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 상견례로 기념하기.
“그런데, 상표권이 아직 등록되기 전인데도 생산 들어가도 되는 겁니까?”
햇살 식품의 강진석 부장은 봉지 패키지와 컵라면의 패키지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미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고, 생산 금액의 60%도 입금이 끝난 이후였지만, 혹여나 상표권 때문에 문제가 생길까 싶어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이게 이름이 ‘해운대 라면’이다 보니 상표등록 출원에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 보시면 조그맣게 사이에 한자로 ‘사람 인(人)’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해운대 라면이 안 되면 해운대인 라면으로 출시가 될 겁니다.”
“여름 성수기 날짜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거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콩나물 블록이 내일부터 들어오면 바로 생산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햇살 식품의 사무실에서 아래 생산 라인을 보는데, 기름에서 면이 튀겨지며 줄줄이 라인을 따라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 온종일 면이 튀겨지는 모습을 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고 신기했다.
생산의 대부분이 자동화되어 있었기에 제조되는 모습 자체가 정밀기계가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 같아 재미가 있었다.
“사흘 후 첫 제품이 나오게 됩니다. 그때 보통은 시식회를 하고, 사진을 찍고 합니다. 몇 시가 좋겠습니까?”
문성철 대표는 그날 행사에 몇 명이 오고 하는지를 물었다.
“가족들하고 하면 10명 내외일 것 같습니다.”
“가족요? 하하하 보통은 회사 임원분들이 오는 행사인데, 특이하군요. OEM 납품이라고 하더라도 임원분들이 참여하는 게 기본인데 가족들이 온다고 하니 재미있군요.”
“더 재미있는 것 알려 드립니까? 사흘 후에 가족들이 모이는 게 상견례도 겸합니다.”
“네?”
“요리사인 매제와 여동생이 가을에 결혼 날짜를 잡았는데, 아직 상견례 전이거든요. 그래서 사흘 후 출시 행사로 모일 때 그냥 상견례도 같이 하려구요.”
“오호, 이거 그러면 레드카펫이라도 좀 깔고 꾸며야 할 것 같은데 이거 어쩐다.”
문성철 대표는 자기 회사에서 상견례를 할 것 같다는 말에 아주 재미있어 했는데, 상견례 음식으로 라면을 먹는다니 대단한 데를 몇 번이고 중얼거리며 재미있어 했다.
그리고 사흘 후 어머니와 여동생, 이모를 모시고 칠곡으로 올라왔고, 매제는 친형과 부모님을 모시고 햇살 식품으로 오기로 했다.
“오빠 저기 진짜 레드카펫이 깔려있어.”
“하하하 진짜네. 여기 사장님이 뭔가 외적으로 꾸미고 하시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거든. 엇!? 발렛주차도 해 주시는 건가?”
레드카펫 앞에 잘 차려입은 문성철 대표와 직원이 나와 있었는데, 차 문을 열어 어머니와 여동생이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모님께서는 저와 가시지요. 임 차장님이 여동생과 어머니랑 같이 걸어가고요. 포토월도 있습니다.”
“포토월도요?”
“사진사는 저희 직원이지만 나름 잘 찍어 줄 겁니다.”
“어머나, 이렇게 잘생긴 분하고 팔짱을 껴보게 될 줄은 몰랐네. 남편이랑 안 오길 정말 잘했네.”
이모는 신사답게 잘 꾸민 문성철 대표와 팔짱을 끼자마자 아주 입이 찢어져라, 좋아했는데, 그런 모습을 사진사가 열심히 찍어주었다.
나도 양쪽에 어머니와 여동생의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갔는데, 햇살 식품의 로고가 잔뜩 들어간 포토월이 세워져 있었고, 연단까지 있어서 진짜 행사장의 포토월처럼 잘 만들어져 있었다.
찰칵 찰칵! 찰칵!
“이쪽 보시구요! 환하게 웃으면서 가족끼리 손잡아 주세요! 네 화목하게~ 행복하게~ 좋아요!”
“건호야, 진짜 이거 영화제에 온 거 같잖냐.”
“이게 무슨 일이니, 이게 무슨 일이야?”
상견례의 주인공인 건희보다 이모가 더 좋아했고, 주위 사람들이 다 잘 차려입고 웃어주는 것이 마음에 드는 건지 어머니도 계속 웃으시며 사진기를 보며 아주 좋아해 주셨다.
이런 때는 어머니도 아픈 것이 전혀 티가 나지 않았고, 생기가 넘치셨다.
“신랑 측 차가 왔습니다! 신부 측은 잠시만 저쪽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주세요!”
도협이의 형인 최승훈이 운전을 하고 왔는데, 그들도 우리처럼 공장 앞마당에 깔려 있는 레드카펫을 보고는 이게 뭐지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문성철 대표가 멋들어진 호텔 도어맨처럼 문을 열어주고 시댁 어르신을 잡아 드리자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한 건지 웃으며 레드카펫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시댁 어르신 두 분 모두 배추 농사를 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피부가 갈색으로 햇빛에 검게 타 있었지만, 그만큼 건강해 보이셨다.
그리고, 형인 최승훈도 키가 175cm 정도 되었으니 어디 빠지는 외형은 아니었다.
“자 웃으시고 이쪽 보세요!”
햇살 식품의 포토월 앞에서 시댁 어른 부부를 중간에 두고 아들 둘이 양옆에 서서 사진을 찍었는데, 확실히 아들이 둘이다 보니 든든해 보였다.
“자 그럼 가족분들 다 같이 서서 기념사진 찍겠습니다!”
사진사의 말에 우리도 포토월 앞에 나가니 문성철 대표가 나서서 자리를 배정해 주었다.
“오늘 주인공인 신혼부부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네네. 그러게 서시면 됩니다. 두 손 모아서 하트 모양 해주세요!”
찰칵! 찰칵! 퍼퍼퍼펑!
눈부시게 플래시가 터지며 사진을 찍었는데, 진짜 포토월에 선 연예인의 기분이 어떤지 알 것 같았다.
“한 번 더! 네,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람잡이 역할을 제대로 하려는지 문성철 대표는 박수를 치며 우리를 집무실로 안내했다.
“오늘 최도협 쉐프의 기념비적인 라면이 나오는 날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부부를 위한 상견례이기도 해서 힘 좀 줬습니다.”
집무실 한쪽에는 현수막으로 ‘해운대 라면 출시 기념식’이라고 붙어 있었고, 또 다른 쪽에는 ‘상견례를 축하합니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비싼 원목 테이블에 앉으니 비서가 차를 내어주었고, 연이어 오늘 생산된 해운대 라면을 인원수대로 끓여 내어왔다.
정갈하게 담긴 김치와 깍두기, 단무지까지 완벽한 라면 세팅이었다.
“우리 공장이 라면 공장이지만, 이렇게 라면을 먹는 상견례는 또 처음입니다. 모쪼록 흥겨운 결과를 만들어 내시길 바랍니다. 그럼 저희는 빠지겠습니다.”
문성철 대표가 눈치껏 빠져주며 집무실 문을 닫자 그제야 약간 서먹한 분위기가 되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은은한 배경음악이 깔리며 분위기를 살려줬고, 다들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했다는 것이 떠올라 얼굴에는 재미있었다며 웃음이 가득했다.
“라면이 퍼지면 또 맛이 없습니다. 그리고 요기 보시면 우리 매제 얼굴 사진이 들어가 있습니다.”
봉지라면 패키지 시안과 생산품을 보여주자, 어르신들은 사진 잘 나왔다고 웃었다.
“잘 생겼네. 우리 아들. 이 라면은 이제 우리 집 가보다.”
“아버지 라면은 유통기한 6개월밖에 안 돼요. 그전에 먹어야 해요.”
“안 먹고 그냥 놔두면 되지. 아차, 라면 불겠다.”
시댁 어르신이 먼저 젓가락을 들자 우리도 젓가락을 들어 먹기 시작했다.
후루룩~
나름대로 소리가 안 나게 먹으려고 했으나, 면 특유의 소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해운대 라면은 얼큰하게 매운맛이 있었지만, 콩나물 블록이 들어가서 그런지 시원한 맛도 같이 느껴졌다.
해장용으로 딱 알맞은 국물맛이었다.
“후우, 이거 진짜 술 먹은 다음 날에 먹기 딱 좋은 맛인데.”
“이 사람이 또 술 이야기를 하고 있어. 사돈 앞에서 말이야.”
“아니, 술을 먹겠다는 것이 아니잖아. 흠흠. 하여튼 우리 사돈댁에 참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요리한다고 했을 때부터 지원을 많이 못 해줘서 지가 벌어서 일본에도 가고 해서 참 힘들게 요리를 했습니다. 헌데, 사돈댁에서 도협이를 어떻게든 유명하게 만들고 싶어서 이렇게 해 주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 라면 만드는데 10억 넘게 들었다고 하던데, 손해를 보면 어찌할지 그게 난 걱정이 되어서리...”
“어휴, 두 분은 걱정 말아요. 이 둘 사주가 너어-무 좋아서 둘이 합이 들어서 뭐든 잘 된다고 점밭이들이 다 입을 모으더라니까요. 잘될 거예요.”
말이 불편한 어머니를 대신해 이모가 점을 봤는데 둘이 엄청 잘 살 거라고 나왔다고, 서로 살리는 팔자라고 침을 튀기어가며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서로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고, 이모는 도협이의 친형 연락처를 받아서는 참한 처자를 소개 해 주겠다는 걸로 상견례가 끝이 났다.
이미 예단, 예물 같은 거는 둘이 다 이야기를 했었기에 오늘은 그저 라면의 출시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정을 나누는 것이 목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오!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서 다행입니다. 그럼 두 분은 여기서 이거 당기세요!”
문성철 대표는 도협이와 건희에게 현수막 아래 달린 족자를 당기게 했는데, 돌돌 말린 족자가 펼쳐지며 ‘대박 나서 잘 사세요~!’ 하는 글씨가 나왔다.
그 글씨를 배경으로 또 사진을 찍었고, 돌아가는 차 트렁크에는 라면을 꽉꽉 눌러 담았다.
“내일부터 물량이 쌓이기 시작하는데, 다음 주에는 거산의 물류 센터로 들어가야 할 겁니다. 인도·인수 서류를 차장님이 미리 처리해 주십시오.”
“네. 대표님. 내일 연락 드리겠습니다. 오늘 신경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하. 저도 색다른 경험을 해서 좋았습니다. 이제까지 출시 기념식은 그냥 리본 커팅식하고 라면 먹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이 레드카펫에 포토월을 같이 해야겠습니다.”
“진짜 연예인이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럼 연락 드리겠습니다.”
***
“네? 부장님이 물류 팀 처리를 하셨다고요?”
“그래. 허문도 팀장에게 이야기해서 햇살 식품에서 바로 물류센터로 물건 넣으면 될 거야. 그러면 월요일부터 식품 사업부에 식자재 들어갈 때 라면도 같이 들어갈 거고. 왜? 이런 것도 안 해 줄 거라 생각했어?”
이창모 부장은 나를 눈물만 많은 허수아비 부장으로 보는 거야? 그러면 안 돼! 하는 말을 얼굴 표정으로 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기존에 구매해서 들여놓은 다른 라면 재고도 있고, 해서 이게 바로 안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뭐, 공두기 쪽에서 정기적으로 발주 들어오는 게 없어서 확인 전화하고 했다고는 하더라고. 나중에 임 차장이 허 팀장에게 가서 인사나 해. 거기도 이 라면이 자네 매제 때문에 하는 거라고 알려줬어. 그리고 판매로 인한 거래 대금이 늘어나면 회사에는 확실히 이득이 되는 거니깐 뭐라고 하지 않을 거야.”
“네. 감사합니다.”
미리 일을 처리해 준 이창모 부장에게 고맙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걱정이 되었다.
부장 선에서 라면에 있는 요리사가 임 차장 매제라는 소문이 돌게 되면 금세 회사 전체로 소문이 퍼질 터였다.
그렇게 되면, 이게 또 문제가 될지도 몰랐다.
물론, 외파인 김독수 전무의 라인을 타고 있기에 이걸로 목이 날아가고 하는 일은 없을 테지만, 회사 일에 사적인 혈연을 끌어들였다는 눈총은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할 터였다.
『미안 미안해~ 너를 두고 떠나려니~』
노래방 회식 이후 핸드폰 소리를 이 노래로 바꿔 뒀는데, 변리사인 김웅성 선배였다.
“네 선배님. 혹시, 상표권처리가 되었는가요?”
“그래. 해운대라면, 해운대 인 라면 다 등록되었다. 패키지에 뭘 넣어도 상관없게 되었어. 다행히 해운대 라멘으로 일식 라면집이 상표 등록되어 이어서 해운대 라면도 바로 등록을 해 준 것 같다. 축하한다!”
“어휴 다행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다음 주부터 바로 유통이 되거든요.”
“햐- 쨔식 일 진행을 너무 타이트하게 하네. 그리고, 다른 지자체용 서울라면, 제주라면도 다 등록이 되었으니깐, 이거도 영업하면 될 거다.”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럼 서울로 조만간에 올라가겠습니다.”
“그래. 서류는 등기로 보내주마.”
“네 감사합니다.”
상표권까지 다 되자 이제 진짜 유통되어 판매만 되면 되었다.