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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으로 유통재벌-31화 (31/203)

031. 인정하기.

“벌써 협의를 하고 있다고?”

“네. 동생이 뉴클라우드 호텔에서 일을 하고 있다 보니 그쪽 정보를 듣게 되었고, 우리와 연계될 수 있을 것 같아 컨텍하고 있습니다.”

“이야 호텔은 돈이 많아서 부럽네. 라면 3백만 개라. 호텔 위치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닌데도, 그 정도로 자금력이 있다니.”

“그러게나 말입니다. 요리사 한 명을 띄우려고 몇억의 예산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네요.”

이창모 부장과 김한철 차장은 예산이 넉넉한 호텔이 부럽다며 이야길 했는데, 괜히 호텔 쪽으로 관심이 넘어갈까 싶어 시선을 급히 돌려야 했다.

“생산까지 그쪽에서 해서 우리 쪽에 유통을 맡기고 싶어 하는데, 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로고를 넣어 주는 조건으로 유통 판매를 대행하게 된다면 나쁜 조건은 아니야. 외적으로는 우리 상품으로 보일 테니깐. 헌데, 유통 마진은 어느 정도지?”

“호텔 측에서는 봉지면에는 개당 30원, 소 컵라면은 개당 40원, 대 컵은 개당 50원을 줄 수 있다고 하는데, 조절이 크게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한 품목당 100만 개라면 봉지면에서 3천만 원, 소 컵라면에서 4천만 원, 대 컵라면에서 5천만 원이라, 총 1억2천만 원의 이익이었다.

본래라면 유통을 위한 창고비용이나 물류비용등 판관비가 추가로 들어가게 되지만, 회사 자체 물류 유통부서를 쓸 수 있기에 추가로 부담되는 것은 없다고 계산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판매 금액의 10% 정도겠지? 이게 수량이 수량이다 보니 사람이 최소한 둘은 붙어야 하는데, 애매한 금액이야.”

사실, 매출이 많고, 일이 많은 회사나 부서라면 이 마진을 보고 뛰어들기 쉽지 않았다.

약을 쳐야 했다.

“이게 수익은 애매하지만, 거래금액은 나름 큰 축에 듭니다. 그게 우리에게 도움이 됩니다.”

300만 개를 다 판다는 전제하에 거래금액이 12억이었으니 거래금액으로만 본다면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이걸 아예 매입해서 판매하게 되면 금액 자체를 매출로도 잡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매입을 잡을 예산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이득은 확실히 작습니다. 하지만, 거래금액을 크게 해서 우리 부서의 몸집이 커졌다는 것을 위에 보여주기 위한 실적으로는 좋은 케이스입니다.”

임건호 차장의 말에 이창모 부장과 김한철 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래금액이 작년 대비 12억이나 늘어났다고 하는 지표는 위에 어필하기 좋은 수치였다.

더구나, 이창모 부장과 김한철 차장은 이번에 파벌을 갈아타며 작년 대비해서 몇 배의 예산이 더 나왔다는 것을 떠올렸다.

거래 규모가 1년 만에 12억이 증가 한다면, 차 후년에는 더 많은 예산을 받아 올 수 있을지 몰랐다.

이창모 부장은 부서의 미래를 위해 수익이 안 나더라도 해야 하는 일이라 판단했다.

“임차장이 뉴클라우드 호텔 쪽이랑 약속 잡아봐. 한번 보고 결정하지.”

“네. 알겠습니다.”

건호는 입으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호텔 쪽 사람을 만나자고 할지는 몰랐기에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

“대역 알바를 해달라고? 뭐 하자는 건데?”

박정진은 건호가 대역 알바를 부탁했지만, 사실 말이 대역이지 실제로는 사칭(詐稱)을 하는 것이었기에 부정적으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했잖아. 동생이 결혼하기로 했는데, 요리사인 매제를 좀 키워주기로 했다고.”

“매제 키워주는 거랑 내가 호텔 쪽 담당자로 대역을 하는 게 무슨 상관이 있냐고. 똑바로 이야기해 봐. 뭘 숨기려고 이렇게 하는 거냐?”

결국, 정진이의 도움을 받으려면 어느 정도까지는 털어놔야 했다.

“매제를 스타 쉐프로 키우려고 이름 넣어서 라면을 출시시켜 주고 싶거든. 해운대 라면이라고.”

“해운대 라면?”

“그래. 300만 개를 생산해서 우리 회사에 매제 이름으로 납품을 하려는데, 호텔 쪽 사람을 보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정진이에게 라면 건을 다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거산이랑 라면 납품 계약을 하고 싶은데, 그냥 납품만 하면 유통 핸들링을 못 하니 계약을 맺어서 핸들링은 너희가 하고, 귀찮은 잡일은 거산에 떠넘기겠다는 거네. 맞지?”

“그래. 맞아.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해.”

“햐. 인마, 이거 독한 마음먹고 걸면, 사문서위조에 사칭으로 걸 수 있는 거고, 너는 기망에 업무 배임으로 엮을 수도 있는 거야.”

“그래. 나도 알아 하지만, 아무도 피해를 안 보잖아. 오히려 다 이득이 되는 일이라고.”

“아니, 띠바야 법이란 놈은 그런 상호 이득을 본 것을 안 따진다고. 충고하는데, 그냥. 호텔이랑 직계약하는 게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개인 사업자로 납품한다고 사실대로 말하고 진행을 해.”

“야, 넌 대기업을 몰라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대기업에 일반 개인 사업자가 납품한다고 하면 이 조건으로 절대 계약 못 해. 어떻게든 짤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짜려고만 한다고.”

“그렇다고 불법이 용인되는 건 아니잖냐. 내 도움 받으려면 합법으로 가.”

“아이씨 이래서 법하는 애들이 답답하다니깐. 유도리가 없어요. 유도리가.”

“닥치고, 호텔 측이 아니라, 매제인 쉐프와 계약하는 거라고 제대로 이야기해. 그리고, 그 쉐프가 네 매제가 될 거라고 먼저 알려. 그러면 사내 준법감시팀에서 건을 확인해서 업무진행 해도 되는지 아니면 스톱 시킬지 처리해 줄 거야. 그렇게 진행하는 거 아니면 난 진짜 못 도와준다.”

“아, 새끼 갑갑하네.”

“깝깝하게 해야 나중에 뒤탈이 없어. 나중에 괜히 일 터져서 더 스트레스받지 말고, 회사에 똑바로 이야기하고 와.”

정진이에게 도와달라고 이야기하러 갔다가 욕만 오지게 먹고는 사무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냥 유도리 있게 좀 해 주면 되는데, 그렇게 못 해주겠다고 하니 이걸 어디서부터 다시 풀어야 할지 난감했다.

일이 복잡해졌지만, 사실 정진이 말이 다 맞는 말이었다.

그냥 다른 사람에게 대역해 달라고 해도 되겠지만, 정진이의 말처럼 그렇게 계속 꼼수나 편법으로만 일을 해 나가다는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이 어려웠다.

그리고, 구내식당 월세 작업을 쳐둔 게 있다 보니, 라면 건에서 생긴 꼬투리로 인해 그 일까지 드러나는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야 했다.

진짜 낭패할 일이 터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도(正道)로 돌아가는 게 맞을 것 같았고, 이창모 부장과 깨 놓고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

녹산공단의 공장으로 가던 이창모 부장을 동생이 근무하고 있는 뉴클라우드 호텔 스카이라운지로 데리고 갔다.

“부장님. 이쪽이 제 여동생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올가을에 결혼 날 잡은 매제입니다.”

동생 내외는 인사만 시키고는 보내고, 이창모 부장에게 사실대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니깐. 매제를 어떻게든 유명하게 만들고 싶어서 라면 건을 만들었다는 그 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호텔 측에서는 그럼 아예 라면 건을 모르는 거고.”

“네. 납품도 매제가 차리는 회사에서 처리하기로 해서 호텔과는 별개입니다.”

“그럼, 라면 퀼리티는 제대로 나오긴 하는 거야? 불량 식품은 확실히 아니지?”

“네. 중견 식품업체 여러 곳과 만나서 생산 견적까지 다 받았다고 합니다. 납품 계약 되면 바로 생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창모 부장은 건호의 말을 듣고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임 차장. 매제가 유명한 요리사가 될 수 있게 도와주려고 하는 건 오빠니깐 다 이해가 돼. 그리고 그걸 위해 회사의 자원을 쓰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고.”

무덤덤한 이 부장의 말투를 들으니 다행히 크게 질책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심려 끼쳐서 죄송합니다. 개인으로 납품을 하게 되면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될까 봐 속이려고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뭐 이게, 회사에도 이득이 되는 것이니 자네가 선의를 가지고 이렇게 일을 추진했다고 이해하겠어. 그런데, 개인 사업자로 하면 제대로 된 계약을 못 할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는 건 좀 그렇네.”

“죄송합니다. 비빌 언덕 없는 개인 납품이라고 하면 그 마진을 다르게 해서 계약을 강요당할 것 같아 그랬습니다.”

“그래. 임 차장의 그 말도 일리는 있어. 하지만, 실망이야. 내가 느낀 실망이 무슨 실망인지 알아?”

“회사를 속이려고 했다는 것에 대한 실망이라 생각됩니다.”

“아니야. 나를 이리도 임 차장이 모르는 건가 하는 실망이야.”

“네?”

“서류 보관실에서 회의록을 보면서 부서의 히스토리는 다 봤지?”

“네. 정리하면서 다 읽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면 부서가 어떻게 굴러왔는지는 알 수 있어. 하지만, 부서를 받쳐주고 있는 계약서나 협의서 같은 건 안 봤지?”

“네. 년도 별 근황 보고서만 보았고, 단순 수치나 매출이라고 생각해서 계약서 쪽은 보지 않았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 내가 부장이 되고 난 7년 동안의 계약서나 계산서를 자네가 봤다면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야.”

“미리 확인해보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는 없고, 미리 보고 여러 계약을 확인했다면 개인 사업자라서 조건 바꾸고 하는 그런 계약을 우리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거야.”

이 부장은 커피를 들어 여유 있게 마셨는데, 아무리 작은 개인 사업자라 해도 불합리한 계약은 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의 발로에서 나오는 여유였다.

“하지만, 임 차장의 그런 생각이 당연해. 대부분의 대기업은 다들 그렇게 협력사의 골수를 빨아먹으니깐. 어쩌면 눈물 많은 내가 협력업체의 골수를 빨지 않았기에 우리 부서가 어렵게 된 건가 하는 고민도 했거든.”

이창모 부장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사정 다 알았으니깐 계약 진행하지.”

“괘, 괜찮겠습니까?”

“그래 내가 호텔 쪽 사람들을 만나보자고 했던 게, 다른 마트나 유통체인과 계약하지 않고, 우리와 유통판매계약을 하려고 했는지가 궁금했거든. 그런데, 방금 그 이유를 알았으니 바로 진행하면 되는 거지.”

“준법팀이나 그런 곳에 알리지 않아도 될까요?”

“사실, 임직원의 지인을 이용한 납품이 어디 한두 건이야?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건데. 이 정도는 그냥 해도 괜찮아. 진행해.”

***

“자, 정진아 네 말대로 했다.”

“그래, 짜식이 그냥 안 속이고 해도 되는 건데, 뭘 그렇게 숨기고 속이려고 하는 거냐.”

“그래 니 똥 굵고, 대물이다. 일단 모레 칠곡에 가야 해. 너도 시간 빼둬라.”

“칠곡? 거긴 왜?”

“거기에 라면 공장이 있어. 우리 매제랑 같이 갈 건데, 거기서 생산계약서 좀 보고 검토 좀 해주라.”

“그러지. 그럼 일당은 라면 생산되고 나서 라면으로 주라.”

“그래. 몇 개?”

“천 개. 아니네. 3종류니깐 3천 개.”

“미친놈. 아예 만개를 달라고 해라. 3천 개가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천만 원 넘는 돈이야 인마.”

“세금 만까이 치는 기부라고 생각해. 넌 모르겠지만, 시설이나 그런 곳에도 라면 엄청 들어가.”

“그래? 밥 다음 라면이라고 하지만, 라면이 들어가는 데가 많네.”

“매제를 진짜 스타로 만들고 싶으면 애들 라면 봉사도 몇 번 가서 사진도 찍어두고 해. 미담 제조, 아니 미답 착즙을 미리 해 둬야 되는 거야.”

“아, 일 많네. 괜히 하자고 했어. 돈은 돈대로 나가고. 집안 기둥뿌리 뽑히겠다 진짜.”

“자기가 사서 해놓고는 무슨.”

“그러게. 내가 병신이지. 에휴. 모레 아침에 픽업 올게.”

***

경북 칠곡에 위치한 햇살 식품에 도착하니 통화를 했던 문성철 상무가 회사 로비에서 우리 세 명을 맞았다.

문상무는 50대의 나이임에도 정장 앞주머니에 부토니에까지 꽂은 멋진 패션 센스를 가진 신사였다.

“보내주신 파일 다 확인하고 했습니다. 먼저 우리 공장에 직접 와보시니 어떠십니까?”

“규모가 꽤 커서 놀랐습니다.”

“라면 위탁 생산만 20년입니다. 일단 안으로 가시죠.”

앞장서는 문상무의 갈색 구두가 눈에 들어왔는데, 구두 뒤축까지 깔끔하게 닦여 있는 것에서, 그의 성격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집무실도 흐트러짐 없이 깔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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