을 발부받았다.
사업자 이름은 ‘해운대라면’이었는데, 사업자의 경우에는 지명을 이렇게 써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다.
그러고는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움직였다.
‘해운대라면’ 이란 이름을 상표권으로 등록시키고, 라면 봉지와 컵라면 표지 디자인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래 건호 너 부산 내려갔다고 애들에게 들었다. 부산서이 세 명 다 잘 있지?”
“네 선배님. 동규야 의사로 잘나가고, 정진이는 사회운동하고 있습니다.”
“사회운동? 뜬금없네. 학생 때는 그쪽 아니었잖아?”
“네. 학생 때는 뭐 그냥 놀자 파였죠.”
“허허 인생 어찌 될지 알 수 없다더니. 뭐, 잘하겠지. 그래, 넌 상표 등록할 게 있다고? 거산에도 법무팀 있잖아?”
“아, 회사 거가 아니라, 개인적인 거라서요.”
“사업 준비하냐? 어디 보자. 해운대라면? 있을 거 같은데, 잠시만 있어 봐.”
동문 선배이자 응원단장이던 김웅성 선배는 재작년에 변리사가 되었는데, 선배 덕 좀 보려고 찾아온 것이었다.
“검색해보니 다행히 없네. 해운대 라멘은 있는데, 라면은 없다. 이름 괜찮은데. 해운대 구청에서 일 받은 거야?”
“네? 아, 그건 아닙니다.”
“그래? 난 해운대 라면이라고 하길래 해운대 구청에서 비축용으로 주문하는 거에 입찰하는 건가 했다.”
선배의 말을 듣고 보니, 구청이나 시청에서 재해대비 비상 물자로 라면을 비축한다는 게 생각이 났다.
여름 수해가 나면 체육관이나 학교 강당으로 수재민들이 대피하는데, 그때 구청이나 시청에서 푸는 물자로 라면을 비축해 두는 것이었다.
새로운 라면 시장을 알게 된 것이었다.
“저는 그쪽은 아니고, 여름 바캉스 시즌에 백사장에서 소비되는 라면 수량이 좀 되더라고요. 그거 한번 틈새를 잡아보려고 합니다.”
“뭐 그것도 나쁘지 않네. 다만, 이 ‘해운대’와 ‘라면’이 고유 명칭이 될 수도 있기에 등록 출원이 안 될 경우도 있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은 ‘해운대 라면’을 등록시청하고, 반려될 경우를 생각해서 ‘해운대 in 라면’으로도 신청을 하는 거야.”
“등록 심사 기간이 길 수도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겁니까?”
“맞아. 심하면 등록 출원을 한 지 1년이 지나서 등록되거나 반려되었다고 결과가 나오기도 하거든.”
“급행비 같은 걸 써도 그렇습니까?”
“보통은 급행비 쓰면 빨리 되지. 하지만, 이 해운대, 라면 이라는 단어가 문제야. 그래서 중간에 ‘in’ 이나 ‘人’을 넣어서 같이 출원하는 걸 추천해. 그래야 상표 기다린다고 사업이 딜레이 되지를 않지.”
선배는 등록이 되든 반려가 되든 in이 들어간 것을 같이 등록 출원하라고 했다.
그리고, 상표 디자인에서도 in을 작게 표기해서 그냥 ‘해운대 라면’으로 보이게 하는 꼼수도 알려줬다.
“아까 선배님 이야길 듣고 생각했는데, 서울 라면, 부산 라면, 광주 라면, 대구 라면도 다 등록을 해두면 될 거 같습니다. 각 지자체 비축 물량 입찰에 한번 넣어보려고요.”
“그런 거라면 관광지로 유명한 제주 라면을 해야지.”
“아, 그렇네요. 그냥 하는 김에 경남, 강원, 전라, 충청 라면도 다 하죠.”
“하하하 그래라. 나야 돈 버는 거지.”
사실, 특허가 아닌 상표등록은 변리사를 통하지 않고 법무사로도 가능했는데, 선배 얼굴도 볼 겸해서 올라온 것이었고, 생각지도 못한 판매 채널을 알게 되었으니 상표권 등록 대행비가 아깝지 않았다.
각 지자체의 비축 물량을 따내기만 하면 몇만 개씩은 납품할 수 있었기에 블루오션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렇게 컵라면이나 봉지 면의 포장만 변경해서 해 줄 수 있는지를 공장과 협의 하긴 해야 했다.
웅성 선배 소개로 동문 선배가 대표라는 디자인 회사에도 들러 라면 봉지와 컵라면 디자인을 맡겼다.
그리고 부산으로 내려오며, 어떻게 OEM 생산된 라면을 거산의 이름을 붙여 유통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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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 보관실에 보관되어 있던 주간, 월간 회의록을 파일로 만들어서 인트라 넷에 올려두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기록을 살펴봤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해 보았습니다.”
주간회의에서 건호는 새로운 방향에 대해 이야길 시작했는데, 결국 라면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기억이 나는군. 2번째 추진했던 IMF 때는 생산 직전까지 갔었으니깐. 헌데, 예산이 문제야. 예산이. 우리 회사가 식품이 주력인 회사였다면 어떻게든 본사 차원에서 공장을 세워서 추진을 했을 텐데. 의류와 오프라인 매장 위주이다 보니 아쉬워.”
10년 전 좌절의 기억이 나는지 이창모 부장은 아쉽다고 고개를 저었다.
“네. 저도 그 자료들을 다 보았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헌데, 이번에 뉴클라우드 호텔에서 젊은 쉐프를 스타로 키우기 위해 그 친구 이름을 붙인 라면을 만든다는 계획을 들었습니다.”
“호텔에서 라면 메뉴를 만드는 것과 무슨 상관이지?”
“호텔 식당에서 파는 라면 메뉴가 아니라 봉지면과 컵라면이라고 합니다. 해서, 그 호텔에서 만든다는 라면에 우리 거산의 상표를 붙여 유통하는 것을 그쪽과 이야길 하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 거산에서 1년간 소비하는 라면량과 금액에 대한 서류입니다.”
이창모 부장과 김한철 차장은 미리 조사가 되어 있는 수치를 보더니 그 수량이 꽤 된다고 놀랐다.
“봉지면과 컵라면 해서 회사에서 소비되는 게 대략 50만 개군.”
“네. 뉴클라우드 호텔에서는 봉지면, 소 컵라면, 대 컵라면 해서 300만 개를 생산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라면에 우리 거산의 로고를 넣고, 우리가 유통 판매하는 것을 그쪽 담당자와 협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